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2
-회의해서 결정해.
상엽은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았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히 했다.
-동희를 받아들이면 그 프로그램에 따라야 돼. 누구보다 강해질 수 있는 기회야.
결국 사하르를 중심으로 긴 회의가 시작되었다.
그동안 상엽은 동희와 함께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결과가 늦네.”
“기다려 줘. 운명을 결정하는 일이잖아.”
“그럼 더 잘해 줘야겠다. 헤헤.”
더 잘해 준다는 말에 아니라고 하고 싶었지만 해맑은 동희의 표정을 보자 그럴 수가 없었다.
그렇게 30분이 흘렀을 때, 드디어 결과가 나왔다.
“동희의 프로그램을 받아들이겠습니다.”
“전부 동의한 거야?”
“그렇습니다.”
만장일치였다.
처음에는 음식에 대한 두려움으로 불만을 쏟아 냈지만 흥분이 사라지자 이성적인 판단이 가능했다.
-100일만 견디면 전혀 다른 실력자가 된다.
이것은 다시없을 행운이자 기회였다. 그리고 100일로 끝날 프로젝트가 아니었다.
동희가 영원히 블랙 해머에 들어온다면 더 많은 성장이 가능했다.
게다가 신의 무기를 가질 수도 있었다.
결국 블랙 해머는 만장일치로 동희와 용소의 합류를 결정했다.
“다들 축하해. 멋진 팀이 될 거야.”
“헤헤. 이제 상엽이가 내 대장이야.”
“넌 특별 멤버니까 하던 대로 해.”
상엽도 크게 만족하는 결과였다.
“그럼 100일 후에 보자.”
그는 유쾌한 마음으로 애뇌산을 떠났다.
곤명으로 돌아온 그는 현재 상태를 확인했다.
5급 블랙 신의 상점–파괴–무탄 100%
4급 블랙 신의 상점–파괴–알고르 60%
5급 화이트 신의 상점–철갑–호트 40%
그는 고민이 있었다.
“알고르의 선택은 잘못된 건가?”
파괴 능력 상승은 확실했다. 그런데 아쉬운 점이 있었다.
“스킬이 없어.”
무탄은 25%, 50%, 100%에 스킬이 생겼고 호트도 25%에 스킬이 있었다. 그런데 알고르는 아니었다.
60%가 되었음에도 스킬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저 신체 능력의 상승만 가져온 것이다.
“단 하나의 능력만 있다더니.”
상엽은 성아를 통해 알고르의 능력을 들었다.
-화산의 일격. 그의 힘은 특별한 연출이 없었어요. 그저 몸에 닿는 모든 걸 파괴했죠.
상엽은 이 설명에 이끌려서 알고르를 선택했다. 그런데 그 스킬이 100퍼센트에 나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완성만 하면 이것보다 좋은 게 없는데.”
그냥 휘두르는 해머가 스킬을 펼친 것처럼 강력해지는 것이다. 알고르가 가진 단 하나의 능력이었다.
“40퍼센트면 20억. 그래도 호트부터 완성해야 돼.”
호트를 100퍼센트까지 가는 데에는 60퍼센트가 필요했다. 코인으로 환산하면 12억이었다.
그런데 상엽이 바라는 강화는 이걸로 그치지 않았다.
“암흑의 신전.”
이를 위해서는 지옥마를 20단계까지 강화해야 했다.
“옥이의 능력이 엄청나긴 한데.”
속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왕수와의 싸움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옥이를 20단계까지 강화하려면 100억.”
정확하게는 101억 5808만 코인이었다.
“그럼 보자. 나한테 필요한 코인이 133억 정도네.”
상엽은 계산을 끝내자 가슴이 답답해졌다.
“분명히 많이 버는 것 같은데 나아지는 게 없냐? 노가다 뛸 때랑 달라진 게 없네.”
133억 코인을 얻는다고 끝이 아니었다. 3급 파괴의 상점과 4급 철갑 상점이 이어진다.
“고민할 시간에 일하자.”
상엽은 근성을 발휘했다.
“모으다 보면 모여.”
간단한 진리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루시, 100일 동안 사냥만 할 거니까 그동안 코인 정리해.”
얼마 전에는 호트의 스킬을 습득하느라 모든 조각을 정리하진 못했다. 게다가 빨리 정리하느라 손해를 본 부분도 있었다.
100일의 시간이라면 그동안 진행하는 게 있어서 깔끔하게 마무리가 될 듯했다.
“혼자 가시겠습니까?”
“그게 편해. 이번에는 아예 쓸어버릴 거니까.”
모아야 하는 코인이 많아졌지만 그만큼 모으기도 수월해졌다.
“시카고 주변에 주인 없는 땅이 생길 거야. 혹시 테리아 그룹이 필요하면 쓰라고 해.”
“말해 두겠습니다.”
상엽이 어떤 각오로 사냥에 임할지 루시는 분명히 알 수 있었다.
100일간의 개인 사냥이 시작되었다.
“하루 1000만 코인이면 100일에 10억. 이걸로는 안 돼. 적어도 하루에 3000만 코인은 모아야 돼.”
최소 하루 3000만 코인.
어마어마한 수치였다. 하지만 상엽이 불가능한 목표를 세운 것은 아니었다.
1급 위험 지역에 있는 변종들의 기본 코인이 워낙 높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빠르게 부상 없이 처리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할 수 있어. 만 코인짜리 3000마리만 잡으면 돼. 그 정도야 우습지. 5000만도 가능해.”
상엽은 시카고에 도착해 그레이 상점 말롯과 라면을 끓여 먹는 것으로 출정식을 대신하고 사냥을 시작했다.
사냥이 시작되자 상엽보다 추종자가 더욱 바빴다.
“유령아! 다음!”
쾅! 쾅!
코뿔소 50마리 무리를 단숨에 처리한 상엽이 추종자를 재촉했다.
코뿔소 무리를 처리하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20초 남짓이었다.
이미 전투가 시작되기 전부터 추종자는 다음 목표가 될 변종을 찾고 있었다.
“전부 정신 차리고 싸워! 시간 없어!”
유령 군대까지 적극적으로 활용한 상엽은 추종자가 미리 정찰한 지역으로 움직이며 시간을 최대한 아꼈다.
“오랜만이다! 코끼리!”
쾅!
예전에는 위협을 느끼던 코끼리도 이젠 단 한 방이었다. 그것보다 더 큰 변화는 정면에서 공격했다는 점이었다.
정면에서 충돌을 해도 거북 신 호트의 압축 피부를 뚫어 내는 변종은 없었다.
“더 빨리!”
그야말로 학살이었다.
닷새가 지났을 때, 시카고 주변에는 더 이상 변종들이 살지 않았다.
-변종들이 도주하고 있습니다.
“뭐?”
1급 변종들이 도주를 시작했다. 상엽도 처음 겪는 일이었다.
“쫓아! 그리고 유령이는 다른 지역 정찰해. 이제 시카고 주변은 없어.”
불과 닷새 만에 상엽은 3억 코인을 모으며 목표치를 초과 달성했다.
“사람하고 싸울 필요가 없었어.”
사냥을 하면서 깨달았다.
1급 위험 지역의 변종을 쓸어버릴 수 있는 상태가 되면 코인을 모으는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상엽은 그 선을 한참 뛰어넘은 상태였다.
“빨리 찾아!”
코인을 모으는 재미에 빠진 상엽은 추종자를 다시 재촉했다.
하루 평균 22시간을 사냥하고 2시간을 쉬는 일과였다.
그 2시간에는 식사를 하는 시간도 포함되어 있었다. 잠은 이틀에 한 번으로 만족했다.
그렇게 보름이 지났을 때, 상엽은 시카고와 한참 떨어진 지역에 도달했다.
익숙하지 않은 변종들이 튀어나왔지만 상엽은 거침이 없었다.
“안 건드리면 돼.”
멀리서 화염으로 태우고 독을 품은 종류는 유령 군대로 처리했다.
그가 지나간 자리에는 어떤 변종도 살아남지 못했고, 한번 목표를 잡으면 끝까지 추적해서 처리했다.
망치를 든 불도저와 다를 바가 없었다.
50일이 지났다.
시카고에서 출발한 상엽은 일리노이주를 완전히 토벌하고 미주리주를 지나 캔자스시티에 도착했다.
시카고와 덴버의 중간 지점에 닿은 것이다.
두 개 주의 변종을 전멸시킨 그는 캔자스시티에서는 광기를 드러냈다.
“철거다!”
캔자스시티에는 건물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이를 본 상엽은 마치 변종을 두드리듯 건물들을 모두 부수며 그 안에 있는 변종까지 처리했다.
변종에게 점령당하고도 버텨 냈던 캔자스시티의 건물들은 단 하루 만에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남은 것은 부서진 고속 도로에 남은 표지판뿐이었다.
전진은 계속되었다. 상엽은 이미 지나온 길도 잊고 오직 변종 사냥에만 열중했다.
-특수 변종입니다.
“얼마짜리야?”
조각을 획득해 붉은 눈을 가진 코끼리였다. 하지만 상엽에겐 더 많은 코인을 가진 경품으로만 보였다.
‘파괴전차.’
쾅!
상엽은 파괴전차로 코끼리와 정면충돌을 했다.
“어쭈?”
처음으로 변종이 파괴전차를 버텨 냈다.
“50만 코인짜리!”
그제야 상엽은 변종이 무려 50만 코인을 가졌다는 것을 확인했다.
하지만 달라질 건 없었다.
“한 방 더!”
한 방으로 안 되면 두 방, 그것도 안 되면 세 방을 때렸다.
그래 봐야 겨우 2초 차이였다.
코끼리는 세 방에 쓰러졌고 50만 코인과 함께 조각을 남겼다.
“다음!”
상엽은 특수 코끼리를 처리했다는 기쁨도 없이 다음 목표를 향해 뛰었다.
60일이 지났을 때, 추종자만으로는 정찰이 불가능했다.
“옥아, 너도 다녀와.”
결국 지옥마까지 정찰에 나섰다.
상엽의 보유 코인이 40억을 넘어가는 시점이었다.
일정의 절반이 넘기 시작하자 시간은 더욱 빠르게 흘렀다.
“아, 사람이 그립다. 라면도 다 떨어졌고.”
65일째 되는 날, 위기가 찾아왔다.
외로움과 식탐 때문이었다. 하지만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와 버렸다.
다시 여기까지 오는 시간도 아까웠기 때문이다.
그동안 수백 마리의 특수 변종을 처리하고, 수를 셀 수 없을 만큼의 1급 변종을 처리했지만 정작 상엽에겐 라면 하나가 없었다.
“한 번에 너무 많이 먹었어.”
그런 생각을 할 때였다.
하늘에서 수송기가 지나가더니 커다란 상자를 떨어트렸다.
상엽은 수송기의 옆면에서 테리아의 마크를 보았다.
“루시가 도청하고 있었지?”
상엽은 보급 물자로 힘을 얻고 5킬로미터 밖에서 시작되는 거대한 산을 보았다.
자신이 어디 서 있는지도 모르는 상엽에게 산의 이름은 중요하지 않았다.
“산 깎는 남자가 되겠어.”
상엽은 해머 하나를 들고 산으로 향했다.
해발 2500미터의 꽤 높은 산이었다. 그런데 불과 6시간 만에 해발 고도가 500미터로 낮아졌다.
그나마 그 500미터도 잔해가 쌓여서 생긴 것이다.
-변종은 없습니다.
“산이 괜찮네. 수익률이 좋아.”
상엽이 산을 무너트린 것은 이곳에 변종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상엽은 산이 보이면 언덕 수준이 될 때까지 무너트리기 시작했다.
이젠 변종뿐만 아니라 자연도 철거 대상이 된 것이다.
사냥 90일째.
시카고에서 사냥을 시작했던 상엽은 유타주에 도착해 있었다.
동부에서 시작해서 서부로 진입한 것이다.
그는 예전 미국 땅을 가로로 횡단하고 있었다.
“열흘 남았다!”
상엽의 보유 코인은 63억이 되었다.
100일 목표량을 훌쩍 넘긴 것이다. 그렇지만 여전히 부족함을 느꼈다.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 돼.”
상엽은 미국 변종의 10퍼센트를 홀로 처리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코인! 코인!”
그의 머릿속에 오직 한 가지 생각밖에 없었다.
사냥 100일째 자정이 되었다.
말롯은 평소처럼 반쯤 무너진 건물에서 나와 높이 솟은 달빛을 보았다.
그나마 상엽이 화이트 유저들과 훈련을 하는 과정에서 변종들을 정리해 주었기에 이런 여유를 즐길 수 있었다.
100일 전에 상엽이 다시 한번 다녀간 이후로는 변종의 울음소리조차 들을 수가 없었다.
변종이 사라져서인지 언젠가부터 풀벌레 소리가 많아지기 시작했다.
호수의 달빛도 운치가 있었고, 시원하게 부는 바람에 더 이상 맹수의 비린내도 섞이지 않았다.
“여길 정말 정리했어. 1급 위험 지역을.”
말롯은 달을 보며 상엽을 떠올렸다.
그런데 오랜만에 뭔가가 접근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이를 듣고도 별다른 위협을 느끼지 못했다.
변종은 어차피 상점을 공격하지 않고, 유저들 역시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그는 그래서 더욱 외로웠다.
“안전한 게 미덕은 아니야.”
말롯은 그 말을 하며 시선을 돌렸다. 소리의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평안하던 표정이 급격히 변했다.
“무, 무슨…….”
고릴라가 서 있었다. 아니, 사람 같은 고릴라였다. 어떻게 보면 노숙자 같기도 했다.
“뭐야? 왜 놀라?”
“서, 설마 정상엽?”
길게 자란 수염이 목을 가릴 정도였고 피부에는 바짝 마른 피가 어지럽게 남아 있었다.
산발이 된 머리카락이 망나니 같은 데다 눈빛마저 흉흉해서 말롯이 크게 놀란 것이다.
“쳇. 일단 씻고 올게.”
상엽은 단숨에 미시간호로 뛰어들어서 몸을 씻어 냈다. 그리고 아공간에 남아 있는 청바지와 하얀 티셔츠로 갈아입었다.
“어때? 이제 사람 같아?”
면도와 이발까지 깔끔하게 끝낸 상엽은 예전의 모습을 되찾았다. 그제야 말롯은 익숙함을 느꼈다.
“이제 돌아가는 건가?”
상엽의 본모습을 보고 만족하기보다 이별의 시간이 다가왔음에 더욱 아쉬웠다.
“라면 하나 먹고 갈 거야. 같이 먹어.”
상엽은 손수 라면을 끓이며 말롯과 마주 앉았다. 그런데 말롯은 계속해서 뭔가를 말하려다 그만두는 행동을 했다.
“그냥 물어봐.”
“손 좀 잡아 봐도 돼?”
“나 여자 좋아해. 꿈 깨.”
“그런 의미 아닌데.”
뒤늦게 상엽은 말롯의 의도를 파악했다.
“얼마나 벌었는지 보고 싶어서. 그냥은 안 보일 만큼 많은 것 같은데.”
상점들은 눈을 보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코인은 예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상엽은 그 수치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뭐 숨길 것도 없지.”
상엽은 말롯이 내민 손을 잡았다. 그러자 상점이 열리면서 자연스럽게 보유 코인이 말롯에게 정확히 보였다.
“이게 무슨…….”
말롯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70억…….”
100일 만에 이뤄 낸 성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