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코인-214화 (212/300)

# 214

루시에겐 팬텀과 협상할 수 있는 무기가 생겼다. 그것은 동희가 분석을 끝낸 신무기의 파편이었다.

-운남에 주요 인물들을 배치하고 차이나 커넥션을 압박하는 행동을 취한다.

이것이 루시의 협상 조건이었다. 하지만 진짜 팬텀이 바라는 건 따로 있었다.

-정상엽이 화이트 길드를 공격한다.

이 협상의 전제 조건이 팬텀을 움직였다.

그렇지 않아도 정상엽이 필요했던 팬텀은 이번 일을 기회로 좋은 관계를 유지할 계획을 세웠다.

이에 루시의 요구 조건을 즉각적으로 수용했다.

운남의 각 도시에 팬텀의 실력자들이 머무르면서 당장 차이나 커넥션이 공격을 할 수 없도록 만든 것이다.

‘이제 코드 원이 대장장이를 납치하면 돼.’

이 부분은 철저하게 비밀이었다.

팬텀은 연구소를 파괴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실제 작전은 전혀 달랐다.

‘코드 원이라면 해낼 거야.’

루시는 원하는 결과를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같은 시간.

해남도 전체가 비상이 걸렸다.

-전 대원은 1급 기밀 지역으로 이동하라.

말 그대로 전면전이었다.

선두에는 당연히 길드의 최고 실력자인 부길드장이 나섰다.

“왔어?”

상엽은 일부러 지옥마에 올라탄 채로 부길드장이 나타나길 기다렸다.

해령 길드를 상징하는 돌고래 마크가 선명히 찍힌 옷을 입고 나타난 부길드장은 날카로운 인상을 가진 사내였다.

갓랭킹 37위 한추.

그는 연구소가 멀지 않은 해변에서 상엽을 마주 보았다.

“정상엽!”

부길드장은 상엽을 보자 바로 분노를 드러냈다. 그만큼 상엽에 대한 해령 길드의 감정은 깊고 어두웠다.

하지만 섣불리 공격에 나서지는 않았다. 그도 나름대로 실력자였고 상황 판단을 냉정하게 내렸기 때문이다.

‘외부 지원은 없다.’

그는 연구소가 멀쩡한 것을 보고는 여유를 가지기로 했다. 외부 지원이 불가능하다는 연락을 받았지만 그는 믿는 구석이 있었다.

‘신무기 부대가 있다.’

훈련이 끝나진 않았지만 충분히 실전에서 통할 수 있는 50명의 특수 대원이 있었다.

그들은 신무기로 무장을 하고 이쪽으로 오는 중이었다. 그런데 고맙게도 상엽도 여유를 부렸다.

“날 죽이려고 많은 준비를 했더라고.”

“시작은 네가 먼저였다.”

“부정하진 않아. 그런데 그게 문제가 되진 않잖아. 안 그래?”

블랙과 화이트.

서로의 것을 빼앗는 것은 당연한 규칙이었다.

“지금이라도 사과를 한다면 한 번쯤 봐줄 수도 있다.”

한추는 일부러 말싸움이 될 법한 말을 꺼냈다.

“에이. 그건 아니지. 싸우게 되면 죽는 건 내가 아닐 테니까.”

상엽도 말싸움을 거절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것은 한추의 의도대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었다.

-연구소 내부로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상엽은 추종자를 통해 대장장이를 찾고 있었다. 그래서 일부러 시간을 끌었다.

자칫 연구소를 습격했다가 대장장이가 죽어 버릴 수도 있어서 조심스러운 것이다.

‘동희를 생각하면 전투 능력은 별로 없을 거야.’

그래서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단번에 잡아야 돼. 상점 소환권으로 도망가면 끝이야. 일단 물러서.’

기회는 단 한 번이었다.

지금은 건설한 시설이 있어서 상황을 살피겠지만 조금이라도 위험해지면 도망갈 것이 분명했다.

‘발견하면 상점 소환을 못 하도록 네가 달라붙어야 돼.’

전투가 벌어지면 상점 소환이 불가능하다. 이번 작전의 핵심이 추종자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곧 기회가 생길 거야.’

이번 작전에 특별한 지원군이 있었다. 다만 이를 위해서도 시간이 필요했다.

“빨리 모여. 한 방에 끝내 버리게. 일부러 시간을 끄는 것 같은데.”

상엽은 한추를 자극하는 말을 했다.

“자신 있다는 건가?”

“물론이지. 지금 널 죽이는 데도 5초면 충분해. 송사리들이 아무리 모여 봐야 상어를 잡지는 못하는 법이니까.”

치욕적인 말에 한추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럼 어디 한번 해보시지.”

한추가 원하던 시간이 흘렀다. 해변가로 50명의 부대원들이 내려선 것이다.

“죽여라!”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50명의 대원들은 군인들처럼 열을 맞추며 각자의 무기를 앞으로 세웠다.

‘쳇.’

상엽은 도망갈 틈이 있음에도 그러지 않았다.

‘내가 사라지면 분명히 도망갈 거야. 이 녀석들의 의도대로 흘러가야 돼.’

상엽은 불을 뿜는 50개의 화기를 피하기 위해 공중으로 몸을 띄웠다. 그리고 지옥마를 다시 불러 하늘 높이 솟구쳤다.

그런데 이미 발사된 무기 중의 절반이 상엽을 따라오기 시작했다.

총알 계열은 물론이고 바주카포 같은 느낌의 화기도 있었다.

툭! 툭!

상엽의 피부에 맞은 총알들이 희미하지만 자국을 남기며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아우, 아파.’

총알뿐만이 아니었다.

콰쾅!

상엽과 충분히 거리가 있음에도 지름 50센티미터의 둥근 포탄이 폭발을 일으켰다.

그런데 폭발에서 튀어나온 것은 또 다른 작은 포탄이었다. 그리고 이것들이 연쇄적으로 터지기 시작했다.

폭발의 여파는 순식간에 상엽의 주변을 집어삼켰다. 그런데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지상에 있던 대원 중에 바주카포를 들었던 10명이 줄을 잡아당기는 시늉을 했다.

동시에 공중에서 이미 폭발한 잔해들이 서로 검은 선을 연결하기 시작했다.

‘결계?’

생각보다 위험한 공격을 감지한 상엽은 파괴전차로 이를 빠져나왔다.

그렇게 아슬아슬하게 범위를 벗어났을 때, 결계 내부에서 이상한 현상이 일어났다.

공간이 왜곡되더니 갑자기 모든 것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리고 1초쯤 지나자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 안에 있던 모든 것이 사라졌고, 잠시지만 공간 자체가 사라진 느낌이었다.

‘생각보다 훨씬 위험한데.’

동희의 연구실에서 봤던 무기와는 차원이 달랐다. 그리고 무기뿐만 아니라 그들은 다양한 무구와 도구를 가지고 있었다.

‘망할.’

아직 시간이 필요했다. 원하는 말이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좀 바빠지겠어.”

상엽이 빠른 속도로 무기들을 피하려고 할 때였다.

신무기로 무장한 전투 대원들이 지금까지와는 다른 공격을 펼쳤다.

서른 명이 동시에 줄넘기 손잡이 같은 도구를 꺼냈다. 그리고 상엽을 중심에 두고 뛰어올랐다.

우웅!

공기를 뚫는 강한 진동이 느껴지면서 그들은 아무것도 없는 손잡이를 휘둘렀다.

그런데 상엽은 미세하지만 공기의 흐름이 바뀌는 것을 분명히 보았다.

‘진짜다.’

보이지 않는 칼날이 있는 것이다.

상엽은 피하는 것만으로는 버틸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스트라이크.

쾅!

결국 상엽이 한쪽에서 뛰어오른 두 명의 대원들을 터트려 버렸다.

그런데 이것이 문제였다.

해머의 폭발에 휩싸인 대원들이 가지고 있던 도구들이 폭발을 일으키며 주변으로 하얀 액체를 뿜어냈다.

치이익!

상엽은 피부가 타들어 가는 고통을 느꼈다. 일반인이 염산에 닿았을 때와 비슷한 현상이었다.

그리고 그 찰나의 순간에 상엽의 몸으로 수십 개의 칼날이 닿았다.

깡! 깡! 깡!

쇠를 두드리는 둔탁한 소리에 상엽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외쳤다.

“이것들이!”

고통에 화가 난 상엽이 화염파도로 다가오는 대원들을 물러서게 했다.

그런데 다시 진형을 잡은 대원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어떻게 아직 살아 있지?”

“분명히 닿았는데.”

액체는 강력한 독이었다. 단 한 방울로 상위권 갓코인 유저를 죽일 수 있었다.

그런데 상엽은 피부가 타들어 가는 것으로 끝났다. 그나마도 짧은 시간 산화하다가 사라졌다.

“신의 칼날도 먹히지 않아.”

전투 대원들은 질렸다는 표정이었다.

불과 몇 초 전만 해도 상엽의 몸에 칼날이 닿는 순간,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었다.

그렇게 대원들의 마음속에 이길 수 없다는 생각이 자리 잡기 시작할 때였다.

-진입합니다.

추종자의 목소리였다. 드디어 상엽이 기다리던 때가 된 것이다.

‘찾았어?’

-담비가 찾아냈습니다.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이번 작전의 특별한 조력자는 담비였다.

추종자를 막아 내는 결계를 워낙 많이 본 터라 특별히 담비를 데리고 왔다.

담비는 연구소의 땅 밑으로 숨어들어 결계를 뚫었고 추종자를 내부로 진입시켰다.

‘그럼 준비는…….’

상엽이 작전에 대해 생각할 때, 지금까지와는 다른 기세가 느껴졌다.

휘익!

심장을 향해 송곳처럼 얇은 검이 쏜살처럼 다가왔다.

‘이제 싸울 생각이 든 거야?’

부길드장 한추가 직접 나선 것이다.

상엽은 팔각 대시로 한추의 공격을 피하고 빠르게 후방을 잡으려 했다.

그때, 주변에서 포위망을 형성했던 전투 대원들이 다시 공격에 나서면서 상엽은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잡았습니다.

잠시 물러났던 상엽이 추종자의 보고를 듣고는 진한 웃음을 보였다.

“이제 놀아 주는 건 끝이야.”

이제 상엽의 임무가 변했다.

‘빨리 납치해서 떠나야 돼.’

대장장이가 돌아오지 않는 것을 알면 아무리 팬텀이 압박을 하더라도 왕수가 그냥 있지 않을 것이다.

‘속도전.’

상엽은 계획의 다음 단계로 진입했다.

“일단 한 방 먹이고.”

속도전이라고 피할 생각은 없었다.

‘심판.’

외곽에서 중화기를 겨누고 있는 자들에게 심판을 떨어트리고 상엽은 구름 위로 솟구쳤다.

그리고 구름에 몸을 숨긴 채로 대형 해머를 만들었다.

“참느라고 힘들었다.”

쿠르릉!

한추는 구름을 뚫고 내려오는 거대한 해머를 보았다.

위협을 느낀 그는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오히려 상엽을 향해 뛰어들었다.

‘훌륭한 판단이야.’

상엽은 함께 죽자는 느낌으로 달려드는 한추의 기세에 해머를 거두어들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공격이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상엽은 다가오는 한추를 향해 빠르게 해머를 휘둘렀다.

파괴의 바람.

한추의 주변으로 태풍이 몰아쳤다.

한추는 갑작스러운 힘에 중심이 흔들렸고 이를 놓칠 상엽이 아니었다.

‘파괴전차.’

상엽의 몸이 한추를 향해 돌진했다.

한추는 아슬아슬한 순간에 스킬을 활용했고 상엽은 공중을 통과하고 지나쳤다.

단거리 순간이동으로 공격을 피한 한추는 검을 하늘로 세우며 힘을 모았다.

그의 얇은 칼에 번개의 힘이 모였고 빠르게 주변으로 스파크를 일으키며 영역을 구축했다.

“짜릿하겠네.”

강렬한 스킬이 펼쳐졌음에도 상엽은 파괴전차를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최고 속도로 한추를 향해 돌진했다.

이번에는 한추도 크게 당황했다. 지금까지 누구도 번개의 영역에 들어온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뚫린다.’

위기를 느낀 그는 스킬을 멈추고 돌진하는 상엽을 다시 한번 피해 냈다.

하지만 그가 지나간 자리에서 형성된 충격파는 그의 중심을 다시 한번 흔들었다.

‘너무 강하다.’

랭킹 30위권의 유저로서 자부심을 가진 그였다. 하지만 지금 상엽과는 명확한 실력 차이가 있었다.

무엇보다 공격이 먹히지 않는 것이 결정적이었다.

투둑.

돌진하는 상엽의 밑으로 수백 개의 가시가 떨어졌다.

한추가 목숨을 걸고 시도한 스킬이었다. 강한 독이 붙은 가시는 지금까지 수십 명의 목숨을 앗아 갔지만 상엽의 피부에는 작은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힘의 차이를 명확히 느낀 한추는 신무기를 가진 부하들과 함께 싸워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에 그는 부하들 사이에 내려서며 다시 다가올 상엽을 기다렸다.

“부길드장님!”

상엽의 이동 경로를 본 부하가 다급하게 외쳤다.

“이런!”

한추는 다급히 상엽을 쫓았지만 이미 따라갈 수가 없었다.

콰쾅!

결국 상엽은 엄청난 폭음과 함께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연구소가…….”

상엽의 파괴전차가 도착한 곳은 연구실의 지하 2층이었다.

한추와 부하들이 다급히 연구소를 향해 달려갈 때, 상엽이 다시 하늘로 튀어 올랐다.

“이 녀석은 잘 데려갈게.”

상엽의 어깨에는 기절한 사내 한 명이 짐짝처럼 매달려 있었다.

바로 연구소장이었다.

“멈춰라!”

한추가 분노한 음성으로 외쳤지만 이미 상엽은 지옥마를 소환해 멀어지고 있었다.

“어떻게…….”

연구소장은 해령 길드 소속이 아니었다.

왕수가 가장 아끼는 인력이었고 가장 먼저 탈출시키는 매뉴얼까지 있었다.

그런데 너무나 순식간에 일이 벌어졌다.

한추는 어떻게 해야 할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그런데 혼란은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어디선가 나타난 강렬한 화염이 그를 덮쳤다. 그리고 사라졌던 상엽이 다시 나타났다.

그는 다시 한번 거대한 해머를 소환해 연구소가 있던 자리를 폭격했다.

“그냥 갈 줄 알았어?”

콰쾅!

결국 신의 스킬 파괴의 일격이 연구소가 있던 지상에 떨어졌다.

“이번 작전의 핵심이 뭔 줄 알아?”

폐허가 된 땅을 보며 상엽은 또 하나의 필수 요소를 떠올렸다.

“전멸. 그래야 내가 납치한 걸 모르거든.”

상엽은 잔당 소탕을 위해 자신이 폐허로 만든 지상으로 내려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