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5
사라졌던 변종 새가 다시 출몰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건 뭐야?”
등록 지점을 활용해 천진에 도착한 상엽은 도심에 펼쳐진 광경에 눈살을 찌푸렸다.
변종 새가 하늘을 뒤덮었고, 붉은 눈을 가진 인간들이 살기를 뿜으며 사냥감을 찾고 있었다.
‘지난번 변종이랑 달라.’
인간들의 모습이 변했지만 타락한 신도로 불리던 지난번과는 달랐다.
“크흐!”
붉은 눈의 인간들은 상엽을 보자 곧바로 야성을 드러냈다.
팟!
단 한 번의 도약으로 100미터를 날아온 인간은 칼날 같은 손톱으로 상엽의 얼굴을 긁으려 했다.
쾅!
상엽은 간단히 해머를 휘두르는 것으로 다가오는 적을 처리했다.
맹수가 되어 버린 인간은 머리가 터지자 회색빛으로 흩어지며 상엽에게 흡수되었다.
‘3만 그레이 코인.’
인간 변종과는 여러 가지가 달랐다.
“성아, 아는 거 있어?”
-좀 더 지켜봐야 알 것 같아요.
성아는 뭔가 알고 있는 듯했다. 다만 확신을 하지는 못했다.
“왕수 이 새끼가 뭔가를 꾸미고 있어.”
상엽은 하늘을 보았다.
어느새 먹구름이 몰려와서 천진 하늘을 덥고 있었다.
분명히 햇살이 강한 정오에 가까워지는 시점임에도 늦은 저녁처럼 어두침침한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저 구름은 뭐야?”
마치 먹물로 염색한 솜뭉치를 하늘에 어지럽게 던져 놓은 느낌이었다.
‘어디서 봤는데.’
상엽의 기억 속에 이와 비슷한 장면이 있었다. 그런데 기억을 더듬을 틈도 없이 또 다른 인간이 덤벼들었다.
쾅!
상식을 벗어난 속도였지만 상대가 나빴다. 상엽은 간단히 인간을 처리하며 드디어 거리로 나섰다.
끼아아!
순간, 하늘에서 상엽을 발견한 은빛 독수리가 길게 울음을 토했다.
동시에 엄청난 숫자의 새들이 상엽을 덮쳤다.
“코인을 준다니까 고맙긴 한데.”
상엽은 해머를 골프 스윙처럼 휘둘렀다. 바닥을 스친 해머의 끝이 공중을 향할 때, 고스트 실드를 만들어 화염의 기운을 터트렸다.
지상으로 떨어지던 300마리의 새가 부채꼴 모양으로 퍼진 화염의 파동에 그대로 흩어졌다.
예전에는 위협이 되던 공격이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유령아, 왕수부터 찾아.”
상엽은 알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목적을 분명히 했다.
추종자에게 정찰을 맡긴 상엽은 천진의 시내를 걸었다.
이미 곳곳에서 일반인의 비명이 들렸다.
‘골목.’
마침 골목 안에서 변이된 인간이 일반인의 심장에 손을 찔러 넣고 있었다.
그런데 심장이 터진 인간은 바닥에 쓰러지기 직전, 스스로 몸을 일으켰다.
붉은 눈빛을 가진 변이 인간.
“좀비라 이거지?”
인간 변종 때와는 다르게 곧장 변이가 전염됐다. 대신 전염되는 과정에서 코인이 넘어가는 것은 똑같았다.
3만 코인이던 자는 2만 9천 코인이 되었고, 새롭게 변이된 자는 1천 코인이 된 것이다.
“한 놈이 최소 29명은 감염시킨다는 건데.”
그들이 천진을 벗어날 경우, 엄청난 재앙이 예상됐다.
“일반인이 사라질 수도 있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변이 인간을 막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왕수 이 새끼는 무슨 짓을 한 거야?”
그 말을 하는 와중에 막 변이된 인간이 상엽을 향해 뛰어왔다.
쾅! 쾅!
상엽은 달려드는 변이 인간의 머리를 터트리며 다시 길을 걸었다.
이미 엄청난 숫자의 일반인이 변이 인간으로 변해 있었다.
비명은 계속되었고 구출할 수 있는 상황이 되지 못했다. 게다가 하늘의 변종 새들도 끊임없이 상엽을 노렸다.
“옥아.”
결국 상엽은 지옥마를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 그러자 변종 새들의 습격이 더욱 거세졌다.
푸르!
지옥마는 불쾌한 듯이 변종 새들을 짓밟으며 공중을 뛰었다. 상엽은 해머를 휘두르며 접근하는 새들을 모두 불태웠다.
-찾았습니다.
다행히 추종자가 늦지 않게 왕수를 찾아냈다.
“집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거야?”
왕수는 자신의 집무실이 있던 군부대에 있었다.
상엽은 지옥마를 이용해 곧장 그 장소로 이동했다. 그런데 그곳엔 상엽이 예상하지 못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천 명의 변이 인간.
왕수가 갓코인 특수치안대를 전부 변이시켜 버린 것이다. 그들은 왕수가 지배했던 길드원들이기도 했다.
“갓코인 유저도 변이가 된단 말이지?”
상황이 훨씬 심각해졌다.
“악역은 언제나 내 몫이지.”
상엽은 군부대에 도열해 있는 치안대를 향해 뛰었다.
하늘에서 쏜살같이 떨어지는 상엽을 향해 치안대는 일제히 스킬을 퍼부었다.
변이가 되면서 스킬의 위력이 올라갔고 그 속도도 빨라졌다.
우웅!
상엽도 피하지 않고 아르마딜로의 방어벽을 펼치며 떨어지는 속도를 더욱 높였다.
쩌적!
짧은 순간이었지만 엄청난 화력이 집중되자 처음으로 방어벽에 균열이 생겼다.
천 명이 뿜어내는 화력이 상엽의 예상을 넘어선 것이다.
방어벽에 진한 금이 가며 금방이라도 깨질 것 같았지만 상엽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왕수를 향해 사선으로 떨어지며 마음속으로 한 가지 명령을 내렸다.
‘공격해.’
단 한 마디였다.
그 순간, 천 명의 변이 인간 중의 한 명이 선두에 있는 왕수를 향해 스킬을 퍼부었다.
이마오의 실에 세뇌당한 내부자였다.
그는 곁에 있던 동료에 의해 곧바로 제거되었지만 그 짧은 틈이 상엽에겐 기회가 되었다.
‘스트라이크.’
화산의 힘을 담은 스트라이크가 땅에 떨어졌다.
콰콰쾅!
운석이 떨어진 것처럼 주변으로 거대한 원형의 충격파가 퍼져 나갔다.
폭발로 인한 화염이 버섯구름을 만들었고 멀쩡하던 땅에는 끝을 알 수 없을 만큼의 구덩이가 파였다.
핵폭탄이 떨어진 것 같은 충격은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집어삼켰고 공기마저 태워 버렸다.
그야말로 신의 재앙이었다. 그 한 방으로 천진이라는 도시의 30퍼센트가 사라졌다.
그런데 이를 견뎌 내는 인간이 있었다. 그것도 한두 명이 아니었다.
상엽이 땅에 닿기 직전, 왕수가 공중으로 뛰어오르며 방어막을 펼쳤고 이는 100명의 수하까지 보호했다.
다른 인원은 모두 빛으로 흩어졌지만 그들은 왕수의 보호막으로 인해 멀쩡히 충격을 견뎌 냈다.
그리고 상엽이 이를 확인하기도 전에 반격을 시작했다. 처음부터 계획된 움직임이었다.
휘이잉!
진공 상태가 된 충격 지점에 공기가 모여들며 태풍 같은 바람을 만들었지만 그곳에 있는 자들에겐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방어막을 거둔 왕수는 아직 자신을 확인하지 못한 상엽을 향해 왼팔을 뻗었다.
그의 왼팔이 기괴하게 늘어나더니 움켜쥔 주먹에 회색빛이 모여들었다.
상엽은 위협을 느끼며 다시 아르마딜로의 방어벽을 만들었다.
채챙!
방어벽이 깨졌다.
공격을 막아 냈지만 상엽에겐 충격적인 결과였다.
아무리 균열이 회복되지 않은 방어벽이라 하더라도 왕수가 이를 깨트릴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그 뒤로 살아남은 100명의 폭격이 시작되었다.
왕수의 두 주먹이 채찍처럼 휘어지며 상엽을 노렸고, 남은 100명은 괴기한 스킬들을 펼치며 상엽을 교란시켰다.
‘이건 무슨 스킬이야?’
기존에 보지 못했던 몇 가지 스킬이 있었다.
몰아치는 공기가 발목을 붙잡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강렬한 정신 공격까지 이어졌다.
정신 공격에 대한 내성이 강한 상엽이지만 후방의 50명이 동시에 펼친 기술은 작은 현기증을 유발했다.
‘저것들부터 처리해야 돼.’
하지만 왕수가 미친 듯이 뿜어내는 주먹도 결코 간과할 수가 없었다.
“성아.”
결국 상엽은 성아를 소환했다. 그런데 명령이 지난번과는 달랐다.
“귀찮은 것들 좀 없애.”
상엽의 움직임을 방해하는 스킬들이 성아에 의해 모두 제거되었다.
그리고 성아는 상엽의 등에 손을 올렸다.
-진실만 보세요.
현기증을 유발하던 정신 공격이 성아에 의해 밀려나기 시작했다.
“수고했어.”
상엽은 그 말을 남기며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상승 도중에 왕수의 주먹이 날아왔지만 일부러 방향을 바꾸지 않고 팔로만 막아 냈다.
아르마딜로의 방어막이 깨졌지만 상엽에겐 여전히 거북이 호트의 힘이 남아 있었다.
‘파괴전차.’
상엽은 도열해 있는 왕수의 수하들을 향해 파괴전차를 시도했다. 하지만 패턴을 예상했는지 일제히 공격 스킬을 퍼부었다.
‘이번엔 좀 다를 거야.’
상엽에게도 준비한 한 수가 있었다.
팔각 대시.
파괴전차에 팔각 대시가 적용되었다.
항상 직선으로 달려가던 파괴전차는 급격히 방향을 꺾으며 스킬들을 피하더니 더 빠른 속도로 수하들을 덮쳤다.
콰쾅!
결국 도열해 있던 100명이 사방으로 튕겨져 나갔다.
50명이 그 자리에서 소멸했고, 남은 자들도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다.
‘고스트 체인.’
파괴전차에 또 하나의 스킬이 적용되었다.
돌진에서 튀어나온 스무 줄기의 고스트 체인이 채찍처럼 쓰러진 자들의 몸을 때렸다.
가시를 뿜어낸 사슬들은 줄에 걸리는 모든 것을 찢어 버렸고 이로 인해 30명이 추가로 제거되었다.
“크아아!”
분노한 왕수는 남은 20명까지 제거하려는 상엽을 향해 뛰어올랐다.
엄청난 속도로 뛰어오른 왕수는 얼굴이 기괴하게 뒤틀리더니 입에서 회색 연기를 뿜어냈다.
옆으로 누운 회오리가 되어 상엽에게 날아간 연기는 강한 스파크를 일으켰다.
위협을 느낀 상엽은 고스트 실드를 만들고 뛰어올라 연기를 피했다.
하지만 그곳에는 이미 왕수의 주먹이 날아오고 있었다.
쾅!
상엽은 양팔을 교차해 주먹을 막았다.
“큭!”
믿을 수 없게도 통증이 느껴졌다. 작은 통증이었지만 예상을 벗어난 위력이라 경계심이 생겼다.
‘뭐야?’
왕수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움직임이나 실력은 전혀 다른 존재가 되어 있었다.
“그래. 끝장을 보자.”
상엽은 부상당한 수하들을 내버려 두고 왕수로 목표를 고정했다.
파괴의 바람.
길게 늘어난 왕수의 팔 중간에 파괴의 바람을 만든 상엽은 해머를 움켜쥐며 거리를 좁혔다.
그런데 왕수가 갑자기 몸을 웅크리더니 이번엔 발을 뻗었다.
왕수의 발은 상엽을 향하는 순간 그 끝이 뾰족한 창이 되었다.
상엽이 급히 몸을 틀자 왕수의 발은 아슬아슬하게 어깨 위를 지나갔다.
상엽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다시 줄어드는 발을 해머로 찍어 버렸다.
쾅!
왕수의 발은 중간이 부러지며 도마뱀의 끊어진 꼬리처럼 아래로 추락했다.
그런데 다시 본 왕수의 두 발은 멀쩡했다.
엄청난 속도로 회복이 된 것이다. 그리고 어느새 다시 같은 공격을 시도했다.
‘뭐야?’
상엽이 놀란 건 회복 때문이 아니었다.
왕수의 모든 공격에서 부수적인 현상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하얀 서리가 끼는가 하면, 바람이 남아 상엽을 덮치기도 했다. 갑자기 왕수의 몸이 사라졌다가 전혀 다른 장소에서 나타났고, 몸의 크기가 변하기도 했다.
‘유산.’
왕수가 그동안 모은 유산들이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이다.
현재 왕수는 열 개가 넘는 완성된 유산을 지니고 있었다. 그가 단순히 권력만으로 길드장의 자리에 있던 것이 아니었다. 실력 또한 1위였던 기림에 조금도 밀리지 않았다.
상엽은 결국 접근을 포기하며 뒤로 물러났고 먼저 땅 위로 내려서자 왕수도 맞은편으로 내려왔다.
“크흐!”
“말은 하지 못하게 된 거야?”
“정상엽! 죽인다!”
“할 수 있었네.”
상엽이 말을 하는 사이에 여전히 버섯구름의 흔적이 남은 하늘로 새들이 모여들었다.
적어도 1만 마리는 될 법한 새들이 원형으로 맴돌며 상엽을 노리고 있었다. 그들 중에는 무리를 지휘하는 붉은 독수리도 있었다.
하늘을 가득 메운 새들을 보며 상엽은 간단한 감상을 말했다.
“저게 다 얼마야?”
그의 눈에 변종 새들은 그저 코인으로 보였다.
“역시 사람은 벌기 시작하면 더 벌게 된다니까.”
새들의 존재를 무시한 상엽이 다시 왕수를 보았다.
“일단 너부터. 그다음에는 저기 있는 코인 은행을 터는 거지.”
“죽인다!”
상엽의 도발에 왕수가 반응을 보이며 주먹을 뻗었다. 이에 상엽은 여전히 웃음을 머금은 채로 움직이지 않았다.
퍽!
결국 왕수의 주먹이 상엽의 얼굴을 때렸다. 그런데 충격을 받은 것은 상엽이 아니라 왕수였다.
투둑.
왕수의 손목에 붉은 선이 그어지며 주먹이 바닥에 떨어졌다. 왕수는 금세 다시 회복을 하며 다시금 주먹을 질렀다. 하지만 모든 공격이 성공했지만 그때마다 손이 잘리고 말았다.
망자의 손길.
강해진 것은 타격뿐만이 아니었다. 화산의 힘이 실린 망자의 손길도 예전과는 차원이 다른 위력을 선보였다.
반면에 주먹을 몇 번이나 허용한 상엽은 멀쩡했다.
-신의 스킬, 철갑주
거북 신 호트를 100퍼센트로 완성할 때 생기는 스킬이었다.
모든 신체를 철갑으로 만드는 대신 행동이 느려지는 단점이 있었다. 그래서 공격을 선호하는 상엽에겐 어울리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상엽은 미소를 띤 채로 천천히 왕수에게 다가갔다.
퍽! 퍽!
상엽은 온몸을 강타하는 공격을 몸으로 견디며 한 발씩 왕수에게 다가갔다.
광분한 왕수는 괴성을 지르며 회색 연기를 쏟아 냈다.
강렬한 스파크가 상엽을 집어삼켰지만 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연기가 멈췄을 때, 상엽은 왕수의 곁에 서 있었다.
“인간이길 포기했는데 겨우 이것밖에 안 돼?”
상엽은 왕수의 목을 움켜쥐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