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1
대장장이의 신 롱투스.
그는 대장장이이자 과학자였다.
더 정확히 말하면 과학자들의 연구 집단을 바탕으로 신의 무기를 만드는 대장장이였다.
신이 된 대장장이.
그는 독특한 신이었다.
롱투스는 신들의 노예로 신의 대륙에 들어섰다.
그곳에서 셀 수도 없을 만큼 오랜 시간 동안 노예로서 무구를 만들었지만 그에게 돌아오는 혜택은 아무것도 없었다.
1초도 쉴 수 없는 노예.
그럼에도 언제나 신들의 재촉을 받으며 무구를 만들어야 했다.
무리한 신들의 요구를 언제나 성공시켜야 했고, 실패할 경우에는 처참한 벌을 받았다.
결국 몇 번 되지 않는 실패의 대가로 인해 피부는 불에 타고, 심장에는 대못이 꽂히며 망치를 놓으면 숨을 쉴 수 없는 상태가 된다.
신들에게 노예란 그저 그런 존재일 뿐이었다.
-자고 싶다.
망치를 결코 놓지 않았던 대장장이는 5천 년이 지나서야 이런 생각을 했다.
그렇게 처음으로 몸을 눕히고 잠이 들었다.
그리고 두 번 다시 깨어나지 않았다.
대장장이의 죽음.
신들은 슬퍼하기보다 분노했다.
무구의 장인이 사라지자 당장 그들이 불편해진 것이다. 그래서 회의 끝에 그를 신으로 만들었다.
노예가 되기 위해 만들어진 신.
그것이 대장장이의 신 롱투스였다.
신의 되는 마지막 관문에서 롱투스는 처음으로 자신의 조건을 말했다.
-신과학을 연구하는 집단이 필요하며, 작업 계획은 내가 세운다.
단 두 가지였고 신들은 받아들였다.
당장 대체할 수가 없는 기술자였기 때문이다.
결국 롱투스는 신의 과학인 신과학 연구소를 설립하고 이를 바탕으로 우수한 신무기를 만들어 냈다.
그렇게 다시 오랜 시간이 흐르자 신들은 더 이상 롱투스를 무시할 수가 없었다.
신무기의 성능이 워낙 좋았고, 연구소라는 명목하에 길러진 롱투스의 군대가 무시무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이 롱투스에겐 다시 불행이 되고 말았다.
신의 전쟁이 발발한 후, 롱투스는 가장 먼저 제거 대상이 되었다.
그의 군대가 신의 무기로 무장할 것이 두려웠던 신들이 제일 먼저 공격을 한 것이다.
그리고 여전히 노예였다는 인식이 남아 있기에 공격 대상으로 삼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렇게 결국 롱투스는 전쟁 초반에 제거되고 말았다.
“신이라고 다 좋은 건 아니네.”
상엽은 성아를 통해 롱투스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신을 싫어하는 신이었죠.”
“너도 만난 적 있어?”
“네. 제 무기와 로브를 부탁했어요.”
성아의 하늘색 옷은 특수한 무구였다. 그리고 그녀가 사용하는 지팡이도 롱투스의 작품이었다.
“그럼 혹시 연금술사에 대해서도 알아?”
상엽은 롱투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연금술사를 떠올렸다. 동희 역시 특이한 능력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롱투스와 앙숙 관계였어요. 하지만 서로 떨어질 수 없는 사이였죠.”
“무슨 뜻이야?”
“롱투스의 무구 제작에는 특별한 재료와 합성 금속이 필요했어요. 연금술사 제하드 역시 롱투스가 만든 특별한 연구 도구가 필요했어요. 서로 싫어했지만 도와줄 수밖에 없는 관계였죠.”
“제하드라는 연금술사도 노예였어?”
“네. 요리사이자 연금술사였어요.”
요리사라는 말을 듣자 동희가 제일 먼저 완성한 유산이 떠올랐다.
그것은 가마솥이었다.
‘가마솥은 제하드가 아니라 롱투스의 유산이었다는 거네.’
모든 연금술 재료는 롱투스가 만든 것이다.
“결국 두 노예가 신이 되었고 제일 먼저 죽었다는 거네.”
“아니에요. 제하드는 신이 아니었어요. 노예로 살다가 신의 벌로 인해 소멸되었죠. 그리고 영원히 부활할 수 없는 벌을 받았어요. 롱투스가 신과학 연구소를 요구한 것도 제하드가 죽었기 때문이에요. 신들 사이에서는 노예 롱투스가 영원히 잠이 든 것도 앙숙이었던 제하드의 소멸을 보고 그랬다고 판단하는 의견이 많아요.”
앙숙이었던 노예의 죽음.
롱투스는 제하드의 죽음을 보며 많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슬펐을까? 부러웠을까?’
상엽은 쉽게 판단을 내릴 수가 없었다.
“그런데 제하드는 무슨 죄를 지었는데 그렇게까지 벌을 받아?”
“생명을 창조했어요. 그것도 신의 힘을 가진 생명체를 만드는 데 성공했죠.”
연금술의 최고 단계는 금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생명을 창조하는 것.
이것이 연금술의 궁극적인 목표였다.
제하드는 그것을 완성한 것도 모자라 신의 힘을 가진 생명체를 탄생시킨 것이다.
“신들은 분노했고 즉각적인 처벌이 이루어졌어요.”
상엽은 동희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래서 유산이 아니라 수첩이었구나.’
특이하게도 동희는 연금술에 대한 수첩을 얻었다. 이는 조각을 모으는 방식이 아니었다.
‘이상하긴 했어.’
상엽이 알고 있는 한, 유일하게 갓코인의 시스템에서 벗어난 획득이었다.
‘신이 아니라서 그런 건가?’
생각은 자연스럽게 수첩의 위치를 알려 준 대장 담비로 이어졌다.
‘그 녀석은 뭐지?’
상엽이 담비에 대해 생각할 때, 성아가 예상치 못한 말을 했다.
“대장장이 롱투스와 그의 군대를 전멸시킨 후에 신들은 축배를 들었어요.”
“왜?”
“그의 연구소에서 반란에 대한 증거를 찾아냈거든요. 그는 신의 대륙을 점령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어요. 신무기로 무장한 군대로 말이에요.”
상엽은 성아의 말에서 한 가지 문제점을 발견했다.
“너도 롱투스를 무시했나 봐?”
성아는 뭔가 대답을 하려다가 말을 멈췄다. 스스로 놀란 표정이었다.
“거짓말을 하려다가 실패한 거야?”
“제 생각을 말하려고 했는데 진실이 아니었나 봐요.”
“너도 롱투스를 무시하고 있었어. 반란이라고 했잖아. 같은 신끼리 쓰는 단어는 아니지.”
반란은 낮은 직책이 높은 직책을 대상으로 일으키는 것이다. 또는 기득권을 대상으로 한다.
롱투스는 같은 신이었기에 반란이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랬군요.”
“어쨌든 좋아. 롱투스의 유산이 완성되고 그의 연구소가 이 세상에 재현될 가능성이 있어?”
“가능해요. 당신이 겪는 모든 일들이 애초에 불가능했던 일이잖아요. 이제 불가능은 없어요.”
“그 연구소가 완성되고 신무기로 무장한 군대가 나타나면?”
“전쟁이 벌어지겠죠. 롱투스의 연구를 얼마나 재현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거예요. 하지만 완성 가능성이 크진 않다고 생각해요.”
“왜 가능성이 낮다는 건데?”
“시간.”
성아는 상엽이 예상하지 못한 말을 했다.
“롱투스가 하나의 무구를 만드는 데 이곳 시간으로 10년이 걸렸어요.”
상엽은 성아의 판단을 이제야 이해했다. 하지만 그녀가 간과한 사실이 있었다.
“인간들이 때로는 신을 넘어서거든.”
무엇도 확신할 수 없었다.
“가능성이 없다면 연구소를 만들지도 않았을 테고.”
상엽은 지금까지의 정보를 종합했다.
“내 눈으로 확인해야겠어.”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정보였다.
* * *
“동희야, 조심해.”
상엽은 제일 먼저 동희에게 사실을 알리고 조심할 것을 당부했다.
“이번에는 은밀히 다녀올 거야. 루시도 같이 갈 거니까 내가 없는 동안 사하르가 군대를 지휘해.”
이젠 블랙과 화이트의 구분 없이 하나가 된 블랙 해머들에게 마지막 지시를 내린 상엽은 곧바로 곤명을 떠났다.
목적지는 해남도였다.
해남도는 상엽으로 인해 많은 것이 바뀌어 있었다.
금고가 털린 후에 관광객들의 출입 제한 지역을 대폭적으로 늘렸고 최근에는 다시 한번 규제를 강화했다.
차이나 커넥션에 합류한 후로 그들은 관광객의 방문 심사를 극도로 강화했다.
오랫동안 출입하며 사업을 하거나 믿을 수 있는 사람의 초청이 없이는 방문을 허락하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해남도의 서쪽에 변종을 제거하고 새로 확보한 토지를 1급 기밀 지역으로 설정했다.
그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는 해남도를 지배하는 해령 길드의 중간 간부조차 몰랐다.
최고위급 관리 중에서도 엄선된 사람들만 알고 있는 형태였다.
“신혼여행지에 다시 온 기분이 어때?”
“시원합니다.”
루시는 물에 젖은 옷을 보며 솔직히 대답했다.
“쉽게 하는 경험은 아니잖아.”
상엽과 루시는 정식 루트가 아닌 바다를 통해 해남도에 도착했다.
“해령 길드에서 코드 원이 들어왔다는 것을 알면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입니다.”
“알아.”
상엽이 지옥마를 탄다는 것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었다. 해령 길드는 그 사실을 토대로 지난번의 사고가 상엽의 짓임을 예상하고 있었다.
다만 확실한 증거가 없고 길드의 사활을 걸어야 하는 싸움이라 꾹 참고 있는 중이었다.
워낙 호전적인 길드라 명확한 증거가 나왔다면 운남이 지금처럼 평화롭지 못했을 것이다.
“자, 그럼 비밀 지역으로 접근해 볼까?”
상엽은 복잡한 과정 없이 곧장 새로 설정된 1급 기밀 지역으로 이동했다.
한 시간 후.
상엽은 높이 솟은 감시탑을 보며 몸을 낮추고 있었다.
“저건 뭐야?”
단순히 사람이 감시를 하는 망루가 아니었다.
수십 개의 카메라가 달려 있는 100미터짜리 탑이 좁은 간격으로 늘어서 있었다.
“지상도 안전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물러나야 합니다.”
단순히 카메라에 의존하는 감시 체계가 아니었다.
위성은 물론 진동을 감지하고, 온도까지 감지하는 모든 시스템이 동원되어 있었다.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겠네.”
바다를 통해 접근하려 했지만 마찬가지였다.
“그냥 부수고 들어가는 방법밖에 없겠는데?”
밤이 물러가는 새벽이 되었을 때, 상엽은 이렇게 판단을 내렸다.
“문제가 커질 것입니다.”
“그렇겠지?”
“어차피 해야 할 싸움이긴 하지만, 우리가 먼저 첫 번째 목표가 될 필요는 없습니다.”
블랙과 화이트는 충돌할 수밖에 없다.
상엽은 둘 모두와 화합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차이나 커넥션의 연구소를 침입했다가는 자연스럽게 첫 번째 목표가 된다.
이는 감당할 수 없는 싸움이 될 가능성이 컸다.
“운남은 사라진다고 봐야겠지?”
“그렇습니다.”
상엽이 이 작전을 은밀히 수행해야 하는 이유였다.
“팬텀 쪽은 어때?”
“조금 더 정확한 정보를 모은 후에 협상할 생각입니다.”
“아니야. 협상은 접어.”
상엽의 명령에 루시는 별다른 말 없이 받아들였다. 여러 가지 선택지가 있었고 상엽의 결정도 그중의 하나였기 때문이다.
“정보를 모은 후에 활용하실 생각이십니까?”
“맞아.”
해남도에서 일어나는 일은 상엽이 처음 생각한 것보다 훨씬 중요한 일이었다.
이런 일을 미리 협상해서 기회를 날릴 필요는 없었다.
“여길 제대로 파헤치고 나면 팬텀 녀석들은 꽤 비싼 값을 치러야 할 거야.”
상엽은 팬텀의 의도를 그대로 돌려줄 생각이었다.
“그만큼 위험할 테니 조심하셔야 합니다.”
“그래야지.”
팬텀과 코드 제로의 정보력으로도 프로젝트의 이름을 알아내는 게 전부였다. 성아 같은 수호신이 있다면 현재 상엽과 팬텀이 가진 정보는 동일했다.
“팬텀은 내가 큰 사고를 쳐 주길 원하겠지?”
“그럴 것입니다. 코드 원이 차이나 커넥션과 싸우게 되면 팬텀이 가장 이득입니다.”
“그 녀석들 하는 짓이 정말 마음에 안 든단 말이야.”
“그래도 지금까지 이득을 본 것은 우리입니다. 그래서 더더욱 우리를 이용하고 싶을 것입니다.”
상엽은 고개를 끄덕이며 지금까지의 정보를 종합했다.
“은밀하게 정보만 알아내면 돼.”
연구소의 목적.
이를 떠올리자 상엽은 정보원의 이름이 떠올랐다.
“그 녀석들을 만나 봐야겠어.”
“송하, 송윤 남매 말입니까?”
“외부인 중에 해령 길드를 가장 잘 알고 있는 녀석들이잖아.”
상엽은 직접 정찰을 포기하고 거주 지역으로 이동했다.
* * *
소녀는 스마트폰을 보며 거리를 걸었다. 화면에 집중하던 소녀는 지나가던 40대 중반 사내와 살짝 부딪치자 놀라며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소녀의 사과에 양복을 입은 사내는 별다른 반응 없이 다시 길을 걸었다.
그러다 1분이 채 지나지 않았을 때, 사내는 안쪽 주머니에 있던 스마트폰이 없어진 걸 알았다.
하지만 사내는 어디서 잃어버렸는지 좀처럼 기억해 내지 못했다.
좁은 골목으로 들어온 소녀는 사내에게서 훔친 스마트폰을 숨겨진 노트북에 연결했다.
스마트폰의 정보가 빠르게 노트북으로 넘어갔을 때, 그녀의 주변으로 사람의 그림자가 드리웠다.
데이터는 여전히 복사 중이었고 화면에서는 ‘50%’라는 문구가 보였다.
소녀는 화면을 주시하다 그림자가 바로 뒤로 다가왔을 때, 재빨리 몸을 돌렸다.
화르르!
그녀의 손에서 강렬한 불덩이가 형성되었다.
“아직 어설퍼.”
펑!
그녀가 만든 불덩이는 손 위에서 소멸하고 말았다. 하지만 상대를 알아본 소녀는 절망감 대신 반가움을 표현했다.
“아저씨!”
“안녕. 소매치기 소녀. 이제 동생이 아니라 직접 나서기로 한 거야?”
소녀는 송하였고 그녀를 찾아낸 이는 상엽이었다.
다시 만날 수 없을 것 같던 그들은 처음 만났던 것처럼 어두운 골목에서 재회했다.
그런데 그들의 인사는 특이했다.
“어? 아저씨, 아직 살아 있네요.”
“뭐야? 내가 죽었어야 한다는 거야?”
상엽의 반문에 송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오늘이 작전 실행이라고 했는데.”
“작전?”
“아저씨를 죽이는 작전요. 그래도 살아 있어서 정말 반가워요.”
“그래. 반갑네.”
상엽은 어색하게 웃으며 인사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