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
“재미있는 사실을 알아냈어.”
“방금 우리가 한 것보다 더 재미있는 일이 있어?”
“물론 그만큼은 아니지.”
5성급 호텔의 스위트룸의 침대에는 격렬했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것으로도 부족했는지 그들은 다시 한번 긴 입맞춤을 하고는 진지한 이야기로 넘어갔다.
“상점들 말이야. 전부 같은 특징이 있어.”
적설은 지난번에도 상점에 대해 조사를 한다고 했다. 그러다 한 가지 사실을 알아냈다.
“그들은 모두 죽었던 자들이야.”
“뭐?”
상엽은 예상치 못한 말에 적설을 빤히 보았다.
“정말이야?”
“확실해. 이미 증거도 찾아냈으니까. 별로 어렵지도 않더라고.”
적설은 아공간에서 뉴스와 사진을 꺼냈다.
“누군지 알지?”
그녀가 건넨 사진을 상엽이 모를 리가 없었다.
“레나…….”
“한국의 그레이 상점이지. 너도 이용하고 있지?”
상엽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가 내민 신문을 보았다.
-25세 여성 국립 무용단. 강도에 의해 사망.
사회면의 작은 뉴스였다.
“진짜 이름은 한서인. 무용과 전공으로 국립 무용단에 들어간 첫 해에 살해당했어. 경찰은 강도에 의한 사망이라고 결정지었는데 미심쩍은 부분이 많아.”
“미심쩍다니?”
“강도가 자수를 했거든. 다음 날 아침에 바로. 그런데 그 강도가 재판 중간에 말을 바꿨어. 물론 받아들여지지 않아서 유죄가 됐고. 아직도 복역 중이야.”
상엽의 표정이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뭐야? 너 지금 내가 이렇게 안겨 있는데 다른 여자 생각 하는 거야?”
“아는 이름이잖아. 당연한 반응이지.”
“뭐 어쨌든 아마 레나도 억울하게 죽었을 거야.”
“그건 무슨 소리야?”
“현재 상점으로 있는 사람들. 전부 그렇게 죽었어. 죽음 자체가 억울하거나,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거나. 그런 자들이 상점으로 배치된 거지.”
상엽은 적설의 정보를 의심하지 않았다.
‘레나에게 그런 사연이 있었구나.’
그녀를 떠올리자 마음이 아팠다.
“그런데 상점에 대해 알아낸 게 또 있어.”
“뭔데?”
“사라진 상점이 있어. 그래서 내가 추격을 해 봤거든.”
“상점이 사라져? 누가 상점을 건드린 거야?”
“정반대야.”
상엽은 이해하지 못했다. 다행히 적설은 시간을 끌지 않고 설명해 주었다.
“멀쩡하게 살아 있어. 그런데 자신이 상점이었다는 사실을 전혀 기억하지 못해. 일종의 졸업 같은 거지.”
“졸업?”
“상점 졸업. 의무가 끝나서 평범한 사람으로 돌아간 거야. 그들은 갓코인 유저도 아니고, 사고로 인해 식물인간이었다가 깨어난 걸로 기억하고 있어. 기억이 조작된 거지.”
중요한 것은 상점에게 어떤 의무가 있고 이를 해결하면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졸업 조건은 코인이구나.”
“맞아. 그래서 이 사실이 중요한 거야. 내가 확인한 졸업 상점은 그리스에 있었어. 누군가 그리스에서 엄청나게 코인을 소모했다는 거지.”
적설은 상엽의 집중하는 눈빛을 보며 다음 말을 이었다.
“정확히는 누군가가 아니라 집단이야. 특정 집단이 그레이 상점 하나를 집중적으로 이용했어.”
“집단?”
“그리스에 뭐가 있는지 잊었어?”
상엽은 집단과 그리스라는 단어를 연결했다. 그러자 한 집단이 떠올랐다.
“콜렉터.”
“맞아. 트레저 헌터 길드 콜렉터의 숨겨진 본부가 그리스에 있거든. 이젠 뭐 별로 비밀도 아니지만.”
송연지가 한때 몸담았던 길드 콜렉터의 비밀 본부가 그리스에 있었다.
“그런데 그들이 일부러 같은 상점을 이용한 거 같아.”
“그건 무슨 말이야?”
“일반인으로 돌아간 상점을 그들이 따라다니고 있었거든. 은밀히 접근해서 친분을 쌓기도 하고. 전담 간호사, 자주 가는 슈퍼마켓 주인, 최근에 입사한 회사의 동료. 그런 식으로 배치되어 있어. 물론 본인은 모르고 있고.”
“무슨 목적이 있다는 거네.”
“아무래도 상점을 졸업시키기 전부터 어떤 정보가 있었던 거 같아.”
“콜렉터라면 정보력으로는 최고니까.”
상엽의 코드 제로도 정보력에는 자신감이 있었지만 콜렉터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어때? 꽤 흥미롭지 않아?”
“확실히 그러네.”
상엽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갓코인에 대해서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상점일 테니까.”
“바로 그거야. 그래서 콜렉터 길드가 상점을 이용하려는 걸 거야. 사라진 기억만 되찾으면 정말 많은 것을 알게 되는 거지.”
“그레이 상점은 정보를 팔기도 하니까.”
정보를 파는 상점이 자신의 기억을 전부 되찾는다면 엄청난 사실들이 밝혀질 것이다.
“콜렉터 녀석들이 대단하긴 하네. 그런 생각을 하다니.”
“분명히 사전에 준비한 방법이 있을 거야. 그러니까 실행했겠지.”
상엽도 적설의 예상에 동의했다.
“그래서 난 이제 한국의 상점들을 조사해 보려고.”
“한국?”
“응. 레나 말이야. 좀 상징적인 의미가 있거든.”
상엽이 궁금한 표정을 하자 적설은 일부러 뜸을 들이며 말했다.
“너 레나와 무슨 관계가 있는 거지?”
“그건 말 못 해. 너한테 예의가 아닌 거 같아서.”
“뭐 대답은 충분하네. 그럼 이 정보는 꽤 비싸게 팔아야 할 거 같은데.”
“좋아. 뭐든 말해.”
“화끈하네. 나 때문이야? 레나 때문이야?”
“당연히 너지.”
“정보값은 그 대답으로 됐어.”
적설은 더 이상 상엽을 괴롭히지 않고 사실을 말했다.
“레나가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건, 죽은 시간이 제일 빨라.”
상엽은 그제야 신문의 날짜를 다시 확인했다.
“15년 전이네.”
“전부를 확인한 건 아니지만 대부분의 상점들은 갓코인이 등장할 무렵에 죽은 자들이야. 그런데 레나는 죽은 시간의 차이가 꽤 커. 그래서 좀 알아보려고.”
적설이 상엽에게 연락을 한 이유였다.
“전도유망한 무용수가 홍대 클럽의 DJ가 되어 있다. 꽤 흥미롭잖아.”
“뭘 알아내든 나한테도 말해 줄래?”
“이번에는 공짜가 아닌데. 괜찮겠어?”
적설은 말을 끝내며 상엽의 몸 위로 올라갔다. 아슬아슬하게 가리고 있던 실크 이불이 미끄러져 내려갔지만 그녀는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선불이야. 어때?”
“외상보단 선불이지. 내 스타일이야.”
그들은 긴 대화를 끝냈다.
적설이 떠난 호텔 방에서 상엽은 성아를 불렀다.
“뭘 보는 거야?”
성아는 헝클어진 침대를 보고 있었다.
“너랑 하려고 부른 거 아니야.”
“진실이군요.”
“이런 말까지 판단하지 말아 줄래?”
성아는 무표정한 얼굴로 상엽을 보았다. 그런데 평소와 달리 눈빛에는 감정이 조금 묻어났다.
원망과 질투.
상엽이 이를 모를 리가 없었다. 하지만 굳이 이에 대해 묻지 않았다.
“묻고 싶은 게 있어.”
상엽은 이 말로 분위기를 정리하며 성아에게 물었다.
“상점의 말도 진실과 거짓을 판단할 수 있어?”
“네. 하지만 지금까지 어떤 상점도 거짓을 말하지 않았어요.”
“알았어. 고마워.”
“끝인가요?”
성아는 평소와 달리 곧바로 들어가지 않고 섭섭하다는 표정으로 상엽을 보았다.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어?”
“저에 대해서요.”
“네가 왜?”
“제가 매력적이지 않은가요?”
“매력적이야. 내가 아는 여자 중에 제일 예뻐. 거의 완벽할 정도지.”
“그런데 왜 다른 여자를 찾죠?”
성아는 질투마저 숨기지 않았다. 상엽도 속마음을 숨길 생각이 없었다.
“상처받을 수도 있을 텐데 대답해 줄까?”
“진실이군요. 제가 상처를 받아야 하는 사실이 있군요.”
“너 여신으로 너무 오래 지낸 거 같아. 이제는 인간이라서 상처가 될 수도 있어.”
“말해 주세요. 아픈 진실도 알아야 하는 법이니까요.”
상엽은 그녀의 요청대로 간단하게 진실을 말해 주었다.
“기술의 차이.”
성아는 곧바로 이해를 하지 못한 듯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그 의미를 깨달았다.
“말해 줘서 고마워요.”
“진짜 상처가 된 건 아니지?”
성아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극복할 수 있는 문제니까요.”
상엽은 극복이라는 단어가 한참 동안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 * *
“왜 벌써 지루하지? 이럴 수가 있나?”
겨우 사흘이었다.
먹고 싶은 걸 마음껏 먹고 커피숍에 PC방까지 갔다. 하지만 평범한 일상이라는 것은 금세 지루해졌다.
‘쇼핑이나 할까?’
휴가를 기념해서 이미 옷을 새로 산 터라 이것도 별로 흥미가 없었다.
“콘서트나 가 볼까?”
최근 가장 인기 있는 걸그룹의 첫 번째 콘서트가 오늘이었다. 하지만 상엽의 흥미를 끌진 못했다.
“동희를 만날까? 광신이 형을 먼저 찾아갈까?”
결국 그는 예상보다 빨리 친구들을 만나기로 했다. 그렇게 두 명을 두고 고민을 할 때, 그의 귀를 자극하는 소리가 들렸다.
“어차피 죽여도 시체도 안 남아.”
강남에 늘어선 학원가의 골목이었다.
“여기구나.”
갓코인 학원가.
최근 학생들에게 가장 인기가 있는 학원이었다.
전투 기술은 물론 갓코인 진로에 대한 상담이 진행됐고, 갓코인에서 파생된 여러 직업에 대한 교육도 있었다.
일부 학원에서는 불법적으로 변종 사냥을 기획하기도 했고, 기부금을 받으면 죽기 직전의 변종을 처리하는 보상을 하기도 했다.
사회적으로 워낙 문제가 많아서 몇 번 규제가 있었지만 오히려 음성적으로 퍼지는 바람에 이제는 합법적으로 인정하고 관리를 하는 추세였다.
“그러니까 적당히 까불었어야지.”
학원 간판을 보던 상엽의 귀에 또다시 거슬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거친 말보다 목소리로 짐작되는 나이가 문제였다.
‘많아 봐야 중학생.’
상엽은 결국 목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갔다.
빌딩들이 늘어선 골목이 목소리의 근원지였지만 웬일인지 예상했던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결계입니다.
골목은 환영으로 인해 가려져 있었다. 일반적으로 아무도 없는 골목처럼 보이지만 환영의 벽이 사실을 숨기는 것이다.
‘어설프네.’
모습은 가리지만 목소리는 새어 나온다. 그만큼 어설픈 스킬이라는 뜻이다.
상엽은 비웃음을 지으며 골목 안으로 들어갔다. 그의 몸에 닿은 환영은 버티지 못하고 바로 사라져 버렸다.
그러자 드디어 골목에서 일어난 일이 보였다.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세 명이 쓰러진 남자를 보고 있었다.
남자 둘에 여자 하나. 쓰러진 쪽도 비슷한 또래의 남자였다.
남자는 이미 구타를 당했는지 입술이 터져 있고 바닥에는 부러진 이빨이 뒹굴고 있었다.
“아저씨. 뭐야?”
상엽이 골목으로 들어오자 가장 덩치가 큰 녀석이 신경질적으로 물었다.
“나? 골목에서 잠시 쉬다 가려고.”
“죽기 싫으면 꺼져!”
앳된 얼굴임에도 말투와 행동은 양아치라 부르기에 손색이 없었다.
“내가 어린 애들하고 노닥거릴 시간이 없거든. 그러니까 간단히 끝낼게.”
상엽은 이 사건을 길게 끌고 가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다가온 중학생을 손가락 하나로 밀어 버렸다.
쾅!
살짝 민 것뿐이지만 중학생은 바닥을 수십 바퀴나 뒹굴더니 헌옷 수거함에 부딪혀서야 겨우 멈췄다.
“이 새끼가!”
힘의 차이를 분명히 느꼈을 것이 분명함에도 덩치 큰 중학생은 욕설을 뱉으며 무기를 꺼냈다.
그런데 그 무기를 본 상엽은 눈살을 찌푸렸다.
‘해머.’
그뿐만 아니었다. 지금까지 지켜보던 또 다른 중학생도 무기를 꺼냈는데 이 역시 해머였다.
‘흔히 쓰는 무기가 아닌데.’
두 아이는 무기를 꺼내더니 대뜸 상엽을 공격했다.
“멍청한 놈이네.”
상엽은 그들의 해머를 각각의 손으로 잡아서 바로 빼앗아 버렸다.
‘기본 무기도 아니고. 이놈들은 뭐지?’
느껴지는 힘이 꽤 묵직했다. 게다가 해머는 3단계 그레이 상점에서 판매하는 물품이었다.
‘신체 강화도 꽤 됐고.’
바닥을 구른 녀석의 찢어진 피부가 빠르게 재생이 되고 있었다.
블랙 유저에 강화 수준이 꽤 된다는 뜻이었다.
“세상이 미쳐 돌아가네.”
상엽은 빼앗은 무기를 바닥에 던지고 전화기를 들었다.
“경찰서죠? 여기 갓코인 범죄자가 있어서 잡아 놨어요.”
그동안에도 무기를 빼앗긴 아이들은 코뿔소처럼 숨을 거칠게 쉬며 상엽을 공격했다.
“유령아. 좀 놀아 줘.”
그들이 귀찮아진 상엽은 추종자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돌아서려 했다.
그런데 갑자기 얼굴이 화끈거렸다.
어디선가 불덩이가 날아온 것이다.
펑!
상엽은 맨손으로 불덩이를 막아 내고 한 곳을 보았다. 그곳에는 함께 한 아이를 협박하던 여자 중학생이 서 있었다.
“그냥 전부 죽여 버릴까?”
상엽의 말에는 엄청난 살기가 담겨 있었다. 이를 느낀 아이들은 순간 얼어붙은 것처럼 행동을 멈췄다.
“갓코인 유저는 언제 어디서든 죽을 수 있다. 알지?”
그의 분노에 아이들이 몸을 떨기 시작했다.
그때, 누군가 그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치안대입니다!”
세 명의 치안대는 아이와 상엽의 사이에 내려섰다. 그런데 그중의 한 명이 상엽의 얼굴을 자세히 살폈다.
“정상엽 님!”
하급 가면은 어느 정도 수준만 되어서 얼굴을 가려 주지 못했다.
‘아씨. 들켰어.’
상엽의 비밀 여행은 그렇게 끝나 버렸다.
“저것들 진짜 죽여 버릴까?”
엄청난 분노에 덩치 큰 중학생의 바지가 젖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