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코인-205화 (203/300)

# 205

26살이 되었다.

“무사히 여기까지 왔네.”

상엽에게 한 살이 늘어났다는 것은 또다시 1년을 버텨 냈다는 뜻이다.

그런데 26살의 시작은 달랐다.

“격정의 1년이 되겠네.”

이제는 버티는 걸로는 부족한 나이가 되었다.

화이트 상점의 3가지 항목을 모두 10단계로 강화한 상엽은 자격시험 20%만 남겨 두고 있었다.

“중국 정부가 영토의 절반을 회복했습니다.”

상엽이 사냥을 하는 200일 동안 갓코인 세력 싸움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그중의 가장 큰 변화는 중국 정부의 부활이었다.

베이징을 중심으로 북부와 중앙을 모두 회복하면서 중국의 깃발을 다시 꽂았다.

한때는 갓코인 유저 영입에 가장 소극적이었던 중국 정부의 화려한 변신이 성공한 것이다.

그리고 중국 정부의 이름 아래 거대한 화이트 연합이 형성되었다.

차이나 커넥션이라고 불리는 화이트 연합은 본래 ‘커넥션’이라는 이름의 화이트 길드가 시작이었다.

중국 커넥션이 커지면서 자연스레 블랙 길드 연합도 만들어졌다.

그런데 그들의 방식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식이었다.

-러시아 정부가 블라디보스토크를 팬텀의 국가로 인정하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폭탄선언이었다.

블라디보스토크는 러시아의 영토 중에서 아시아라 해도 될 정도로 남쪽에 위치했다.

그런데 여기는 예전부터 경제적으로 주요한 지점이 아니었고, 변종 출현에 도시가 완전히 파괴되었다.

오랫동안 버려진 땅이었고 러시아 정부도 복구하려 애쓰지 않은 것이다.

오히려 주변 국가들이 국경 방어로 인해 골치가 아픈 상황이었지만 러시아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그런데 여기를 팬텀 길드가 정리를 하자 러시아에서 영토를 넘겨준 것이다.

이로 인해 팬텀은 길드가 아니라 국가가 되었다.

정식 명칭은 팬텀 연합국.

그리고 유명한 블랙 길드들이 연합국에 합류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기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기본적으로 국가를 운영하기 위한 기반이 너무 약했던 것이다. 그런데 러시아에서 이것까지 지원을 해 주었다.

노동력은 물론 모든 분야의 기반을 다질 수 있도록 도와주면서 팬텀과 러시아의 관계가 어느 정도인지 과시하기도 했다.

“중국과 러시아가 서로 다른 길을 간다니. 살다 보니 이런 일도 있네.”

한때는 가장 강력한 사회주의 국가로 전 세계를 상대로 같은 편이 되었던 그들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중국의 화이트와 러시아의 블랙이라는 특이한 형태가 되었다.

이는 미국이 무너진 이유가 크기도 했지만, 결정적으로 유럽의 안일한 대처가 근본적인 원인이었다.

유럽 연합은 각자의 나라만 신경을 쓰느라 블랙 길드의 연합에는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이런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는 사이에 팬텀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던 러시아에서 통 큰 투자를 한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화이트 연합이 거대해지면서 블랙 유저들이 불안하던 차에 러시아의 결정은 빠르게 대응 세력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되었다.

유럽 연합은 허탈한 심정으로 닭 쫓던 개가 될 수밖에 없었다.

“블랙 길드는 팬텀으로, 화이트 길드는 중국으로.”

이것이 현재의 상황이었다.

“자, 그럼 나는 어디로 가야 되지?”

루시조차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해답을 내놓지 못했다.

“한국과 일본도 팬텀 연합국의 러브콜을 받고 있습니다.”

현재 팬텀에 합류하지 않은 거대 블랙 길드에는 한 가지 특징이 있었다.

“쉽지 않을 거야. 이미 나라를 장악하고 있는데 굳이 갈 이유가 없지.”

“그래도 연합은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겠지. 아니면 화이트 연합의 목표가 될 테니까.”

화이트와 블랙 모두 이런 길드들이 있었지만 결국에는 같은 편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되면 연합들의 영토가 자연스럽게 넓어질 것입니다.”

“유럽 연합이 그걸 우려했지.”

유럽 연합이 끝까지 연합을 인정하지 않은 이유였다.

팬텀이든 중국 커넥션이든 이제는 자연스럽게 실질적인 영토가 넓어질 수밖에 없었다.

흑점이 연합을 선언하면 한국은 팬텀의 영역이 되고, 데스문이 받아들이면 일본도 넘어간다.

물론 기본적인 권한에 대한 제한은 있겠지만 결국에는 거대 연합의 명령이라면 거절할 수 없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국가가 사라진다? 결국 여기까지 왔네.”

이는 상엽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예상했던 결과였다.

“자, 그럼 다시 질문. 난 어디로 갈까?”

상엽이 같은 말을 반복할 때, 루시의 이어폰으로 누군가 다급한 보고를 했다.

“코드 원. 팬텀에서 정식으로 만나자는 요청이 왔습니다. 허락하신다면 사람을 보내겠다고 합니다.”

“오라고 해.”

상엽은 만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팬텀의 사신은 다음 날 오후에 도착했다.

“손님 대접이 형편없군요.”

30대 초반에 찢어진 눈을 가진 사내였다.

그는 사하르의 안내를 받아 곤명까지 왔다. 그런데 오는 길에 접대를 예상했는지 곧장 시청으로 불려온 것에 불만 섞인 표정을 보였다.

“지금 이 미친 새끼가 대접이라고 한 거야?”

상엽의 한마디에 사내의 표정이 변했다. 나름대로 산전수전을 다 겪은 정치가지만 상엽의 반응은 그의 예상을 완전히 벗어난 것이었다.

“지금 제가 무슨 자격으로 온지 잘 생각하시길.”

나름대로 평정심을 찾은 사내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놀라긴 했지만 그는 자신감이 있었다.

“잘 알지. 날 미끼로 쓰려고 했던 집단의 개가 내 집에서 시끄럽게 짖고 있잖아.”

“그게 무슨…….”

“닥치고. 할 말만 해. 살아서 돌아가고 싶으면.”

사신은 그제야 자신의 입장을 명확히 받아들였다.

‘정말 죽을 수도 있다.’

상엽의 행보를 봤을 때, 결코 거짓이 아니었다. 블랙 유저라고 봐주는 일도 없고, 객관적으로 열세로 평가받는 싸움도 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

“고개 숙이고 말해. 너 인상이 별로거든.”

상엽은 높은 의자를 선호하지 않았다.

그의 집무실은 그저 20평 남짓한 평범한 사무실에 가죽 의자가 있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사신은 상엽이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 소파에서 일어나. 냄새라도 남으면 버려야 하니까.”

상엽의 명령에 사신은 놀라서 몸을 일으켰다.

“건방진 새끼가 여기가 어디라고 기어 들어와?”

상엽은 의자에서 일어나 그에게 다가갔다.

“이름.”

“네?”

“이름!”

목소리를 높이자 사신은 군인처럼 힘을 다해 대답했다.

“레일입니다!”

“그래. 레일. 이름도 재수 없네.”

상엽은 그의 바로 앞에서 눈을 마주치며 물었다.

“이제 지껄여 봐.”

레일은 그 명령에는 따를 수가 없었다. 자신이 준비한 이야기를 들으면 상엽이 자신을 죽일 것이기 때문이다.

“내 시간은 네 시간보다 훨씬 소중해. 빨리 지껄여.”

“죄, 죄송합니다.”

상엽의 압박도 무섭지만 거짓말을 할 수도 없었다.

팬텀에서 이렇게 물러난 것을 알면 그는 두 번 다시 중요한 일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팬텀에서!”

결국 레일은 이를 악물며 준비한 이야기를 했다. 많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그동안의 과오를 모두 묻어 두고 운남의 운영권과 정상엽을 팬텀으로 받아들일 용의가 있습니다!”

“그래? 날 받아 준다고?”

상엽이 웃으며 되묻자 레일의 표정도 밝아졌다.

“그, 그렇습니다! 제가 잘 이야기하면…….”

“제안하는 직책이 뭔데?”

“네?”

“그냥 받아 주기만 한다는 건 아닐 거 아니야? 나한테 뭘 보장해 줄 건데?”

당연히 이런 제안들이 있었다.

그것도 레일이 협상을 통해 제안할 수 있는 범위가 정확했다.

가장 낮은 직책으로 성공시키는 것이 그의 임무였고, 가장 높은 직책이라도 가치는 있었다.

“운남의 운영권을 그대로 인정하며, 팬텀에서 중간급 간부를 제안합니다. 정확한 직책은 치안대 제3 팀장입니다.”

레일의 목소리에는 다시 여유가 생겼다. 상엽이 뒤로 물러나며 소파에 앉았기 때문이다.

협상을 위한 준비가 되었고, 지금까지는 기 싸움이라 여긴 것이다.

‘어차피 내가 유리한 입장이다.’

그는 다시 여유를 찾았다.

‘지금 팬텀을 거부할 수 있는 블랙 유저는 없다.’

그는 지금까지 여러 국가를 돌아다니면서 뛰어난 실적을 올렸다.

잠시 당황했지만 평정을 찾기에 부족함이 없는 경험을 지녔다고 자부했다.

“치안대 제3 팀장?”

“물론 그것은 팬텀의 제안입니다만 제가 그 직책을 더 올려 줄 수도 있습니다.”

레일의 표정에 웃음이 떠올랐다. 그는 상엽의 정면에 앉으며 다른 직책을 말했다.

“치안대 제1팀의 부팀장. 어떻습니까? 제가 말만 잘하면 가능한 일입니다.”

“근데 말이야.”

상엽은 여전히 웃음을 지우지 않은 채로 말했다.

“누가 앉으랬어?”

레일의 표정이 굳었다.

“사하르!”

상엽의 부름에 사하르가 바로 곁으로 다가왔다.

“이 새끼 그냥 죽여 버려.”

상엽의 명령에 사하르는 바로 칼을 뽑았다. 그런데 그의 앞을 루시가 막았다.

너무 다급한 상황이라 먼저 막아선 것이다.

“코드 원!”

“왜 그래?”

“그래도 사신으로 온 자를 죽이는 건 코드 원의 명성에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내가 언제부터 명성을 따졌다고 그래? 날 미끼로 쓰려던 놈들이 건방지게 나타나서 미친 소리를 하고 있는데, 이건 그냥 죽여 달라는 거랑 뭐가 달라?”

“대상을 정확히 하셔야 합니다. 사신 하나 죽인다고 달라질 게 없습니다.”

상엽은 그녀의 조언을 곰곰이 생각했다.

“좋아. 루시 의견이니까 들어줄게. 저 새끼는 그냥 돌려보내. 이상한 짓 안 하는지 끝까지 감시하고. 다음에 다시 우리 국경에 넘어오면 묻지 말고 죽여 버려.”

사하르는 그 말을 듣고서야 뒤로 물러났다.

“뭐해? 빨리 꺼져.”

레일은 시청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루시는 상엽을 이해했다.

레일을 죽음에서 구해 준 것도 서로 협의하진 않았지만 짜 놓은 각본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런데 모든 게 그녀의 의도대로 되는 건 아니었다.

상엽은 며칠째, 한 가지 보고서를 살피고 있었다.

-일본 음모에 대한 보고서.

일본에서 일어난 상엽에 대한 보고서였다.

팬텀이 직접적으로 나섰다는 증거를 잡진 못했다. 하지만 그 사이에 많은 길드가 끼어 있었고, 이 중에는 일본의 블랙 길드도 있었다.

다행히 데스문은 아니었지만 확실한 증거를 잡은 블랙 길드만 6곳이었다.

상엽이 이를 보는 것이 루시는 내내 불안했다.

‘설마…….’

그녀의 걱정은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상엽이 사신을 쫓아낸 일은 당연히 팬텀의 신경을 건드렸다.

한창 세력을 확장하며 위세를 떨치던 시기에 찬물을 끼얹었기 때문이다.

-최상위권의 블랙 유저다.

상엽에 대한 평가는 결코 낮지 않았다.

갓랭킹에서는 사라졌지만 블랙 유저만 따진다면 10위권 안이란 평가였다.

게다가 싸우는 걸 직접 목격한 자들은 그 이상이라는 평가도 했다.

그래서 팬텀에서는 상엽에게 꽤 높은 직책을 보장하려 했다.

-치안대 총대장.

그렇지만 이런 제안은 해 보지도 못했다. 레일이 협상을 위해 직책을 낮춰서 말했다가 바로 쫓겨났기 때문이다.

본래 큰 선심을 쓰듯 총대장 자리를 주려던 전략이었는데 이를 말할 기회조차 없었다.

어쨌든 첫 협상은 물 건너간 상황에서 그들은 다시 상엽과 연락을 취했다.

이번에는 정식으로 협상단을 꾸려서 최고의 대우를 해 주려는 생각이었다.

“거절해.”

상엽은 그들의 방문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괜찮으시겠습니까?”

“당연히 괜찮지. 그리고 이렇게 전해.”

상엽은 속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날 받아들이고 싶으면 일본 사건 때, 참여했던 놈들 전부 내보내고, 팬텀 대장 이름으로 사과문 발표하라고 해.”

“받아들일 리가 없습니다.”

팬텀의 대장은 대통령이 되었다. 그것도 건립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국가의 대통령이 그런 사과문을 발표할 리가 없었다.

“그럼 요구 조건을 바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사흘 안에 음모에 참여한 놈들 명단 작성해서 전부 나한테 보내고, 내가 죽이든 살리든 상관하지 않겠다고 대통령이 직접 발표하라고 해. 물론 사과도 같이 하고.”

조금 전보다 더욱 심한 조건이었다.

“절대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절대 안 하겠지?”

“그렇습니다.”

“좋아. 그럼 그렇게 해.”

상엽의 말을 루시는 단번에 이해하지 못했다.

“그놈들이 받아들이면 안 되잖아. 난 이미 관련자들을 죽일 거라고 마음먹었으니까.”

“역시…….”

“날 건드린 놈은 죽여야지. 살려 둘 수 없잖아.”

상엽의 입에 잔인한 웃음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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