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코인-191화 (189/300)

# 191

목표로 했던 코인이 모였다.

상엽은 도시 하나를 더 점령한 뒤에 전사들에게 휴식을 명령했다.

일부러 사우디아라비아를 벗어난 지역까지 움직이도록 했고, 루시를 통해 중간 점검을 지시했다.

꽤 오랜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라 하루 정도는 쉬기로 결정을 하는 바람에 상엽에게도 시간이 생겼다.

“다녀올게.”

상엽은 미루지 않고 강화를 위해 일본으로 넘어갔다.

* * *

“감각 10단계.”

최상급 블랙 상점의 3번째 목록이 최고 강화 수치로 올라갔다.

“대단하시군요. 신의 상점으로 가실 수 있는 자격을 얻으셨습니다.”

본래 따뜻한 인상으로 친근감을 표시하던 일본의 목수 블랙 상점이 허리까지 숙이며 경의를 표했다.

“제일 가까운 신의 상점은 어디인가요?”

“5급 신의 상점은 단 5명뿐입니다. 그중의 한 명만 선택하실 수 있습니다.”

신의 상점은 5급을 시작으로 1급까지 존재했다. 그런데 상엽이 예상하는 방식이 아닌 듯했다.

“5명은 다 같은 상점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5명은 모두 다른 신의 상점이며, 5급에서 단 한 명만 선택하실 수 있습니다.”

정리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신의 상점은 5명이며 그들은 모두 다른 목록을 팔고 있었다. 그런데 상엽은 단 한 명만 만날 수 있었다.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이다.

“기준을 알려 주세요.”

“그 이야기는 다른 상점이 해 줄 것입니다. 처음 만난 블랙상점을 찾아가시면 됩니다.”

상엽은 기억을 더듬어 가장 먼저 만났던 블랙 상점을 떠올렸다.

‘도지연.’

정신과 의사 도지연이었다.

상엽이 본 어떤 여자보다 취향이 독특한 인물이었다.

‘변태…….’

상엽에겐 이 단어로 기억되어 있었다.

“제가 해 드릴 수 있는 말은 여기까지입니다.”

“좋아요. 다음에 봬요. 아직 강화가 남았으니까.”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상엽은 신의 상점으로 가는 자격을 얻고 일본을 떠났다.

도지연은 상엽을 보자 전쟁터에서 살아 돌아온 남편을 맞이하듯 눈물까지 흘리며 기뻐했다.

“드디어 왔군요.”

여전히 도도한 이미지에 깔끔한 의사 가운을 입은 그녀는 상엽의 얼굴을 만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격하게 환영해 주니 반갑네요.”

“제 눈이 틀리지 않았어요. 당신이 꼭 돌아올 거라 믿었어요.”

최하급 블랙 상점의 경우, 강화 목록이 간단해서 대부분 한 번 지나가면 다시 돌아올 일이 없었다.

“저도 여기 다시 올 줄은 몰랐어요.”

“그래서 실망인가요?”

“그럴 리가요. 제 첫 키스 상대인데.”

상엽의 대답에 도지연의 눈빛이 변했다. 깊고 매혹적인 눈빛이었다.

여전히 눈물 자국이 남은 얼굴이라 그 모습이 더욱 매력적으로 보였다.

“고향에 돌아온 걸 환영해요.”

도지연은 뒤꿈치를 들며 상엽에게 입을 맞췄다.

“역시 피하지 않네요.”

“제가 그동안 많이 배웠거든요.”

상엽은 멀어지는 그녀의 얼굴을 잡고 다시 끌어당겼다. 그리고 그녀가 했던 것보다 훨씬 진하고 긴 키스를 선물했다.

“후우. 정말 훌륭히 성장했네요.”

도지연의 볼이 살짝 달아올랐다. 상엽은 이에 그치지 않고 그녀를 다시 안았다.

“제 키스가 예전에 비해 많이 비싸졌어요. 몸값이 많이 올랐거든요.”

“그럼 대가를 지불해야겠네요.”

“지금은 아니에요. 이자까지 붙여서 나중에 청구할 테니 일단 상점 이야기부터 해 볼까요?”

도지연은 아쉬운 표정으로 상엽의 옆구리에 감긴 손에 힘을 주었다.

그녀의 손톱이 살짝 상엽의 피부를 긁었고 상엽이 따끔거리는 느낌에 반응을 보이자 도지연의 입가에 웃음이 걸렸다.

“제가 고통을 즐긴다는 거 잊지 말아요.”

“전 아픈 게 별로라서요. 제 스타일대로 할게요. 그게 싫으면 빚은 없는 걸로 해요.”

상엽은 자신의 취향을 분명히 말했다. 하지만 도지연은 전혀 문제 되지 않는다는 반응이었다.

“오해하지 말아요.”

“뭘요?”

“전 당하는 쪽을 더 즐겨요. 특히 거칠게 당하는 걸 좋아하죠.”

상엽은 그 말에 묘한 소름이 끼쳤다. 마치 달아오른 고양이처럼 색기를 뿌리며 하는 말에 잠시 사고가 정지할 정도였다.

‘이길 수가 없어.’

나름대로 준비를 많이 하고 왔지만 도지연은 상엽보다 한 수 위에 있었다.

‘다시 초짜가 된 것 같잖아.’

상엽은 더 이상 그녀에게 반항하지 않기로 했다.

“그게 뭐든 최선을 다할게요. 약속해요.”

도지연은 상엽을 소파에 앉히고 상담을 하는 의자처럼 차트 같은 서류를 내밀었다.

“이걸 쓸 수 있다니. 고마워요.”

신의 상점을 보여 주는 것은 도지연에게도 특별한 경험이었다.

상엽은 그녀가 내민 서류를 보았다.

서류는 투명한 종이에 빛이 모여 있는 것 같은 특이한 형태였다.

이를 잡는 순간, 상엽의 주변으로 수십 개의 텍스트들이 떠다녔다.

배경은 검은 우주로 변했고, 불규칙하게 떠돌던 텍스트들은 한순간 빛을 뿌리며 별처럼 검은 공간에 박혔다.

“오프닝이 멋지네요.”

그 말을 할 때, 상엽이 서 있는 우주의 한쪽에 다섯 개의 텍스트가 떠올랐다.

파괴.

철벽.

혼란.

지배.

환락.

다섯 개의 텍스트는 수많은 빛을 머금은 채로 거대한 태양처럼 떠 있었지만 상엽은 바로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도지연의 목소리가 들렸다.

“각 메뉴에는 열 명의 신이 봉인되어 있어요.”

각 메뉴당 10명.

총 50명의 신이 봉인되어 있었다.

“당신은 이 중에 오직 하나의 항목만 선택할 수 있고, 그 안에서 최소한 한 명의 신을 완성하면 다음 상점으로 가거나 또 다른 항목을 선택할 수 있어요.”

무엇이든 하나를 선택하면 완성되기 전에 변경은 불가능하다는 뜻이었다.

“누가 있는지 미리 볼 수 있어요?”

“각 항목에 어울리는 신들이 있어요. 원한다면 제가 설명을 해 드리죠.”

항목은 그 신의 성향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그런데 상엽이 메뉴를 직접 조작하는 건 불가능했다.

“전 당신의 조력자일 뿐, 신의 상점이 아니에요. 당신이 결정 내리면 직접 그를 찾아가야 해요.”

5급 신의 상점은 다섯 명뿐이었다.

다섯 가지 항목당 한 명만 존재하는 것이다. 최초의 블랙 상점이 조력자가 되어 충분히 설명을 들은 뒤에 직접 찾아가는 방식이었다.

“신중하게 선택해요. 하지만 너무 오래 끌진 말아요. 다른 사람이 먼저 선택하면 기회가 없으니까.”

“무슨 뜻이야?”

상엽은 예상치 못한 설명에 반말을 하고 말았다. 그런데 도지연은 오히려 이런 말투가 마음에 든 듯, 더욱 정중하게 말했다.

“신의 상점의 신은 단 한 명만 선택할 수 있어요. 다른 사람이 선택을 하려면 먼저 선택한 사람을 죽여야 해요.”

메뉴가 독점이라는 뜻이다.

간단히 말해서 5급 블랙 상점을 동시에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은 50명뿐이었다.

누군가 소멸하면 다시 기회가 생기는 것이다.

“지금까지 몇 명이나 신의 상점을 연 거야?”

“그건 저도 몰라요. 전 오직 당신에게 집중할 뿐이에요.”

“신의 상점에서도 코인을 쓰는 거야?”

“물론이에요.”

현재 상엽에는 겨우 2만 코인이 남아 있는 상태였다.

“이걸로는 어차피 의미가 없겠어.”

지금까지 경험으로 봐서 꽤 많은 코인이 필요할 듯했다.

“일단 오늘은 설명을 듣는 거까지만 할게.”

“그래요.”

도지연은 그때부터 긴 설명을 시작했다.

신에 대한 소개 같은 설명은 상엽이 원하는 만큼 상세하진 않았다.

“혼란 항목에 있는 타레드는 공포의 신이에요. 본연적인 공포를 이용해 많은 생명체들을 지배하죠. 양 끝이 초승달처럼 휘어진 창을 사용하고 공포를 먹고 성장하는 식물로 신전을 지을 수 있어요. 공포에 반응하는 애완견들을 길들일 수도 있고요.”

대략적으로 유추가 가능한 설명뿐이었다.

상엽은 오랜 시간을 들여 50명 신에 대한 이야기를 모두 들었다.

“두 명의 힘을 살 수도 있다는 거지?”

“하나의 신을 완성하면요. 하지만 완성이 쉽지는 않아요. 만약 완성을 하면 다른 신의 능력을 살 수도 있고, 다음 상점으로 갈 수도 있죠. 말했다시피 한 명을 선택하면 완성하기 전까진 취소도 할 수 없어요.”

확실한 선택이 필요했다.

“일단 알았어.”

“설명이 다시 듣고 싶으면 언제든 불러요. 제가 당신 곁에 나타날 테니까.”

“이제 소환도 가능한 거야?”

“물론이죠. 당신은 그만큼 특별하니까요.”

도지연은 상엽의 어깨에 팔을 걸치고 속삭이듯이 말했다.

“좀 더 함부로 말해 줄래요? 예전보다 훨씬 나아졌지만 아직 부족해요.”

“응? 응. 그, 그래…….”

도지연은 얼떨결에 대답하는 상엽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상엽은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하며 얼른 상점을 나섰다.

사우디아라비아로 가기 위해 상엽은 박광신이 마련해 준 전용기에 올랐다.

올 때는 그레이 상점 소환권을 이용해 간편하게 이동할 수 있지만 갈 때는 루트가 달랐다.

사우디아라비아 근처에 등록된 그레이 상점이 없으니 비행기를 타는 것이 필수였다.

“왜 여기까지 나왔어?”

“얼굴이라도 뵙고 싶어서 왔습니다.”

박광신의 배웅을 거절했는데 뜻밖의 인물이 왔다.

대한민국 최고의 인기를 다투는 사공강이었다. 그런데 그와 인사를 겨우 나눴을 뿐인데 다른 이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잠시 시간을 좀 주세요.”

나타난 이는 성아였다. 갑자기 나타난 성아를 보며 사공강이 가장 먼저 놀랐다.

“내 수호신이야.”

“완성하셨군요. 축하드립니다.”

사공강은 성아의 모습에서 좀처럼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러다 뒤늦게 자신의 시선을 인지하고 고개를 저었다.

“죄송합니다.”

“나도 처음에는 그랬어. 괜찮아.”

상엽은 당연한 반응이라 생각하며 성아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야?”

“그의 수호신과 만날 수 있을까요?”

“그건 나한테 물어볼 말이 아닌 거 같은데.”

성아는 사공강에게 수호신이 있음을 알아봤다. 그러자 사공강이 잠시 눈을 감았다.

“그렇게 대화하는 거야?”

“아직은 익숙하지 않아서 말입니다.”

상엽은 그에게 시간을 주었고, 사공강은 천천히 눈을 떴다.

‘그 녀석이네.’

사공강의 수호신은 소환으로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다. 빙의처럼 사공강의 몸을 통해서만 나타날 수 있었다.

이는 수호신이 되는 방식에 대한 차이였다.

“위험한 방법이 성공했군.”

“그만큼 가치가 있으니까요.”

성아의 방식이 더욱 위험했던 걸 상대도 인정했다.

“알아낸 게 있나요?”

“별로. 아직 수호자의 성장이 더 필요해서.”

“제가 진실의 신인 걸 잊은 건 아니겠죠?”

성아는 눈빛으로 압박을 했다. 그러자 상대는 불쾌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내가 대답할 의무는 없을 텐데.”

“인정해요. 그럼 제가 먼저 말해 드리죠. 우리끼리 견제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사공강의 수호신은 성아의 정보를 먼저 들었다.

“인간 변종이라 부르는 타락한 신도들을 조사했어요. 그들은 진짜가 아니에요.”

“무슨 뜻이지?”

“신의 군대였어요. 타락한 신도처럼 개조된 신의 군대. 누군가 일부러 타락한 신도를 만들어 냈어요.”

성아는 인간 변종을 사냥하는 동안, 계속해서 이 부분을 조사했다.

“이제 당신 차례인 거 같군요.”

“그레이 상점. 그들은 과거에 모두 죽었던 자들이다. 신의 힘으로 보호받는 것은 상점이라 불리는 결계 지역뿐이다.”

“죽일 수도 있다는 건가요?”

“그럴 거라 예상한다. 그리고 상점도 코인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코인을 모으는 방식은 밝혀내지 못했다.”

그들의 정보 교환은 여기까지였다.

‘상점이 코인을 모은다고?’

상엽은 뜻밖의 말을 듣고 머리를 굴렸다. 그러다 한 가지 기억이 떠올랐다.

-널 고객님으로 부르게 하지 마. 너한테 말할 수 없지만 나도 장사는 해야 되거든

레나가 한 말이었다. 상엽이 다른 상점에서 강화를 하자 섭섭한 감정을 그대로 표출했었다.

‘설마 코인을 소모시키면 일정 부분을 습득하는 건가?’

지금으로서는 가장 합리적인 예상이었다.

수호신들의 대화가 끝나자 성아는 상엽의 몸으로 돌아왔고 사공강은 다시 특유의 친절한 말투로 인사를 건넸다.

“왠지 같은 팀이 된 것 같아서 좋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하네요.”

“같은 팀 맞아.”

상엽은 이미 친해진 사공강에게는 너그러운 기준을 적용했다.

“더 분발해. 아직 멀었어.”

“네. 알겠습니다.”

“그럼 조심해.”

상엽은 인사를 하고 전용기에 올랐다.

넓은 의자에 몸을 묻은 상엽은 하늘로 떠오르는 비행기 안에서 창밖을 보았다.

“이제 신을 살 수 있다는 거지? 좋아.”

상엽은 구름을 넘어선 하늘에서 지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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