소설리스트

갓코인-230화 (228/300)

# 230

시간을 투자할 가치가 있었다.

바쁜 사냥을 미뤄 두고 상엽이 선택한 것은 저택에서의 근사한 식사였다.

스트라인버그는 수십 명은 앉을 수 있는 거대한 식당을 가지고 있었다.

길게 늘어진 식탁에는 하얀 천이 덮여 있었고 정확한 간격에 맞춰 은색 촛대가 놓여 있었다.

“그런데 꼭 이렇게 먹어야 돼?”

긴 식탁의 끝과 끝이 상엽과 스트라인버그의 자리였다.

서로 30미터나 떨어진 곳에 마주 앉았지만 식사는 훌륭했다.

스테이크와 감자를 으깬 간단한 요리지만 풍미가 제법이었다.

‘신전 건축가라더니.’

공중에 떠 있는 것으로도 놀라웠지만 내부도 만만치 않았다.

높은 천장에 오래된 성당에서나 볼 법한 정갈하고 디테일한 스테인드글라스가 장식되어 있었고, 기둥을 비롯해 작은 인테리어까지 개성을 가졌지만 고풍스러운 분위기로 어우러지는 맛이 있었다.

‘이건 진짜 가지고 싶네.’

상엽은 건물에 대해 처음으로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멕시코는 좀 어때?”

“항상 똑같지. 힘이 있는 자들은 법 위에 앉아 편하게 노닥거리고, 힘없는 자들은 죽을 때까지 고통받고.”

변종이 출현하기 전에도 멕시코는 카르텔에 의한 범죄 조직이 유명했다.

현재 멕시코를 장악한 자들이 대부분 카르텔 출신이라 운남에 이민자를 받을 때도 그들에겐 조건조차 제시하지 않았다.

“넌 아니라는 식으로 말하네?”

“보시다시피 난 젠틀맨이라서. 이렇게 조용한 곳에서 인류의 생존을 위한 싸움을 하고 있지.”

상엽이 원하던 대답은 이런 게 아니었다.

‘사냥을 갈 수 있느냐고 묻는 건데.’

그가 스트라인버그의 초대에 응한 이유였다.

멕시코에 사냥할 곳이 없다면 미국으로 돌아갈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괜히 귀찮은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아 물어본 것인데 이미 알고 있는 대답만 들었다.

“변종들은 잘 막고 있는 거야?”

“변종이 문제가 될 시기는 지났지.”

“거의 다 소탕을 한 거야?”

“그들도 꽤 강해졌으니까.”

갓랭킹 상위권에도 멕시코 출신의 인물들이 꽤 있었다.

‘여긴 효율이 별로겠어.’

상엽은 그렇게 판단을 내렸다. 차라리 미국의 남은 지역을 확실히 처리하는 게 나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말이야. 변종 처리에 대한 계획은 그만둬도 될 것 같은데.”

“무슨 뜻이지? 내가 인류의 영웅이 되는 길이 못마땅한 건가?”

“그런 건 아니고. 앞으로 변종은 없어서 못 잡는 사태가 벌어질 거야. 갓코인 유저들이 그만큼 강해졌거든.”

“많은 유저들이 그렇게 착각을 하더군.”

“무슨 뜻이야?”

“변종과 인간의 싸움은 인간의 승리로 끝났다? 섣불리 마시는 축배만큼 위험한 것이 없지.”

스트라인버그는 와인 잔에 붉은 술을 채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긴 식탁 옆을 걸어오며 말했다.

“지구가 자네 눈에는 아주 좁게 느껴지겠지? 사냥할 곳도 사라져 가고 날 위협하는 존재도 줄어드니까.”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건데?”

“변종이 나타나기 전에는 인간이 지구의 지배자였지. 하지만 그때도 밝혀내지 못한 지역이 있어.”

“심해를 말하는 거야?”

“노노.”

스트라인버그는 손가락을 세워 흔들더니 다시 술을 마셨다. 그러고는 짧게 결론을 말했다.

“아마존.”

아마존 역시 1급 위험 지역이었다. 정확히는 탐험이 되지 않은 지역이라 미지의 등급이었다.

상엽이 그곳에 가지 않은 것은 전적으로 시카고가 익숙해서였다.

“아마존에 무엇이 있을 것 같나?”

“변종이 있겠지.”

아직까지 아마존은 누구도 정복을 하지 못했다. 미국조차도 지금 상엽이 정복을 하는 중이었다.

“아주 특별한 변종이 있지. 알고 싶나?”

“뭐 굳이 말해 줄 필요는 없어.”

“응? 그게 무슨 말인가?”

“지금은 미국의 변종을 사냥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거든. 효율도 좋고, 익숙한 놈들이기도 하고. 굳이 아마존에 갈 필요는 없잖아.”

“이런! 자네는 힘을 가진 책임감이 없군!”

“있어. 그래서 빨리 사냥하고 내 사람들을 지키러 가야 돼.”

상엽의 반박에 스트라인버그는 무안한 듯 빈 와인 잔에 술을 다시 채웠다.

“뭐 식사 대접은 즐거웠어. 좀 비싼 값을 치르는 거 같긴 하지만 이거 놓고 갈게.”

상엽은 동희에게 받은 해독제 한 병을 테이블 위에 놓았다. 아직 여유분이 충분하고 거의 쓸 일이 없어서 해독제를 선택했다.

그런데 스트라인버그는 관심 없다는 듯이 해독제를 보다가 빛을 반사한 유리병 내부에 무지개가 만들어지는 것을 보고는 눈동자가 커졌다. 그러더니 재빨리 뚜껑을 열고 혀끝을 입구에 넣었다.

“오! 이런!”

그의 과장된 리액션에 상엽은 하마터면 무기를 꺼낼 뻔했다.

“자네! 연금술사를 알고 있나?”

“그에 대해선 묻지 마. 아무것도 말해 주지 않을 테니까.”

“독약을 만드는 데 그가 꼭 필요해!”

“네 영웅놀이를 도와줄 의무는 없어.”

“그럼 이렇게 하지! 연금술사가 내 독약을 완성해 준다면 난 집을 지어 주겠네! 그 연금술사와 자네! 두 채를 지어 주지!”

이건 구미가 당기는 말이었다. 하지만 동희를 방해하고 싶지는 않았다.

“기다려. 물어볼 테니까.”

상엽은 그렇게 말하며 자리를 옮겨 동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동희는 신전 건축가에 대해 이미 알고 있는 듯했다.

-그 사람이 꼭 필요해! 연구소와 대장간을 지어 주면 연구가 더욱 쉬워질 거야! 그리고 독약 정도는 금방 만들 수 있어!

의외로 동희는 흥분한 목소리로 스트라인버그를 원했다.

“좋아. 기회를 줄게.”

-거짓말이군요.

‘가만히 있어. 협상이라고 하는 거야.’

상엽은 동희가 원한다는 말을 굳이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연구소와 대장간. 그리고 테니아 수도 테니아 시티의 시청 건물. 여기에 한 가지 조건이 더 있어. 블랙 해머의 훈련장과 숙소. 꽤 큰 규모야.”

“크크. 아주 쉽군! 한 달 안에 끝내 주지.”

그는 자신 있는 말투로 말했다.

“단! 독약이 완벽할 경우에!”

“협상 완료.”

둘은 처음으로 악수를 했다.

푸르!

지옥마는 기분이 나빴다.

지난번 루시를 태웠을 때도 그랬지만 오늘은 더욱 기분이 나빴다.

자신의 등 위에서 놀이기구를 탄 것처럼 연신 괴성을 질러 대는 사내 때문이었다.

협상을 완료한 상엽은 시간을 끌지 않고 곧바로 그와 함께 블랙 해머와 동희가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스트라인버그에게 시카고 등록 지점이 없어서 지옥마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동을 하는 동안 상엽은 본래 그가 카를로스라는 흔한 이름을 가졌음을 알았다.

하지만 망치를 얻은 이후로는 스스로를 스트라인버그라고 소개했다.

“그런데 정말 아마존의 변종에 대해 관심이 없나?”

“없어.”

“이것 참. 정말 고급 정보인데. 이건 아마 트레저 헌터 길드 녀석들도 모를 텐데…….”

스트라인버그는 말끝을 흐리며 상엽을 유혹했다.

트레저 헌터라는 말에 살짝 끌리기는 했지만 상엽은 곧 잊어 버리고 대답조차 하지 않았다.

“정말 고급 정보라니까!”

“알았어! 알았으니까 말해 봐! 대단하다는 말 정도는 해 줄 테니까!”

결국 상엽이 짜증을 내며 소리쳤다.

“그렇게 들을 정보가 아니라고!”

“그럼 말하지 말든가!”

“그렇게 무시할 정보가 아니라니까?”

“그럼 빨리 말하든가! 놀라 줄 테니까!”

특이한 협상이었다. 첫 번째 협상과 달리 두 번째 협상은 좀처럼 결과가 나지 않았다.

“그만두지! 나도 자존심이 있어! 목숨을 걸고 알아낸 정보인데 그냥 줄 수는 없지!”

“오케이, 여기까지.”

상엽은 쿨하게 협상 결렬을 받아들였다.

결국 그들은 더 이상 협상을 하지 않은 채로 시카고 북부의 미네소타로 이동했다.

미네소타주의 브레이너드라는 도시에 저리를 잡은 블랙 해머는 막 식사를 끝마치고 정리를 하는 중이었다.

‘좋아. 완벽했어.’

상엽은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남은 음식을 경계했지만 비극적인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다.

“어? 이 사람이야?”

동희와 용소는 특이한 능력 때문인지 스트라인버그를 친근하게 대했다.

그들은 서로 인사를 끝내는가 싶더니 바로 연금술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주변 사람이 있다는 것도 잊고 대화 삼매경에 빠졌다.

상엽은 그들을 내버려 두고 블랙 해머들과 인사를 나누며 개개인의 상태를 살폈다.

실전 경험이 보태져서 그런지 그들의 성장 속도는 놀라울 정도였고 간단한 악수에서도 힘이 느껴졌다.

“우와! 진짜요? 멋진데요!”

동희와 용소는 불과 20분 만에 스트라인버그의 허세에 빠져서 감탄을 연발했다.

“사하르, 잘 지켜.”

상엽은 사하르에게 스트라인버그를 넘기고 미국의 동쪽 해변으로 이동하려고 했다.

그런데 지옥마를 불러서 막 올라타려는 순간, 스트라인버그가 급히 달려왔다.

“이봐! 친구!”

“왜?”

“정말 안 들을 텐데. 내가 특별히 말해 줄 수도 있는데.”

“또 그 소리야?”

“안 들으면 후회할 거라고.”

“그럼 말하든지.”

상엽이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자 스트라인버그는 조건을 바꿨다.

“자네가 먼저 말해 달라고 하면 말해 주지. 나도 더 이상은 양보 못 해.”

그가 이렇게까지 나오자 상엽은 호기심이 생겼다.

“좋아. 말해 줘. 듣고 싶어.”

“그렇지! 그렇게 나와야지!”

뭐가 마음에 드는지 이해하진 못했지만 상엽은 더 이상 따지지 않았다.

“흠흠! 그럼 내가 알아낸 아주 고급스러운 정보를 풀어 주지!”

스트라인버그는 상엽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모두 들을 수 있도록 자랑하듯이 말했다.

“변종 대장! 변종들의 왕! 변종왕이 아마존에 있다!”

연극배우처럼 손짓까지 해 가며 외친 말에 상엽은 눈살을 찌푸렸다.

“변종왕?”

“그렇지! 이제야 내 정보의 진가를 알아보는군!”

“직접 봤어?”

“모든 변종의 시작점이지. 아마존의 가장 깊은 곳에는 특별한 신전으로 통하는 길이 있어. 거기 변종왕이 자리를 잡고 있다는 말이지.”

상엽은 속으로 성아를 불렀다.

-진실입니다.

거짓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상엽이 변종왕을 찾아갈 이유는 없었다.

“알았어. 정보 고마워.”

“바로 날아가는 건가?”

“내가 왜 그래야 돼? 변종왕은 관심 없는데?”

“허! 이것 참! 변종의 정수를 얻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겠다는 말인가?”

“변종의 정수?”

“정확히 말하면 특별한 신전이지. 변종왕을 죽이면 광전사들의 거점으로 갈 수가 있다는 말이야.”

성아는 다시 이 말이 진실임을 확인시켜 주었다.

“광전사의 거점이 뭐야?”

-아주 오래전에 신의 힘에 맞서 싸웠던 전사들이에요. 폭군으로 불리던 이라무네와 전쟁을 벌였는데 압도적인 힘을 보여 주었어요. 결국 신이 무너지는 것을 볼 수 없어서 다른 신들이 나섰어요. 그때의 일로 광전사들은 탈출할 수 없는 차원에 갇히게 됐다고 들었어요.

“멋진 녀석들인데? 그 녀석들이 살아 있다는 거지?”

상엽의 질문에 대답한 이는 스트라인버그였다.

“그들은 소멸했지. 신이 아니었으니까.”

“그럼 의미가 없잖아.”

“노노. 아니지. 그들의 힘의 정수가 그대로 남아 있단 말이야. 바로 그들이 사라진 거점에.”

이건 확실히 구미가 당기는 말이었다.

“넌 그걸 어떻게 알았어?”

“하하. 그거야 뭐.”

상엽은 정보의 출처를 정확히 하고 싶었다.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우면 정보 자체를 믿을 수가 없었다.

성아가 진실이라고 한 건, 그가 속이지 않았다는 것이지 정보가 진짜라는 뜻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뭐 자네가 그렇게 원한다니 말해 주지.”

스트라인버그는 지금까지와 달리 상엽만 겨우 들을 수 있게 말했다.

“변종왕의 거처를 내가 지었어.”

“뭐? 왜 거길 네가 지어?”

“납치당했거든.”

그는 그 말을 하더니 헛기침을 하며 물러났다.

-진실이에요.

꽤나 여러 가지 사연이 있는 사내였다.

변종왕에게 납치를 당해 둥지를 지어 주었고 그 와중에 탈출을 한 것이다.

그래서 변종을 전멸시키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영웅 어쩌고 하더니.’

이 정보를 상엽에게 말해 주는 이유도 간단했다.

“날 이용해서 변종왕을 제거하겠다는 거지?”

“무슨 소리! 그 녀석은 내가 반드시 죽일 텐데!”

“그래? 그럼 알아서 해.”

상엽이 그냥 돌아서려 하자 스트라인버그는 갑자기 곁으로 다가왔다.

“이봐, 친구.”

“또 왜?”

“그 녀석만 잡으면 평생 자네가 원하는 건물은 뭐든 지어 주지.”

“조건도 없고? 제한도 없이?”

“물론이네! 난 내 말을 꼭 지키는 젠틀맨이니까!”

상엽은 그 말을 듣자 괜히 웃음이 나왔다.

“변종왕이라는 거지?”

변종들의 대장.

상엽은 흥미가 생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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