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8
비가 쏟아지는 대지에 강렬한 헤비메탈 음악이 울려 퍼졌다.
귀가 먹먹할 정도의 음악 소리조차도 쉴 새 없이 쏟아 내는 쇳소리를 막진 못했다.
1초에도 수십 번.
늑대인간 상엽과 라루는 엄청난 속도전을 펼쳤다.
클러와 손톱이 교차하고, 망자의 손길이 불꽃을 담아 상대를 덮쳤다.
하지만 망자의 손길은 라루의 몸에 닿을 수가 없었다. 그의 주변에 떠오른 수십 개의 해골 문양 반지가 방패처럼 접근을 막고 있었다.
챙! 챙!
격렬한 움직임을 펼치던 둘은 한순간 서로를 향해 손톱을 내질렀다.
하지만 둘의 손톱이 교차하면서 서로의 움직임이 멈췄다.
“크흐.”
“늑대 모습이 더 어울리네. 재미있어.”
챙!
그들은 서로를 밀어내며 다시 거리를 벌렸다.
치열했던 공방전이 지나자 서로의 상처가 가장 먼저 보였다.
상엽은 옆구리와 팔뚝, 라루는 어깨와 왼쪽 허벅지였다. 하지만 둘 다 치명상이 아니었고 블랙 유저라 이미 회복이 되고 있었다.
성과가 없는 싸움이었다.
그런데 라루는 여유를 부리는 반면, 상엽은 아니었다.
‘머리가…….’
이유를 알 수 없는 고통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무시할 수준이었지만 고통이 점점 커졌고 이젠 신경을 건드리는 수준이었다.
여기서 더 발전한다면 전투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였다.
‘음악.’
이유는 음악이었다.
단순히 소리를 증폭하는 것이 아니라 라루의 음악은 상대의 정신을 건드리는 스킬 중의 하나였다.
‘소리 차단.’
상엽은 정신 제한 스킬로 음악을 걸러 냈다. 그러자 두통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잔재주도 있네.”
상엽의 표정 변화를 알아차린 라루가 여전히 여유를 부리며 말했다.
“그런데 현명한 선택은 아닐 텐데.”
소리가 변화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묵직한 베이스의 음향이 풍선처럼 공중에 떠오른 느낌이었다.
그런데 이것은 단순히 환영이 아니었다.
풍선처럼 머물렀던 응축된 소리가 폭격하듯 상엽을 덮치기 시작했다.
그런데 소리를 차단한 상엽은 이 소리를 들을 수가 없었다.
‘쳇.’
상엽은 결국 뒤로 물러나며 소리의 범위에서 멀어졌다.
‘특이한 녀석이라더니.’
그는 늑대인간의 모습에서 다시 인간으로 돌아왔다.
‘불리한 싸움이야.’
접근전은 결국 소리의 범위 안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는 별로 현명한 선택이 아니었다.
“시끄러운 거라면 내 전문이기도 하지.”
상엽은 다시 해머를 들었다.
굳이 상대가 원하는 싸움을 할 필요는 없었다.
그는 자신만의 전장을 만들기로 했다.
상엽은 정면으로 달리다 한순간 하늘로 뛰어올랐다. 그리고 공중에서 해머를 휘둘렀다.
빗줄기 속에서 거대한 해머가 나타나며 대지를 향해 떨어져 내렸다.
콰콰쾅!
엄청난 폭발과 함께 지상이 폐허로 변했다. 그런데 상엽은 뭔가 잘못되었음을 알았다.
핸드폰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음악은 여전히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의 머리 위로 뭔가가 나타났다.
‘망할.’
방금 전까지 땅 위에 서 있던 라루가 상엽의 머리 위에 있었다.
그리고 그의 손에는 응축된 검은 기운이 몰려 있었다.
‘유령 걸음.’
상엽은 유령 걸음으로 라루의 주먹을 피했다.
그런데 첫 번째로 끝이 아니었다. 라루는 주먹이 타격 지점을 통과했음에도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았다. 오히려 몸을 회전하며 검은 기운을 발끝에 모았다.
쾅!
결국 이어지는 발 차기가 상엽의 가슴을 때렸다.
쿠쿵!
상엽은 타격을 당한 그대로 땅속에 처박혀 버렸다. 그리고 그 위로 검은빛이 떨어져 내렸다.
콰쾅!
다행히 상엽은 이를 악물며 떨어지는 빛을 피해 냈다.
겨우 몸을 일으킨 상엽은 커다란 구덩이 속에서 여유롭게 올라오는 라루를 보았다.
“큭!”
가슴에 당한 타격이 결코 적지 않았다. 고스트 실드와 테리아의 은총을 완전히 뚫어 낸 충격은 심장이 터질 것 같은 통증을 남겼다.
그리고 귀를 괴롭히던 음악이 이제는 머릿속에서 울리기 시작했다.
“즐겨. 엄선한 곡이니까.”
“내 취향은 아니야.”
상엽은 고통을 참으며 몸을 폈다.
라루는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오히려 지금까지의 공방전은 상엽의 절대적인 약세였다.
상처가 깊게 남았고 현기증을 유발하는 음악 소리는 해결이 되지 않았다.
“이제 곧 10분이야. 뭔가 보여 줘야 하지 않겠어?”
라루는 그렇게 말하며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그가 다가올수록 머릿속의 음악은 더욱 커졌다.
이젠 주변의 모든 소리가 지워질 정도였다. 그런데 그 굉음 속에서도 가장 신경을 거슬리는 소리가 들렸다.
챙!
라루가 클러를 교차하여 내는 소리였다. 이는 상엽의 머릿속을 난도질하는 충격을 주었다.
그 찰나의 충격을 느낄 때, 라루의 몸이 안개로 흩어지며 상엽을 덮쳤다.
‘뒤!’
상엽이 감각에 의존해 해머를 세우며 뒤를 돌아보았다.
챙!
예상대로 클러의 소음이 들렸다. 그런데 그때, 등 뒤로 서늘한 감촉이 닿았다.
촤랏!
클러 하나가 강렬히 회전하며 상엽의 등을 덮쳤다. 순식간에 피부가 뜯겨져 나가며 피가 튀어 올랐다.
상엽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맨손으로 회전하는 클러를 쳐 내며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라루는 이를 놓치지 않고 함께 상승했다.
‘스트라이크.’
상엽은 공중을 향해 스크라이크를 쓰며 상승 속도를 높이면서 라루와 거리를 벌렸다.
하지만 그 작은 움직임에도 통증이 느껴졌다.
‘짜증 나네.’
상엽은 계속되는 수세에 짜증이 치밀었다.
‘내 방식대로 간다.’
더 이상 수세에 몰리면 제대로 된 전투 한번 펼칠 기회가 없었다.
이에 상엽은 스트라이크 끝에 고스트 실드를 만들었다.
라루가 있는 곳과는 반대 방향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멈추지 않고 해머를 휘둘렀다.
그런데 해머는 고스트 실드에 닿지 않았다.
‘유령 걸음.’
스스로 만든 고스트 실드를 그냥 통과한 것이다. 예상치 못한 속임수에 라루의 추격이 잠시 흔들렸다.
그 순간, 상엽이 다시 한번 해머를 휘둘렀다.
쾅!
바닥을 향해 불꽃을 실은 폭발이 부채꼴 모양으로 퍼졌다. 그리고 상엽의 공격은 한 번으로 그치지 않았다.
머릿속의 음악에서 벗어나려는 듯 미친 듯이 해머를 휘둘렀고, 그때마다 부채꼴 모양의 폭발이 라루를 쫓았다.
라루는 서두르지 않고 바닥으로 내려가 빠른 속도를 이용했다.
폭발의 여파를 몸으로 흘리며 이어지는 공격을 피하기에 충분한 속도였다.
‘이건 또 뭐야?’
라루가 단순히 공격을 피한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상엽의 오산이었다.
그가 빠르게 움직이며 방향을 꺾은 지점에서 일제히 붉은빛이 모였다.
그리고 이 빛은 고장 난 형광등처럼 빠르게 깜빡이더니 하늘로 레이저 같은 직선을 쏟아 냈다.
움직이는 조명처럼 어지럽게 움직이는 레이저는 강렬한 산성의 힘을 뿜어냈다.
치익!
빛에 스친 상엽의 피부가 검게 그을렸고 바로 하얀 수증기를 만들어 냈다.
“별짓을 다 하네.”
상엽은 더욱 높이 뛰어오르며 여유를 가졌다. 공격을 멈춘 그는 결단을 내렸다.
“회생.”
결국 그는 더 이상 상처가 깊어지기 전에 회생을 선택했다.
상엽은 지옥마를 불러 더욱 높은 하늘로 올라가며 잠시 여유를 가졌다.
“10분은 실패네.”
검은 구름의 아래에서 상엽은 실패를 인정했다.
라루가 만든 레이저를 불쾌하게 쳐다보던 그는 깊게 한숨을 쉬었다.
“그동안 너무 쉬운 싸움만 했나 보네.”
그는 스스로의 오만함을 인정했다.
“목숨 걸고 붙어야지. 내 스타일대로.”
여유를 부리고 작전을 구사하는 건 그의 스타일이 아니었다.
“그 정도 실력은 되는 상대니까.”
상엽의 몸이 불꽃으로 타올랐다. 그리고 그의 뒤로 하얀빛을 뿜어내는 한 여인이 나타났다.
그리고 머리 위로 추종자가 떠올랐다.
“올인.”
히잉!
지옥마가 머리를 바닥으로 향하며 지상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떨어지는 비보다 빠른 속도로 떨어져 내린 상엽은 라루가 피하는 것을 분명히 보았음에도 해머를 휘둘렀다.
콰쾅!
폭발이 일어났지만 라루는 다시 한번 충격을 흘려 냈다. 그런데 라루가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유령 잔상.’
오랜만에 펼친 스킬이었다.
시간 차를 두고 같은 충격이 다시 한번 땅을 때렸다.
“큭!”
드디어 라루의 입에서 작지만 비명이 들렸다. 그 순간 상엽을 괴롭히던 음악 소리가 작아졌다.
유령 잔상에 충격을 받고 밀려난 라루를 향해 상엽이 다시 한번 돌진했다.
‘파괴전차.’
지옥마를 타고 떨어질 때보다 더욱 빠른 속도였다. 그런데 상엽은 일부러 그의 몸이 아니라 땅을 목표로 잡았다.
‘유령 잔상.’
그는 계속해서 유령 잔상을 사용하며 라루가 반격을 가할 기회를 빼앗았다.
반격을 하려는 순간에 다시 폭발이 일어나니 라루는 접근할 수가 없었다.
고스트 체인.
돌진하는 파괴전차에서 긴 사슬이 뻗어 나왔다. 이것이 채찍처럼 휘어지며 뒤로 물러나는 라루를 잡으려 했다.
그런데 라루는 이 순간을 기다리며 반격을 시도했다. 그의 양손에 있던 클러가 빠르게 회전하며 상엽의 목을 향해 날아든 것이다.
그러면서 라루는 지금과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고 이것이 상엽의 눈에 들어왔다.
‘잡아야 돼.’
상엽은 날아오는 클러를 고스트 실드만으로 버텨 내며 라루를 따라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팟!
상엽의 어깨에서 피가 튀었고 클러의 날이 꽤 깊이 박혔다.
하지만 상엽은 이로 인해 라루의 발아래에 설 수 있었다.
‘잡았다.’
상엽은 라루가 타격에 대비해 방향을 바꾸는 것을 보고 다른 스킬을 사용했다.
화염 파도.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 화염을 보며 라루는 어쩔 수 없이 몸을 틀며 파동을 흘려 냈다.
그 순간, 상엽의 해머가 그의 얼굴을 향해 날아들었다.
츳!
라루의 머리 위로 해머가 아슬아슬하게 지나가며 세 가지 색의 머리카락이 튀어 올랐다.
‘피해야 돼.’
라루가 처음으로 위기를 느끼며 거리를 벌려야 한다는 판단을 내렸다.
이에 상엽과 연결되어 있던 모든 정신 스킬을 거두어들이며 최고 속도로 멀어지려 했다.
“늦었어.”
음악 소리가 사라진 전장에 전혀 다른 소음이 들렸다.
끼아아!
귀곡성이었다.
통곡이 만들어 낸 사각 공간은 라루의 도주로를 막았다. 뚫으려면 못할 것도 없지만 그 찰나의 순간을 상엽이 그냥 둘 리가 없었다.
그리고 통곡 벽 안에 새로운 불청객이 나타났다.
유령 군대.
42명의 유령 전사들이 통곡의 벽에서 라루를 노려보았다. 그중의 돌격대장 두 명은 곧장 라루에게 달려들었다.
라루는 달려드는 돌격대장을 단숨에 베어 냈다. 빠르고 정확한 반격이었다.
하지만 돌격대장은 목이 잘리는 순간 폭발을 일으켰다. 본래부터 그런 특징을 가진 전사였고, 흩어졌던 조각들은 서서히 다시 한 자리로 모였다.
그사이, 상엽은 통곡의 벽에서 자유롭게 이동하며 한 방을 노렸다.
‘더 흔들어.’
상엽의 명령에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추종자였다.
추종자는 괴성을 지르며 하얀 연기로 흩어져서 라루의 주변을 맴돌았다.
라루는 위기 상황이 되자 오히려 행동을 멈추며 감각을 극한으로 끌어올렸다.
상엽과 친위대의 모든 움직임이 그의 감각 안으로 들어왔을 때, 이질적인 기운이 꿈틀거렸다.
그것은 소리였다.
끼아아!
귀공성이 만들어 낸 울림이 그의 감각을 어지럽힌 것이다.
그런데 이걸로 끝이 아니었다.
화르르!
통곡의 벽 내부에서 강렬한 불길이 치솟았다.
‘빠져나가야 돼.’
라루는 통곡의 벽이 완전히 불로 휩싸이기 전에 빠져나가기로 했다.
‘이 안에서는 승산이 없다.’
이미 사각 공간의 절반이 불길에 휩싸였다. 상엽은 불에 대한 내성이 강했지만 라루는 아니었다.
결국 그는 스킬을 사용하며 탈출을 시도했다. 어차피 벽을 뚫는 데 단 한 번의 기회면 충분했다.
천장에 위치해서 기회를 노리는 상엽이 부담스러웠지만 지금이 아니면 기회가 없었다.
촤라랏!
라루의 주변으로 다시 한번 해골 모양의 고리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고리들은 한순간 깨진 듯 갈라지더니 작은 표창 같은 형태로 변했다.
수십 개의 작은 표창들은 한순간 강렬한 빛을 뿌리며 사방으로 날아갔다.
순간적으로 라루의 몸이 빛 뒤로 숨어 버렸고 친위대들은 날아오는 표창을 막았다.
쿠궁!
결국 통곡의 벽에 균열이 생겼고, 작게 벌어진 공간을 뚫고 라루가 빠르게 빠져나갔다.
‘됐어.’
그 생각을 하는 순간이었다.
쿠르릉!
갑자기 라루의 주변 공기가 극도로 무거워졌다.
마치 바위를 얹은 것 같은 압력이었다. 그제야 라루는 자신의 머리 위에 신비한 모습으로 서 있는 여신 성아를 보았다.
“어딜 봐? 날 봐야지.”
어느새 지척까지 따라온 상엽이 그를 향해 해머를 휘두르고 있었다.
‘피할 수 없다.’
라루는 기도하는 심정으로 모든 방어 스킬을 발동하며 몸을 움츠렸다.
쾅!
드디어 상엽의 해머가 라루의 몸에 닿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