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코인-212화 (210/300)

# 212

“아저씨가 다녀간 이후로 많은 게 변했어요.”

송하는 가면을 벗으며 말했다. 그녀의 가면은 꽤나 등급이 높은 것으로 상엽이 가진 유산보다 많은 이를 속일 수 있었다.

상엽은 송하를 통해 해남도의 생생한 정보를 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일반적인 사실을 말하던 송하는 갑자기 말을 멈췄다.

“아저씨, 이제 협상할 타이밍인 거 같은데요.”

그 말에 상엽은 웃고 말았다.

“역시 그대로 돌려받네.”

송하가 동생을 구해 달라고 찾아왔을 당시에 상엽은 송하에게 협상을 하자고 말했다.

이젠 상엽이 그녀를 설득할 차례였다.

“조금 전에 보니까 전자 장비를 쓰던데.”

“네. 어렵게 구했어요.”

“전폭적으로 지원해 줄게.”

그 말에 송하의 표정이 눈에 띄게 환해졌다.

“작전이 끝나도 그 장비는 제 거죠?”

“약속해.”

협상은 간단히 이루어졌다.

“그럼 이제 고급 정보를 풀어 보실까? 내가 시간이 별로 없어. 알다시피 오늘 죽어야 하는 날이잖아.”

“제가 모은 정보로 오늘 한국에서 작전을 실행한다고 했어요. 세부 사항은 모르는데 대부분의 정보가 아저씨에 관한 것이었거든요.”

“그걸로 내가 죽어야 한다는 건 이상하잖아.”

“최고 실력자들이 며칠 전부터 보이지 않아요. 그리고 최근에 외부인들이 많이 보여요. 대장간이라고 불리는 연구소가 세워지고 부쩍 늘었어요. 일반인들에 대한 규제도 대폭 강화됐고.”

“그래서 결론은?”

상엽은 자잘한 정보를 모두 설명하려는 송하에게 결론부터 물었다.

송하는 자신이 행보를 자랑할 수 없다는 것이 불만스러운지 입술을 삐쭉이다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차이나 커넥션의 실력자들이 아저씨를 죽이러 갔다고 예상했어요.”

“한국에?”

“네.”

정보는 정확하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상엽이 한국에 있다는 사실이 오류였다.

“어떻게 생각해?”

상엽의 질문을 들은 루시는 심각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한국에서 어떤 작전이 펼쳐질 것 같습니다.”

루시는 대답을 한 뒤로 송하에게 추가 질문을 했다.

“다른 정보는 없어?”

“음, 몇 가지 연결되지 않는 단어가 있었어요.”

“말해 줄래?”

송하는 기억을 더듬으며 떠오른 단어를 입 밖으로 꺼냈다.

“흑점, 담비, 연금술사.”

그 말을 듣는 순간, 상엽의 표정이 변했다.

“동희를 노리는 거야.”

“바로 가시겠습니까?”

루시도 같은 예상을 했다.

“오늘이라고 했지?”

송하가 고개를 끄덕이자 상엽은 곧바로 상점을 소환하려 했다. 그런데 소환 직전에 행동을 멈췄다.

“왜 그러십니까?”

“이거 어쩌면 일이 쉽게 풀리겠는데?”

“무슨 말씀이신지?”

“연구소에 대한 정보 말이야.”

루시는 상엽의 짧은 설명을 듣고도 의도를 파악했다.

“작전의 중요성을 감안하면 꽤나 높은 실력자가 합류할 것입니다.”

“맞아.”

상엽에겐 두 가지 방법이 있었다.

기억을 읽을 수도 있고 성아를 통해 심문을 하는 것도 가능했다.

“정보가 연구소 밖으로 나와 있다는 거지.”

상엽은 다급했던 마음을 진정시키며 소환권 대신 전화기를 들었다.

“형, 비상 상황이야. 해령 길드에서 동희를 노리고 있어. 지금쯤 한국으로 가고 있거나 이미 들어갔을 거야.”

아직 정오가 되기 전이었다.

“오늘이 아직 좀 남았네.”

상엽은 잠시 미루어 두었던 소환권을 사용하며 한국으로 날아갔다.

* * *

강원도 설악산.

바닥에 놓아둔 스마트폰에서 상엽의 음성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내가 갈 때까지 숨어 있어.

“알았어.”

동희는 보안경을 쓰고 두 개의 비커를 잡은 채로 대답했다.

그는 전화가 끊겼지만 아무런 대응 없이 비커에 있는 액체를 섞는 데 집중했다.

“레타니올을 불케니아에.”

현실에 존재하지 않던 두 가지 용액이 상아로 만든 그릇 안에서 섞이기 시작했다.

붉은색과 파란색은 하나의 용기에 담기자 물과 기름처럼 서로를 밀어내며 영역을 만들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위와 아래가 아닌 옆으로 경계선을 만들었다.

“성공!”

밀도와 농도가 완벽히 똑같고 두 용액이 서로 끌어당기는 힘이 있기에 가능한 현상이었다.

그럼에도 두 용액은 섞이지 않았다.

“자, 이제 여기 촉매제를 첨가하면…….”

동희는 금으로 만든 손바닥 크기의 용기를 들었다. 용기의 뚜껑을 열자 연구소 가득히 꽃향기가 퍼졌다.

용기에는 빛나는 하얀 가루가 담겨 있었고 동희는 약지 크기의 스푼을 사용해 가루를 담았다.

정확한 용량을 위해 스푼에 담긴 가루의 언덕을 제거한 동희는 조심스럽게 상아 그릇 위에 뿌리기 시작했다.

빛의 가루는 팽팽하게 맞서던 두 용액을 녹였다.

아이스크림이 녹듯 천천히 녹아내리기 시작한 용액은 어항에 막 들어간 물고기처럼 빠르게 서로의 영역을 침범했다.

동희는 기대에 찬 눈빛으로 침을 삼키며 용액의 변화를 주시했다.

용액은 어지럽게 섞이며 각각의 빛깔을 잃더니 신기하게도 하얀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투명하게 느껴질 정도로 하얗게 변한 후에는 스스로 은은한 빛을 발산했다.

“됐어.”

동희의 표정이 환희로 물들었을 때였다.

쩌적.

상아 그릇에 균열이 생긴 것이다.

“안 돼!”

외침이 끝나기도 전에 상아 그릇이 깨지며 용액이 바닥으로 흘렀다.

상아 그릇을 벗어난 용액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빛을 잃고 검은색으로 변해 버렸다.

“오염돼 버렸어.”

동희는 허탈한 심정으로 한숨을 쉬며 증발하는 액체를 지켜보았다.

“버틸 수 있는 도구가 없네.”

그는 깨진 상아 그릇을 치우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다 바닥에 놓아둔 스마트폰을 보았다.

“담진아.”

그의 부름에 어디선가 작은 소음과 함께 담비가 나타났다.

담비 대장.

동희가 부르는 이름은 담진이었다.

“상엽이가 하는 말 들었지?”

-내가 알아서 처리하겠다.

“꽤 강한 녀석들이래. 괜찮아?”

-문제없다.

동희는 그 말을 듣더니 더 이상 상엽이 말한 위협에 대해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다 뭔가 떠오른 듯이 말했다.

“이번에도 몇 명 잡아 줄 거야?”

-상황이 되면 그렇게 하겠다.

“응. 고마워. 재료가 얼마 안 남았거든.”

동희는 그렇게 말하며 연구실 중앙 바닥에 있는 줄을 잡았다.

이를 당기자 연구소 천장에서 맹수를 가두어 둘 것 같은 사각 우리가 내려왔다.

흙으로 만든 바닥과 천장에 대나무를 연결해서 만든 구조였다.

맹수는커녕 덩치 큰 애완동물도 힘을 주면 뛰쳐나올 것 같았다.

그런데 우리 안에는 믿을 수 없게도 건장한 사내가 잡혀 있었다.

“이 개새끼!”

쾅!

실제로 우리에 있던 누군가가 쇠창살을 대신해 앞을 가리고 있는 대나무를 힘차게 때렸다. 그러자 대나무에서 붉은빛이 뿌려지며 힘을 튕겨 냈다.

우리는 잠시 흔들렸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자, 먹어.”

우리 안의 사내가 어떤 발악을 하든 동희는 감정 없는 눈으로 그에게 녹색 액체가 든 병을 내밀었다.

사내는 액체를 거부하려 했지만 그 순간 동희가 우리 끝에 손을 올렸다.

지지직!

엄청난 전류가 우리를 감싸자 사내가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을 쳤다.

“좋은 소식이랑 나쁜 소식이 있어.”

동희는 우리에 갇힌 사내를 향해 통보하듯이 말했다.

“좋은 소식은 내일 네가 죽는다는 거야. 이제 갇혀 있지 않아도 돼. 나쁜 소식은 이번 실험이 좀 아프다는 거야.”

“제, 제발…….”

조금 전까지 욕을 하며 난동을 부리던 사내의 표정이 급격히 무너졌다.

“에이, 그런 표정 하지 마. 날 잡으러 왔을 때는 당당했잖아. 죽을 때도 당당하게 죽어. 알았지?”

능력을 대폭 상승시켜 주는 연금술사.

동희를 노리는 집단이 없을 리가 없었다.

수백 개의 길드들이 동희에게 협력 요청을 했고 이는 블랙과 화이트를 가리지 않았다.

그리고 수십 개의 길드나 단체는 동희를 납치하려 했다.

몇몇 단체는 동희를 제거하는 작전을 실행했다.

이 모든 공격을 막아 낸 이는 바로 담비들이었다.

외부적으로 알려진 담비의 힘과 실제 담비들의 힘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그래서 동희가 설악산에서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다.

“자, 마셔. 하루라도 더 살고 싶으면.”

결국 사내는 동희가 사료처럼 던져 준 음료를 마실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지막 하루도 고통스럽게 살아.”

동희가 줄을 잡아당기자 우리가 다시 천장으로 올라갔다.

“실험체가 얼마 안 남았어.”

천장 가득 매달려 있는 서른 개의 우리들.

그곳에는 일곱 명의 사람들이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동희를 보고 있었다.

10분 후.

쾅!

연구실의 문이 거칠게 열렸다.

“어?”

예상치 못한 습격에 동희는 멍하니 입구를 보았다.

피투성이가 된 사내 한 명이 분노를 담은 눈으로 동희를 보았다.

그의 눈빛에 담긴 것은 살기였다. 그리고 최초로 침입자가 연구소까지 도착한 순간이었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어?”

동희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피투성이 사내는 연구실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때였다.

팟!

바닥에서 뭔가가 튀어 오르며 연구실 천장까지 치솟았다.

연구실 안으로 들어왔던 사내의 몸에서 세로로 붉은 선이 나타난 것도 그때였다.

그리고 잘 든 칼이 쪼갠 수박처럼 세로로 갈라지며 빛으로 흩어졌다.

“담진아, 어떻게 된 거야?”

-상대가 신무기를 사용하고 있다.

“신무기? 신이 사용하는 무기라는 그거?”

-아직 완벽하진 않지만 꽤 위력을 발휘하는 상태다.

“그럼 아이들이 위험해?”

-이미 많은 피해를 입었다. 너도 여길 떠나야 한다.

“그렇게까지 해야 돼?”

지금까지 담비들이 막아 내지 못한 상대는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상황이 다른 듯했다.

담비가 먼저 연구소를 버리자고 한 것은 처음이었다.

“그럼 아이들도 물러나게 해. 나도 도망갈 테니까.”

-이쪽이다.

담비는 곧장 연구실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러자 바닥에 동희가 충분히 들어갈 수 있는 굴이 파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거의 동시에 연구실 천장이 무너지며 세 명이 뛰어내렸다.

-빨리!

동희는 침입자를 보고도 곧바로 굴로 뛰어들지 않았다.

‘꼭 가져가야 돼.’

연금술사의 수첩.

동희는 목숨보다 이를 먼저 챙겼다.

툭.

그가 수첩을 잡는 순간, 침입자 세 명이 그의 뒤에 내려섰다.

그러자 바닥이 다시 한번 꿈틀대며 대장 담비가 나타났다.

한 명의 몸이 다시 갈라지며 피를 뿌리는 순간, 중앙에 있던 사내는 천장으로 솟구치는 담비를 쫓았다.

쾅!

엄청난 속도로 솟구친 사내의 주먹이 담비의 몸을 때렸다. 힘에 밀려난 담비는 연구소 벽을 뚫고 밖으로 날아가 버렸다.

“망할 고양이 새끼들.”

여전히 동희 뒤에 있던 사내는 욕설을 쏟아 내며 동희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들도 담비로 인해 예상보다 훨씬 큰 피해를 입은 상태였다.

서른 명의 정예가 모였을 때만 해도 필요 이상으로 강한 전력이라 믿었다.

그런데 설악산에 들어선 순간 그들은 지옥을 경험했다.

연구소로 오는 도중에 그들은 사투라는 말이 부족할 정도로 힘든 전투를 펼쳤고 결국 20명이 사망했다.

살아남은 10명 중에서도 4명은 부상으로 인해 돌아간 상태였고 방금 담비로 인해 또 한 명이 제거되었다.

결국 아직 전투가 가능한 인원은 겨우 5명뿐이었다.

“내 인내심에 감사해라. 당장 쳐 죽이고 싶은 걸 참는 중이니까.”

동희는 저항할 틈도 없이 사내에게 뒷목이 잡혔다.

그때였다.

쾅!

동희를 잡았던 사내의 몸이 폭죽처럼 터져 버렸다.

“누가 내 친구를 건드려?”

터져 나간 사내의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상엽아.”

“잘 있었어? 일단 정리 좀 하고 다시 이야기하자.”

“응!”

“얼른 피해 있어.”

수첩을 손에 꼭 쥔 동희는 그제야 담비가 만든 굴로 뛰어들었다.

“대장 담비, 내 친구 잘 지켜라. 그리고 이거 끝나면 이야기 좀 하자.”

상엽도 여기까지 오면서 전투의 흔적을 보았다.

결코 지금까지 알던 담비들의 실력으로는 이렇게까지 버틸 수가 없었다.

“유령아, 준비해. 저기 정보가 있어.”

-네, 주인님.

대장 담비를 연구소 밖으로 쳐 낸 인물이 상엽과 열 걸음 떨어진 곳에 내려섰다.

그리고 밖을 지키던 세 명이 그의 곁으로 합류했다.

4명의 최강의 전사들을 보며 상엽은 웃음을 지었다. 그들 중에 한 명의 얼굴이 익숙했기 때문이다.

“해령 길드의 간부께서 오셨네.”

해령 길드의 서열 3위.

최고 실력자인 길드장을 제외하면 가장 강한 자의 얼굴이 보였다.

“진심으로 반가워.”

상엽의 말이 끝나는 순간, 사내들의 주변에 빛기둥이 솟았다.

유령 군대들이 사내들을 포위한 형태로 나타난 것이다. 그런데 사내들은 긴장감을 보이면서도 두려워하진 않았다.

우웅!

사내들이 착용한 갑옷과 손에 쥔 무기들이 일제히 진동을 일으키며 빛을 뿜어냈다.

‘뭐지?’

상엽은 그들의 몸 전체를 감싸고 있는 빛에 대해 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하지만 전투 본능이 금세 위화감을 지워 버렸다.

“이제 곧 전부 알게 되겠지. 오늘 여러 가지 비밀이 풀리겠어.”

상엽은 기다리지 않고 사내들을 향해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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