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4
성대한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폭죽이 끝도 없이 터졌고, 대낮임에도 하늘에 불꽃놀이가 펼쳐졌다.
10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은 한 사람의 이름을 연호하며 만세를 부르듯 손을 치켜 올렸다.
중국 특유의 붉은색이 광장에 물결쳤고 전통 음악이 어느 때보다 힘차게 좌중을 이끌었다.
베이징의 주석 즉위식.
유례없는 화려한 행사로 치러진 즉위식은 단 한 사람 왕수를 위한 자리였다.
그동안의 권력 투쟁이 끝났음을 만천하에 공개하고 앞으로의 권력 보존을 위한 정치적 행사인 것이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축제는 아침부터 화려하게 막을 올렸고 침울하던 베이징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그리고 아침 10시가 되었을 때, 왕수가 드디어 베이징 중앙 청사에 마련된 단상 위에 올랐다.
그의 앞에는 5만 명의 시민이 왕수의 얼굴이 그려진 중국 국기를 흔들고 있었다.
왕수는 그런 이들에게 손을 흔들며 단상 위에 올랐다. 그리고 지금까지 보여 주지 않았던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새로운 중국 주석으로서 왕수가 첫마디를 할 때였다.
“잔칫집에 잡채가 없네. 어디서 돈 받고 몰려온 바람잡이만 있고.”
마이크가 없음에도 모든 좌중의 귀에 그 목소리가 선명히 들렸다.
그리고 하늘에서 검은 말이 내려와 좌중의 머리 위에 섰다.
“오랜만이야, 개새끼.”
중국 주석의 즉위식에 나타난 이는 상엽이었다.
중국의 중심부에 홀로 나타난 것이다.
“감히!”
“맞아. 바로 그 표정이야. 어디서 지랄맞게 착한 척을 하고 있어?”
“미친 새끼!”
“그렇지. 그렇게 본성을 보여야지.”
상엽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단상 곁에 있던 경호원들이 스킬을 뿌리며 달려들었다.
왕수가 자랑하는 최고의 요원들이었다. 그들이 안전에 대비해 경호원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갓랭킹 100위 안에 있는 9명의 전사들.
그들이 일제히 상엽을 향했다. 이미 예상을 했던 상황인지 그들의 움직임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정상엽은 반드시 나타난다.
실제로 오늘일 줄은 몰랐지만 언젠가 나타날 상엽을 대비해 오랫동안 훈련을 했다.
이를 위해 새로운 스킬을 익히기도 했고, 공격 방향도 다양하게 나눴다.
그로 인해 최고의 합격술을 펼칠 수 있었고 이것은 자신감이 되었다.
“어쭈.”
상엽도 그들의 공격에 꽤 놀랐다. 본능적으로 위기를 느낀 것이다.
하지만 이내 생각이 달라졌다.
“내가 강해진 지 얼마 안 되서 옛날 버릇을 못 버렸어.”
콰쾅!
결국 스킬들이 상엽을 덮쳤다. 폭발을 시작으로 자주색 가루가 회오리처럼 주변을 감쌌고 하늘에서는 그물까지 떨어졌다.
‘잡았다.’
요원들 모두 작전이 성공했음을 확신했다.
“환영 인사 고마워.”
그 목소리를 듣지 않았다면 요원들은 다음 공격을 시작했을 것이다.
“어떻게…….”
폭발의 여파가 사라진 곳에는 여전히 상엽이 서 있었다. 그의 주변으로는 아르마딜로의 껍질 무늬가 투명하게 나타나 있었고 이것이 모든 공격을 막아 냈다.
최선을 다한 일격이었지만 단 하나의 방어막조차 뚫어 내지 못한 것이다.
그물은 찢어졌고 회오리도 사라졌다.
-신의 스킬, 철갑 껍질
아르마딜로 딜톤이 가진 유일한 스킬이었다.
100퍼센트에 생성되는 단 하나의 스킬은 상엽이 지금까지 경험한 적도 없을 만큼 강력한 방어막이었다.
게다가 이는 위험을 감지하면 자동으로 발동했다.
아악!
폭발이 일어난 즉시 장내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흩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상엽이 서 있던 자리의 아래에 십여 명의 사람들이 쓰러져 있었다.
“너희들은 국민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도 없냐?”
스킬의 여파로 인해 죽은 것이다.
“인격! 존중! 개새끼들아.”
상엽은 더 이상 참지 않고 단상을 향해 돌진했다.
우웅!
왕수는 상엽이 다가오자 예전에 보았던 물방울 같은 보호막을 만들었다.
파괴의 일격도 막아 낸 방어막이었다. 그런데 상엽의 행동을 예상했는지 아홉 명의 전사들이 재차 공격을 가했다.
그리고 어디선가 총성과 폭음이 이어졌다.
콰콰쾅!
스킬을 막기 위해 잠시 이동을 멈췄던 상엽에게 모든 공격이 쏟아졌다.
스킬과 기관총, 바주카포가 어우러진 폭격은 끝없이 지속되었다.
“종합 선물 세트네.”
믿을 수 없게도 상엽이 만든 방어막은 좀처럼 깨지지 않았다.
오히려 폭발의 여파가 줄어들고 드러난 얼굴에는 여유가 보였다.
“잔치는 끝났어.”
드디어 상엽이 해머를 휘둘렀다.
그러자 요원 중에 덩치가 큰 자가 상엽의 앞을 막았다. 그는 수십 겹의 방패를 소환했고, 주변에서 지팡이를 든 자들이 힘을 보태 주었다.
상엽의 공격을 막기 위해 새롭게 습득한 스킬로 서로의 힘이 모여 강력한 방어막을 만들었다.
-반격한다.
그들은 상엽이 공격하는 타이밍을 유일한 기회라 생각했다.
상엽이 스킬을 쓴 것이 아니라 충분히 막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 예상을 벗어났다.
콰릉!
마치 화산이 폭발하는 것 같은 울림이 터지면서 앞을 막았던 요원이 핏물로 흩어졌다. 그리고 핏물은 왕수가 만들어 낸 방어막에서 천천히 흘러내렸다.
-신의 스킬, 화산의 일격.
스킬 없이 휘둘렀음에도 기존의 스트라이크에 버금가는 위력이 나왔다.
그리고 이번에는 스킬이 펼쳐졌다.
‘스트라이크.’
상엽의 몸이 안개로 흩어지며 정면에 있는 왕수의 보호막을 때렸다.
쩌어엉!
엄청난 충격파가 주변의 모든 것들을 밀어냈다. 태풍 같은 바람이 몰아쳤고 일부 건물은 무너지기까지 했다.
쩌적!
그리고 균열이 생겼다.
파괴의 일격도 버텨 내던 보호막이 스트라이크에 균열을 보인 것이다.
“한 방 더.”
상엽은 균열을 일으킨 부위에 다시 한번 해머를 휘둘렀다.
챙!
단 한 번도 깨진 적이 없던 왕수의 보호막이 깨졌다. 그 순간, 주변에 있던 요원들이 죽음을 불사하고 앞을 막았다.
“쓰레기도 지킬 가치가 있다는 건가?”
상엽은 피하지 않고 앞을 막은 자들을 공격했다.
해머의 위력을 이미 눈으로 본 요원들은 어떻게든 공격을 피하는 데 집중했다.
상대의 의도를 파악한 상엽은 전투가 길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숨겨 두었던 카드를 꺼냈다.
“성아.”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성아가 등 뒤에서 나타나 공중으로 떠오르며 손을 들어 올렸다.
하얀빛을 뿌리는 지팡이가 어느새 그녀의 손에 나타났고 이를 서서히 내리기 시작하자 공기의 압력이 달라졌다.
상엽이 성장한 만큼 성아도 성장했다.
이미 성아는 절반에 해당하는 힘을 되찾은 상태였다.
절반이라고 해도 그 위력은 어마어마했다.
공기의 압력에 짓눌린 요원들의 행동이 급격히 느려진 것이다.
‘스트라이크, 팔각 대시.’
쾅! 쾅! 쾅! 쾅! 쾅!
폭음이 들릴 때마다 상엽의 이동이 급격히 꺾였다. 그리고 어김없이 상대가 빛으로 흩어졌다.
다섯 명이 단숨에 흩어졌고 남은 인원은 세 명이었다. 이들은 이미 이길 수 없음을 직감했지만 도주하지는 않았다.
왕수의 장악력이 이처럼 강하다는 방증이었다. 그렇다고 상엽이 그들을 봐줄 이유는 없었다.
상엽은 랭킹 100위 안에 있는 유저를 거짓말처럼 간단히 처리했다.
성아로 인해 행동이 불편해진 그들은 상엽의 공격을 피할 수가 없었다.
그들에게 최선이 방어 스킬을 사용해 막는 것이었는데, 그것은 결코 옳은 선택이 아니었다.
상엽의 해머는 모든 방어 스킬을 뚫고 상대를 파괴했다.
-왕수가 사라졌습니다.
마지막 두 명은 겨우 몇 초의 시간을 벌었을 뿐이지만, 그것이 왕수에게는 큰 기회가 되었다.
“치사한 새끼.”
수하들의 죽음을 담보로 왕수는 도주하는 데 성공했다.
이를 인지한 순간, 상엽을 향해 다시 한번 총알이 날아왔다.
첫 총알을 시작으로 중화기까지 동원되었지만 상엽은 이를 굳이 피하지 않았다.
“대장이 바보네.”
상엽은 아르마딜로의 방어벽을 의식적으로 사라지게 했다.
그러자 집중되는 화력이 더욱 높아졌다.
툭.
그런데 상엽은 모든 공격을 받으며 걸어갔다.
거북이 호트의 능력과 스킬, 그리고 아르마딜로를 강화하면서 늘어난 방어력도 결코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상엽은 이미 놓친 왕수에 집착하기보다 이 기회에 자신의 방어력을 실험했다.
툭. 툭. 툭.
그의 걸음이 옮겨질 때마다 바닥에는 찌그러진 총알이 수도 없이 떨어졌다.
그렇게 움직이던 상엽의 걸음이 멈췄을 때, 그는 기관총 총구의 바로 앞에 서 있었다.
“뭐해? 방아쇠 당겨야지.”
상엽과 마주한 군인은 감히 그럴 수가 없었다. 비명을 지르고 도망가고 싶었지만 압도적인 분위기에 그저 멍하니 상엽을 볼 뿐이었다.
“총을 쏠 때는 상대가 누군지 정확히 봤어야지.”
쾅!
결국 상엽은 군인들까지 정리하기 시작했다.
먼저 공격한 자는 절대 살려 주지 않는 게 그의 원칙이었다. 그리고 중국 군대는 이미 상엽에게 너무 많은 잘못을 했다.
‘늦네.’
상엽은 또 하나의 의도가 있었다. 그런데 마지막 계획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잔당들이 지원을 올 줄 알았는데.’
그는 이번 기회에 왕수의 힘을 모두 사라지게 할 생각이었다. 그래서 갓코인 치안대의 지원군을 기다렸는데 끝내 오지 않았다.
“루시, 찾아.”
상엽은 루시에게 명령을 내리며 주변을 보았다.
“잔치에 깽판을 쳐 버렸네. 그건 미안해.”
군인은 전멸했고 축제가 벌어졌던 중앙 청사는 이미 무너져서 가루가 되었다.
즉위식은 그렇게 끝이 났다.
상점 소환권을 이용해 겨우 지옥을 탈출한 왕수는 이를 갈았다.
천진의 집무실로 급히 달려온 그는 책상 아래에 있는 비밀 공간 앞에 섰다.
작은 공간에서 세월의 흔적이 진하게 남은 상자 하나를 꺼낸 그는 갑자기 이를 갈았다.
“감히!”
그의 권력은 상엽의 난입으로 무너졌다.
3개월 동안의 치열했던 싸움이 겨우 5분짜리 난입으로 뒤집힌 것이다.
분노하고 원통했지만 그에겐 복수할 수 있는 힘이 없었다.
“어떻게 그런 능력을 가지게 됐지?”
그는 자신의 눈으로 보았음에도 상엽의 능력을 믿지 못했다.
“결국…….”
왕수는 자신의 손에 들린 상자를 보았다. 그는 현실을 인정하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가 차이나 커넥션을 버린 이유가 바로 이 상자였다.
“내 계획이 이렇게…….”
마지막 수단을 앞두고 그는 아랫입술을 악물었다.
불과 5분 전만 해도 단상 위에서 온화한 미소를 지었던 그였다.
“정상엽! 넌 반드시 죽는다!”
그는 피가 새어 나올 정도로 이를 악물며 상자를 열었다.
우웅!
상자 안에는 짙은 회색의 빛이 소용돌이를 치고 있었다. 그런데 왕수의 피가 소용돌이에 닿는 순간, 폭발하듯 상자에서 튀어나왔다.
그리고 회오리는 수천 개의 빛으로 흩어져 밖으로 퍼져 나갔다.
가장 가까이에 있던 왕수는 그 빛을 피할 수가 없었다.
“으아!”
빛에 닿은 그의 몸은 회색빛에 휩싸였고 피부를 녹이기 시작했다.
왕수는 극한의 고통 속에서 상자를 받았을 때를 떠올렸다.
-이 상자를 열면 나의 노예가 될 것이다.
압도적인 분위기를 풍기던 2미터 거인의 사내는 그렇게 말했다.
회색 망토에 귀족이나 입을 법한 화려한 예복을 착용한 자였다.
-의지를 버리면 힘을 얻으리라.
왕수는 그의 미친 소리에도 반박을 할 수가 없었다.
지상 최강의 인간.
인간이지만 인간처럼 느껴지지 않는 사내.
그에겐 진한 바다 냄새가 났다.
“끄윽!”
왕수가 기억한 건 여기까지였다.
-노예가 아니라 동료가 되겠다.
이를 위해 차이나 커넥션을 해체했다. 그리고 중국의 주석이 되어 동등한 힘을 가지고자 했다.
하지만 상엽에 의해 그는 노예를 선택했다.
“정상엽!”
오직 상엽을 죽이기 위해서였다.
분노에 소리치는 그의 눈은 붉게 물들었고, 녹아내린 피부에는 새살이 돋았다.
백옥처럼 하얀 피부였다. 그리고 손톱과 발톱은 칼날처럼 길어졌다.
-새로운 존재가 되리라.
그 말을 떠올린 왕수는 웅크렸던 몸을 활짝 폈다.
콰쾅!
엄청난 기파가 사방으로 터져 나가며 집무실이 있던 건물을 완전히 무너트렸다.
“크흐.”
거칠게 숨을 쉬는 왕수는 하늘을 보았다.
축제가 벌어지기 좋은 날씨였다. 그런데 하얀 구름 사이로 수많은 새들이 날고 있었다.
변종 새.
사라졌던 변종 새가 다시 나타났다.
“피의 축제다.”
축제는 계속됐다. 다만 그 의미가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