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8
다시 시작된 100일 프로젝트.
그런데 이번에는 베이스캠프인 시카고에 블랙 해머가 함께했다.
-실전 경험을 할 때가 됐어. 재료도 좀 모으고.
동희의 요청에 의해서였다. 하지만 결국 그들은 영원히 함께할 수는 없었다.
시카고 주변은 상엽으로 인해 완전히 정리가 되어서 더 이상 변종이 출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그들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여야 했다.
상엽은 그들이 가기 전에 라면 파티라도 열어 주고 싶었지만 동희의 결사반대로 인해 그럴 수가 없었다.
“내가 곧 라면도 개발할 거야.”
이렇듯 끔찍한 말만 듣고 돌아서야 했다.
“절대 죽지 마!”
상엽은 그들의 실력을 믿으면서도 이런 걱정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상엽아, 먹고 가.”
동희가 음식을 준비하는 것을 보고 얼른 떠나려던 상엽은 결국 붙잡혀서 식사를 같이 했다.
“사하르, 너 방금 웃었지?”
“죄송합니다.”
상엽은 어쩔 수 없이 동희의 특제 도시락까지 받아서 사냥에 나섰다.
10일 차까지는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이번에는 서쪽이 아니라 동쪽으로 방향을 잡았고 해안을 따라 멕시코까지 내려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상엽은 뜻밖의 흔적을 발견했다.
“뭐야? 다른 사람이 있다고?”
상엽은 얼마 되지 않은 흔적임을 알고 좀 더 자세히 살폈다.
해변에서 이어진 초원이 완전히 뒤집어져 있었고 핏자국도 선명했다.
“열 명은 되겠는데?”
그들은 변종을 무사히 처리하고 이동한 듯했다.
“바다를 이용해서 왔다?”
미국의 동쪽 해안으로 들어와서 몰려드는 변종을 처리한 것이다.
상엽은 자신이 본 사실을 코드 제로에 알리고 일단 사냥에 집중했다.
그날 밤.
-주인님, 찾아냈습니다.
결국 멀지 않은 곳에서 해안으로 들어온 자들을 찾아냈다. 상엽은 추종자를 통해 그들의 모습을 보았다.
예상대로 열 명 정도로 이루어진 팀이었다. 정확히는 11명이었다.
‘모르는 자들인데.’
그들은 전투를 마치고 모닥불을 피워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모닥불은 변종을 부를 수도 있어서 금기시되는 사안인데 그들은 일부러 유인을 하는 듯했다.
네 명이 경계를 서는 동안 모닥불 위에 수프가 끓었고 돌아가면서 허기를 달랬다.
‘아씨. 배고프네.’
그런데 경계를 서던 자 중의 한 명이 상엽을 빤히 쳐다봤다. 추종자를 본 것이다.
그런데 추종자가 있음을 알고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미 알고 있다는 거지?’
상엽은 기분이 묘했다.
“나 먹으라고 끓인 건가?”
결국 상엽은 괜한 신경전을 그만두기로 했다.
단숨에 자리를 옮긴 상엽은 그들이 피워 놓은 모닥불로 접근했다.
예상대로 그들은 상엽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드시겠습니까?”
“좋지.”
이미 그들이 먹는 모습도 보았고 동희의 해독제가 있어서 별다른 걱정은 없었다.
상엽은 경계를 늦추지 않았지만 겉으로는 태연한 척 수프를 받아먹었다.
“음, 훌륭한데.”
열흘 전에 먹었던 동희의 음식과 비교하니 천사가 끓인 수프 같았다.
그런데 수프를 반쯤 먹었을 때, 갑자기 부르지도 않은 성아가 나타났다.
“무슨 일이야?”
“수호신이 있어요.”
수호신을 완성한 자가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성아는 뜻밖의 말을 했다.
“이들 모두 수호신이 있어요.”
열한 명.
그들 모두가 수호신을 가진 존재들이었다. 그제야 상엽은 자신이 너무 안일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먹고 이야기하자.”
상엽은 경계심을 높이면서도 끝까지 수프를 비웠다.
“음식 남기면 지옥 가서 전부 비벼 먹어야 한다는 소문이 있거든.”
그릇을 깨끗하게 비운 상엽은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호신 그룹이라니. 특이하네.”
“정식으로 인사드리지요. 콜렉터 길드장 샌디르입니다.”
40대 초반으로 덩치가 작고 등이 살짝 굽은 인물이었다. 상엽은 그의 외모보다 신분에 크게 놀랐다.
“콜렉터 길드장을 만나다니 영광인데.”
트레저 헌터 길드 콜렉터.
한때 송연지가 속해 있던 길드이기도 했다.
길드장은 외부에 얼굴조차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인물이었고 갓랭킹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나쁜 의도는 없으니 안심하시기 바랍니다.”
“안심은 너희들이 해야지. 나쁜 의도가 있었으면 이미 죽었을 거야.”
“그 말이 맞군요. 나쁜 의도가 없으니 서로 편하게 대화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필요 이상으로 상엽에게 접근하지 않았다.
여덟 명의 남자와 세 명의 여자로 구성된 팀은 10대 중반의 소녀부터 50대 중반의 중년까지 다양한 구성이었다.
‘콜렉터 길드에 대해서는 아는 게 너무 없어.’
송연지도 어쩔 수 없는 부분 외에는 알려 주지 않았다.
“날 기다린 거 같은데.”
“그렇습니다.”
“어떻게 여기 올 줄 알았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정보에 따라 찾아온 것입니다.”
상엽이 그들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도록 미리 준비를 한 것이다.
“내 위치는 어떻게 알았어?”
“그건 길드의 기밀 사항이라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오해를 하실까 봐 힌트를 드리자면 위치를 찾는 유산이 있습니다.”
트레저 헌터 길드라면 많은 것들이 가능했다.
그들이 얼마나 많은 신전을 통과했고 유산을 모았을지는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다.
정보라는 측면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그럼 이제 이유를 말할 차례인 것 같은데.”
“정확하게는 상엽 님이 아니라 성아 님을 만나러 왔습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성아였다.
“성아는 왜?”
“정보를 교환하기 위해서입니다. 저희들이 원하는 정보를 주시면, 그에 맞는 정보를 드리겠습니다. 물론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닐 것입니다.”
“내가 무슨 정보를 원하는 줄 알고 있다는 말 같은데.”
“호주, 그곳이 궁금하신 거 아니십니까?”
상엽은 눈살을 찌푸렸다.
“도청 장치라도 있냐?”
“유산입니다.”
“거참 되게 불쾌한 유산이네.”
“힘이 없는 저희들이 살아가는 방식이니 이해해 주시길. 대신 만족스러운 교환이 될 것입니다.”
힘이 없다는 것은 지나친 겸손이었다.
11명의 수호신.
‘이길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쩐지 수호신을 가진 녀석들이 너무 적게 나타난다 했어.’
트레저 헌터 길드에서 거의 독점하다시피 한 것이다. 이것은 미리 정보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일단 들어 보자고.”
상엽은 그들의 거래를 허락했다. 호주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면 나쁠 것이 없었다.
허락을 받은 성아가 그들 앞에 섰다. 그러자 열한 명의 뒤에서 일제히 누군가가 나타났다.
다양한 외모의 신들이었다.
열한 명의 신이 나타나자 주변의 공기마저 변하는 느낌이 들었다.
‘힘을 전부 찾진 못했어.’
하나하나가 느껴지는 기운이 달랐다. 길드장의 수호신은 거친 수염을 가진 전사로 날카로운 눈매에 상처가 많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전장에서 뼈가 굵은 베테랑 같은 느낌이었다. 다만 덩치가 워낙 커서 거의 7미터에 달했다.
반면 성아는 신들을 대하자 허리를 펴며 1미터 공중에 당당하게 섰다.
열한 명의 시선에도 전혀 기가 죽지 않는 모습에 상엽은 괜히 자부심이 생겼다.
“전장의 상처 폰네드여. 날 부른 이유가 무엇입니까?”
“진실의 신에게 묻고 싶은 게 있소.”
“무엇입니까?”
“진실의 천칭. 그것은 어디에 있소?”
진실의 천칭이라는 말에 성아의 눈빛이 매서워졌다.
“당신들이 알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성아는 이 대화가 별로 유쾌하지 않은 듯했다.
“우리가 힘을 합쳐야 한다는 사실을 잊었소?”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이 힘을 합치는 것은 아닐 텐데요.”
“진실의 천칭만 있다면 갓코인의 진실을 밝힐 수 있소. 그래도 힘을 합치지 않을 것이오? 우리는 지금까지 당신이 한 것보다 훨씬 많은 것들을 알아냈소.”
이번 압박은 꽤나 통하는 분위기였다. 이에 상엽이 성아의 앞으로 나섰다.
“대화 중지.”
“감히! 인간이 신들의 대화에 끼어드느냐!”
전장의 상처 폰네드의 얼굴에 분노가 떠올랐다. 압도적인 분위기를 발산하는 그를 보며 상엽은 비웃음을 흘렸다.
“버릇이 없는 신이네. 재수도 없고.”
상엽은 신이 드러낸 분노에 맞춰 무기를 꺼냈다.
“인간 방식으로 교육을 좀 시켜 줘야겠어.”
정말 싸우려는 분위기가 되자 길드장 샌디르가 앞으로 나섰다.
“죄송합니다. 제 수호신의 성격이 워낙 불같아서.”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것이냐!”
“닥치고 있어. 나한테 기생해서 사는 주제에.”
샌디르는 상엽도 놀랄 정도로 날카로운 음성으로 신의 분노를 눌러 버렸다.
“그렇게 잘났으면 이 땅에는 왜 온 거야? 그냥 닥치고 시키는 일이나 해. 잘 이야기해서 천칭의 위치를 알아내라고 했더니 오히려 망치고 있잖아.”
한 차례 불만을 터트린 샌디르는 보란 듯이 쐐기를 박았다.
“여기 신이 아닌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
신의 힘을 가졌다. 이는 곧 신을 의미했다.
“한 번만 더 신이라고 제멋대로 행동했다가는 내 손으로 소멸시켜 버릴 테니까 닥치고 들어가 있어.”
샌디르의 명령에 수호신은 당장 덤벼들 것처럼 분노하다가 결국 사라졌다.
모든 힘을 되찾기 전까지는 샌디르를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이었기 때문이다.
“형, 마음에 든다.”
“죄송합니다. 잠시 흥분을 해서.”
상엽은 샌디르의 성격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다.
예의 바르고 약해 보여서 비굴하다는 느낌까지 드는 외모지만 실제로는 무서울 정도로 냉정한 자였다.
“자, 이제 내가 직접 들어야겠어. 신들 대화는 너무 지루해서 말이야.”
“알겠습니다. 제가 직접 말씀드리지요.”
샌디르는 자신이 찾아온 이유를 말했다.
“진실의 천칭은 진실의 신만이 가지고 있는 보물입니다. 다만 천칭은 진실의 신의 삶이 모두 기록되어 있어서 이를 사용하면 과거를 훔쳐보게 됩니다.”
한마디로 자동으로 기록되는 일기장이었다. 그래서 성아가 꺼려 한 것이다.
“그 안에는 많은 비밀들이 있습니다. 물론 모든 비밀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세상을 위해서 숨겨야 할 비밀들도 있지요. 그래서 진실의 신은 진실의 천칭을 지키는 의무가 있습니다.”
보물이자 의무였다.
“그게 왜 필요한 건데?”
“상점이었다가 다시 일반인이 된 자를 알고 있습니다.”
적설에게 들은 적이 있었다.
소위 말하는 상점 졸업을 한 자였다. 트레저 헌터 길드에서 그자를 계속 주시하는 것까지만 들었다.
그 이유가 지금 밝혀졌다.
“현재 그자는 상점이었을 때의 기억이 완전히 지워진 상태입니다. 다시 떠올리게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실패였습니다. 기억이 잠들어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정말 깨끗이 지워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천칭이 있으면 그걸 볼 수가 있다는 거야?”
“진실의 천칭은 기억이 아니라 그자의 인생 전체를 볼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상점의 비밀을 알아내면 갓코인에 대한 많은 진실이 밝혀질 것입니다.”
“갓코인에 대한 진실이라…….”
상엽은 뒤에 서 있는 성아를 보았다.
“가능한 일이야?”
“네. 가능해요. 하지만 저자들을 믿지 못하겠어요.”
“무슨 뜻이야?”
“진실의 천칭 안에는 숨겨야 할 많은 진실들이 있어요. 그래서 저울로 되어 있죠. 숨겨야 할 이유보다 더 무거운 이유가 있을 때만 사용하라는 의미에서요. 전 저자들이 진실을 원하는 것인지, 숨겨진 진실 중의 하나를 찾아내려는 것인지 의심스러워요.”
“직접 물어보면 되잖아.”
“수호신이 진실을 가리고 있어요. 판별할 수 없어요.”
상엽은 성아의 의심을 이해했다. 그리고 자신은 천칭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었다.
“아무래도 깊은 고민이 필요한 일 같은데.”
“그럼 이렇게 하시지요.”
샌디르는 이미 많은 예상을 하고 이곳에 온 듯했다.
“제 연락처를 남기겠습니다. 언제든 생각이 바뀌시면 연락을 주시지요. 다른 정보를 원하신다면 그것 또한 제공해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절대 공짜는 아닙니다.”
“서비스도 없어?”
“장사 수완이 없어서 말입니다.”
그 말을 남기고 샌디르는 돌아섰다. 그러다 서비스라는 말이 기억에 남았는지 던지듯이 한마디를 했다.
“호주를 덮고 있는 먹구름은 지배의 울타리라는 스킬입니다. 나머지는 진실의 신이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능력을 간단히 증명하더니 동료들과 함께 사라졌다.
“장사 잘하네.”
상엽은 그들이 완전히 떠난 것을 확인하고서야 말없이 서 있는 성아를 보았다.
그녀는 많은 생각을 하는지 상엽의 시선을 눈치채지도 못했다.
-야! 신입! 정신 차려! 언제까지 어리버리할 거야?
추종자의 질책이 있고서야 성아는 상엽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