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9
중국이 자랑하는 스텔스 전투기 5대가 하늘을 날았다.
-목표물은 육안으로 확인하라.
어이없는 명령이었다.
상대가 전투기가 아니었기에 레이더는 무용지물이었다. 그럼에도 군사 기지가 공격받는 상황이라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스텔스 전투기지만 이 역시 의미가 없었다.
레이더를 피해 가는 것이 스텔스 전투기의 특징이지만 상대는 애초에 레이더가 없었다.
게다가 훈련받지 못한 상황이 발생했다.
끼아아!
전투 편대의 선두를 이끌던 전투기의 조종실 안에 갑작스레 유령이 나타났다.
이 역시 훈련된 상황이 아니었다.
유령은 날카로운 단검을 꺼내 들며 파일럿의 목을 그어 버렸다.
조종실에 앉아 있는 파일럿은 이에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었다.
결국 다섯 대의 스텔스 전투기는 상대의 모습을 확인하기도 전에 같은 방법으로 파일럿을 잃었다.
공군 부대의 활주로에서 끊임없이 전투기가 비상하고 있었다.
대공포는 전쟁이 난 것처럼 불을 뿜었고 개인 화기도 총동원되었다.
콰르르!
하지만 그들의 수많은 무기보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거대한 해머가 훨씬 위협적이었다.
콰쾅!
단 한 방에 전투기를 인도하던 활주로가 사라졌고 관제탑은 물론 지하에 마련된 사령실까지 무너져 내렸다.
단 한 명. 그리고 단 한 방.
공군 기지를 사라지게 만든 단어였다.
히이잉!
지옥마는 발아래 펼쳐진 지옥도가 유쾌한지 평소보다 훨씬 경쾌한 소리를 냈다.
“이제 시작이야. 달려.”
상엽을 잡기 위해서 수백 명의 갓코인 유저들이 추격전을 벌이고 있었다.
하지만 누구도 지옥마를 따라올 수는 없었다.
결국 그들은 예상 지점을 설정해서 포위하는 작전을 펼쳤다. 어떻게든 이동을 막으려는 것이다.
“도망가니까 우스워 보이지?”
이동 경로 앞에 10명의 갓코인 유저들이 나타났다.
날개를 펼친 자도 있었고 스킬을 이용해 공중을 밟고 서 있는 자도 있었다.
“어설프게 덤비면 이렇게 되는 거야.”
파괴전차.
상엽이 지옥마의 속도를 그대로 유지하며 파괴전차로 돌진했다.
콰쾅!
단 한 방으로 10명이 모두 빛으로 흩어졌다.
“올라올 수 있는 놈은 덤벼.”
상엽을 막기 힘든 또 하나의 이유.
그것은 바로 공중전이었다.
지옥마가 하늘을 뛰어다니는 덕분에 상엽을 추격할 수 있는 인원 자체가 많지 않았다.
최고 실력자들은 대부분 공중전을 펼칠 스킬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은 전투에 한해서였다.
지옥마를 공중에서 추격할 수 있는 스킬은 극히 드물었다.
“어설프게 막아 주면 고맙지.”
상엽의 말대로 능숙하지 않은 공중전을 선택한다면 자살과 다를 바가 없었다.
-코드 원. 차이나 커넥션이 비상을 선포하고 실력자들을 모으고 있습니다. 팬텀을 움직이겠습니다.
상엽이 차이나 커넥션을 공격하는 걸 가장 바라던 단체가 팬텀이었다.
팬텀은 이 기회를 적극적으로 활용했고 단순히 액션뿐만 아니라 틈이 보인다면 실제 공격까지 준비하고 있었다.
‘팬텀 이 자식들도 얄밉단 말이야.’
그들은 계속해서 상엽을 활용해 이득을 보려고 했다.
히잉!
상엽이 그런 생각을 할 때, 지상에서 갑자기 엄청난 기파가 솟아올랐다.
강한 한기가 느껴지는 반달 형태의 기파는 공기를 가르며 정확히 지옥마를 노렸다.
‘스트라이크.’
상엽은 지옥마 소환을 해제하고 공중에서 더욱 빠르게 움직이며 기파를 피했다.
구름으로 인해 상대의 모습은 보지 못했지만 기파를 봤을 때, 최고 실력자임이 분명했다.
‘열받으면 따라와.’
상엽은 상대의 공격을 흘리고 지옥마를 다시 소환했지만 반격을 택하진 않았다.
그때, 지옥마 앞에 거대한 은색 벽이 형성되었다.
지상에서 치솟은 벽은 하늘까지 막아 버렸고 지옥마는 이를 보며 거친 숨소리를 냈다.
“철거반한테 벽이라니. 멍청하네.”
상엽은 지옥마 대신 앞으로 뛰쳐나가며 하늘을 갈라놓은 듯한 은색 벽을 타격했다.
쿠릉!
단단한 벽이었지만 상엽의 해머를 버틸 수는 없었다.
결국 벽마저 무너지고 지옥마는 유유히 그 자리를 통과했다.
‘좀 더 분발해.’
상엽은 다음 목표를 향했다.
콰쾅!
결국 또 한 번 상엽의 해머가 지상을 강타했다.
이번에는 포병 부대였다.
수십 기의 탱크는 단 한 번의 공격도 해 보지 못하고 고철로 녹아내렸다.
“좋아. 충분히 모였어.”
철저하게 천진의 군부대를 습격하던 상엽은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군대가 천진에만 있는 건 아니잖아.”
현재 많은 갓코인 유저들이 천진으로 몰려들었다. 하지만 상엽의 다음 목표는 천진이 아니었다.
“베이징으로 간다.”
지옥마는 베이징으로 방향을 잡았다.
상엽의 이동 경로가 밝혀지자 베이징 군사령부에는 최고 등급 비상사태가 선포되었다.
그런데 절망적인 보고는 이걸로 그치지 않았다.
-호북 저지선이 무너졌습니다.
-안휘에 적이 침입했습니다.
-상하이 해안 기지가 무너졌습니다.
천진에 갓코인 유저가 모이는 사이에 블랙 해머가 군부대를 습격한 것이다.
최소한의 갓코인 방어 부대가 있었지만 블랙 해머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일단 피하셔야 합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중국 주석을 안전하게 피신시키는 것뿐이었다.
베이징은 정치와 경제 중심지였지만 막강한 군대가 배치되어 있지는 않았다.
모두 주변 도시에 흩어져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막강한 화력도 현재로서는 쓸 수가 없었다.
핵무기가 있다고 해도 상엽을 잡기 위해 베이징에 떨어트릴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핵무기보다 무서운 자다.
그들은 상엽에 대해서 뒤늦게 제대로 된 평가를 했다.
왕수만 있으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오산이었고, 적어도 미사일 발사를 허가하지는 말았어야 했다.
“대피 명령을 허가해 주십시오.”
중국 주석을 향해서 여러 가지 요청들이 쇄도했다.
-주석의 대피.
-베이징 주민 대피 허가.
-운남을 향한 공격 허가.
-왕수 소환 요청.
회의장은 분노와 살기로 가득했다.
“그만.”
결국 중국 주석이 낮은 목소리로 멈출 것을 지시했다. 하지만 회의장의 노성은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았다.
“후우.”
주석이 할 수 있는 것은 답답한 마음을 한숨으로 표현하는 것뿐이었다.
전투기와 하늘을 달리는 말이 긴 창을 겨눈 기사처럼 서로를 향해 돌진했다.
엄청난 속도로 둘이 교차한 직후, 전투기는 공중에 긴 선을 남기며 폭발해 버렸다.
반면 하늘을 달리는 지옥마는 사선으로 지상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쾅!
또 하나의 공군 기지가 무너졌다.
베이징과 가장 가까운 부대였다.
천문학적인 금액에 달하는 최신형 전투기들은 폭죽처럼 터져 나갔고, 중국이 자랑하던 모든 군사 시스템도 붕괴되었다.
“이제 베이징이야.”
상엽이 다음 목표를 향해 움직이려 할 때였다.
-코드 원, 중국 주석이 만남을 요청했습니다.
“거절해.”
상엽은 단박에 이를 거절했다.
-만나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현재 모든 미사일이 운남을 향해 조준되었습니다.
그 말이 상엽의 흥분을 가라앉혔다.
베이징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도 운남을 잃는 것은 옳은 선택이 아니었다.
-핵미사일도 포함된 것으로 보입니다.
단 하나만 떨어져도 운남은 끝이었다.
“장소를 정해.”
상엽은 운남의 주민들을 위해 요청을 받아들였다.
상엽이 주석과 약속을 잡는 사이, 왕수는 원치 않던 보고를 듣고 있었다.
-돌아가겠습니다.
애써 불러온 실력자들이 전부 각각의 길드로 돌아가고 있었다.
팬텀의 압박을 눈치챈 것이다.
상엽을 잡는다 하더라도 자신의 길드와 본진이 무너지면 개인적으로는 얻는 게 없었다.
연합보다는 자신의 길드가 우선이라는 뜻이다.
결국 중국에 남은 것은 처음부터 함께했던 화이트 길드가 전부였다.
현재는 중국 군대로 편입되어 길드 이름을 버렸고 중국 특수 치안대로 불렸다.
충분히 강한 병력이었고 왕수가 직접 지휘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의미가 없었다.
“지옥마를 잡을 수가 없습니다.”
갓랭킹 1위 기림.
그는 왕수만큼이나 지금 상황이 불쾌했다.
“싸울 수만 있다면 제가 반드시 제거하겠습니다.”
기림은 이를 살며 왕수에게 요청했다. 하지만 왕수로서도 뚜렷한 방법이 없었다.
“우리가 운남을 공격하면 막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기림은 계속해서 여러 요청을 했다. 하지만 왕수는 고개를 저었다.
“우리가 천진을 비우면 팬텀이 여길 차지할 것이다. 정상엽 하나를 잡자고 여길 버릴 수는 없다.”
외부에서는 최고로 칭송받는 기림이지만 왕수의 말에는 반박을 하지 못했다.
용소가 그랬듯이 기림도 왕수의 전략적 선택에 의해 성장한 자였다.
갓랭킹 1위를 만든 것도 왕수의 철저한 계산에 의해서였다.
“싸울 수 있는 상황만 만든다면…….”
기림은 끝내 이 점이 아쉬웠다.
그때, 왕수의 집무실로 부관이 다급히 뛰어 들어왔다.
“무슨 일이냐?”
“주석이 정상엽과 만난다고 합니다.”
중국 내에서 일어난 일 중에 왕수의 눈을 피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주석이 직접?”
“먼저 요청을 했다고 합니다.”
왕수는 자신을 빼고 결정을 했다는 것이 불쾌했지만 이내 표정이 변했다.
“기림, 이길 수 있겠지?”
“물론입니다.”
“준비해. 곧 콜로세움을 만들어 줄 테니.”
왕수는 주석과 상엽이 만나는 장소를 활용하기로 했다.
상엽은 눈앞에 있는 자가 갓코인 유저가 아니라는 사실에 놀랐다.
일반인이 이처럼 강렬한 눈빛에 압도적인 분위기를 가질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찻잔을 드는 손은 여유로웠고 위기 상황임에도 목소리는 차분하고 침착했다.
중국 주석.
그 직책이 결코 부족하지 않은 자였다.
“그에게 권한을 주었던 것은 제 실책이었습니다.”
베이징 외곽에 이미 문을 닫은 허름한 찻집이 그들이 만난 장소였다.
“미사일을 쏜 것치고는 치졸한 변명이네.”
상대가 아무리 압도적인 분위기를 가졌다고 하더라도 상엽의 말투를 바꿀 정도는 아니었다.
“인정합니다.”
주석은 경호원을 모두 찻집 밖으로 내보낼 정도로 배짱이 있었다.
그리고 단둘이 남았기에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수 있었다.
“제 잘못이었습니다. 사과드립니다.”
상엽은 상대가 이렇게 나올 줄은 몰랐기에 한바탕 욕설을 퍼부어 주려던 계획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멈춰 주신다면 그에 걸맞은 보상을 약속드립니다.”
“뭔가 착각하는 거 같은데.”
상엽은 주석이 베이징을 지키고자 갓코인 유저가 아님에도 홀로 나온 것은 대단하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그들 사이에 협상이 필요하진 않다고 생각했다.
“차이나 커넥션을 포기할 수 있어?”
주석이 당황하지는 않았지만 대답도 하지 못했다.
차이나 커넥션은 군부대와 함께 중국 정부의 핵심 전력이었다.
이는 중국의 힘을 포기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차이나 커넥션은 절대 날 포기하지 않아. 그럼 우리는 둘 중의 한 명이 죽을 때까지 싸워야 한다는 거지.”
명백한 사실이었다. 이미 대화로 해결할 수 있는 단계는 한참 지났다.
“운남에 군사 무기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약속드리겠습니다.”
“전쟁 중에 약속을 믿으라는 거야? 그게 가능하다면 미사일도 쏘지 않았겠지.”
상엽의 말은 주석의 생각을 계속해서 흔들었다.
‘이자는 협상할 생각이 없다.’
짧은 대화였지만 주석은 이를 알아차렸다.
‘날 죽일 것 같지도 않다.’
성격으로 봤을 때, 기회를 미루면서 대화를 끌고 갈 자는 아니었다.
“먼저 제시할 조건이 있으십니까?”
“조건은 하나야.”
상엽은 속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오늘 일어난 일을 절대 잊지 마.”
조건이라고 할 수 없는 말이었다.
“다시 같은 일이 반복되면 나도 민간인을 건드릴 수 있어. 그 제약이 풀리면 베이징을 날려 버리는 건 10분이면 충분해.”
결코 허언이 아니었다.
“경고를 하시려고 만남에 응한 것입니까?”
주석은 과정이야 어떻든 자신의 뜻대로 될 것이라 믿었다. 상엽이 공격을 멈추는 게 가장 큰 목표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도 그의 예상은 빗나갔다.
“그럴 거면 전화로 했겠지.”
“그렇다면…….”
“넌 왕수를 얼마나 믿어?”
뜻밖의 질문에 주석은 지금까지와 달리 대답을 하지 못했다.
“역시 왔네.”
상엽이 주석을 보며 웃었다.
“왕수가 널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려 주려고. 그래서 요청에 응한 거야.”
쾅!
상엽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찻집의 벽이 부서지며 누군가 들어섰다.
갓랭킹 1위 기림.
그를 본 주석의 눈빛이 분노로 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