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코인-215화 (213/300)

# 215

해령 길드가 무너졌다.

상엽뿐만 아니라 블랙 해머까지 전투에 합류하면서 잔당 소탕은 잔인할 정도로 확실히 이루어졌다.

워낙 호전적인 길드라 끝까지 항전하는 바람에 시간이 지체 되었지만 그뿐이었다.

결국 정밀 수색까지 포함해서 단 하루 만에 해령 길드는 역사에서 사라졌다.

그런데 평소와 달리 상엽은 길드장을 직접 죽이지 않았다.

“자, 선물이야.”

어차피 해령 길드의 길드장은 상징적인 인물이자 정치를 담당했다.

상엽은 직접 붙잡은 길드장을 송하 남매 앞에 던졌다.

“죽이든지 살리든지 마음대로 해. 그런데 절대로 오래 고민하지는 마.”

송하의 정보로 인해 동희를 구하고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것에 대한 보답이었다.

푹!

그런데 상엽의 경고가 끝나기 무섭게 송윤이 길드장의 목에 칼을 꽂았다.

송하는 흔들리는 눈빛으로 그런 동생을 지켜보기만 할 뿐, 직접 나서서 말리지 않았다.

“이제 끝났네요. 고마워요, 아저씨.”

“앞으로 어떻게 할 거야?”

“해남도를 떠나야죠. 여기는 좋은 기억이 없으니까요.”

“생각 있으면 운남으로 와. 특별히 받아 줄 테니까.”

“고마워요.”

상엽은 남매에게 손을 흔들어 주고는 그 자리를 떠났다. 동시에 해령 길드도 역사에서 사라졌다.

* * *

왕수는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다.

“당장 운남을…….”

하마터면 그는 총공격을 명령할 뻔했다. 하지만 극도의 인내심을 발휘하며 냉정을 되찾았다.

하지만 아픔이 남았다.

“롱투스를 잃다니…….”

그에게 롱투스는 전 세계를 장악할 핵심이었다.

신무기로 군대를 만들면 갓코인 유저를 모두 처리할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그런데 그런 롱투스가 상엽의 손으로 넘어갔다.

“어떻게든 찾아야 한다.”

어떤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롱투스가 필요했다.

“정상엽에게 연락하라.”

결국 그는 실리를 선택했다.

상엽에게 왕수의 연락은 의외였다.

팬텀이 압박을 하고 있지만 운남이 위험하지 않을지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그런데 의외로 왕수가 먼저 연락을 해 왔다.

-협상하지.

“조건이 뭔데?”

-롱투스를 넘겨준다면 운남을 국가로 인정해 주겠다.

“끊어.”

상엽은 왕수의 전화를 그 자리에서 끊어 버렸다.

“다시 연락이 오고 있습니다.”

“하루쯤 열받게 놔둬.”

상엽은 더 이상 연락을 받지 않고 눈앞에 있는 사내를 주시했다.

사내는 몸을 말아 무릎을 끌어안은 채로 구석에서 몸을 떨고 있었다.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사내는 작은 키에 삐쩍 마른 체구였다.

눈은 며칠 잠을 못 잔 것처럼 퀭하고 광대뼈가 튀어나와 해골을 연상시켰다.

“살아 있는 놈 맞지?”

“숨은 쉬고 있습니다.”

그들이 머물고 있는 곳은 광동성 신미라는 항구였다.

광동성은 이미 인간 변종에게 점령을 당했던 땅이라 거주민이 없었다.

버려진 도시의 폐건물은 사내를 심문하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빨리 끝내자. 대답만 잘하면 살려 줄 수도 있으니까.”

상엽은 고스트 체인으로 사내의 팔과 다리를 묶었다. 그리고 성아를 소환했다.

“이름.”

아직 상대의 이름조차 모르고 있었다. 추종자가 그를 찾아낸 것은 얼굴이나 이름 때문이 아니었다.

연구소 내부에서 보호를 받고 있었고 가장 먼저 탈출을 하려 했다. 그래서 연구소장으로 확신한 것이다.

“네 입을 열게 할 방법은 아주 많아. 그걸 하길 바라?”

상엽은 사내의 턱을 해머로 들어 올렸다. 그런데 사내는 몸을 떨고 있을 뿐,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그의 눈동자는 불안한 듯 계속해서 주변을 살폈고 호흡도 거칠었다.

“이놈, 뭔가 이상한데.”

루시도 상엽의 말에 동의했다.

“제가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루시는 사내의 모습을 촬영해서 코드 제로로 보냈다. 코드 제로에서는 실시간으로 사내의 모습을 분석했고 오래지 않아 결론을 내렸다.

-약물 중독으로 인한 금단 증상으로 보입니다.

“마약이야?”

-그것까진 알 수 없습니다. 정확히 알려면 검사를 해 봐야 합니다.

코드 제로로 직접 데려가야 한다는 뜻이었다.

“동희는 어디쯤 왔어?”

“20분 안에 도착할 것 같습니다.”

동희는 한국을 떠날 결심을 하고 루시와 함께 움직였다. 담비가 합류할 수 있었던 것도 같은 이유였다.

그들은 광동성 오문이라는 버려진 항구 도시에 머물다가 소식을 듣고 배를 이용해 이곳으로 오는 중이었다.

동희는 예정된 시각에 무사히 도착했고 곧바로 대장장이 사내에게 관심을 보였다.

“약물 중독이네.”

별다른 검사 없이 동희는 상태를 알아봤다.

“어떻게 알았어?”

“냄새.”

동희는 사내의 몸에서 나는 냄새를 다시 한번 확인하고는 수술실에서나 쓸 법한 메스를 꺼냈다.

“상엽아, 좀 잡아 줄래?”

상엽에 의해 사내의 팔이 곧게 펴지자 동희는 손가락 끝을 잘라 피를 받았다.

“음.”

작고 긴 유리병에 담긴 피를 보던 동희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입을 벌렸다.

“뭐, 뭐하는 거야?”

동희는 피를 마셨다. 그러더니 숙련된 요리사처럼 그 맛을 음미했다.

“마약 종류가 아니라 독약이야.”

“그걸 꼭 그렇게 알아내야 돼?”

“이게 제일 확실해.”

논리적으로 이해는 가지만 동희의 행동을 지지할 수는 없었다.

“상엽아. 이 사람, 나 줄 거야?”

“그래. 너 가져. 어차피 그러려고 데리고 온 거잖아.”

“헤헤. 역시 상엽이야.”

“내가 받은 게 더 많아. 부담 없이 가져가.”

동희는 확답을 받더니 사내의 흔들리는 눈을 보며 말했다.

“내가 치료해 줄게.”

그 한마디에 사내의 떨림이 멈췄다. 잠시지만 사내는 분명히 놀란 표정이었다.

이내 예전의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돌아갔지만 동희에겐 그걸로 충분했다.

“자, 일단 안 아프게 해 줄게. 그리고 천천히 나랑 치료하는 거야.”

동희가 손을 뻗었지만 사내는 놀라며 물러날 수도 없는 벽으로 몸을 밀기 시작했다.

“내가 누군지 알아? 우린 친구야.”

동희는 포기하지 않고 사내의 눈을 보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연금술사. 네가 찾던 그 연금술사가 나야. 우린 함께해야 하는 운명이잖아.”

연금술사.

그 말이 사내의 떨림을 다시 한번 멈추게 했다.

“이 세상에서 널 치료해 줄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어.”

이젠 사내가 더 이상 몸을 떨지 않았다. 눈빛은 여전히 불안했지만 조금 전과는 확연히 달랐다.

“치료부터 하자. 이야기는 그 후에 하고. 알았지?”

동희는 사내에게 유리병 하나를 내밀었다.

“알턴씨나. 무슨 뜻인지 알지? 이게 알턴씨나야. 나만 만들 수 있는 최고급 진통제.”

사내는 고민하다 동희의 유리병을 빼앗듯이 가져가고는 입 안에 털어 넣었다.

그러자 잠시 후에 사내가 천천히 눈을 감더니 정신을 잃었다.

“진통제라며?”

“거짓말이야. 저건 수면제야.”

상엽의 질문에 동희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지금부터 치료가 끔찍하게 아프거든. 마취 대신 수면제를 준 거야.”

“네가 끔찍하다고 할 정도면…….”

“지난번에 실험했던 녀석은 2분 만에 죽어 버렸어. 그냥 고통만으로도 쇼크가 심했는지 죽어 버린 거지. 꽤 실력 있는 블랙 유저였는데.”

상엽은 자신이 그 실험을 당할 것 같아서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얼마나 걸려?”

“5시간쯤. 몸속의 피를 완전히 새로 만들어야 하거든.”

“알았어.”

상엽은 동희의 수술을 보고 싶지 않아서 건물 밖으로 나왔다.

“코드 원, 여기까지 오는 동안 석동희로부터 한 가지 제안을 받았습니다.”

“뭔데?”

“담비들이 머물 곳을 제공해 주면 블랙 해머에 합류하겠다는 제안이었습니다.”

상엽은 뜻밖의 말에 동희가 있는 건물 안을 보았다.

“음.”

“제 생각에는 최고의 영입이 될 것 같습니다.”

“그럴 거야.”

루시는 상엽이 당장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의외로 덤덤한 표정이었다.

“무슨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문제는 없어. 다만 걱정될 뿐이지.”

“그러십니까?”

상엽의 말에 루시는 이해했다는 표정이었다. 그런데 이어지는 말에 자신의 예상이 틀렸음을 알았다.

“동희가 워낙 위험한 친구라서 말이야.”

“네? 그럼 걱정한다는 게…….”

“동희가 블랙 해머에 합류하겠다고 했지?”

“그렇습니다.”

“블랙 해머를 동희한테 맡겨도 되는지 모르겠어.”

루시는 동희에 대해서 모든 것을 파악하지 못했다.

“동희가 사람을 어떤 기준으로 나누는 줄 알아?”

루시가 대답을 하지 않자 상엽이 정답을 알려 주었다.

“친구. 아니면 실험 재료.”

그 기준을 듣고서야 루시는 상엽의 걱정을 이해했다.

“동희가 블랙 해머와 친구가 되어 준다면 더 바랄 것이 없지.”

상엽은 깊은 고민 끝에 웃으며 결론을 내렸다.

수술이 끝나고 온몸을 붕대로 감은 사내는 드디어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름은 용소.

나이는 예상과 달리 22살이었다.

“고생을 많이 했구나.”

상엽의 평가대로 용소는 10대 후반부터 왕수로 인해 갖은 고초를 겪었다.

그중에서 지금까지 그를 괴롭힌 것은 사액이라는 독이었다.

강한 중독성이 있는 사액은 계속 복용하지 않으면 극한의 고통과 오한을 느끼게 되는 독약이었다.

왕수는 이를 용소에게 먹여 지금까지 노예처럼 부렸다.

“롱투스라는 신과 운명이 똑같네.”

롱투스가 그랬던 것처럼 용소는 왕수의 지시에 따라 오직 신의 무기 제작에만 몰두했다.

그렇지 않으면 독을 이용해 죽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고문을 당했다.

그러다 재작년에서야 신의 힘을 무구에 발현하는 연구를 성공했고, 그때부터 본격적인 생산에 들어갔다.

하지만 기록에 있는 신의 무기를 제작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떠올린 것이 현대 무기와의 접목이었다.

이는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고 현대 무기라는 특성상, 대량 생산이 가능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무구를 사용하는 자의 영혼이 파괴된다.

부작용이 생긴 것이다.

용소는 이를 보완하기 위해 연구를 시작하려 했지만 왕수는 다른 선택을 했다.

-해령 길드원을 대상으로 직접 실험해.

신무기 연구소가 천진이 아닌 해남도에 만들어진 이유였다.

그곳에서 용소는 부작용을 해결하는 것은 물론 다양한 능력을 가진 무구들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습니다. 힘을 조금 변형하는 것에 불과했어요.”

무구의 성능 향상은 곧 한계에 부딪쳤다.

“연금술이 필요했습니다.”

그 이후로는 상엽이 알고 있는 대로였다.

“연구는 어느 정도나 진행된 거야?”

“연금술만 있으면 당장 제작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사내는 혼이 빠진 표정으로 모든 것을 사실대로 말했다. 성아도 그의 말이 사실임을 확인했다.

그런데 멍하니 천장을 보던 사내의 눈가에서 물줄기가 흘러내렸다.

“다시는 무기를 만들고 싶지 않습니다.”

상엽은 그 말에 뒤에 있는 성아를 보았다.

“진실이에요.”

상엽은 그의 마음을 이해했다.

그에게 무구 제작은 언제나 고통이었다. 몸을 지배한 독보다 더한 고통은 강제로 무구를 제작하는 일이었다.

“강요는 안 해. 내가 원하는 건 네가 무구 제작을 그만두는 일이니까.”

“그럼 전 이제 죽는 겁니까?”

“어떻게 되고 싶은데?”

“살고 싶습니다. 하지만 예전처럼 살고 싶지는 않습니다.”

“잡혀 온 주제에 바라는 게 참 많네.”

상엽은 걸음을 옮겨 누워 있는 사내가 자신을 볼 수 있도록 했다.

“네가 만든 무기들이 날 죽이려고 했어.”

상엽은 그를 위로하기보다 오히려 압박했다. 용소는 입을 다물며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했다.

“그냥 알아 두라고. 어차피 네 운명은 이미 동희한테 넘겼으니까 내가 어떻게 하진 않을 거야.”

상엽의 말이 끝나자 지금까지 기다리고 있던 동희가 나섰다.

“용소.”

동희는 특유의 웃음을 지으며 용소에게 말했다.

“밥 먹자.”

그 말에 상엽이 본능적으로 한 발 뒤로 물러났다.

어떤 강력한 힘에도 물러서지 않던 그였다. 하지만 강렬한 본능이 상엽을 뒷걸음질 치게 한 것이다.

“루시, 안 바빠?”

“모든 상황에 대한 보고를 받고 있습니다. 지금은 괜찮…….”

대답을 하던 루시는 상엽의 표정이 일그러지는 것을 보고는 자신의 답변이 잘못되었음을 알았다. 하지만 두 번의 기회는 없었다.

“잘됐다. 상엽아, 그리고 루시. 다 같이 밥 먹자. 내가 금방 만들어 줄게.”

동희는 식사 준비를 선언하며 어느 때보다 밝게 웃었다.

“헤헤. 오랜만에 솜씨 발휘 좀 해 봐야지.”

“동희야. 너 수술한다고 피곤했을 텐데 라면이나 먹을까?”

루시는 상엽의 비굴한 표정을 이때 처음으로 보았다. 하지만 동희는 단호했다.

“라면은 몸에 안 좋아. 내가 몸에 좋은 걸로 만들어 줄게.”

동희는 상엽의 요청을 뿌리치며 음식 준비에 들어갔다.

상엽은 이를 보며 예전에 송연지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동희야, 혀도 몸이야.”

그의 목소리는 허무하게 허공을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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