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4
언론에 사실을 공개한 것은 두 가지 효과가 있었다.
당장 상엽에 대해 실행이 되려던 음모가 중단되었고, 그 사실에 대한 내용을 코드 제로뿐만 아니라 여러 기자들이 파헤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지만 이로 인한 문제도 있었다.
“이제 코드 제로가 직접적인 공격 대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본부를 해체하고 점조직 형태로 개편할 것입니다.”
이는 이미 오래전부터 진행되던 절차였다.
주요 인물들은 모두 비밀 요원으로 분류하고 본부를 떠나는 것이다.
본부에서는 단순 업무를 맡은 자들만 남게 되고 루시를 필두로 한 진짜 중앙 본부는 서로 흩어져 정보만 모으는 형태가 된다.
“1급 비밀 요원은 150명입니다.”
“빨리 모든 일을 끝내야 그들이 편해지겠네.”
“처음 코드 제로를 만들 때부터 각오했던 일이니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들의 안전이 최우선이야. 절대 무리하지 않도록 해.”
“알겠습니다.”
일본에서의 사건으로 인해 상엽은 더 이상 여유를 즐길 수 없게 되었다.
“이제 화이트 코인을 모아야 돼.”
문제는 20퍼센트가 남은 자격시험이었다. 화이트 코인은 변종 사냥으로 획득한 그레이 코인으로 대처가 가능하지만 자격시험은 반드시 상대 유저를 잡아야 했다.
“이번 사건에 연루된 길드 명단 좀 알아봐.”
“직접 공격하시는 건 위험합니다.”
“일단 명단을 보고 이야기하자고.”
“알겠습니다.”
“이제 휴가는 끝났어.”
상엽은 예상했던 한 달을 채우지 못하고 운남으로 돌아갔다.
휴가에서 복귀한 상엽을 기다리는 것은 200명의 블랙 전사들과 50명의 화이트 전사였다.
“한 달이라고 했잖아.”
사하르를 필두로 한 250명의 전사들은 시간이 많이 남았음에도 곤명에 도착했다.
블랙 유저들은 단 한 명의 이탈자도 없이 상엽의 군대가 된 반면, 화이트 유저는 절반이 떨어져 나갔다.
아무래도 블랙 유저와 워낙 극명한 차이가 났기에 이런 결과가 생긴 것이다.
“전부 각오는 하고 온 거지?”
“그렇습니다.”
사하르를 시작으로 모두 고개를 숙였다. 상엽의 명령으로 인해 무릎을 꿇는 자는 없었다.
“난 너희들이 믿는 종교와 신념을 바꾸고 싶은 생각은 없어. 뭐든 너희들 그대로를 인정할 테니까. 하지만 내 군대가 된 이상, 명령은 무조건 따라야 돼. 할 수 있겠어?”
이미 각오하고 온 일이지만 상엽은 이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목숨을 바치겠습니다.”
그들의 의지는 확고했다.
사람이 사라진 고향보다는 상엽의 대의에 따르기로 한 것이다.
이것은 상엽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있기에 가능했다.
-평생을 바칠 가치가 있는 군주다.
그들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상엽은 그들의 믿음을 더 이상 거부하지 않았다.
“블랙 해머. 앞으로 너희들이 가지게 될 이름이야.”
그는 군대의 이름도 정해 놓았다.
“그리고 화이트 유저들은 각오해. 나랑 위험한 곳에 가야 할 테니까.”
상엽의 말에 화이트 유저들의 표정이 오히려 환해졌다.
블랙 유저들에 비해 성장이 더딘 그들은 기회라는 측면에서 많은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상엽이 이를 단번에 풀어 주었다.
“블랙 해머는 운남에 남은 변종들을 전부 처리해. 화이트 유저들은 나와 함께 1급 위험 지역으로 간다. 거기서 살아남으면 너희들만의 이름이 부여될 거야.”
1급 위험 지역이라는 말에 화이트 유저들의 환해졌던 표정이 굳어 버렸다.
“말했잖아. 죽을 각오가 된 놈들만 오라고.”
화이트 유저들은 그들이 기대했던 기회가 이처럼 위험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자, 내 군대가 된 걸 환영해. 나랑 같이 지옥으로 가자고.”
상엽의 마지막 말에 블랙 유저들은 환호성을 질렀고, 화이트 유저들은 굳은 결의를 다졌다.
1급 위험 지역에서 사냥은 시카고를 중심으로 했다.
시카고의 뛰어난 방어벽은 그동안 몇몇 변종들에게 점령을 당했지만 상엽의 힘으로 처리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동안 상대했던 변종들과는 다를 거야.”
화이트 유저들은 오랫동안 변종을 사냥하면서 전문가 수준이 되어 있었다.
추종자가 계속해서 노하우를 전수하면서 나름대로 변종 사냥에는 자신감이 붙은 것이다.
하지만 1급 위험 지역에 들어서는 순간, 그들은 다시 초보자가 되었다.
“일단 100일이야. 그때까지 얼마나 살아남는지 보자고.”
그들의 100일 지옥 캠프가 시작되었다.
100일째 되는 날.
50명은 처음으로 휴식을 취했다.
지난 100일 동안 그들은 실제로 지옥을 경험했다. 지옥에나 있을 법한 괴수들을 상대했기 때문이다.
겉모습은 동물이지만 그들에게 1급 위험 지역의 변종은 괴수와 다를 바가 없었다.
그렇게 한 명의 낙오자도 없이 100일을 버텨 냈다. 화이트 상점이 근처에 없었기 때문에 일단 스킬 강화에 중점을 두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당장 힘을 쓸 수 있으려면 그 방법이 가장 확실했다.
그런데 상엽은 50일 전부터 강화 금지를 지시했다. 코인을 모으라고 명령한 것이다.
그때부터 경험과 신체적인 기술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 시간을 버텨 내자 최근에는 사냥 속도가 빨라지기 시작했다.
“자. 이제 여기 그레이 상점 등록하고, 각자 화이트 상점에 다녀와.”
전사들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왜? 다시 와. 겨우 이 정도로 만족할 거야. 빨리 강화하고 다시 튀어 와! 아직 100일 남았어.”
전사들은 이를 악물고 명령에 따랐다. 그들은 질린 표정이었지만 누구도 불만을 가지진 않았다.
-그는 신이다.
그들은 블랙 유저와 같은 과정을 겪고 있었다.
지난 100일 동안 상엽의 손에 살아나지 않은 자가 없었다. 상엽은 자신의 위험을 감수하며 수백 번이나 수하들을 살려 냈다.
그 과정에서 전사들은 자연스럽게 상엽에게 목숨을 맡기게 된 것이다.
상엽의 명령은 이미 그들에게 신의 말과 다를 바가 없었다.
전사들은 명령대로 시카고의 유일한 거주자인 그레이 상점에 등록 지점을 만들고 강화를 하러 떠났다.
미리 준비한 수송기로 가까운 화이트 상점에 도착했고 24시간이 지나기 전에 모두 돌아왔다.
“자! 라면 먹고 다시 시작!”
상엽은 그들이 강화를 위해 다녀오는 동안, 1급 위험 지역에서 사냥을 계속했다.
‘1억 코인.’
그는 하루에 100만 코인을 벌었다. 예전과 비교도 되지 않는 수익이었지만 이걸로는 부족했다.
‘100일 안에 4억은 만들어야 돼.’
지난 100일은 화이트 전사들을 챙기느라 만족할 만큼 성장을 할 수가 없었다.
‘이제 도움이 될 거야.’
전사들을 책임진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지만 상엽 자신의 목적도 분명했다.
지난 100일의 성장으로 이젠 변종 제거에 전사들이 도움이 될 것이다.
“너도 먹어.”
50명의 전사와 상엽 외에 또 한 명이 그들과 함께 있었다.
시카고의 유일한 거주자 그레이 상점 말롯.
그는 묘한 눈길로 전사들을 보고 있었다.
-상점은 정해진 지역을 떠날 수 없어.
모든 거주민이 떠났지만 말롯은 이곳에 남아 있었다. 홀로 변종들이 점령한 땅에서 지낸 것이다.
상점은 변종의 공격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상엽은 그를 보고 처음 알았다.
‘외로웠겠어.’
아무도 그를 찾지 않았다. 그나마 가끔씩 시카고 출신이 그를 소환권으로 부르는 게 전부였다.
이곳 시카고는 다른 지역의 유저들도 가지려 하지 않았다. 어차피 노동력이 될 주민이 없으니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어서 먹어. 다음에는 언제 먹게 될지 몰라.”
결국 말롯과 전사들과 섞여서 라면을 먹었다.
“나 원망하고 그런 건 아니지?”
“조금.”
“뭐 해결해 줄 수는 없지만 앞으로 그레이 상점을 널 이용하라고 말해 둘게. 내가 이제 친구가 많아졌거든.”
“바빠지겠네.”
말롯은 평소처럼 차가운 웃음을 짓고 말았지만 라면을 뜨는 젓가락질이 더욱 빨라졌다.
“그래. 즐겨. 그게 뭐든.”
상엽도 다시 라면에 집중했다.
다시 시작된 100일은 훈련이 아니라 실전이었다.
상엽은 늑대 무리와 전면전을 하는 것을 시작으로 시카고 주변을 완전 소탕하기 시작했다.
“쫄지 말고 붙어!”
상엽은 지난 100일과 달리 적극적인 공격을 지시했다.
한 달쯤 지나자 그들의 분위기 자체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제 제법 거칠어졌네.’
상엽은 그들의 성장에 만족하며 사냥 속도를 더욱 높였다.
80일이 넘어가자 상엽은 전사들에게 더 이상 뭔가를 지시할 필요가 없었다.
“시작하자.”
단 한 마디면 싸움이 끝날 때까지 더 이상 명령을 할 이유가 없었다.
“마지막 날이야! 제대로 놀다 가자!”
화이트 전사들은 함성을 지르며 사냥이 끝나는 그 순간까지 맹수처럼 상대를 처리했다.
‘4억 코인.’
그리고 상엽도 원하는 목표를 채웠다.
“고생했어! 돌아간다!”
200일의 훈련이 드디어 끝났다.
* * *
운남은 상엽이 없어도 많은 발전을 이룩했다.
테리아 그룹의 공장들이 본격적인 궤도에 올랐고, 이에 파생된 경제 체계가 효과를 내고 있었다.
운남 토박이들로 구성된 의회와 토종 기업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교육과 의료 시설이 확장되기 시작했다.
“왠지 내가 없어야 더 발전하는 거 같단 말이야.”
“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한 원전 개발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버리기에는 아까운 땅이라 판단한 테리아 그룹이 사우디아라비아에 진출한 것이다.
“그런 부분은 알아서 해. 내가 끼어들 일이 아니잖아. 무식한 놈이 휘두르는 칼이 세상을 망하게 하는 법이야.”
“그래도 아셔야 합니다.”
“그건 천천히 하자고. 전문가들이 많으니까. 그보다 내가 알아야 할 일은 그게 아닌 거 같은데.”
복귀하자마자 상엽은 많은 보고와 결정을 해야 했다. 그중에 가장 궁금한 건 자신이 지시한 일이었다.
“사하르가 직접 보고할 것입니다.”
200일 동안 사하르는 블랙 해머를 이끌며 운남의 변종 소탕을 펼쳤다.
“전부 처리했습니다.”
그의 보고는 짧았다.
“뭐 국경을 넘어서 다시 들어오겠지만 일단은 좀 살 만해질 거야. 되찾은 땅을 어떻게 활용할지는 루시가 준비해.”
“대규모 농업 시설을 만들 생각입니다.”
“알았어.”
상엽은 보고를 하고 돌아서려는 사하르를 불렀다.
“다친 사람 없지?”
“모두 무사합니다.”
“크게 다친 사람도 없고?”
상엽은 그저 간단히 질문을 던진 것인데 의외로 사하르는 대답이 없었다.
“뭐야? 누가 다친 거야? 치료가 안 될 정도로?”
상엽은 다급히 주변을 살폈다.
운남 시청에 기거하고 있는 그는 많은 사람들을 만날 때는 천막을 친 옥상을 이용했다.
그가 오랜만에 돌아온 것이라 모든 요원들이 모여 있었지만 보이지 않는 인원은 없었다.
“다 있잖아?”
200명의 얼굴을 상엽은 전부 알고 있었다.
“치료는 이미 끝냈습니다.”
“그것부터 말했어야지. 그런데 누가 다친 거야?”
상엽이 재차 물었지만 대답이 없었다. 그런데 요원들 중의 몇 명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뭐야? 뭐가 웃긴데?”
상엽은 결국 추종자를 불렀다. 추종자는 지금까지 블랙 해머와 함께했다.
“유령아. 작전 중에 제일 크게 다친 사람이 누구야?”
-사하르입니다.
상엽은 뜻밖의 이름에 사하르를 보았다.
“얼마나 대단한 놈이길래 사하르가 다쳐?”
-30코인짜리 늑대에게 물려서 팔이 떨어졌습니다.
랭킹 100위권까지 성장한 사하르가 30코인짜리 늑대에게 팔이 떨어지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어떻게 된 거야?”
상엽은 결국 추종자의 기억을 영상으로 보았다.
영상 속의 사하르는 치열한 전투를 펼쳤다. 운남 전체에서 가장 강력한 변종을 소탕하는 마지막 작전이었다.
그 작전에서 사하르는 누구보다 뛰어난 활약을 펼쳤고, 수하들을 챙기면서 가장 위험한 변종을 맡았다.
그런데 무사히 변종을 처리한 그는 상엽이 했던 대로 라면 파티를 열었다.
“라면을 끓이는 데 집중한다고 독을 품은 늑대에 물렸다고?”
“그만큼 신중을 요하는 작업이기에…….”
“그만.”
상엽의 질문과 사하르의 대답에 결국 수하들이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아무리 라면이 좋아도 그렇지 변종이 접근하는 것도 몰라?”
“죄송합니다.”
사하르는 진심으로 창피한지 고개를 숙였다. 상엽은 처음으로 그가 당당하지 못한 모습을 보았다.
“대장이라는 놈이 쪽팔리게 30코인짜리 늑대 때문에 팔을 잘라?”
독이 침투한 것을 확인한 사하르는 바로 팔을 자르고 치료에 들어갔다. 지금은 멀쩡하게 회복한 상태였다.
“대장이 그냥 싸움 잘한다고 대장이 아니거든.”
상엽이 진지하게 훈계를 하자 수하들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넌 징계가 필요하겠어.”
그 말에 가장 놀란 건 루시였다. 그녀는 곧바로 상엽에게 다가왔다.
“실이 있으나 공이 크니 한 번은 봐주시는 게 어떻습니까?”
“안 돼. 이건 대장으로서 체면 문제야.”
상엽은 단호하게 거절하고는 진지한 얼굴로 징계를 내렸다.
“너 3개월 동안 라면 금지. 부하들이 라면 먹을 때마다 그거 보면서 반성해.”
엄청난 징계에 사하르의 눈빛이 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