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
금빛 날개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강하다.
상엽의 힘은 불과 6개월 만에 금빛 날개를 뛰어넘었다.
불붙은 전차처럼 돌진하는 상엽의 공격을 금빛 날개는 감히 막아 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결국 바닥에 떨어졌던 지휘관들이 일제히 날아올라 협공에 나섰다.
그럼에도 상엽의 육탄전은 멈추지 않았고 폭음이 들릴 때마다 지휘관들이 빛으로 흩어졌다.
-이길 수 있다.
하지만 금빛 날개는 돌진하는 상엽을 주시하며 승리를 확신했다.
뚝.
상엽이 남긴 긴 장상에 피가 흩날렸기 때문이다.
지금은 비록 작은 상처였지만 상엽의 몸에는 분명히 상처가 쌓이고 있었다.
파괴적인 공격에 비해 방어는 뚫을 수 있는 수준이었던 것이다.
이를 확인한 금빛 날개는 전략을 바꿨다. 수하들에게 극단적인 공격 지시를 내린 것이다.
싸움에 끼어들 수 없는 지상의 인간 변종은 이미 무너진 도시로 진입해서 상엽의 군대와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전멸시킨다.
양쪽 모두 금빛 날개에게 유리한 상황이었다.
금빛 날개는 그때부터 철저히 계산대로 움직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상엽의 상처는 눈에 보일 정도로 커졌고 움직임도 느려졌다.
파괴력은 여전히 막강했지만 금빛 날개를 명중시킬 수가 없으니 소용이 없었다.
그럼에도 금빛 날개는 수하들에게 계속해서 희생을 지시했다.
500명이던 지휘관은 어느새 200명으로 줄었고, 상엽의 몸이 핏빛으로 물들었을 때는 100명밖에 남지 않았다.
금빛 날개는 숨을 몰아쉬며 잠시 행동을 멈춘 상엽을 보며 다른 명령을 내렸다.
-본대에 합류하라.
100명의 지휘관들을 도시로 이동시킨 것이다. 그곳에서는 인간 변종의 특징을 활용해 훌륭히 전투를 치르고 있는 상엽의 군대가 있었다.
지휘관이 없어진 터라 인간 변종들은 그저 광기를 드러내며 상대의 품으로 뛰어들기만 했다.
진형을 갖춰 물러서는 전략을 택한 상엽의 군대는 포위되지 않는 선에서 계속해서 상대의 숫자를 줄였다.
하지만 100명의 지휘관이 합류를 한다면 그들에게 희망이 없었다.
도주하는 것이 유일한 선택이었다. 그런데 100명의 지휘관이 공격을 멈추는 순간, 금빛 날개의 예상이 빗나가는 일이 발생했다.
쿠르르!
만신창이가 된 상엽이 다시금 파괴전차를 사용한 것이다. 그런데 그 위력이 멀쩡하던 처음보다 오히려 강력했다.
안심했던 지휘관 50명이 그 한 방으로 쓰러졌다. 그리고 이어지는 파괴의 일격에 30명이 추가로 사라졌고, 스트라이크와 망자의 손길로 인해 남은 20명마저 빛으로 흩어졌다.
마치 지금 순간을 기다린 것 같은 움직임이었다. 게다가 금빛 날개는 이를 보고도 전장에 뛰어들 수가 없었다.
“왜 놀랐어?”
상엽의 몸에서 뭔가가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바닥에 추락한 것은 작은 음료수 병이었다.
“외로워 보이네.”
지휘관들은 모두 사라졌다. 게다가 상엽은 모든 상처가 회복되었고 동희의 음료를 통해 신체 능력이 오히려 증가했다.
스킬 회생의 효과였다.
불리한 상황에서는 회생을 발동할 시간도 없다고 판단한 상엽은 적당한 시기에 몸을 회복하고 반격을 시도했다.
‘빨리 끝내야겠어.’
도시로 진입한 인간 변종들이 문제였다.
상엽의 군대는 여전히 희생자 없이 훌륭히 맞서고 있지만 상대의 숫자가 너무 많았다.
수많은 적을 줄였지만 아직도 인간 변종의 숫자는 4만5천 명에 달했다.
“좀 더 놀아 주고 싶은데. 시간이 없어.”
상엽은 당황한 금빛 날개를 향해 돌진했다. 그렇게 인간을 넘어선 힘이 격돌했다.
그들의 격돌은 치열함을 넘어선 경이로움이 있었다.
세상에 종말이 일어날 것처럼 하늘과 땅에서 폭발이 이어졌고 깊이 숨어 있던 대지의 속이 그대로 드러났다.
평화롭던 공기는 찢어지고 밀려났고 진공 상태를 채우며 굉음을 만들었다.
불과 빛, 운석이 떨어진 것 같은 충격은 지구를 철거하는 대형 공사 같은 느낌이었다.
다행인 것은 그런 충돌에도 승패가 있다는 점이었다.
금빛이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고 전차처럼 돌진하는 기세는 더욱 강해졌다.
그리고 어느 순간, 금빛이 마지막 발악을 하듯 주변을 집어삼켰다.
시간이 잠시 멈춘 듯했다.
금빛은 또 하나의 태양이 되어 주변을 같은 빛으로 물들였고 침묵과 정적의 시간이 지속되었다.
쿵.
답답한 침묵을 깨트린 소음은 금빛의 중심부에서 시작되었다.
지금까지의 싸움과는 전혀 다른 둔탁하고 단순한 소리는 넓게 퍼진 금빛을 소멸시켜 버렸다.
쿵!
그리고 뭔가가 지상으로 떨어져 내렸다.
날개가 부러진 금빛 날개였다.
“후우.”
날개의 곁으로 상엽이 내려섰다.
뚝. 뚝.
그의 몸에는 성한 곳이 없을 만큼 많은 상처가 있었다.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그는 무심한 눈빛으로 쓰러진 금빛 날개를 보았다.
‘위험했어.’
우세를 점한 상엽은 신중하게 금빛 날개를 몰아붙이고 있었다. 그런데 약점을 발견하고 뛰어든 것이 화근이었다.
금빛 날개는 마지막 힘을 응축해서 터트렸고 이는 상엽의 피부를 난도질했다.
자칫 피부가 뚫릴 수도 있었던 순간에 상엽의 목숨을 구한 것은 유령 걸음과 지옥마였다.
유령 걸음으로 큰 힘을 흘려 내면서 지옥마를 소환해 앞을 막은 것이다.
이로 인해 지옥마가 소멸했고 상엽은 금빛 날개의 뒷목에 해머를 꽂았다.
‘옥아. 너는 조금 쉬어.’
지옥마는 다시 소환하는 데까지 시간이 필요한 상태가 되었다.
“위험한 녀석이었어.”
상엽은 시간을 끌지 않고 쓰러진 금빛 날개의 몸에 망자의 손길을 뻗었다.
수십 개의 창이 금빛 날개의 몸을 꿰뚫자 작은 떨림이 생겼다.
그리고 금빛 날개는 하얀빛으로 부서져 상엽에게 흡수되었다.
“전리품은 나중에 챙기고.”
금빛 날개가 사라진 자리에는 수많은 전리품이 남았다. 그동안 여러 길드가 제거되면서 남긴 조각까지 모두 보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잔당 소탕 시작.”
상엽은 승리의 기쁨도 잊고 여전히 치열한 전투가 펼쳐지는 도시 경계 안으로 달려갔다.
상엽은 일부러 전투를 급하게 진행하지 않았다.
“정신 똑바로 차려!”
그는 후방에서 2만 명의 인간 변종을 처리한 후로는 군대에 합류해서 지원 팀을 맞았다.
“나머지는 전부 전투에 합류해.”
상엽은 부대원들이 확실히 성장할 기회를 주었다. 심각한 부상을 입은 자는 직접 뛰어들어 후방으로 데리고 왔고, 위기에 빠진 자는 곧바로 구출해 다시 전투에 임하도록 했다.
“다시 갈 수 있습니다.”
최소한의 치료만 마친 부대원이 다시 합류를 요청했다.
“마지막 기회야. 다시 다치면 다음 전투까지 근신이야.”
“감사합니다.”
부대원들은 쉬는 것을 치욕으로 생각했다.
전사라는 이름으로 길러진 그들이기에 전장에서 결코 물러나지 않으려 했다.
그것은 그들이 지금까지 성장한 원동력이기도 했다.
“사하르는 이제 괴물인데.”
부대원들 중에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단연 사하르였다. 그는 대원들을 도와주면서도 무기를 휘두를 때마다 어김없이 상대의 목을 베었다.
“코드 원도 치료가 필요합니다.”
“치료는 무슨. 긁힌 거야.”
걸레처럼 찢어진 옷이 전부 붉게 물들었고, 여전히 피가 새어 나오는 상처가 있었지만 상엽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곧 나아질 거야.”
실제로 그의 피부는 빠르게 회복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루시는 신경이 쓰였다.
“가루 정도만 뿌리겠습니다.”
결국 루시가 빠르게 정령의 정수를 뿌리는 것으로 응급 처치를 마쳤다.
“이겼어.”
5만이던 변종의 숫자는 급격히 줄어들면서 1만밖에 남지 않았다.
상엽이 처리한 2만을 제외하더라도 200명이 조금 넘는 군대가 2만 명을 베어 낸 것이다.
그리고 이 전투로 획득한 코인과 경험은 그들을 더욱 강하게 만들 것이 분명했다.
“빨리 잡고 라면 먹자!”
상엽의 외침에 전사들이 함성으로 답하며 더욱 맹렬한 공격을 펼쳤다.
그렇게 시간이 흐를수록 인간 변종의 숫자는 빠르게 줄었고, 결국 도주하는 자가 발생했다.
“추격조 움직여!”
가장 발이 빠른 자들이 뒤로 물러나며 상엽이 전방으로 합류했다.
그동안 수십 번 반복한 상황이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상엽의 의도대로 움직였다.
그때부터 인간 변종들이 모두 쓰러질 때까지 변수가 발생하지 않았다.
“사하르! 끝내!”
마지막 남은 인간 변종이 사하르의 검에 목이 날아갔다. 사우디아라비아를 지배하던 본대가 전멸하는 순간이었다.
우와와!
지금까지와 달리 전사들은 하늘을 향해 함성을 질렀다. 그 안에는 그동안 참아 왔던 울분과 희열이 담겨 있었다.
상엽은 잠시 그들에게 시간을 주었다. 그렇게 함성이 잦아지자 사하르가 상엽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처음으로 무릎을 꿇었다.
“왜 이래?”
상엽의 만류에도 사하르는 허리를 굽히며 절을 했다. 신과 왕에게만 하는 인사였다.
사하르의 행동에 따라 다른 전사들도 일제히 무기를 내리고 절을 했다.
“감사합니다!”
전사들은 고개를 숙인 채로 일제히 소리쳤다. 그 소리는 조금 전의 함성과는 전혀 다른 감정이 담겨 있었다.
존경과 믿음.
상엽은 그 소리가 싫지 않았지만 그저 즐길 수만은 없었다.
“잔당 소탕이 남았어. 끝날 때까지 긴장 풀지 말고 전부 일어서.”
그의 명령에 전사들이 다시 일어섰다.
눈빛은 달라졌지만 당당하게 허리를 편 모습은 상엽에게 만족감을 주었다.
“역시 너희들은 이게 더 어울려. 무릎 같은 거 절대 꿇지 마.”
상엽의 말에 전사들의 믿음은 더욱 깊어졌다.
잔당 소탕이 시작되었다.
본대가 쓰러진 후에 인간 변종들은 도시를 버리고 흩어지기 시작했다.
상엽의 군대는 그중에서 집단을 집중적으로 노렸고 집요하게 추격전을 펼쳤다.
“이집트 국경에서 멈춰 있습니다.”
“이집트에서 더 이상 나서지 않기로 했나 봐?”
“오히려 코드 원과의 대화를 원하고 있습니다.”
이미 3개월 전부터 사우디아라비아에 다른 길드나 국가는 참여하지 않았다.
상엽이 이를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굳이 상엽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로 한 그들은 잔당 소탕에서도 먼저 양보하는 모습을 보였다.
“만나는 건 됐어. 그래도 예의를 보였으니 우리도 매너는 지켜야지. 국경을 넘어간 놈들은 포기해.”
상엽의 결정에 따라 잔당 소탕은 더욱 빠르게 진행되었다.
한 달간의 추격전이 펼쳐졌고 결국 이집트의 국경에서 마지막 전투가 벌어졌다.
앞뒤가 막힌 인간 변종들은 어느 때보다 강렬히 저항했지만 상엽의 군대를 막아 낼 수는 없었다.
그렇게 마지막 남은 지휘관이 상엽의 해머에 흩어지면서 사우디아라비아에서의 소탕 작전이 끝났다.
“모두 수고했어.”
예상과 달리 함성은 없었다. 오히려 전사들은 허무한 표정이었다.
‘그렇겠지.’
복수를 했고 영토를 되찾았다. 하지만 한 가지가 없었다.
‘사람.’
가족과 친구, 연인들은 단 한 명도 살아남지 못했다.
그들 중에는 변종으로 변한 친구를 본 자도 있었다. 하지만 감정을 숨기고 전투에 임했다.
그런 수많은 과정을 거쳐 목적지에 달했지만 그들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허무함과 허탈함.
그래서 함성을 지를 수가 없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묘한 감정이 남았다.
그 감정의 중심에는 상엽이 있었다.
“자, 라면이나 먹자!”
전사들은 이제는 익숙해진 라면 파티를 준비했다. 하지만 라면을 먹는 내내 분위기는 침울했다.
평소에는 맛있게 먹던 라면이 그날만큼은 그다지 즐겁지 않았다.
그렇게 그들만의 파티가 끝나자 상엽이 전사들이 앉아 있는 원의 중심으로 갔다.
“다들 인상 펴. 이제 사우디아라비아는 너희들 거야.”
상엽은 이 땅을 가질 생각이 없었다. 처음부터 그들에게 돌려줄 계획이었다.
“다른 나라로 떠났던 피난민들에게 너희들이 유일한 희망이야. 그러니까 희망에 어울리는 표정으로 살아.”
상엽의 말에 모두의 눈빛이 흔들렸다.
“저희들을 두고 떠나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결국 사하르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물었다.
“여기까지가 우리 약속이야. 잊었어?”
사하르는 할 말이 없었다. 다른 전사들도 마찬가지였다.
‘투정을 부릴 자격이 없다.’
상엽은 최선을 다했다. 그의 힘뿐만 아니라 시간을 들여 전사들을 성장시켰고, 코드 제로의 시스템까지 동원했다.
너무나 일방적인 도움을 받은 탓에 전사들은 불만을 가질 수가 없었다.
다만 진심은 말할 수 있었다.
“허락하신다면 전 함께하고 싶습니다.”
사하르는 사우디아라비아에 미련이 없었다. 사람이 없는 영토는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 살아 있는 사람 중에 가장 소중한 인연은 단연코 상엽이었다.
많은 전사들이 같은 의미를 담은 눈빛으로 상엽을 보았다.
-진심이에요.
성아까지 나서서 전사들의 편을 들어 주었다. 이에 상엽이 모든 전사가 들을 수 있도록 말했다.
“한 달. 내 군대가 되고 싶은 사람은 한 달 안에 곤명으로 와.”
상엽은 묘한 결정을 내렸다. 이에 루시가 곧바로 그의 곁으로 왔다.
“코드 원. 지금 받아들이셔도 됩니다.”
“그건 공정하지 않아.”
상엽은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전사들을 향해 말했다.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냉정하게 판단할 수 있는 시간이야. 지금 너희들은 이성이 아니라 감정으로 판단을 내릴 테니까 그 결정은 공정하지 않아. 분명히 말하지만 앞으로 나는 지금보다 더욱 힘든 싸움을 하게 될 테고 너희들은 그만큼 위험해질 거야.”
상엽은 모든 것을 솔직히 이야기했다.
“이성적으로 냉정하게 판단해서 미래를 결정해. 너희들이 어떤 결정을 하든 난 인정할 거야. 그리고…….”
그는 특유의 웃음을 지으며 마지막 말을 했다.
“죽고 싶어 환장한 놈들만 나한테 와.”
상엽의 진심은 명확히 전사들에게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