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9
지배의 울타리.
신의 대륙에 단 하나의 섬이 존재했다.
“벨로타는 가장 오래된 신 중의 하나예요. 그는 섬을 떠나지 않았고 어떤 회의나 교류도 하지 않았어요. 오랜 세월 동안 그가 군대를 키운다는 소문이 있었지만 애초에 강한 신이 아니라 별로 신경 쓰지 않았어요.”
지배의 신 벨로타.
그는 외톨이 신으로서 스스로가 섬에서 단 한 번도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신들의 전쟁이 시작되고 벨로타의 섬도 당연히 목표가 되었어요. 하지만 신들이 도착했을 때, 이미 벨로타는 사라지고 없었어요. 섬에는 애초에 아무도 없었던 것처럼 어떤 흔적도 없었죠.”
섬이라는 특성이 호주와 닮았다.
“지배의 울타리라는 게 벨로타의 스킬이라는 거지?”
“맞아요.”
“지난번에 그 녀석 봤을 때, 어떤 느낌이었어?”
“신은 아니었어요. 분명히 사람이었어요.”
“수호신 같은 개념으로 나타난 건가?”
수호신은 모든 힘을 완성하게 되면 다시 신이 된다. 모든 수호신이 바라는 결과였다.
“지배의 울타리가 언제부터 있었죠?”
“초창기부터 쭉.”
“그렇다면 너무 빨라요. 다른 뭔가가 있는 거 같아요.”
성아는 지금 자신의 성장이 매우 빠르다고 판단했다. 상엽을 선택하고, 선택받은 것이 행운이라 느낄 정도였다.
당장 오늘 만난 열한 명 중에서도 성장 속도는 자신이 가장 빨랐다.
“뭔가 다른 게 있다는 건데.”
지금 알아낼 수 있는 정보는 여기까지였다.
“그 녀석들은 언제부터 알고 있었던 거지?”
벨로타에 대한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트레저 헌터로 넘어갔다.
“수호신 열한 명에 호주에 관한 정보까지.”
상엽은 그들을 만나면서 한 가지를 깨달았다.
“정공법만 있는 건 아니라는 거지.”
트레저 헌터는 정보를 통해 갓코인을 활용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알아냈다.
단순히 사냥과 경쟁으로 성장을 하는 상엽과는 전혀 다른 방식이었다.
지금도 그들은 갓코인의 등장에 관해 꽤나 많은 접근을 한 상태였고, 이를 위해 상엽을 직접 찾아왔다.
정보로 또 다른 정보를 사면서 앞서 나가는 것이다.
‘핵심을 잡겠다는 거지.’
그들은 갓코인에서 파생된 다양한 신의 힘보다는 갓코인 그 자체를 파헤치려 했다.
“성아, 진실의 천칭이라는 거. 그렇게 위험해?”
“묻어야 할 비밀들이 천칭 안에 있어요.”
“어느 정도기에 그래?”
“세상을 멸망시키는 힘. 그리고 신이 세상을 멸망시켰던 기록과 방법, 신이 탄생하는 과정까지. 신조차 알아서는 안 될 진실들이에요.”
상엽이 상상하지 못하는 것들이었다.
“그 정보를 알아내기에는 위험이 너무 크다는 거네.”
“또 하나 문제가 있어요. 한 인간의 인생을 엿보는 것은 진실의 천칭이 아니라도 가능해요.”
천칭으로 이를 엿볼 수도 있지만 유일한 방법은 아니라는 뜻이었다.
“그들 중에는 회개의 신이 있었어요. 회개의 신은 상대의 인생을 엿볼 수 있는 힘이 있어요. 강제로 실행하면 인간이 다치게 되겠지만 그들의 행동으로 봤을 때, 그걸 염려할 것 같진 않았어요.”
이는 도덕성의 문제였다. 하지만 진실의 천칭과 비교하면 어느 쪽이 더 무게가 있을지는 예상할 수 없었다.
다만 그들에게 더 쉬운 방법이 있음은 확실했다.
“넌 어떻게 생각해?”
“그들이 진실의 천칭에서 찾고자 하는 정보가 있다고 생각해요.”
“거짓말이다?”
“말했다시피 예상할 뿐이에요.”
대화를 되짚어 보면 교묘하게 거짓을 피해 간 부분이 있었다.
“위험한 놈들이네.”
진실의 천칭에 숨은 많은 비밀들.
수호신을 독점할 정도의 정보력이라면 그들의 계획에는 상엽이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큰 목적이 있을 수도 있었다.
“콜렉터.”
트레저 헌터의 길드의 이름이 상엽의 뇌리에 깊이 박혔다.
트레저 헌터를 만난 이후에 상엽은 예상대로 변종 처리를 계속했다.
하루에 5천 마리 이상을 잡아야 하는 일정이라 잠시도 쉴 틈이 없었다.
“이것도 이제 얼마 못 하겠네.”
상엽은 1년만 마음먹고 처리를 시작하면 1급 위험 지역을 해방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먼저 먹는 놈이 임자야.”
지금은 미국을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지만 갓코인 유저가 성장하면 상엽과 똑같은 사냥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변종과 인간의 싸움은 인간의 승리야.”
상엽이 그 증거였다. 결국 변종은 인간이 성장하기 전에 전멸시키지 못했다.
-없습니다.
30일이 지났을 때, 상엽은 미국의 동쪽 해변을 완전히 정리했다.
자연스럽게 남쪽 해안을 따라 휴스턴을 지나면서 시가전이 펼쳐졌지만 이것도 큰 문제는 없었다.
상엽은 건물을 부수며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계속 해안을 따라 이동했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멕시코의 국경으로 들어섰다.
멕시코에는 여전히 갓코인 마을이 존재했지만 국경과는 꽤 거리가 있어서 사냥하는 데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다.
“남들이 먹기 전에 많이 먹자.”
이미 2급 위험 지역은 완전 토벌이 완료되는 시점이었다. 남은 것은 1급 위험 지역뿐이었다.
예전 인간 변종이 그랬듯이 이제 갓코인 유저에게 대량으로 코인을 획득할 기회는 많지 않았다.
그런데 이를 아는 유저가 상엽뿐만은 아닌 듯했다.
멕시코의 국경을 넘어선 지 닷새가 흘렀다.
상엽의 보유 코인이 30억을 넘어가는 시점이었다.
멕시코 동쪽 해안에 아름다운 주립 공원이 있었는데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다.
변종은 전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정리가 됐나?’
멕시코도 미국과 함께 1급 위험 지역이었다. 그래서 상엽은 아직 기회가 남았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처음으로 변종이 깨끗하게 정리된 지역으로 들어섰다.
“돌아갈까?”
현재 블랙 해머가 미국의 북쪽을 공략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아직 정리가 되지 않은 지역은 동쪽 해안 도시였다.
로스앤젤레스와 샌디에이고, 샌프란시스코 쪽은 여전히 변종이 득실거렸다.
상엽이 효율적인 사냥을 위한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어디선가 불쾌한 시선이 느껴졌다.
이를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뭔가가 상엽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팟!
상엽은 엄청난 속도의 총알을 고개를 돌리는 것으로 피해 버렸다.
바닥에 닿은 총알은 작은 연기를 발생시키며 부서졌다.
상엽은 바람을 일으켜 연기를 날려 버리고 총알이 날아온 쪽을 보았다.
그런데 상대는 굳이 몸을 숨기지 않고 모습을 드러냈다.
정돈된 공원에 1층짜리 사무실 같은 건물이 있었고 옥상에 총을 든 사내가 있었다.
40대 중반의 사내는 턱수염이 멋지게 자란 중년이었다.
“입장료를 못 받아서 말이야.”
“매표소가 없던데.”
상엽은 추종자를 통해 다른 인물이 있는지 살폈다.
“정상엽이라는 놈이지? 직접 보게 될 줄은 몰랐어.”
“내 성격이 얼마나 더러운지도 들었어? 나한테 총을 쐈으면 죽을 각오도 했겠지?”
“누가 널 쐈다는 거지?”
상엽은 상대의 오리발에 짜증이 솟구쳤다. 더 이상 대화의 의미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성아가 뜻밖의 말을 했다.
-진실이에요.
상엽의 생각과 달라서 미리 말해 준 것이다.
“뭐야?”
결국 상엽은 총알이 떨어진 자리를 보았다. 그곳의 흙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 상엽은 이를 특수한 총알 때문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잠시 후에 흙에서 비린내가 나기 시작했다. 상엽이 바닥을 일으켜 흙을 걷어 내자 머리가 터진 도마뱀이 보였다.
“설마 이놈을 쏜 거라고?”
“변종 도마뱀이야. 코인은 없지만.”
“무슨 개소리야?”
사체가 남는다는 것 자체가 변종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그런데 사내는 상엽의 생각을 무시하고 자신의 말을 계속했다.
“조심하라고, 친구.”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머리가 터진 도마뱀의 몸이 움직였다. 터진 목 부분에서 녹색 액체가 분수처럼 튀어나와 상엽을 덮친 것이다.
‘스트라이크.’
상엽은 재빨리 스킬을 시전하며 뒤로 물러났다.
치익.
겨우 몇 방울이 피부에 닿았다. 그런데 피부가 검게 물들었다.
독성은 거북이 신 호트의 힘으로 곧 빠져나가긴 했지만 잠깐이라도 침투를 했다는 것이 충격적이었다.
그 짧은 시간에 불에 타는 듯한 고통도 느꼈다.
마지막 일격을 뿜어낸 도마뱀은 그제야 축 늘어지며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소멸되지 않는데.’
도마뱀의 사체는 그대로였다. 그때, 공원 전체의 땅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수천 마리의 도마뱀이 튀어나왔다.
상엽이 서 있는 곳은 도마뱀의 서식지였고 그래서 변종이 없었던 것이다.
“귀찮네.”
상엽은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그리고 바닥에 있는 도마뱀들을 단번에 쓸어버리려고 했다.
그때, 옥상에 있던 사내가 카우보이처럼 긴 줄을 집어 던졌다.
목적지는 상엽의 몸이 아니었다. 상엽이 정확히 끈을 잡을 수 있는 거리까지만 다가왔다.
“친구, 진정하고 이야기 좀 하지.”
상엽은 일격을 날리려던 것을 그만두고 줄 대신 하늘을 밟고 사내의 곁으로 내려섰다.
“역시 성격이 불같구먼. 위스키가 어울리는 남자야.”
카우보이는 아공간에서 위스키를 꺼내더니 상엽에게 내밀었다.
“술은 됐어. 업무 중이라.”
“재미있는 친구야.”
카우보이는 위스키의 뚜껑을 거칠게 따더니 입구를 입에 물고 크게 한 모금을 들이켰다.
“크으.”
“쇼하지 마. 술을 느낄 실력은 아닌 거 같은데.”
“마셔 보겠나?”
뚜껑이 열린 술병이 다가오자 강한 독 향기가 느껴졌다.
“저 녀석들 독으로 만든 술이지. 물론 죽지는 않아. 목을 넘어갈 때의 칼칼함만 남겼으니까.”
-진실이에요.
성아의 말을 들은 상엽은 호기심이 생겨서 위스키를 들이켰다. 그러자 실제로 술을 마시는 것처럼 칼칼한 목 넘김과 내장의 열기가 느껴졌다.
“훌륭한데?”
“자, 그럼 이제 대화를 좀 해도 될까?”
그들은 독으로 만든 위스키로 인해 어느 정도 경계심을 누그러트렸다.
“저 도마뱀들이 변종이라고?”
“정확하게 말하면 자연의 승자들이지.”
“무슨 뜻이야?”
“변종을 이긴 생물. 갓코인의 영향 없이 스스로의 힘으로 변종들을 처리한 승리자란 뜻이지.”
놀라운 일이었다.
일반 동물들은 대부분 변종에 밀려 설 자리를 잃었다. 생태계는 모두 파괴되었고 이미 대부분의 동물들이 멸종했다.
이는 포유류뿐만 아니라 파충류와 조류, 곤충까지 모두 포함했다.
자연이라는 터전을 잃었고 변종의 공격성이 워낙 강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변종이 아니면서 이를 이겨 내는 생물들이 등장했다.
“1급 위험 지역 변종들을 저 녀석들이 전부 죽여 버렸지.”
멸종에 대응하는 생명체의 변화는 이처럼 무시무시했다.
“그런데 이 녀석들이 변종보다 더 위험하겠는데.”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돼. 내가 지금 이 녀석들의 약점을 파악해서 단번에 멸종시킬 수 있는 약을 개발 중이니까.”
그는 자랑하듯이 아공간에서 작은 약병 하나를 꺼냈다.
“아직은 기절시키는 정도지만 곧 죽이는 데 성공할 거야. 일단 이 녀석들이 변종들을 전부 처리한 후에.”
“그러니까 이 도마뱀으로 변종들을 전부 처리하고, 그 뒤에 도마뱀들을 죽이겠다는 거지?”
“좀 미안하긴 하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우리 터전을 지켜야지. 이곳의 새로운 정착민들은 날 영웅으로 기억할 거라고.”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일단 그 약을 완성하지 못하면 더 심각한 변종을 풀어 주는 꼴인데.”
“난 실패하지 않아. 무엇을 하든 성공하지. 그게 나 스트라인버그의 능력이니까.”
그는 자기 자랑에 심취하며 다시 한번 위스키를 들이켰다. 그러더니 총을 바닥에 놓고 공중을 잡아채는 시늉을 했다.
그러자 그의 손에 짧은 손잡이의 작업용 망치가 나타났다. 무기로 사용하는 종류는 아닌 듯했다.
그런데 이를 본 성아가 놀란 듯이 외쳤다.
-신의 건축가!
“뭐?”
-스트라인버그. 신전을 세우는 건축가의 망치예요.
상엽은 상대가 특이하다는 걸 알았지만 이런 특징이 있을 줄은 몰랐다.
“건축가가 뭔 독약을 만들고 있어?”
“여기 집은 이미 지어 놨지 않나?”
“어디? 설마 이거?”
상엽은 자신이 밟고 있는 옥상의 아래를 가리켰다.
“이거 생각보다 실망인데.”
스트라인버그는 고개를 저으며 망치로 공중을 두드렸다.
땡!
청량한 금속음이 울려 퍼지더니 상엽의 머리 위에서 물이 빠지며 드러나는 물체처럼 공중에 뭔가가 나타났다.
그것은 거대한 저택이었다.
스트라인버그의 공중 저택.
상엽은 건축의 신세계를 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