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8
왕수는 수 싸움에 능한 자였다.
상엽은 지금까지의 기습이 모두 성공하면서 이 사실을 간과했다.
“지나치게 많은 병력을 부른 것도 마음에 걸립니다.”
“왕수가 뭘 원한다고 생각해?”
“우리를 믿지 않고 확실히 용소를 잡을 방법을 강구할 것입니다.”
상엽을 믿을 리가 없다. 그리고 용소를 반드시 다시 데려간다.
이 두 가지가 기본이었다.
“너라면 어떻게 할 것 같은데?”
“용소를 직접 잡는 방법을 택할 것 같습니다.”
상엽의 머릿속에는 없던 변수였다. 그런데 루시의 말을 들으니 그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다.
‘입장이 바뀌어서 내가 동희를 꼭 구해야 한다면…….’
결코 왕수를 믿을 리가 없었다.
“내 실수야. 인정해. 루시 말이 맞아.”
“하지만 여기서 물러난다면 에레나의 생명초는 포기해야 합니다.”
“살리는 것보다 내 사람이 죽지 않는 게 먼저야. 일단 돌아가자.”
상엽은 그동안의 모든 작전을 미련 없이 취소했다. 이는 상엽이 가진 큰 장점 중의 하나였다.
“제 예상이 틀렸을 수도 있습니다.”
“그것까지 당연히 내가 책임져야지. 그래서 내가 코드 원이잖아.”
책임을 회피하는 대장과 모든 걸 책임지는 대장이 있다.
상엽은 그 책임을 절대 피하지 않았다.
자신이 틀렸음을 언제든 인정할 수 있고, 그 판단조차 자신의 책임이라 여겼다.
“더 늦기 전에 가자.”
상엽은 누나를 살릴 수 있는 조각을 불과 몇 분 거리에 두고 곤명으로 돌아갔다.
* * *
왕수는 두 가지 작전을 동시에 준비했다.
정상적인 교환이 첫 번째였다.
그는 실제로 용소를 얻을 수 있다면 에레나의 생명초를 내어 줄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상엽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또 하나의 작전을 준비했다.
-용소를 직접 찾아낸다.
그런데 여기에는 한 가지 실수가 있었다.
-곤명이나 주변 도시에 용소가 잡혀 있을 것이다.
중요한 인물인 만큼 직접 감시를 할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왕소는 동희를 통해 이미 용소가 상엽의 편이 되었음을 알지 못했다.
사신이 곤명으로 들어가던 그때, 왕수의 다른 수하들이 함께 들어왔다.
사신조차 알지 못하는 사실이었고 수하들은 곤명 곳곳을 살피며 용소를 찾고 있었다.
그들이 더욱 활개를 칠 수 있는 것은 방어 부대인 블랙 해머가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곤명에 머무르고 있던 팬텀의 주요 인물들도 상엽이 돌아오면서 빠져나간 상태였다.
평소보다 치안 상태가 나빴던 탓에 왕수의 수하들은 곤명 곳곳을 살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허탈한 결과를 보고할 수밖에 없었다.
-없습니다.
보고를 들은 왕수는 블랙 해머가 없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블랙 해머를 찾아라. 그곳에 용소가 있다.
불과 6시간 만에 명령이 바뀌었다. 그리고 교환 시간은 빠르게 다가왔다.
이틀이라는 시간 동안 왕수와 상엽은 서로의 목적을 위해 치열한 작전을 펼친 셈이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누구도 뜻을 이루지 못했다.
곤명으로 돌아온 상엽은 세뇌한 사신에게 여러 가지 상황을 다시 물었다.
하지만 그를 심문해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없었다.
“곧 출발해야 합니다.”
사천에 등록 지점이 없는 탓에 교환을 하려면 비행기를 타야 하는 시간이 되었다.
그때, 상엽의 집무실로 한 가지 보고가 올라왔다.
“이건 뭐야?”
실종자에 대한 보고였다. 그리고 수상한 자를 보았다는 보고가 있었다.
“어떻게 생각해?”
“왕수가 용소를 찾으려 했다면 제일 먼저 곤명을 뒤졌을 것입니다.”
상엽은 비행기 시간을 앞두고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후우. 잠시 시간을 좀 줄래? 내가 뭔가를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작전에 대한 부분이 아니었다. 상엽은 서로 수 싸움을 해야 하는 지금 상황이 애초에 잘못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는 복잡하게 떠오르는 생각을 지우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역시 내가 문제였어.”
“무슨 말씀이십니까?”
상엽은 짧은 순간의 생각으로 여유를 찾으며 루시에게 말했다.
“내가 더 좋은 패를 가지고 있었는데 동급으로 착각을 했잖아.”
그 말에 루시가 웃었다. 그녀도 이 부분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누나를 살리려는 상엽의 마음이 워낙 간절했기에 말을 꺼내지 못했을 뿐이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왕수한테 연락해서 협상 취소해.”
“명목은 곤명에 수하들을 보낸 걸로 하겠습니다.”
“역시 똑똑해.”
상엽이 여유를 찾자 루시의 표정도 편해졌다.
“그리고 루시.”
“네.”
“다음에는 그냥 말해도 돼. 넌 그래도 되는 사람이니까.”
누나에 대한 일이라 말을 아낀 부분을 지적한 것이다.
“알겠습니다.”
급박하던 상황은 상엽의 생각 전환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닭 쫓던 개가 되었다.
왕수는 상엽의 일방적인 통보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치열하게 전개하던 작전은 무용지물이 되었고, 급히 불러들였던 차이나 커넥션의 실력자들은 허무하게 돌아가고 말았다.
-차라리 총공격이라도 하자.
이런 말이 나올 정도로 실력자들은 큰 불만을 드러냈다.
왕수로서는 이보다 더한 치욕이 없었다. 그런데도 대항할 방법이 없었다.
-당장 운남에서 부하들을 물러나게 하라.
상엽의 이 요청마저도 거절할 수 없어서 극도의 수치감을 느꼈다.
칼자루를 상엽이 쥐고 있는 것이다.
결국 왕수는 또 한 번 다급한 협상에 나섰다.
‘이 약을 먹지 않으면 용소가 죽을 수도 있다.’
왕수에겐 시간이 많지 않았다. 동희가 이미 치료했다는 사실을 몰랐기에 또 다른 카드로 상엽에게 연락을 취했다.
“생명초 조각에 완성된 유물, 그리고 운남의 국가 인정을 제안했습니다.”
완성된 유물에 운남의 국가 인정이 추가됐다.
“꺼낼 수 있는 카드는 이게 전부일까?”
“그럴 것 같습니다.”
“좋아. 그럼 한 번 더 물 먹이자.”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은 쉬웠다.
“오늘 저녁에 교환하자고 해. 최대한 간략한 절차로.”
“알겠습니다.”
약속은 이루어졌다. 하지만 교환 한 시간 전에 상엽이 다시 일방적으로 취소를 통보했다.
-국가 인정을 위한 영토 포기 문서가 없다.
운남의 국가 인정은 짧은 기간 안에 성사시킬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아무리 왕수가 최고의 권력을 지녔다고 해도 많은 절차가 필요했다.
이걸 하루 만에 준비하라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 요구였다.
어쨌든 상엽은 이로 인해 큰 이득을 보았다.
“차이나 커넥션의 실력자들이 다시 그냥 돌아간 것 같습니다.”
“다음에도 와 줄지 모르겠네.”
“부를 수 있을지도 의문입니다.”
상엽과 루시는 서로를 보며 웃었다.
“우리 악동이 된 거 같은데.”
“아니었던 적이 없습니다.”
“그럼 좀 더 악동 짓을 해 볼까?”
상엽은 왕수를 더욱 다급하게 할 생각이었다.
“용소가 살아 있다는 증거를 보내.”
루시는 상엽의 계획이 마음에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왕수의 책상 위에는 한 가지 상자가 배달되었다.
용소가 직접 뭔가를 만드는 영상이었다. 그리고 영상의 결과물이 상자에 함께 담겨 있었다.
작은 구슬 안에 꺼지지 않는 불이 담긴 간단한 장식품이었다. 하지만 이 안에 신의 힘이 있는 것은 분명했다.
용소가 살아 있고, 그 증거가 도착한 것이다.
쾅!
왕수는 화를 이기지 못하고 책상을 내려쳤다.
부서진 가루가 방 안을 먼지로 가득 메웠지만 그는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이놈! 감히 날 놀려!”
이번 사건으로 인해 왕수는 많은 것을 잃었다.
용소를 잃은 것이 가장 컸고, 차이나 커넥션 실력자들의 신뢰를 잃었다.
거기다가 중국 정부에서는 마음대로 운남을 포기하려 했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이 소문은 곧 상엽에 의해 증거가 뿌려지면서 사실로 드러났다.
모든 방면에서 압박을 당하기 시작한 것이다.
“애송이 녀석이 참을 수 없게 만드는군.”
왕수는 더 이상 참지 않았다.
“놀아나는 건 여기까지다.”
마지막 수단이라 생각했던 방법을 꺼냈다.
“죽이고 살리면 된다.”
에레나의 생명초를 모을 수 있는 건 상엽뿐만이 아니었다. 왕수도 상엽의 조각을 빼앗으면 누군가를 살릴 수 있었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롱투스의 망치는 다시 모으면 된다.”
용소가 가진 유산이 문제였다. 하지만 극도로 화가 난 왕수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이 사태를 해결하기로 했다.
‘더 이상 치욕을 당한다면 나까지 무너진다.’
그는 차이나 커넥션의 대장이었다. 그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확실한 한 방이 필요했다.
다음 날 아침.
상엽은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방법으로 일격을 당했다.
“미사일이 발사됐습니다!”
“뭐?”
천진의 군사 기지에서 곤명을 향해 세 개의 미사일이 발사되었다.
그나마 코드 제로의 위성이 이를 잡아냈기에 떨어지기 전에 알 수 있었다.
“미친 새끼!”
왕수가 운용할 수 있는 것은 갓코인 유저뿐만이 아니었다. 중국의 군대도 사용할 수 있다는 걸 간과하고 있었다.
상엽은 곧장 지옥마를 타고 미사일이 날아오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버틸 수 있을까?’
잠시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루시, 정확한 위치 전송해.”
실수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몸으로 견디기는 위험 부담이 컸다.
“일단 하나.”
상엽은 제일 먼저 발사된 미사일의 위치를 소리로 알아냈다.
“후읍!”
아무리 상엽이라도 엄청난 속도로 다가오는 미사일을 보자 극도의 긴장감을 느꼈다.
‘심판.’
상엽은 미사일의 경로에 맞춰 심판 스킬을 떨어트렸다.
미사일은 정확히 심판 스킬과 충돌했고 엄청난 폭발을 일으켰다.
“큭!”
상엽은 꽤 거리가 있음에도 폭발에 휘말렸다.
‘화염의 정수.’
그나마 그에겐 폭발로 발생하는 열기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미사일이 폭발하면서 만들어 낸 공기의 압력은 진한 고통을 주었다.
“크윽!”
피부가 찢어지며 피가 흘렀다. 뼈가 울리는 고통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그렇지만 버텨 냈다.
“이 정도면 할 만해.”
상엽은 자신감을 가지고 다음 미사일을 향해 움직였다.
쾅! 쾅!
두 개의 미사일은 공중에서 폭발했다. 운남의 경계선을 넘기도 전에 제거가 된 것이다.
첫 공격은 일부러 몸으로 견뎠던 상엽은 두 번째부터는 최장 거리에서 미사일을 폭파시키고 재빨리 몸을 피하며 충격을 최소화했다.
세 번째는 유령 걸음으로 가장 큰 압력을 피하고 통곡으로 벽을 만들어 충격을 최소화하자 거의 상처가 없이 마무리되었다.
미사일을 모두 처리하고 내려선 곳에서 상엽은 여전히 파편을 날리는 하늘을 보았다.
“군대를 동원했다 이거지?”
상엽은 미사일을 처리했지만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그때, 루시로부터 전화가 왔다.
-왕수가 연락을 해 왔습니다.
“미친 새끼.”
-세 시간 안에 용소를 넘기지 않으면 운남의 모든 도시를 쓸어버리겠다고 합니다.
이미 행동으로 보여 줬기에 허언은 아닐 것이다.
“세 시간이라고 했지?”
-네. 그렇습니다.
“일단 알았다고 해.”
-어쩌실 생각이십니까?
상엽은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세 시간이면 충분하잖아. 중국의 미사일 기지가 어딘지 빨리 파악해.”
-설마 직접 가실 생각이십니까?
“중국 정부가 무슨 짓을 했는지 똑똑히 알려 줘야지. 이젠 갓코인 유저 싸움이 아니야.”
상엽은 중국 정부가 선을 넘었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코인 정리한 거 지금 바로 흡수할 수 있게 준비해. 이제 신경전은 끝났어.”
결정을 내린 상엽은 더 이상 복잡한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한 시간 후.
천진의 미사일 기지 위로 지옥마가 나타났다. 하지만 이미 예상을 했던 왕수는 차이나 커넥션의 최고 실력자들을 매복시켜 두었다.
열 명의 최고 실력자들은 상엽을 보자 곧장 스킬을 펼치며 하늘로 뛰어올랐다.
그런데 상엽은 그들을 보고도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내가 그렇게 멍청해 보였어?”
상엽은 그들과 전투를 벌이지 않았다.
“지옥마보다 빠른 놈이 있으면 싸워 줄게.”
지옥마가 최고 속도로 달리기 시작하자 열 명의 최고 실력자들도 도저히 따라올 수가 없었다.
“어디 있는지 알려 주면 고맙지.”
오히려 상엽에게 자신의 매복 위치를 들킨 꼴이 되고 말았다.
“폭격 시작.”
쾅! 쾅! 쾅!
천진 하늘의 구름 위에서 화염이 쏟아졌다.
마치 신이 천벌을 내리듯 쏟아지는 화염의 파편이 지상에 있던 해군 기지를 불바다로 만들었다.
해군 기지도 대공포로 반격을 시작했지만 상엽의 기습이 워낙 빨라서 제대로 된 대응이 되지 못했다.
“갓코인 유저 싸움에 끼어들지 말았어야지.”
불로 인해 혼란에 빠진 군사 기지 위로 이번에는 거대한 해머가 나타났다.
‘파괴의 일격.’
상엽은 지금까지의 분노를 담아 해군 기지에 정확한 한 방을 날렸다.
콰르릉!
단 한 방으로 천진의 해군 기지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역시 이게 내 스타일이야. 이제 머리싸움은 안 해.”
답답한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