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
-상엽 씨가 우상이에요.
-나는 정상엽처럼 될 거야!
상엽은 그 말을 듣고 정말 중학생을 죽일 뻔했다. 초인적인 인내로 치안대에게 중학생들을 넘겨준 그는 바로 박광신의 빌딩으로 갔다.
“최근 한국에서는 해머가 유행이야. 모두 동생처럼 되고 싶어 하거든.”
“내가 나쁜 놈이긴 한데 양아치는 아니거든.”
“갓코인 조기 교육의 병폐지.”
성인보다 더 잔인한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 청소년들이다. 이는 갓코인이 등장하면서 더욱 심해졌다.
게다가 길드라는 집단에 대한 어설픈 해석을 하면서 힘의 서열에 따라 불량 집단을 만드는 일이 빈번했다.
“이제 일진이라는 단어가 단순히 학교의 문제가 아니야. 범죄 조직처럼 운영되기 시작했거든.”
“왜 안 막아?”
“고민 중이야. 출동하면 전부 죽여야 하니까. 다른 방법을 찾아보고 있는데 별로 효과가 없을 거 같아서.”
갓코인 범죄자 중에 살인과 강간에 관련된 자들은 현장에서 소멸시켜도 상관없다는 게 한국의 법이었다.
이는 청소년이라고 봐주지 않았다.
“이미 명단은 다 뽑아 놨어. 한 60명쯤 죽여야 할 것 같아. 1단계 상점에 있는 놈들은 놔두고, 2단계인 놈들만 추렸는데 이 정도야. 국회 의원 자식도 있고, 재벌 손자도 있어.”
박광신은 상엽에게 명단이 적힌 서류를 내밀었다.
“쉽게 넘어가기 힘들 정도로 개차반이던데? 그런 놈이 내가 우상이라니.”
“지금 한국은 누구든 동생처럼 되고 싶어 해. 동생은 그중에 제일 병신 같은 놈을 본 것뿐이고. 좋은 효과도 많으니까 자책하지 마.”
상엽은 애써 불쾌한 기억을 지웠다.
“동생, 그러면 이제 우리 이야기를 해 볼까?”
“응? 우리 이야기?”
“동생이 나한테 연락도 안 하고 혼자 놀고 있었다는 말이지?”
“오려고 했어. 오던 길에 그렇게 된 거야.”
박광신은 상엽의 변명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알았어. 그냥 며칠 평범하게 지내고 싶었어. 형은 가끔 보면 나한테 너무 집착해. 꼭 바람피우는 애인 감시하는 거 같잖아.”
“동생, 그 감시는 내가 하는 게 아니야.”
박광신은 상엽에게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이틀 전 뉴스 기사로 나가려던 걸 내가 막았어.”
뉴스에는 상엽이 한국으로 들어왔다는 사실이 적혀 있었다. 자장면을 먹고 옷을 산 소소한 일상이 전부 적혀 있었다.
“뭐지? 이걸 내가 몰랐다고?”
“당연히 모르겠지. 갓코인 유저가 발견을 하고 일반인이 슬쩍 따라갔을 테니까.”
비밀 휴가는 더 이상 의미가 없었다.
“뭐 이미 즐길 만큼 즐겼어.”
“그럼 이제 나랑 놀 차례네.”
“왜 이래? 불안하게. 난 남자 싫어. 여자가 좋아. 알잖아?”
“어쩌지? 남자를 만나야 할 것 같은데. 그것도 아저씨.”
“설마?”
“잊지 마. 난 부길드장이야. 길드장은 따로 있다고.”
흑점 길드장 강청.
이 이름을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
“좋아. 대신 내 부탁도 하나 들어줘.”
“뭔데?”
“일단 아저씨 형부터 만나고.”
강청은 박광신의 연락을 받고 5분 만에 상엽 앞에 섰다.
“어우. 땀 냄새.”
꽤 실력 있는 유저가 이처럼 땀 냄새를 풍기는 건 흔치 않은 일이었다.
강청은 전투가 끝나고 바로 왔는지 옷이 대부분 찢어져 있고 아물지 않은 상처도 있었다.
“아저씨 형. 뭘 하고 다니는 거야?”
“2급 위험 지역에서 사냥을 하고 있지.”
“혼자서?”
강청은 고개를 끄덕였다.
1급 위험 지역에서 사냥을 했던 상엽이라도 2급 위험 지역의 어디를 목표로 삼느냐에 따라 힘든 싸움이 될 수 있었다.
“노력파네.”
“자네가 더 멀리 갔다는 이야기는 들었네. 그렇다고 내가 멈출 수는 없지. 이제 겨우 120위가 됐으니.”
그동안 상엽은 강청을 잊고 있어서 순위를 확인하지 않았다.
“120위면 엄청나게 올라왔네.”
사하르보다 강하다는 뜻이었다. 게다가 성장 속도를 봤을 때, 더 높은 순위로 올라갈 듯했다.
“일단 샤워부터 해야겠군. 잠깐만 기다리게.”
강청은 간단히 인사를 한 후에 샤워를 하러 집무실을 나섰다.
상엽은 그가 떠난 자리를 한참 동안 보았다. 여러 감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거지?”
“저 실력을 불쌍하다고 할 정도는 아니잖아. 조금 안타깝긴 해.”
“정말 목숨을 걸고 노력하고 있는데 동생과 거리는 점점 멀어지고 있어.”
선택의 차이였다.
상엽은 수많은 위험을 선택하며 여기까지 왔다. 그렇다고 강청이 위험을 피한 것은 아니었다.
“난 멀어져도 다른 사람은 넘어서고 있잖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동생이 너무 빠른 거야.”
노력파 강청은 언제나 같은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다.
‘사공강이랑 강청이면 한국은 안전하겠어.’
상엽이 굳이 나서지 않아도 될 만큼 한국은 성장하고 있었다.
“길드장이 아마 한 번 싸워 보자고 할 거야. 부탁해도 되겠어?”
“알았어.”
“죽이지는 마. 그럼 동생을 다시 못 볼 수도 있으니까.”
“지금 협박하는 거야?”
“협박 맞아. 길드장은 나한테 가족이니까.”
“쳇. 부탁하면서 협박이라니. 좀 찜찜한데.”
상엽의 불만에 박광신은 웃음으로 답했다.
* * *
“이거 마셔요.”
상엽은 강청에게 동희의 음료수를 건넸다. 그리고 자신은 마시지 않았다.
그리고 싸움이 시작됐다.
강청은 예전에 비해 엄청난 발전을 했고 몇 번이나 위협이 되는 공격을 했다.
하지만 상엽과는 실력 차이가 있었다.
격렬한 5분간의 싸움 끝에 강청은 패배를 인정했다.
“졌어.”
이 말을 하는 그의 얼굴에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았다.
처음부터 이기리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다만 그 차이가 좁아졌는지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상엽은 그에게 너무 먼 존재가 되어 버렸다.
“난 다시 가야겠네. 술 마시는 시간도 아까워.”
강청은 그렇게 말하며 사냥터로 돌아갔다.
* * *
늦은 밤.
상엽은 클럽 오컬트 앞에 섰다.
레나가 있는 클럽으로, 새의 침공이 있었을 때를 제외하면 언제나 젊은 남녀로 북적였다.
오늘도 그런 광경은 여전했다.
-레나에 대해서 좀 알아봐 줄래?
상엽은 박광신에게 이런 부탁을 했다. 그리고 직접 이곳을 찾아왔다.
‘괜히 뒷조사를 시켰나?’
잠깐 후회도 되었지만 곧 잊기로 했다.
‘나한테 하지 못한 말이 있는 거야.’
상엽은 뒷문이 아니라 정문으로 오컬트에 들어갔다. 그런데 누군가 그를 막았다.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몇 번 보았던 문지기였다. 그런데 상엽을 알아보지 못했다. 가면을 썼기 때문이다.
그런데 상엽을 막아선 문지기는 다른 이들이 들어가는 건 막지 않았다.
“설마 지금 물 관리 하는 거야?”
가면을 쓴 상엽은 오컬트에 들어갈 자격이 되지 못했다.
‘좀 잘생긴 가면으로 주지.’
상엽은 자신이 남에게 어떻게 보이는지 알지 못했다. 그런데 문지기들의 팀장이 상엽을 알아봤다.
“뒷문으로 가시겠습니까?”
“아니. 오늘은 손님으로 왔어.”
“들어가시죠.”
팀장은 상엽을 알아봤다. 꽤 실력이 있는 갓코인 유저였기 때문이다.
‘쳇. 물 관리를 당하다니.’
상엽은 심술이 났지만 꾹 참고 클럽 안으로 들어갔다.
‘시작하겠네.’
상엽은 일부러 무대에서 꽤 거리가 있는 의자에 자리를 잡았다.
예상대로 레나가 무대 위로 올라왔고 강렬한 첫 사운드로 관객들을 매료시켰다.
‘역시 멋있어.’
현란한 전자 음악에 빠져 있는 레나의 모습은 아름다움과 멋스러움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국립 무용단이었다니.’
과거와는 전혀 매치가 되지 않았다.
‘이 모습을 전부 잊게 된다고?’
상점 졸업을 하면 기억을 잃는다고 했다. 이 생각을 하자 레나의 모습이 더욱 예쁘게 보였다.
‘나한테도 특별한 여자가 있었네.’
연인 사이는 아니지만 각별한 애정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상엽은 상념을 지우고 레나의 무대를 전부 지켜봤다.
레나는 무대를 내려오기 직전, 상엽과 눈을 마주치고는 살짝 윙크를 했다.
‘역시 알고 있었네.’
상엽은 그녀의 유혹을 거절하지 않고 대기실로 갔다.
땀 냄새가 나는 레나는 곧장 샤워실로 들어갔고 상엽은 익숙한 소파에 앉았다.
“여긴 또 오랜만이네.”
한국으로 이동하면서 몇 번 오긴 했지만 소파에 앉아 레나를 기다리는 건 오랜만이었다.
잠시 후, 레나가 젖은 머리카락을 닦으며 아슬아슬한 타월만 걸친 채로 상엽에게 다가왔다.
“너무 야한 거 아니야?”
“서비스인데. 싫어?”
“좋아서 하는 말이야.”
오랜만에 농담을 주고받자 레나는 웃으며 상엽의 맞은편에 앉았다.
“무슨 일로 왔어?”
“그냥 너 보고 싶어서 왔어.”
“정말? 이런 적은 처음인데.”
“그런가?”
상엽은 그제야 순수하게 레나를 보기 위해 클럽으로 온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여기도 벌써 5년이나 됐네.”
“언제가 제일 좋았어?”
“성인식이었던 거 같은데…….”
“같은데?”
상엽의 대답에 레나가 눈을 흘겼다.
“내가 기억이 잘 안 나서 그러는데, 성인식 때처럼 다시 해 볼까?”
“기억이 안 나셔?”
“정말이야. 요즘 건망증이 좀 심해.”
상엽은 직접 레나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미안해.”
“뭐가?”
“방금 샤워했는데 또 땀 흘리겠네.”
상엽은 레나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거칠게 입을 맞췄다.
폭풍이 지나간 것 같은 대기실에서 레나는 예고대로 땀에 젖은 채로 상엽의 무릎에 앉아 있었다.
그의 다리를 의자 삼아 상엽의 품에 안긴 그녀는 겨우 호흡이 안정되고 있었다.
“레나, 한 가지만 물어볼게.”
레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말하지 못하는 거야? 말하지 않는 거야?”
그녀는 이 질문의 의미를 알아들었다.
“못해. 상점이니까.”
“이럴 때 보면 나도 참 이기적이네. 레나가 많이 힘들다는 대답인데, 난 왠지 안심이 되네. 일부러 말하지 않는 게 아니라서.”
“난 방금 말로 치료가 됐어.”
레나는 더욱 깊이 상엽의 품에 안겼다.
이른 아침.
상엽은 레나의 침대에서 눈을 떴다.
‘그러고 보니 가족사진이나 옛날 흔적이 하나도 없구나.’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지금의 레나를 설명할 수 있는 것도 없네.’
현재의 사진조차 없었다.
며칠만 귀가하지 않아도 여기의 주인이 누구인지 모른다는 뜻이었다.
‘임시 거처라는 건가?’
그저 심플한 디자인이라 생각할 때와는 받아들이는 느낌이 달랐다.
“더 자. 오늘 내가 널 위해서 요리를 해 볼 테니까.”
상엽은 레나를 위해 아침을 준비했다.
그가 레나의 오피스텔을 나선 것은 점심 식사 이후였다. 아침부터 그들만의 시간을 보낸 그는 준비 운동을 잘 끝낸 운동선수처럼 가볍게 건물을 나섰다.
“안녕, 바람둥이.”
그런데 누군가 그를 불러 세웠다.
“어? 적설…….”
“내가 레나를 조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었어?”
상엽은 미처 거기까진 생각을 하지 못했다.
“이건 사생활 침해야.”
“너랑 나도 사생활이거든.”
“아. 그렇지.”
“뭐 애인처럼 몰아붙일 생각은 없으니까 정보나 공유해.”
적설은 상엽을 더 이상 괴롭히지 않았다.
근처 카페로 간 상엽은 적설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전부 말했다.
“레나가 피해를 받는 일은 없도록 해.”
“어련하시겠어?”
“알아들은 걸로 알게.”
상엽이 통보하듯이 말하자 적설이 처음으로 불쾌한 표정을 하려 했다.
하지만 표정이 완성되기도 전에 상엽의 입술이 그녀의 입을 막았다.
“뭐하는 짓이야? 방금 다른 여자하고 있다가 와 놓고.”
“넌 그런 말 할 자격 없어.”
“뭐?”
상엽은 언젠가 자신이 당했던 것을 그대로 돌려주었다.
“안 피했잖아.”
도지연과 첫 키스를 그렇게 했었다.
“안녕. 또 봐.”
상엽은 손을 흔들어 준 뒤 카페를 나섰다.
* * *
이탈리아의 아름다운 해변.
“바빠요. 방해하지 말아 주세요.”
에메랄드를 닮은 바다가 지척에서 부서지는 백사장 위에서 한 사내가 아쉽다는 듯이 걸음을 돌렸다.
비치 베드에 누워 있는 한 여인에게 용기를 내어 말을 걸었지만 뜨거운 태양도 얼려 버릴 것 같은 냉정한 말투에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하얀 피부를 아슬아슬하게 가리는 비키니와 길게 늘어트린 머리카락이 해변에 잘 어울리는 여인이었다.
이미 세 명.
여인은 사내들의 접근에 짜증이 났지만 다시금 마음을 가다듬고 태블릿 PC에 집중했다.
그러다 집중할 때의 버릇이 도진 그녀는 가방에 있는 안경을 꺼냈다.
안경을 쓴 그녀의 인상은 곧장 딱딱한 사무원 같은 느낌으로 변했다.
코드 제로의 루시.
그녀는 해변이 있는 휴양지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그녀는 업무를 완전히 버려둘 수가 없었다.
“역시 사고를 치셨네.”
그녀의 PC로 다급한 메시지가 도착했다.
-코드 원이 일본에서 블랙 유저를 처리했습니다.
그런데 이를 본 그녀의 입가에는 웃음이 걸렸다.
“지루한 휴가는 끝났어.”
그녀는 남성들의 아쉬운 시선을 뒤로하고 해변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