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3
상엽은 마지막 일격을 위해 20층 건물의 옥상에서 도약했다.
끝까지 버티던 지휘관이 드디어 그와 동일 선상에 섰고 가차 없이 해머를 휘둘렀다.
쾅!
그 한 방으로 전투는 끝났다.
1주일간의 혈투였다.
전사들 중에서 절반이 전투 불능이 될 정도로 부상을 입었다. 그나마 서두르지 않았기에 사망자가 발생하는 건 막을 수 있었다.
어차피 치료를 통해 회복을 할 테니 상엽은 어떻게든 목숨은 붙어 있는 상태에서 전사들을 피신시켰다.
그렇게 결국 상엽은 사망자 없이 전투를 끝냈다.
“후우.”
상엽에게도 쉽지 않은 전투였다. 신의 힘에 근접했지만 상대의 숫자나 전략이 워낙 좋았다.
그들은 인내심을 가지고 매복을 했고, 지휘관들이 날개를 숨겨 드러나지 않도록 했다.
게다가 상엽의 군대가 도시 안으로 들어오기를 기다렸다가 단숨에 포위망을 펼치기도 했다.
위기 때마다 유령 전사들이 희생을 하면서 활로를 찾았지만 그로 인해 다시 소환하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정리하자.”
마지막 지휘관을 처리한 상엽은 바닥에 떨어진 전리품 하나를 챙겼다.
인간 변종이 가진 전리품은 특별한 조각일 가능성이 크지만 지금은 전혀 기쁘지 않았다.
“일단 갇혀 있는 사람들부터 확인해.”
상엽의 명령에 따라 전투에는 합류하지 않았던 루시가 수용소로 들어갔다.
그동안 상엽은 남아 있는 잔당을 찾아 나섰고, 숨어 있는 몇몇을 성아에게 넘겼다.
“치료 코인 부족한 사람 있어?”
다행히 전사들 중에 치료가 불가능한 자는 없었다. 초반에 쓰러진 자가 없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각자 부족한 점을 느꼈을 거야. 보완하는 쪽으로 강화해. 필요하면 시간을 줄 테니까 블랙 상점에 다녀와도 좋아.”
전사들은 상엽의 지시에 따라 각자가 필요한 행동을 했다. 그런데 사하르는 다른 전사들과 달리 상엽에게 다가왔다.
“왜?”
“괜찮으신지 확인하고 싶습니다.”
“보다시피 멀쩡해.”
“알겠습니다.”
사하르는 진심으로 상엽을 걱정했다. 자신보다 얼마나 강하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만큼 상엽이 전사들의 마음에 깊이 자리를 잡기 시작한 것이다.
“빨리 다녀와! 시원하게 맥주 한잔할 거니까!”
상엽은 소소한 승리 파티로 그들의 지친 마음을 달래 주었다.
첫 중규모 도시 점령 이후, 상엽은 많은 것을 깨달았다.
“지휘관들은 하체를 공격해. 가능하면 발바닥으로 노리고 들어가.”
그가 찾아낸 지휘관들의 약점이었다.
“날개만 믿고 돌아다니니까 하체가 약해. 그리고 일반 변종들은 공격 성향이 강하니까 전투가 시작되면 의도적으로 물러서서 끌어들이든지, 일부러 약점을 노출시켜서 반격해.”
상엽은 자신의 노하우를 아낌없이 전수했다.
하루를 휴식일로 정한 상엽은 다시 다음 목표를 잡았다. 그런데 변수가 생겼다.
“목표 도시와 불과 20킬로미터 지점에 작은 마을 거점이 있습니다. 그런데 통메이 길드에서 여길 목표로 잡은 것 같습니다.”
“통메이?”
“청해에 기점을 둔 블랙 길드입니다. 얼마 전까지 우리가 포기한 사천을 두고 다툼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현재 중국 사천은 상엽이 관리를 포기한 상태였다. 이로 인해 몇몇 길드들이 다툼을 벌이는 중이었다. 통메이는 초반에 잠깐 끼어들었다가 지금은 사천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
그런 길드가 느닷없이 사우디아라비아에 나타나 코인 수집에 나선 것이다.
“일단 이동하자.”
상엽은 그들로 인해 계획을 변경하지 않았다.
다음 날 저녁.
상엽은 인간 변종이 점령 중인 도시에서 5킬로미터 떨어진 지점에 도착했다.
그런데 통메이 길드가 그의 신경을 건드렸다.
“그들이 더 이상 전진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보다 훨씬 먼저 도착했을 텐데.”
“아무래도 우리가 도시를 먼저 공격하길 기다리는 것 같습니다.”
통메이 길드는 상엽의 군대를 이용하고 있었다.
상엽이 큰 도시를 공격하면 당연히 마을 단위의 도시로는 지원군이 도착할 수 없었다.
오히려 마을 단위에서 큰 도시로 지원군을 보내는 상황이 되면 더욱 안전하게 공략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얄미운 자식들이네.”
“어떻게 할까요?”
“일단 내일 아침까지 기다려 봐. 우리도 시간이 필요하니까.”
상엽은 전사들을 마지막으로 점검했다.
“유령 전사들을 소환할 수 없는 상태야. 무슨 뜻인지 알지?”
목표는 소규모 도시였다. 지휘관 8명에 인간 변종은 300명가량이었다.
하지만 상엽 역시 32명의 뛰어난 전사를 소환할 수 없는 상태였다.
“내일 아침까지 할 수 있는 전부를 해. 새로 익힌 스킬이 있으면 수백 번 반복하고, 신체 강화를 했으면 익숙해질 때까지 움직여.”
상엽의 지시에 전사들은 군말 없이 바로 실행에 들어갔다. 어느 순간부터 상엽의 명령은 그들에게 절대적인 지침이 되어서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였다.
“루시. 너도 좀 쉬어.”
“전 괜찮습니다.”
“명령이야. 쉬어.”
“알겠습니다.”
상엽은 다시 시작될 전투를 앞두고 한 걸음 쉬어 가기로 했다.
다음 날 아침.
전투를 준비 중인 상엽의 군대로 다급히 달려오는 자가 있었다.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상태지만 그가 달려오는 속도는 엔진을 끝까지 밟은 자동차에 버금갔다.
그의 등장에 전사들이 먼저 반응을 하며 상엽의 앞에 일렬로 펜스를 만들었다.
마치 황제를 보호하는 친위대 같았다. 상엽은 이를 보고 그들을 뒤로 물리려 했지만 루시가 끼어들었다.
“그냥 두시죠. 그들이 코드 원을 존경한다는 표시입니다.”
“뭔 표시를 이렇게 거추장스럽게 해?”
상엽은 별로 원치 않는 배려였지만 루시의 말대로 그냥 지켜보았다.
빠르게 달려오던 이는 전사들이 막아서자 양팔을 들며 이동을 멈췄다.
“정상엽 님을 만나러 왔습니다!”
그는 거리를 두고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외쳤다.
“통메이 길드 같은데.”
“그런 것 같습니다.”
상엽은 고개를 끄덕여 그가 다가오도록 했다.
“무슨 일이야?”
“통메이 길드에서 지, 지원을 요청합니다! 부디 거절하지 마시고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사내는 그 말을 하며 품에 있던 유산과 유물 보관함을 꺼냈다. 그리고 내용물을 바닥에 늘어놓았다.
하나같이 가치가 높은 조각들이었다. 게다가 모두 합치면 60개가 넘었다.
“지원이라니? 기습이라도 당했어?”
“인간 변종 천 명에게 포위를 당한 상태입니다! 도와주지 않으시면 저희들이 전멸할지도 모릅니다.”
“그래?”
상엽은 전혀 놀라지 않았다.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밤에 루시를 통해 한 가지 보고를 받았다.
-도시의 병력들이 동쪽으로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동쪽은 통메이 길드가 주둔 중인 곳이었다.
-지금 쫓아가지 않으면 놓칠지도 모르겠습니다. 알 수 없는 스킬로 움직임을 숨기고 있어서 코드 제로에서도 겨우 알아낸 상태입니다.
그 말을 들은 상엽은 간단히 명령을 내렸다.
-그냥 내버려 둬.
상엽은 일부러 지금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제 와서 구해 주는 건 내가 너무 위선자 같아서 말이야. 그냥 돌아가. 바닥에 있는 쓰레기는 잘 챙기고.”
“네? 같은 블랙 유저끼리…….”
쾅!
상엽은 그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았다.
“같은 편인 걸 아는 놈들이 내가 먼저 위험해지길 기다리고 있었어? 쥐새끼처럼 내가 차린 밥상을 노렸으면, 뒤처리 정도는 직접 해야지.”
상엽은 떨고 있는 그에게 쐐기를 박았다.
“실력이 없으면 오지 말았어야지.”
결국 목숨을 걸고 여기까지 온 사내는 치욕스러운 표정으로 몸을 일으켰다.
“할 말 있어도 꾹 참고 꺼져. 한 마디만 더 하면 그냥 죽여 버릴 테니까.”
사내에겐 화를 풀 작은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상엽은 자신의 말과 달리 통메이 길드가 전투를 벌이는 곳으로 다가갔다.
“절대 싸우지 마. 우린 기회를 노리다 기습할 거야.”
그는 통메이 길드가 그랬던 것처럼 상대의 위기를 이용하기로 했다.
“통메이가 전멸했을 때가 기회야. 마지막 한 놈이 꽤 버틸 거라서.”
통메이의 길드장은 랭킹 30위권의 실력자였다. 상엽은 그가 죽을 때까지 싸우도록 내버려 둘 생각이었다.
“이번 싸움은 쉽게 끝낼 수 있겠어. 게다가 목표도 많아졌고.”
상엽은 철저히 아군만 생각하며 은밀히 걸음을 옮겼다.
전투는 예상대로 흘렀다.
통메이 길드는 포위망을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서 결사 항전을 벌였다.
그래도 꽤나 강한 힘을 가진 길드였고 오랫동안 버티면서 상대의 숫자를 절반으로 줄였다.
하지만 그때부터가 문제였다.
지휘관들이 본격적으로 나서면서 방어선이 무너져 버렸고 난전이 펼쳐졌다.
통메이 길드가 무너진 것도 그때였다.
“아직이야. 기다려.”
상엽은 그들의 죽음을 보면서도 구해 줄 생각이 없었다.
“지금 나서면 우리도 죽어.”
개방된 공간에 지휘관만 20명이 있었다. 게다가 독기가 바짝 오른 인간 변종만 5백 명이 넘었다.
상엽은 냉정하게 상황을 파악하며 더욱 몸을 낮췄다. 그렇게 이어진 전투는 결국 길드장만 남는 상황까지 흘렀다.
랭킹 35위 유저답게 그는 지휘관 다섯 명을 처리하고 인간 변종 100명을 추가로 소멸시켰다.
하지만 그의 몸에도 깊은 상처가 남았다.
“조금 더.”
상엽은 그때까지도 전장에 뛰어들지 않았다. 결국 길드장이 마지막 힘을 짜내며 지휘관 세 명을 추가로 처리했을 때, 상엽이 몸을 일으켰다.
“외곽에서 등을 보이는 녀석들을 처리해. 절대 내부로 들어가지 마.”
명령을 내린 상엽은 지옥마를 소환해서 전장에 뛰어들었다.
지옥마의 힘찬 울음소리는 통메이 길드장에게 희망을 주었다. 이 때문인지 그는 절망이 사라진 자리에서 생겨난 힘으로 버티기에 들어갔다.
지휘관들은 상엽이 뛰어들자 병력을 분산시켜 작전을 바꾸려 했다.
“뭐 그렇게까지.”
상엽은 인간 변종들의 움직임을 보며 지옥마의 방향을 틀었다.
츠팟!
그의 몸에서 망자의 손길이 길게 뻗어 나왔고 지옥마는 철저히 상대의 외곽을 돌았다.
여유가 있음에도 중앙으로 파고들지 않은 것이다.
이를 본 지휘관들은 먼저 통메이 길드장을 처리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판단을 내렸다.
상엽이 뛰어들기 직전에 한 명이라도 강한 적을 줄여야 하는 것이다.
“정상엽!”
지휘관의 의도를 눈치챈 통메이가 전장의 소음을 이겨 낼 정도로 크게 외쳤다.
“어쩌라고?”
상엽은 그의 외침을 무시했다.
통메이 길드장이 끝까지 버티는 동안 인간 변종의 숫자를 150명까지 줄였고 나머지는 전사들에게 맡겼다.
그리고 기다리던 순간이 왔다.
푹!
마지막 일격을 날리려던 통메이 길드장의 몸에 지휘관들의 스킬이 꽂혔다.
그 순간, 상엽이 지휘관들을 향해 뛰었다.
콰콰쾅! 챙!
폭음과 날카로운 금속음이 연속으로 울렸다.
통메이 길드장을 처리한 것에 성취감을 느끼던 지휘관들은 절묘한 타이밍에 파고든 상엽의 기습을 막아 내지 못했다.
무려 여섯 명이 폭발과 망자의 손길에 의해 쓰러졌고, 뒤늦게 알아차린 지휘관의 머리는 지옥마의 강력한 턱에 부서져 버렸다.
남은 지휘관은 겨우 둘.
상엽은 남은 둘을 추격하려 했다. 그런데 그 순간까지도 통메이 길드장은 쓰러진 채로 숨을 쉬고 있었다.
만신창이가 되어 몸 곳곳에서 피가 새어 나왔지만 그의 심장은 악착같이 움직이며 숨을 쉬게 했다.
“제발…….”
그에겐 아직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상엽은 그를 살리기보다 두 명의 지휘관을 추격했다.
두 명의 지휘관은 등을 보이며 도주했지만 평소처럼 멀리 날아오를 수가 없었다.
이미 긴 싸움을 통해 지친 상태였고 부상까지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상엽의 컨디션은 다시없을 만큼 좋았다.
애초에 경쟁이 되지 않는 추격전이었다.
쾅!
결국 상엽의 해머가 지휘관의 머리를 깨트렸다. 그리고 남은 한 명의 날개를 꺾고 함께 바닥으로 추락했다.
으득!
먼저 자리에서 일어난 상엽은 지휘관을 움직일 수 없게 만든 뒤에 성아를 불렀다.
“필요해?”
“네.”
상엽은 성아에게 마지막 지휘관을 넘겨주고 전사들의 싸움을 확인했다.
“훌륭해.”
다행히 큰 변수 없이 마무리가 될 듯했다.
“사, 살려 줘…….”
통메이 길드장은 그때까지도 악착같이 생명 줄을 잡고 있었다.
“끈질기네.”
상엽은 귀찮다는 듯이 그에게 다가갔다.
“살려…….”
“애쓰지 마.”
상엽은 냉정한 표정으로 그를 내려다보았다. 그 눈빛을 마주한 길드장은 자신의 운명을 예감할 수 있었다.
“네가 하려던 거잖아. 그걸 내가 했을 뿐이야.”
이용하려다가 오히려 이용을 당한 통메이 길드장은 변명을 하고 싶었지만 그럴 힘조차 없었다.
“고통은 덜어 줄게.”
푹.
그의 심장이 드디어 쉴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