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코인-207화 (205/300)

# 207

“쓸데없이 소란스럽기는.”

런던의 최고급 레스토랑.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예약을 하지 않으면 입구조차 통과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찾던 곳이었다.

하지만 3일 전부터는 단 한 사람만을 위한 식당이 되고 말았다.

모든 자리를 단 한 사람이 예약한 것이다. 그것도 무려 한 달이었다.

주인은 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이를 요청한 사람 때문이었다.

블랙 나이츠.

그들의 요청을 거절했다가 하루 사이에 흔적도 없이 사라진 사람이 부지기수였다.

“그들이 프랑스에 머물고 있는 걸로 확인되었습니다.”

차분한 클래식 음악이 흐르는 레스토랑에서 유일하게 의자에 앉아 식사를 하는 20대 후반의 청년은 보고를 받고도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세 가지 색이 어지럽게 섞여 있는 머리카락에 귀와 코에 은색 피어싱이 있고 연신 스테이크를 게걸스럽게 집어넣는 혀에도 커다란 장식이 박혀 있었다.

히피족에 어울리는 20대 후반의 사내가 바로 블랙 나이츠의 길드장 라루였다.

힘을 중시하는 블랙 나이츠에서는 가장 강한 자가 길드장이 되었고, 라루는 수십 번의 개인 전투를 통해 길드장이 되었다.

그의 상대는 모두 소멸했고 길드장이 된 후에도 수십 명의 수하를 죽일 만큼 잔인한 면모를 과시했기에 곁에 서 있는 부길드장도 언제나 긴장 상태였다.

“음악이 별로야.”

스테이크를 씹던 그의 한마디에 고급 레스토랑에는 클래식 음악 대신 강렬한 헤비메탈 사운드가 흘렀다.

“더 크게.”

사운드가 창문을 때린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커지자 그는 포크를 어지럽게 흔들며 음악을 감상했다.

챙! 챙!

테이블 위에 있던 쟁반들이 아래로 떨어지며 깨져 나갔지만 그는 별로 관심이 없는 듯 음악에만 심취했다.

그러다 곡이 끝나자 포크마저 바닥에 던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준비해.”

“어디로 가시겠습니까?”

“프랑스.”

“길드장님. 팬텀에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기다리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40대 중반의 부길드장은 라루의 성품을 알면서도 직설적인 조언을 했다.

“이봐. 아저씨.”

“네. 길드장님.”

“강한 놈이 있다잖아. 이걸 팬텀 놈들한테 넘겨주라고?”

“쉽게 보실 상대가…….”

쐐액!

공기를 가른 주먹이 부길드장의 얼굴로 날아갔다. 부길드장은 위협을 느끼면서도 눈을 감지 않았고 다가오는 주먹을 보았다.

팟!

주먹은 멈췄지만 이로 인한 공기의 파동이 그의 머리를 시원하게 쓸어 넘겼다.

“우리 길드에서 아저씨가 제일 쓸 만해. 그걸 아니까 살려 두는 거야.”

“죄송합니다.”

“준비해. 그 녀석 영상을 보고 나니까 꼭 만나 봐야겠어.”

라루는 바지 아래로 늘어진 쇠사슬 허리띠를 손가락에 걸어 돌리며 레스토랑 출구 앞에 섰다.

“그리고 여기 예약은 취소해. 벌써 질렸어.”

라루가 떠난 레스토랑에는 평화로운 정적이 흘렀다.

* * *

“없잖아.”

“한 시간 전에 떠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한 시간이나 지난 정보를 준 거야? 팬텀 실력도 형편없는데.”

“은밀히 움직이는 것에 익숙한 녀석들입니다. 그리고 본부 타격을 즐겨합니다.”

프랑스 해변의 운치 있는 카페에서 아이스티를 마시던 라루는 특유의 얇은 웃음을 지으며 부길드장을 보았다.

“내가 본부를 두고 온 게 불안한 거야?”

“길드장님이 부재중이라는 것을 알면 본부가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팬텀 녀석들이 있잖아.”

“워낙 한 방이 강력한 놈이라 우려가 됩니다.”

라루는 관심 없다는 듯이 아이스티를 단숨에 마시며 여유로이 해변을 보았다.

“그 녀석이 노리는 건 우리 길드가 아니야.”

“무슨 말씀이신지?”

“날 노리는 거야. 본부를 때리는 건, 대장을 잡기 위해서지, 대장을 피하는 게 아니라고.”

라루는 상엽에 대해 전혀 다른 판단을 하고 있었다.

“여긴 너무 깨끗하네. 더럽히기 좋겠어.”

그는 손을 들어 종업원을 불렀다.

“레몬주스. 펑키 스타일로.”

“네?”

20대 초반 종업원이 이해하지 못해 반문하자 부길드장이 눈치를 주었다.

“아. 네.”

종업원은 방금 부길드장이 자신의 목숨을 구해 주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조금만 늦었더라도 깨끗하던 거리는 그녀의 피로 더럽혀졌을 것이다.

같은 시간.

상엽은 라루가 프랑스에 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놈 봐라.”

“일부러 우리가 머물렀던 자리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혼자라고?”

“부길드장과 함께 있습니다.”

“자신 있다는 거네.”

“위험한 놈입니다.”

루시는 상대의 자신감이 불안했다. 하지만 상엽은 오히려 피가 끓었다.

“화이트 신을 만나는 마지막 관문으로 손색이 없겠어.”

“코드 원.”

“이번에는 왜 이렇게 불안해하는 거야?”

“그자 때문이 아닙니다.”

라루에만 집중하는 상엽과 달리 루시는 모든 정보를 종합해서 판단을 내렸다.

“팬텀의 움직임이 이상합니다.”

“뭐가?”

“라루와 코드 원의 싸움을 기다리는 느낌이 듭니다.”

루시의 보고에 상엽은 현재 상황을 곰곰이 살폈다.

그녀의 말대로 정찰에 성공하고 있음에도 진짜 싸움을 걸어오지 않았다.

“이러면 우리 계획도 어긋나는데.”

그들은 일부러 위치를 드러내고 있었다.

속도전을 통해 팬텀을 끌어들이고 진짜 싸움은 런던에서 할 생각이었다.

“뭐 이쯤 되면 인정해야지. 작전을 바꿔야겠는데.”

“어떤 방식을 원하십니까?”

“그냥 라루를 만나서 결판을 내야겠어. 그 녀석이 그걸 원하잖아.”

상엽은 라루를 직접 잡을 수 있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어차피 싸워야 할 상대였다.

다만 조건이 있었다.

“팬텀의 눈이 없는 곳에서 만나야겠어.”

“준비하겠습니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 그 녀석이라면 그냥 은밀히 장소를 교환하는 걸로 충분할 거야.”

상엽과 라루.

그들은 서로 싸움을 원하고 있었다.

루시도 이를 알기에 상엽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한 시간 후.

라루는 지루한 표정으로 해변에 누워 이어폰을 통해 헤비메탈 음악을 듣고 있었다.

뜨거운 태양은 선글라스와 부길드장의 그림자로 가린 상태였다.

그들을 향해 한 여인이 다가왔다.

하늘거리는 원피스가 해변에 어울리는 여인이었다.

여인은 그들에게 다가오더니 쪽지 한 장을 내밀고 사라졌다.

“정상엽인 것 같습니다.”

“뭐래?”

여인이 내민 쪽지에는 간단한 메모가 있었다.

-오늘 밤 자정. 저지섬.

프랑스에 가깝지만 실제로는 영국 왕실령의 섬으로 알려진 저지섬.

그곳은 영국과 프랑스 누구의 소유도 아닌, 영국 왕실령, 즉 군주들의 소유라는 특이한 권리의 땅이었다.

한때는 외국 기업에 대한 세금이 없어서 조세 회피처로 유명한 곳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변종에게 점령을 당해서 인간이 살지 않는 땅이 되었다.

당연히 버려진 섬으로 갓코인 유저에 대한 어떤 기반도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다행이네. 더 지루해졌으면 이 도시를 날려 버렸을 텐데.”

“함정일 수도 있습니다.”

“저지섬에? 함정을 준비했다면 우리가 했겠지.”

부길드장은 할 말이 없었다.

“정상엽. 마음에 드는 놈이야. 난 지루하지 않은 놈이 좋아.”

“준비하겠습니다.”

“아니. 혼자 갈 거야. 넌 본부로 돌아가. 내일 아침이면 돌아갈 테니까 그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말고.”

부길드장은 고민했다. 하지만 라루의 명령을 거부할 수는 없었다.

“알겠습니다.”

“혹시 내가 죽으면 블랙 나이츠는 마음대로 해. 뭐 그럴 일은 없겠지만.”

“무사 귀환을 기다리겠습니다.”

“큭큭. 그 말, 진심이야?”

부길드장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대답했다.

“진심입니다.”

“크큭. 뭐 마지막 선물처럼 말하네. 걱정 마. 다시 돌아가서 잔뜩 괴롭혀 줄 테니까. 짧은 휴가라고 생각해.”

부길드장은 그 말을 들으며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 * *

스산한 바람이 불었다.

-저도 함께 가겠습니다.

상엽은 루시의 요청을 거절하고 홀로 저지섬에 도착했다.

변종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었지만 이를 정리하는 데 5분도 걸리지 않았다.

“분위기 좋네.”

촤앗!

저지섬에는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다.

바다에서는 폭풍이 몰아쳤고 짙은 먹구름이 달마저 완벽히 가렸다.

완벽한 어둠 속에서 묵직한 바람과 빗줄기를 맞으며 상엽은 약속했던 인물을 기다렸다.

“왔어? 시간은 잘 지키는 편이네.”

요란스러운 빗줄기 속에서도 상엽의 말은 정확히 상대에게 전달됐다.

“좋은 리듬이야.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기도 하고.”

가볍고 거친 말투였다.

라루의 모습을 직접 본 상엽은 그의 자유분방한 외모를 보며 다시 한번 인사를 건넸다.

“몸을 괴롭히는 게 취미인가 봐?”

“지루한 세상이라서.”

“세상에 인기가 없나 봐. 지루하다고 하는 걸 보니.”

라루는 비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팬텀이 우리를 찾아내는 데 길어 봐야 한 시간. 이렇게 노닥거릴 시간이 없을 것 같은데.”

“뭐가 그렇게 급해? 10분이면 죽을 놈이.”

상엽의 도발에 라루의 웃음이 더욱 진해졌다.

“난 한 시간을 모두 즐길 생각이야. 이 기회를 10분 만에 날릴 수는 없으니까.”

“꿈이 크네.”

상엽은 상대의 잔인한 취미를 더 이상 들어 줄 생각이 없었다.

“시작할까?”

“얼마든지.”

둘은 모두 자신감이 있었다. 그런데 자신감의 원천은 전혀 달랐다.

상엽은 자신의 힘을 믿는 반면, 라루는 자신의 경험을 믿었다.

‘블랙 유저라면 뻔하지.’

라루는 블랙 유저와 싸운 경험이 많았다. 그는 길드의 특성 때문이었다.

같은 블랙 유저를 잡고 최고의 자리에 오른 만큼, 블랙 유저를 상대하는 데 익숙했다.

“10분. 버티면 칭찬해 줄게.”

“한 시간. 죽여 달라고 빌게 해 주지.”

그들은 의지를 불태우며 서로를 향해 달렸다.

어둠을 가르는 강렬한 불꽃이 튀었다.

폭풍보다 요란했고, 빗줄기보다 빠르게 대지를 두드렸다.

수십 번의 소음이 단 몇 초 만에 전혀 다른 장소에서 발생했다.

폭음과 마찰음, 찢어지는 공기의 비명에 이어 갈라진 땅이 비명을 지르며 무너져 내렸다.

‘뭐야?’

상엽은 상대와의 타격에서 이상한 느낌을 받고 있었다.

‘흘린다?’

상대는 폭발의 범위를 피하지 않았다. 폭발이 일어나면 교묘히 몸을 틀어 뻗어 나가는 기파를 흘려 버리는 것이다.

이로 인해 상엽은 공세를 취할 수가 없었고, 오히려 상대는 폭발의 기세를 흘려 내고 반격을 취했다.

그 반격이 워낙 위협적이라 상엽은 오히려 피할 수가 없었다.

공세를 내어 주면 난도질을 당할 것 같은 상상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상대는 양 주먹에 세 개의 갈고리가 뻗어 나온 독특한 무기를 사용했다.

클러라는 무기는 날카로운 손톱이 되어 상엽의 온몸을 긁어내려 했고, 피부 강화로 버틸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쾅!

상엽은 어떻게든 상대의 공세를 밀어내기 위해 땅을 찍으며 상승 기류를 만들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폭발에 라루는 살짝 뛰어올라 몸을 뒤집었고 다시 한번 기류를 흘려 냈다.

하지만 그 동작이 상엽에겐 기회가 되었다.

‘스트라이크.’

상엽이 놓치지 않고 라루를 향해 다가갔다. 그 순간, 상엽의 눈앞에 날카로운 세 줄기의 은빛 섬광이 보였다.

촤랏!

급히 고개를 돌리는 순간, 상엽은 뺨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의 얼굴에서 진한 피가 흘러내렸다.

선명하게 남은 세 줄기의 손톱자국.

“드럽게 발톱이야?”

세 개의 손톱을 가진 클러는 라루의 발에서 뻗어 나왔다.

“1분 지났다. 10분은 네가 버텨야겠는데?”

라루는 여유롭게 상엽을 보며 시간을 알려 주었다.

상엽은 뺨에서 흐르는 피를 손으로 닦아 냈다. 찢어진 피부가 선명히 느껴지자 따끔한 감촉이 남았다.

‘독이 있어.’

상엽은 급한 대로 동희에게 받은 해독제를 꺼냈다. 그런데 라루는 해독제를 복용하는 시간 동안 상엽을 내버려 두었다.

“지루하네.”

그의 말이 끝나는 순간, 폭우를 뚫고 어디선가 음악이 흘러나왔다.

음악은 라루가 바닥에 던져 둔 핸드폰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소리 증폭이야. 이러면 지루한 게 좀 나아지거든.”

그의 도발에 상엽은 이를 악물며 말했다.

“난 재미있어지기 시작했는데. 혼자 즐겨서 미안하네.”

펑!

상엽의 몸이 폭발과 함께 늑대인간의 모습으로 변했다.

망자의 손길을 길게 뻗은 늑대인간은 라루에게 다가가며 양 손바닥을 크게 펼쳤다.

챙!

늑대인간의 손에는 날카로운 다섯 개의 손톱이 뻗어 나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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