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코인-203화 (201/300)

# 203

“여자를 만나러 왔다가 시비가 붙었다는 거군요.”

상엽은 그 평가가 억울했지만 틀린 말도 아니었다. 하지만 변명은 하고 싶었다.

“여자를 만나러 온 게 아니라 데스문 길드장을 만나러 왔다가 온 김에 아이리를 만나러 왔는데, 술 먹은 놈이 한국 사람이라고 비하를 하면서 날 죽이려고 했다고. 그래서 처리해 버린 거지.”

먼저 공격을 당해서 반격을 했을 뿐이다.

상엽은 그 점을 분명히 하고 싶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일본의 치안대를 죽였군요.”

상대가 일본의 치안대 소속이었다.

“너까지 올 필요 없었어. 난 정당방위였고 일본에도 날 지켜 줄 사람은 많아.”

상엽은 루시의 휴가를 망쳤다는 생각에 최대한 부드럽게 말했다.

“코드 원.”

“응.”

“휴가는 반납하겠습니다.”

“안 그래도 된다니까.”

“제가 원해서입니다. 더 이상의 휴가는 원치 않습니다.”

루시는 진심으로 복귀를 원했다.

“하지만 별로 할 일이 없을 텐데. 난 남은 보름도 놀 거라서.”

“그럴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무슨 말이야?”

“정확히 어떻게 이 사건이 일어났는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상엽은 방금 전에 일어난 사실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가 일본에 온 것은 데스문 길드장 켄사로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상엽이 한국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 켄사로가 직접 찾아오겠다고 한 것이다. 이에 상엽이 자신이 일본으로 간다며 계획을 바꿨다.

‘아이리도 볼 겸.’

이런 생각도 있었다.

그렇게 켄사로와 오랜만에 술을 마시며 수다를 떨고 예정대로 아이리를 만나기 위해 식스헤븐으로 왔다.

사건은 식스헤븐의 화장실에서 발생했다.

볼일을 보고 있는데 술에 취한 일본인이 시비를 건 것이다.

-조센징 거지가 어딜 함부로 들어와?

상엽은 참았다. 화가 났지만 아이리의 업소라는 것을 떠올리며 무시하고 지나가기로 했다.

결국 먼저 화장실을 나서려는데 욕을 하던 사내가 단검을 꺼내 그의 뒷목을 그었다.

다행히 재빨리 피해서 다치진 않았지만 본능적인 반격을 통해 사내를 죽이게 되었다.

“그렇군요.”

이야기를 모두 들은 루시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당방위가 확실했다. 그리고 아니라고 하더라도 상관없었다. 그는 법관이 아니라 상엽의 비서였기 때문이다.

“켄사로가 와서 처리할 거야. 신경 쓰지 마.”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이상하다니?”

“습격한 동기가 너무 어설퍼서 말입니다.”

“한국인을 싫어해서 아닐까?”

“그것 때문에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을 화장실에서 습격했다는 게 이상해서 말입니다. 그리고 코드 원이 한국 사람인 건 어떻게 알았을까요? 신의 소통이라면 일본어로 들렸을 텐데 말입니다.”

“어?”

상엽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다른 자료를 좀 보고 싶습니다.”

결국 루시는 아이리에게 말해서 CCTV를 확인했다. 그리고 거기서 확실히 이상한 부분을 발견했다.

“치안대에 소속될 정도의 갓코인 유저가 술에 취했다는 것이 이상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술을 전혀 마시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행동도 정상입니다. 술을 마셨다는 증거는 코드 원의 진술밖에 없습니다.”

“뭔가 목적이 있었다는 거야?”

“그런 것 같습니다. 코드 원 정도면 전 세계 어디든 특별히 주시하는 대상입니다. 그런데 술집에서 이런 시비가 붙을 리가 없습니다. 일반인이라면 몰라도 갓코인 유저라면 목적이 있다고 봐야 합니다.”

상엽은 그제야 루시가 이 일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이유를 알았다.

“당신이 위험한 건가요?”

곁에 있던 아이리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위험은 무슨. 일본 치안대는 나 혼자서 전부 처리할 수도 있어. 걱정하지 마.”

상엽이 그녀를 위로하고 있을 때, 켄사로가 식스헤븐으로 들어왔다.

안내를 받아 아이리의 집무실로 온 켄사로는 바로 결과를 말했다.

“야노토라는 녀석이었다. 그런데 치안대에서 곧 쫓겨날 놈이었더군. 뒷돈을 많이 받아서 감사를 받던 중이기도 했고. 문제 될 일은 없게 조치했으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켄사로는 별거 아니라는 듯이 대답했다.

“이왕 왔으니 술이나 한잔 더 할까?”

그는 특유의 말투로 분위기를 전환하려다가 루시를 발견했다.

“내 비서야. 어떨 때는 상관 같은 비서.”

“반갑군. 켄사로다.”

루시도 이름을 밝히며 짧은 인사를 끝냈다.

“전 좀 더 조사를 해 보겠습니다. 치안대 쪽과 직접 만나 보고 싶은데 괜찮겠습니까?”

“그럴 필요 없겠지만 굳이 원한다면 조치해 주지.”

켄사로는 전화를 걸어서 누군가를 불렀다.

상엽은 이미 몇 번 만난 적이 있는 인물이었다. 데스문에서 행정을 담당하는 자로 부길드장인 요다와 함께 있는 장면을 자주 보았다.

“필요한 건 이 사람이 전부 조치해 줄 것이다.”

“감사합니다.”

데스문의 주요 인물은 일본 내에서 어떤 신분증보다 강력한 위력이 있었다.

“나도 같이 가.”

“아닙니다. 저 혼자 하는 게 편할 수도 있습니다. 어차피 시간이 필요하니 내일 아침에 찾아뵙겠습니다.”

상엽은 자신의 일을 맡겨 두는 것 같아 불편했지만 루시의 요청을 무시할 수도 없었다.

“알았어.”

결국 루시가 식스헤븐을 떠났다.

다음 날 아침.

루시는 아이리의 아파트 주차장에서 상엽과 만났다.

아이리의 아쉬운 인사를 들으며 주차장으로 내려온 상엽은 루시가 알아낸 몇 가지 사실을 들었다.

“아무래도 모함을 위해서 벌인 일 같습니다.”

“모함이라니?”

“코드 원이 블랙 유저를 처리한 게 문제가 된 듯싶습니다. 아무래도 이번 사건을 계기로 코드 원의 과거 행적을 공론화시켜서 블랙 유저들의 원성을 받게 하려는 것 같습니다.”

블래과 화이트는 첨예한 대립을 하고 있었다.

상엽이 만났던 많은 이들이 같은 블랙 유저니까 좋게 해결하자는 말을 했다.

이는 화이트라는 거대한 적을 두고 만들어진 자연스러운 문화였다.

그런데 상엽은 이를 철저히 무시하며 최근에는 블랙 유저를 오히려 더 많이 죽였다.

이것이 같은 블랙 유저들의 눈에는 못마땅하게 보인 것이다. 실제로 상엽에게 소멸당한 이들 중에는 블랙 유저 중에서 최상위권 실력자도 있었다.

“코드 원의 이름 정도면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기에 충분합니다.”

“그런데 그게 무슨 도움이 된다는 거야? 날 죽이려고 사람이라도 보낸다는 거야?”

“그건 최종 단계입니다. 지금 당장은 코드 원을 죽이는 것보다 공론화시켜서 정치적인 이득을 위하려 할 것입니다.”

“정치적 이득이라니?”

“블랙 길드의 대대적인 연합과 최고 결정권자의 등장입니다.”

적이 강하면 힘을 합쳐야 하는 게 정상이다. 그렇게 모인 집단은 자연스레 우두머리가 생긴다.

-배신자를 처단한다.

소속감을 일으키고 뚜렷한 명분을 주는 말이었다. 상엽은 이런 이벤트에 가장 어울리는 대상이었다.

“건방진 놈들이네. 난 그냥 명분이라는 거지?”

“그들이 준비가 됐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들이라…….”

상엽의 머릿속에 한 단어가 떠올랐다.

길드 팬텀.

최고라 불리는 블랙 길드였다.

전 세계적인 길드로 갓랭킹 50권 내의 블랙 유저만 7명, 시크릿 유산으로 가려진 자가 3명으로 알려졌다.

특히 길드장은 정보가 가려졌지만 최소 5위권으로 알려진 최강자였다.

많은 이들은 그가 블랙 유저 중에서 가장 강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다만 전 세계적으로 길드원들이 흩어져 있고, 커뮤니티가 강력하지 않아서 소속감이 부족한 특징이 있었다.

마치 필요할 때마다 소수 인원이 모이는 용병 집단처럼 운영이 되어서 서로 알고 지내는 경우도 많지 않았다.

그런데 중국 전쟁이 시작될 무렵부터 러시아에 본부를 정하고 전 세계 지부를 건설하며 운영 방식을 바꿨다.

게다가 신입 길드원들에 대한 심사를 대폭 강화하고, 기존 길드원들에 대한 혜택을 늘리면서 자부심을 증폭시켰다.

그렇게 시간이 흐른 지금은 누구도 팬텀 길드의 소속감을 약점으로 꼽지 않았다.

“내부 상황이 안정된 것으로 보입니다.”

“날 이용해서 블랙 길드 연합의 대장이 되겠다?”

상엽은 화가 나면서도 마음이 무거워졌다.

‘팬텀은 쉽지 않아.’

아무리 강심장이라도 팬텀 길드라는 이름이 주는 무게감은 상당했다.

“곧 블랙과 화이트가 거대 연합으로 나뉘어질 것 같습니다.”

“화이트 쪽은 어디가 유리해?”

“중국의 왕수입니다.”

블랙과 화이트는 결국 거대한 집단을 가질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다만 지금까지는 경쟁으로 인해서 힘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젠 최상위권은 순위가 안정되어 변화가 심하지 않았고, 이런 현상이 100위권 밖까지 이어졌다.

갓코인 유저들이 힘을 인정하는 시기가 된 것이다.

“일단 최대한 막아 보겠습니다.”

“너무 애쓰지 마. 전부 죽여 버리면 되니까.”

상엽의 대답에 루시는 평소와 달리 바로 반박을 했다.

“화이트 신의 상점까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때가 되면 누구든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도 할 수 있어.”

“코드 제로가 위험할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테리아 그룹도 심각한 타격을 입을 것이 분명합니다.”

상엽이 이를 악물며 분을 삼켰다.

코드 제로와 테리아 그룹은 지켜 주고 싶었다. 그만큼의 가치를 지금까지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처음과 달리 지금 코드 제로 소속 인원은 2천 명에 달했다. 상엽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5백 명이던 인원이 4배까지 늘어난 것이다. 당연히 테리아 그룹의 지원금도 그만큼 많아졌다.

이미 개인 집단이라 부를 수 있는 규모가 아니었다.

“화이트 신의 상점까지야.”

“감사합니다.”

“감사는 내가 하지. 그런데 너무 무리해서 막으려고 하지는 마. 난 괜찮으니까.”

상엽은 루시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편하게 해 주었다.

“그럼 일단 여론부터 정리해 놓겠습니다.”

“그런 것도 해야 돼?”

“그들은 이번 사건을 공론화시킬 것입니다. 한국의 갓코인 유저가 일본에 와서 같은 블랙 유저를 죽였다. 이걸 시작으로 그동안 블랙 유저를 처리한 과거가 거론될 것입니다.”

“어떻게 대응하려고?”

“선수를 칠 겁니다. 어제 있었던 사건의 전말을 정확히 밝힐 예정입니다. 팬텀 길드의 이름을 거론하진 않겠지만 음모가 있다는 사실만 알려도 꽤 시간을 벌 수 있습니다.”

루시는 이미 이에 대한 준비를 해 놓았다.

갓코인 유저에 대한 뉴스는 가장 인기 있는 기사였다. 이를 전문으로 하는 매체가 수도 없이 많았으며 그중에서 가장 신뢰도가 높은 곳은 ‘갓뉴스’라는 사이트로 웬만한 포털보다 기업 가치가 높은 곳으로 평가되었다.

“그럼 바로 실행하겠습니다.”

상엽은 모르고 있지만 갓뉴스에서 상엽은 엄청난 인기 스타였다.

워낙 사고를 많이 치고 예상할 수 없는 행보를 보이기에 기자와 독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인물이 된 것이다.

루시는 이런 이미지를 관리하면서도 그동안 일부러 몇몇 정보를 흘려 주기도 했다.

관계를 잘 유지한 것이다.

그리고 그동안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은 불과 한 시간 만에 나타났다.

-정상엽이 함정에 빠지다.

자극적인 제목은 많은 이들의 이목을 끌었다.

-평소 친분이 있던 일본의 블랙 길드 데스문을 방문한 정상엽이 누군가의 음모에 휘말린 정황을 포착했다.

이 기사는 엄청난 화젯거리가 되었다. 단순히 흥미로운 제목 때문이 아니었다.

기사의 내용이 워낙 상세하고 이에 대한 증거 자료가 모두 공개되었기 때문이다.

죽은 자가 일본 치안대로부터 감사를 받았던 사실과 대형 블랙 길드를 만난 정황, 여기에 비밀 계좌로 돈을 입금받고 지속적으로 명령을 받은 증거도 공개되었다.

본래 그들의 계획은 운남 곤명에서 실행될 예정이었으나 상엽이 일본에 도착하자 작전 지역을 바꾼 것으로 밝혀졌고 자살이나 다름없는 사건을 만들었다.

그리고 마지막 증거 자료로 상엽이 화장실에 있었던 음성 파일이 공개되었다.

화장실의 특성상 CCTV는 없었지만 코드 제로에서 수집하는 음성 파일이 존재했다.

그것만으로도 상대가 먼저 시비를 걸었다는 것이 명확해졌다.

그런데 이 녹음 파일에 가장 충격을 받은 것은 일반인들이 아니라 상엽이었다.

“루시. 언제부터 감시하고 있었던 거야?”

상엽은 자신의 모든 음성이 녹음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런데 루시는 당당했다.

“이미 허락을 받았습니다.”

“허락을 하다니?”

“마음대로 하시라고 하셨습니다. 잊으셨습니까?”

“내가?”

상엽은 뭔가 억울했지만 자신이 그런 말을 자주 했다는 기억은 있었다.

루시를 믿기 때문에 뭐든지 알아서 하라고 맡겨 놓은 것이다. 그중에 녹음이 있는지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알고 계시는 줄 알았습니다. 코드 원의 안전을 위해 항상 녹음하고 있었습니다.”

“언제부터?”

“제가 처음 코드 원을 만났을 때부터입니다.”

자신이 허락을 했다면 이 문제를 더 이상 따질 이유는 없었다. 그런데 상엽은 불길한 상상이 떠올랐다.

“혹시 말이야.”

“말씀하시죠.”

“항상 내 목소리를 듣고 있는 거야?”

“제가 직접 듣는 것은 아닙니다만 24시간 이를 듣는 요원이 있습니다.”

루시는 그중에 필요한 정보만 얻는 것이다.

“그럼 말이야. 혹시 내가 여자랑 있는 것도…….”

“네. 전부 녹음되어 있습니다.”

“전부?”

“그렇습니다. 누구와 만났는지는 저에게도 중요한 정보라 모두 보고받았습니다.”

상엽은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루시의 대답은 끝이 아니었다.

“말이 많으신 편이시더군요.”

“응?”

“침대에서 말입니다.”

상엽은 처음으로 코드 제로를 원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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