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코인-226화 (224/300)

# 226

왕수는 끝까지 저항했다.

목이 꺾이고도 수십 번의 반격을 펼쳤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힘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결국 팔과 다리가 더 이상 재생이 되지 않았다.

그 상태에서 상엽은 추종자를 불렀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시도를 했지만 역시 기억을 읽을 수는 없었다.

상엽은 저항하지 못하는 상태로 바닥에 쓰러진 왕수를 내려다보았다.

별다른 감정은 들지 않았다.

“끝.”

그저 이 단어가 떠올랐을 뿐이다.

긴 싸움이었고 많은 과정이 있었다. 상엽은 그 끝을 미루지 않았다.

쾅!

결국 머리가 터진 왕수는 더 이상 반격을 하지 못했다.

회색빛으로 흩어진 그는 상엽의 몸으로 흡수되었다.

‘왜 그레이 코인이지?’

왕수뿐만 아니라 그의 길드원도 전부 그레이 코인으로 흡수되었다.

“그래도 전리품은 있네.”

다른 길드원들은 전리품이 없었고 오직 왕수만이 가지고 있었다.

이번 싸움에 앞서 모두 처분한 것으로 보였다. 다만 왕수가 가진 전리품은 상상을 초월했다.

트레저 헌터를 제외하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조각을 가진 자 중의 하나였기 때문이다.

끼아아!

전리품을 챙긴 상엽은 하늘을 보았다. 그곳에는 1만 마리에 육박하는 새들이 겹겹의 원을 그리며 날고 있었다.

“저놈은 뭐야?”

새들이 만든 원의 중간에 방금 전까지 없던 그림자가 나타났다.

‘사람?’

붉은 눈빛에 망토를 걸친 사람의 형상이었다.

꽤 거리가 있는 데다, 먹구름에 가려져 형상만 보이는 데다 압도적인 눈빛이 느껴졌다.

상엽은 그 눈빛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그러자 상대의 압도적인 존재감이 더욱 크게 느껴졌다.

새들이 경배하듯 만든 원 중앙에서 상대는 상엽을 한참 동안 내려다보았다.

“재수 없게 노려보기는.”

심판.

상엽은 대뜸 상대의 머리 위로 심판 스킬을 사용했다. 그러자 상대의 그림자가 오른손을 여유롭게 저었다.

쩌어엉!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심판 스킬로 만들어진 거대한 해머가 소멸해 버린 것이다.

상대는 그 상태로 상엽을 좀 더 지켜보더니 곧 하늘을 날며 어디론가 떠나 버렸다.

새들은 그를 따라 긴 행렬을 만들며 뒤따랐다.

“저놈은 뭐야?”

상엽은 멀어지는 상대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악역을 자처했다. 하지만 이유는 있어야 했다.

착한 인생을 살진 않지만 스스로의 원칙은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원칙을 지킨다고 마음이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상엽은 천진에서 나타난 변이 인간들을 정리했다. 코인을 획득할 수 있었지만 그게 목적은 아니었다.

이들이 천진을 벗어난다면 큰 문제가 야기될 것이고, 지금 이를 막을 유일한 기회를 상엽이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에 천진 포위하라고 해. 이 문제는 중국만으로 안 끝나. 그리고 변종 새에 대해서도 알려.

루시가 일을 빠르게 해 준 덕분에 천진에서 일어난 일은 대외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정상엽이 또 다른 재앙에 맞서고 있다.

아직 시스템이 온전한 cctv 영상들이 보도되면서 변이 인간에 대해 알려졌다.

그리고 변종 새의 이동은 전 세계적인 관심이 될 수밖에 없었다.

상엽은 당장 눈앞에 벌어진 일을 처리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겨우 한 시간 만에 천진은 변이 인간의 소굴이 되었다. 엄청난 속도로 전염이 된 것이다.

그럼에도 상엽은 도시 전체를 날려 버리는 것보다 중심부로 파고들어서 전투를 펼쳤다.

유령 군대를 소환해서 개인적인 제거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여전히 생존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천진의 인구만 무려 1500만 명.

변이 인간들이 전부를 전염시키기는 어려운 수치였다. 코인을 넘겨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넘겨줄 코인이 없다고 인간을 살려 둔다는 보장이 없었다.

지난번에 나타났던 변종 인간은 인간을 죽여 코인을 채우기도 했다.

“외곽은 확실히 막고 있지?”

-배치는 되고 있으나 막을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주변에 화이트 길드 있잖아. 그쪽으로 넘어가면 재앙이니까 빨리 방어선에 합류하라고 해.”

상엽은 정치적인 이유를 묻지 않았다. 이는 상엽의 허락과 다를 바가 없었다.

상엽이 허락을 하자 화이트 길드들은 곧바로 방어선에 합류했다.

그들도 변이 인간이 자신의 영토로 들어오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상엽과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아서 눈치를 보고 있었다.

다행히 화이트 길드들이 늦지 않게 방어선을 구축하고 상엽이 내부에서 변이 인간들을 처리하면서 사태는 진정이 되기 시작했다.

“끝도 없이 튀어나오네.”

외부에서는 이 일이 끝날 것으로 예상하지만 정작 전투를 벌이는 상엽은 꽤나 치열한 상황이었다.

하나하나의 싸움을 보면 일방적인 학살이었지만 그 숫자가 워낙 많았다.

그렇지 않아도 왕수와 싸움을 벌인 터라 정신적으로 꽤나 지친 상태였다.

“아우!”

세 명의 변이 인간을 다시 처리한 상엽은 그나마 나타나는 빈도수가 줄었음을 알았다.

그런데 이는 착각이었다.

장소를 옮기자 똑같은 상황이 벌어졌다. 그리고 상엽을 발견한 이들이 구출을 요청하기도 했다.

“살고 싶으면 문 닫고 하루만 버텨!”

한 사람을 위한 구출 작전은 불가능했다.

“루시, 안 되겠어. 지원 병력 보내.”

상엽 혼자 20만 명의 변이 인간을 처리했다. 하지만 숫자가 줄어들기는커녕 더 늘어난 느낌이었다.

결국 상엽은 조기 진압을 위해 방어선에 있는 화이트 길드원들의 진입을 허락했다.

“만만치 않은 놈들이니까 어설픈 놈은 들여보내지 말고. 전염되면 골치 아파.”

그때부터 사태가 빠르게 진정되기 시작했다.

각 길드의 실력자들이 도시 안으로 들어왔고 하루에 걸친 토벌전이 펼쳐졌다.

토벌 후반에는 지원군이 더욱 빨리 늘어서 혹시 남아 있을지 모르는 변이 인간에 대한 수색에 들어갔다.

상엽이 천진을 떠난 것은 이때쯤이었다.

“아오, 피곤해. 이런 느낌이 얼마 만이냐?”

곤명으로 돌아온 상엽은 침대에 몸을 던졌다.

“샤워도 하기 싫다.”

이런 노곤함은 오랜만이었다. 거의 24시간을 싸웠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확인할 것이 있었다.

상엽은 지친 몸을 이끌고 왕수에게서 얻은 전리품을 확인했다. 이를 보는 순간 긴장감이 감돌면서 피곤이 싹 사라졌다.

‘제발.’

그는 전리품들을 바닥에 늘어놓았다.

무려 80개가 넘는 조각이 있었고, 완성을 하나 남겨 둔 종류도 있었다.

그렇지만 상엽이 찾는 것은 오직 한 종류였다.

에레나의 생명초.

빠르게 조각의 무늬를 확인하던 상엽의 표정은 금세 어두워졌다.

“하나밖에 없어.”

조각은 하나밖에 없었다.

이로써 9개의 조각이 모였지만 소용이 없었다.

“망할 새끼. 죽어서도 짜증 나게 하네.”

상엽은 몇 번이나 조각을 다시 살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그 자식이 가지고 있나?”

상엽은 다시 침대에 누워 천장을 보았다.

기대가 무너지면서 엄청난 상실감이 피로를 몰고 왔다.

“누나.”

천장의 정갈한 무늬가 어느새 누나의 얼굴로 변해 있었다.

“미안해, 누나. 조금 더 시간이 걸릴 거 같아. 그래도 열심히 하고 있으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

상엽은 길게 한숨을 쉬며 눈을 감았다.

오늘 밤 꿈에는 누나의 얼굴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 * *

변이 인간은 완벽히 정리되었다.

-정상엽이 중국과 전 세계를 구하다.

루시는 또 한 번 능력을 발휘해서 상엽의 이름에 금칠을 해 주었다.

-정상엽은 자신을 죽이려 했던 중국의 국민을 구하고, 힘으로 주석 자리에 올랐던 왕수를 처리했다.

루시는 이번 일을 계기로 여론전을 펼쳐 중국에 대한 상엽의 영향력을 만들려고 했다.

하지만 정작 잠에서 깬 상엽은 다른 뉴스를 먼저 물었다.

“변종 새는 어떻게 됐어?”

“다행히 그냥 돌아갔습니다.”

“돌아가다니?”

“호주입니다.”

호주라는 말에 상엽은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지금까지도 호주는 비밀 지역이었다. 위성의 눈마저 가른 먹구름이 호주 하늘 전체를 뒤덮고 단 한 번도 모습을 공개하지 않았다.

변종이 가장 먼저 나타난 지역이자 세계에서 가장 넓은 섬이 바로 호주였다.

“호주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그에 대한 정보는 전혀 없습니다.”

코드 제로조차도 호주는 미지의 영역이었다.

“호주에 엄청난 녀석이 있어.”

상엽은 자신이 본 붉은 눈빛의 망토에 대해서 루시에게 설명을 했다.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고 심판 스킬을 단 한 번의 손짓으로 소멸시켰다는 말에 루시도 그제야 상엽이 보이는 심각성을 이해했다.

“변종 새도 그 녀석과 관련이 있을 거야. 마치 녀석의 군대 같았으니까. 변이 인간도 그럴지도 모르고.”

“최대한 조사를 해 보겠습니다.”

“무리는 하지 말고.”

“알겠습니다.”

대답을 하면서도 루시는 조사 성공에 대해서 확신이 없었다. 사실 지금까지도 백방으로 노력을 하고 있었지만 성과가 없었기 때문이다.

“일단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자.”

상엽은 상대가 그냥 떠난 것으로 보아 바로 나타나진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최대한 강해져야 돼. 그게 답이야.”

상엽은 아직도 자신의 성장이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중국에 대해서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루시가 분위기를 바꾸며 물었다. 그제야 상엽은 루시가 펼쳐 놓은 여론 상황을 확인했다.

“내가 중국을 구한 영웅이 된 거야?”

“사실입니다. 민심을 잡으려면 지금이 기회입니다.”

“기회라면 잡아야지.”

상엽은 지금까지와의 행보와 달리 정치를 마다하지 않았다.

“중국은 내가 먹어야 하니까.”

운남에 자리를 잡으면서 첫 번째로 잡은 목표였다. 그리고 가장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

“현재 주석 자리가 공석입니다.”

“자리는 관심 없어. 실권이 중요하지.”

“귀찮다는 말로 들립니다.”

상엽은 그저 웃을 뿐이었다.

“일단 여론을 좀 더 몰아 놔. 과장은 하되, 거짓말은 안 돼. 무슨 말인지 알지?”

“알겠습니다.”

“그리고 출장 준비해.”

“어디로 가시겠습니까?”

“호북.”

“거긴 무슨 일로 가시려는 겁니까?”

호북은 중국 내에서는 왕수가 지배했던 길드를 제외하면 가장 큰 화이트 길드가 있었다.

“내가 곧 주인이 될 건물의 임차인이잖아. 잘 살고 있는지 살펴는 봐야지.”

“준비하겠습니다.”

루시는 상엽의 의도를 파악하고 준비에 들어갔다.

호북성 성도 무한.

이곳은 오래전부터 화이트 길드 백림이 자리를 잡았던 땅이었다.

왕수의 길드에 밀려 언제나 2등 소리를 들었지만 라이벌이라는 말이 부족하지 않은 세력을 구축하고 있었다.

민간에 대한 정책도 꽤나 훌륭해서 호북은 중국에서 몇 안 되는 살기 좋은 땅 중의 하나였고 이는 길드의 또 다른 힘이 되기도 했다.

항상 평화롭던 호북성 성도 무한이지만 오늘만큼은 팽팽한 긴장감이 가득 했다.

-정상엽의 방문.

이 모든 압박이 시작된 이유였다. 그리고 상엽은 정확히 정오라는 시간에 맞춰 무한으로 들어섰다.

무한 중앙에 위치한 옛 성터는 현재 백림이 사용하는 본부였다.

넓은 마당과 연무장에 수십 개의 전각이 나뉘어 있는 구조였다.

상엽은 별다른 절차 없이 본부의 입구에 나타났고 이를 알아본 백림의 문지기는 직접 문을 열었다.

그러자 연무장에는 백림의 길드장과 간부들이 열을 맞춰 서 있었다.

“안녕.”

상엽은 그들을 보며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긴장감의 무게에 비해서는 지나치게 가벼운 인사였다.

“백림정입니다. 제가 모시겠습니다.”

길드장 백림정은 문제를 크게 만들고 싶지 않은지 가장 먼저 상엽에게 다가왔다.

“많이들 모였네.”

백림정의 안내를 받아 광장을 통과하자 중앙 전각이 나타났다.

그리고 전각 안에는 이미 많은 이들이 모여서 상엽을 기다리고 있었다.

중국에 자리한 화이트 길드의 길드장들이었다.

그들은 상엽의 요청에 따라 이 자리에 모였다. 지난번의 변이 인간 사건도 있고 해서 그들은 거절하지 않고 이곳으로 왔지만 마음이 복잡한 건 어쩔 수 없었다.

현재 중국에서 상엽은 가장 중요한 인물로 떠올랐다.

이미 중국에서 블랙 유저들이 전부 제거되거나 쫓겨난 상황에서 블랙 유저인 상엽이 영웅으로 추앙받는 것이다.

중국에 자리한 화이트 유저로서는 결코 원하던 상황이 아니었다.

“다들 안녕.”

상엽은 그들의 중앙을 통과하며 다시 가벼운 인사를 건넸다. 그렇게 길드장 무리를 통과한 상엽은 더 이상 앞에 사람이 없자 몸을 돌렸다.

“열받으면 덤벼. 아주 좋은 기회잖아.”

몸을 돌린 상엽의 표정은 여전히 웃고 있었지만 눈빛은 야차로 변해 있었다.

그 작은 변화 하나에 전각 안의 분위기가 단번에 무거워졌다.

“그런 눈빛으로 짜증 나게 할 거면 그냥 꺼져.”

상엽은 으르렁거리는 맹수처럼 말을 이었다.

“살아남을 기회를 주는 것에 감사해.”

그곳에 더 이상 상엽을 노려보는 이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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