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2
도지연은 상엽이 선택할 수 있는 신들에 대해서 간단한 설명을 했었다.
그런데 상엽은 사우디아라비아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더욱 상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성아가 있었지.’
전직 진실의 신이 그의 곁에 있었다. 상엽은 비행기 안에서야 그 사실을 깨닫고 성아를 불렀다.
“50명의 신에 대해 들었지?”
“네. 기억하고 있어요.”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은데.”
“그것보다 먼저 알려 드리고 싶은 게 있어요.”
성아는 지금까지의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이야기를 꺼냈다.
“50명의 신들은 전부 오메가급이에요.”
“오메가?”
“인간의 언어로는 알파, 베타, 감마, 델타, 마지막이 오메가. 본래는 입실론이 되어야 하지만 초보 신이라는 의미에서 가장 마지막 문자인 오메가로 불렀어요.”
“그러니까 50명이 전부 오메가급이라는 거지?”
“맞아요. 신들의 전쟁 초기에 가장 먼저 제거된 신들이죠. 50명 모두 오메가급이었어요.”
신들에게도 계급이 있었다.
“무슨 공무원 등급 같네.”
“비슷해요. 높은 등급일수록 적으니까요.”
상엽은 일단 신의 계급에 대한 개념을 명확히 잡았다.
“그럼 오메가 중에서 옥석을 고르는 게 더 중요해졌네.”
성아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지 모르겠어요.”
“이제 차차 알게 되겠지. 그보다 50명이 어떤 신이었는지 말해 줄래?”
“네. 제가 기억하는 건 전부 말해 드릴게요.”
성아의 설명으로 인해 사우디로 돌아가는 길이 지루하진 않았다.
“음.”
50명에 대한 설명이 모두 끝났을 때, 상엽은 여러 가지 생각에 빠졌다.
그러다 두 명에 대해서 다시 물었다.
“카이아와 무탄. 두 신에 대해서 다시 말해 줄래?”
“설마 그들을 염두에 둔 건가요?”
성아는 상엽의 선택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카이아와 무탄은 가장 극단적인 파괴 본능을 가진 신들이었어요. 그래서 제일 먼저 전쟁에서 제거되었죠.”
“어느 정도였어?”
“고통의 신 카이아, 파괴의 신 무탄. 카이아는 고통과 죽음을 숭배하는 신으로 전쟁에서 상대 신뿐만 아니라 신도들까지 잔인하게 죽였어요. 거대한 낫을 사용하고 고통을 유발하는 다양한 능력을 지녔어요.”
“무탄은?”
“무탄은 파괴의 신이지만 많은 신들에게 멍청한 신이라고 불리기도 했어요. 지능이 낮고 순수해서 신도들에게조차 이용을 당했죠. 게다가 화가 나면 적군과 아군을 구별하지 못하고 전부 파괴하는 걸로 유명했어요.”
“무기는?”
“워해머. 당신과 같아요.”
그 말을 들은 상엽의 표정에 웃음이 떠올랐다.
“그를 선택해선 안 돼요.”
“왜?”
“방어 능력이 전혀 없어요. 오직 파괴에만 집착하는 신이었으니까요. 평화가 유지될 때는 신이라는 신분이 그를 지켜 주었지만 전쟁에서는 제일 먼저 죽었어요. 가장 많이 죽일 수도 있지만 제일 먼저 죽는 신이기도 하죠.”
“괜찮아. 마음에 들어.”
상엽이 무탄이라는 이름을 깊이 새기자 성아는 다시금 그를 말리려 했다.
“걱정 마. 나도 내 목숨이 소중한 걸 아니까. 일단 생각만 해 두는 거야. 나한테 계획이 있거든.”
성아는 상엽을 차분히 주시했다.
“진실이군요. 정말 계획이 있네요.”
“내가 좀 특이한 놈이거든.”
상엽이 그 말을 할 때, 비행기는 사우디 국경 근처로 하강하기 시작했다.
상엽은 당분간 사우디아라비아에서의 인간 변종 사냥에 집중하기로 했다.
‘어차피 코인이 필요해. 이런 기회는 다시없어.’
코인을 가장 빠르게 많이 모을 수 있는 기회가 사우디아라비아에 있었다.
“코드 원. 전사들 간의 실력 격차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코인 때문인가?”
“그렇습니다.”
휴식이 끝나고 다시 전장으로 들어가려 할 때, 루시가 현재의 문제점을 언급했다.
‘화이트와 블랙이었지.’
현재 인간 변종들은 화이트 코인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블랙 유저는 코인을 획득할 수 있지만 화이트 유저는 아무런 이득이 없는 것이다.
처음에는 전투 경험이 함께 늘어나면서 격차가 뚜렷하지 않았지만 이젠 아니었다.
블랙 유저는 빠르게 성장하는 반면, 화이트 유저는 제자리걸음이었다.
“유물과 유산으로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현재까지 인간 변종을 처리하고 획득한 조각은 겨우 3개였다. 그것도 유산 조각이 2개라서 화이트 유저에게 나눠 줄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일단 성장해야 돼.’
전투 경험이 쌓이면서 본신의 힘을 전부 발휘하는 데에는 익숙해진 상황이었다.
“루시. 그들을 동물 변종 사냥터로 보내야겠어.”
“그렇다면 아랍 에미리트가 가장 좋을 듯합니다. 국경을 맞대고 있고, 정치적으로 협상을 시도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직 합류하지 않은 전사들을 끌어들이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루시는 상엽의 판단을 예상했는지 이 부분에 대해서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루시만 믿고 가면 되겠어.”
상엽은 진한 믿음을 웃음으로 표현하며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곧바로 10명의 화이트 유저를 불러들인 상엽은 그들의 의견을 물었다. 새로 합류한 자들은 다행히 블랙 유저라서 해당이 되지 않았다.
“지금부터 내가 말하는 제안을 거절해도 좋아. 그러니까 일단 끝까지 들어.”
그는 자신의 판단을 그들에게 전했다.
“여기는 동료들에게 맡기고 너희들은 아랍 에미리트의 동물 변종을 사냥해. 지금은 성장을 하는 게 우선이야. 그래야 되찾은 영토를 지킬 수 있어.”
10명의 전사들도 이미 이 문제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바로 옆에 있는 동료들이 빠르게 성장하는 걸 직접 보았기 때문이다.
“하겠습니다.”
그들은 상엽의 제안을 고민 없이 받아들였다.
“꼭 훌륭한 전사가 되어 돌아오겠습니다.”
기본적으로 그들은 이대로는 팀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오히려 상엽의 제안이 그들에겐 선명한 길이 된 셈이다.
“살라.”
“네.”
상엽은 10명의 화이트 유저 중에 가장 동료들의 신뢰를 받는 자를 불렀다.
“이제 화이트 유저 중에서는 네가 팀장이야. 뭘 해야 할지 알고 있지?”
“알고 있습니다.”
“한 명도 죽으면 안 돼. 전부 살아서 돌아와.”
10명의 화이트 유저는 그렇게 별동대가 되어 잠시 팀에서 이탈했다.
“유령아. 너 출장 좀 가자.”
-저 없이 괜찮으시겠습니까?
“당연히 안 괜찮지. 그래도 네가 가야 내가 안심이 될 거 같아.”
-저만 믿으시면 됩니다.
“그래. 난 항상 너만 믿어.”
상엽의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추종자는 가슴을 펴더니 화이트 전사들 곁으로 이동했다.
-신입. 주인님 잘 모셔라.
추종자는 신입에 대한 경고도 잊지 않았다.
32명의 유령 전사, 15명의 사하드 전사.
성아, 지옥마까지 합치면 정확히 49명이 상엽의 명령을 따랐다.
“인간 변종이 점령하고 주둔 중인 도시는 총 84개입니다. 마을 규모는 제외한 수치입니다.”
지휘관 1명에 인간 변종이 100명 이하인 지역은 마을 규모로 정했다.
이런 장소까지 합치면 인간 변종이 점령 중인 도시는 150개에 육박했다.
“평균 5천만 코인으로 잡아도 50억 코인은 넘겠어. 그럼 내가 획득할 수 있는 건 25억 정도네.”
“중앙으로 갈수록 대규모 도시가 많아서 모두 처리할 경우, 70억이 넘을 것 같습니다. 코드 원이 획득할 수 있는 코인은 35억 코인 규모입니다.”
상엽과 달리 루시는 더욱 정확한 계산을 마친 상태였다.
“1만 명 이상이 머무르는 대도시 5곳이 있습니다. 지휘관까지 합치면 획득할 수 있는 코인만 6천만 코인이 넘습니다.”
계산만으로는 장밋빛 미래가 펼쳐져 있는 것 같지만 그만큼 험난한 과정이 될 것이라는 방증이었다.
“황금박쥐 그 자식은 아직이야?”
“네. 조용합니다.”
“그럼 좀 시끄럽게 만들어 줘야지. 출발하자.”
상엽은 코인 수집이라는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사우디아라비아로 다시 진입했다.
두 개의 도시를 무사히 소탕하고 다음 지역으로 이동할 때였다.
‘4천만 코인.’
소규모 도시였지만 획득한 코인은 결코 적지 않았다. 게다가 전사들이 처리한 변종들도 있었다.
전사들은 휴식 기간 동안 루시와 함께 결정한 사안에 따라 빠르게 성장을 시작했고, 상엽도 탄력을 붙였다.
동쪽의 아랍 에미리트를 기점으로 상엽은 남쪽의 도시를 먼저 정리했고 열흘 만에 7개의 도시를 소탕하는 결과를 이뤄 냈다.
보유 코인이 1억을 넘어섰고 전사들은 더 이상 상엽이 도와주지 않아도 스스로 몫을 충분히 해냈다.
“자. 이제 중앙 쪽으로 갈 시간이네.”
사우디아라비아의 남쪽과 서쪽은 중앙에서 가장 먼 도시들이었다.
이제 상엽은 중앙으로 방향을 잡았다.
“이제 그 녀석도 반응을 할 텐데.”
본격적인 토벌전은 지금부터였다.
상엽의 군대가 처음으로 중규모 도시를 목표로 잡았다.
지휘관만 20명에 인간 변종은 2천 명 수준이었다. 중앙으로 향하는 남쪽에서는 가장 큰 도시였고 이미 방어 태세도 갖추고 있었다.
“지원군이 오고 있습니다.”
주변 도시의 변종들이 지원까지 오는 상태라 무작정 들어갈 상황이 아니었다.
그런데 불쾌한 보고는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이집트의 블랙 길드가 서쪽으로 진입했습니다.”
“뭐?”
이집트는 요르단과 함께 사우디아라비아의 서쪽에 있는 국가였다.
이집트는 아프리카에서는 손꼽히는 강대국이었고, 경제 사정이나 군사력도 압도적이었다.
그들이 속한 길드 역시 많은 지원을 받으며 성장했고, 아프리카 전체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인간 변종들의 다음 목표가 될 테니 가만히 있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들로서는 분명한 명분이 있었다. 하지만 상엽은 시기가 못마땅했다.
“내가 흔들어 주니까 숟가락을 내밀겠다는 건데.”
지금까지 방어만 하던 그들이 공격을 했다는 것은 현재 상황을 기회로 여기는 것이다.
“욕하기도 애매하고, 그냥 넘어가기는 짜증 나고.”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그래. 난 일단 여길 처리해야 하니까.”
상엽은 불쾌한 감정을 억누르고 중규모 도시에 집중했다. 그런데 얼마 되지 않아 루시에게 또 다른 정보가 들어왔다.
“또 다른 블랙 길드들이 접근하고 있습니다.”
“이것들이 코인 냄새를 제대로 맡았네.”
사우디아라비아에 얼마나 많은 코인이 있는지를 모르는 집단은 없었다.
다만 위험성이 워낙 커서 도전하지 못했을 뿐이다.
그런데 상엽이 공략을 시작하자 이것을 기회로 여긴 것이다.
“지원군만 없어도 소규모 도시는 할 만할 테니까.”
상엽이 시선을 끌어 주었기에 그들이 접근할 수 있는 것이다.
“꼭두각시가 된 것 같은데.”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일단 여길 공략하고 생각해 보자. 절대 내가 그 녀석들을 도와주는 일은 없을 거야.”
“저도 그렇게 준비하겠습니다.”
상엽은 드디어 도시 공략을 시작했다.
3일 동안 수십 번의 작전이 펼쳐졌고 50번에 달하는 기습이 이루어졌다.
상엽이 홀로 움직인 작전이 많았지만 이에 대비하는 걸 역이용해서 전사들이 나서기도 했다.
그들의 첫 목표는 지원군 차단이었고 여기서 대규모 전투가 벌어졌다.
작전으로 처리하기에는 상대의 대응이 너무 철저했기 때문이다.
결국 지원군과의 대규모 전투가 벌어졌고 전사들 세 명이 큰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
그나마 상엽이 나서서 목숨을 건졌지만 이 때문에 지원군을 전멸시키진 못했다.
하지만 상엽은 후퇴한 그날 밤에 홀로 2차 공격에 나섰다.
예상치 못한 습격에 지원군은 당황했고, 혼란을 틈타 전사들이 다시 합류하면서 전세는 완전히 기울어졌다.
첫 목적을 달성한 상엽은 멈추지 않고 도시 흔들기에 들어갔다. 지옥마를 타고 도시 내부 상황을 직접 보는 것이 목표였다.
아직 직접 싸움을 하기에는 지휘관급이 너무 건재했기 때문이다.
‘2명만 잡고 간다.’
상엽은 애초에 지휘관 두 명을 목표로 잡고 도시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그 목표를 달성하기도 전에 충격적인 장면을 보고 말았다.
“미친 새끼들.”
울타리 안에 갇혀 있는 1만 명의 인간을 본 것이다. 이들은 도시 중앙에 설치된 철책 안에서 노예처럼 생활했다.
-생산 공장이에요.
성아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 생산 공장이라니.”
그들은 인간의 수를 유지하기 위해 가임기의 여성과 젊은 남성들을 붙잡아 놓은 것이다.
때문에 대부분의 여성들은 원치 않는 임신을 한 상태에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인간 변종에게 그들은 동족이 아니라 그저 가축일 뿐이었다.
“개새끼들. 내가 반드시 그대로 돌려준다.”
상엽은 이를 갈며 도시를 빠져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