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0
사하르의 전사들은 이를 악물고 전장에 뛰어들었다.
그들은 본능적인 공포를 느끼고 있었지만 그 상대는 인간 변종이 아니었다.
‘다가가선 안 된다.’
공포와 의무.
두 가지가 혼재된 감정이었다.
상엽의 전투 지역으로 들어가면 자신이 죽을 수도 있고, 싸움에 방해가 될 수도 있다.
결국 그들은 외곽에서 인간 변종들의 숫자를 줄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후방에 지원군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상엽에겐 큰 도움이 되었다.
첫 공격을 강렬하게 시작한 상엽은 지휘관이 스스로 내려오길 기다리며 지상에 있는 변종들을 처리했다.
그러다 기회를 포착하고 뛰어올라 지휘관 하나를 처리했고, 다시 폭격을 시작했다.
그사이 유령 군대와 사하르 군대가 후방에 도착하면서 인간 변종들의 시선이 분산되었다.
첫 한 방으로 300명에 이르는 인간 변종이 사라졌고, 그 후로 200명을 추가로 쓰러트린 상황이라 사하르 군대도 할 만한 상황이 된 것이다.
‘이제 지휘관만 잡으면 돼.’
상엽은 패턴을 바꿔 해머보다 망자의 손길로 상대 진형을 빠르게 누비고 다녔다.
‘옥아. 덮쳐.’
일부러 지옥마를 멀리서 대기시켰던 상엽이 자신에게 집중하는 지휘관을 보며 명령을 내렸다.
지옥마는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폐허가 된 초원을 달리며 몸을 띄웠다.
지휘관은 갑자기 다가오는 검은 잔상에 급히 몸을 띄웠다.
툭.
아슬아슬하게 발을 스치며 지옥마의 공격은 실패로 돌아갔다. 하지만 안심할 틈도 없이 뭔가가 하늘에서 떨어졌다.
스킬 심판이었다.
“큭!”
지휘관은 이마저도 빠른 몸놀림으로 피해 냈다. 하지만 그 순간 뭔가가 자신의 다리를 휘감았다.
고스트 체인이었다.
챙!
체인에서 튀어나온 가시가 그의 하체를 꿰뚫자 뭔가가 등 뒤로 튀어 올랐다.
“이쪽이야.”
쾅!
상엽의 해머가 지휘관의 머리를 깨트렸다.
‘아직 많아.’
2명을 처리했지만 아직 11명의 지휘관이 남았다. 그리고 지상에는 500명의 인간 변종이 남아 있었다.
2명의 동료를 잃은 지휘관들은 그때부터 거리를 벌리고 본격적인 스킬 난사를 시작했다.
상엽은 팔각 대시를 이용해 이를 피해 냈지만 상대의 대처가 만만치 않았다.
도약을 해야 하는 거리에서 유혹하듯 스킬을 퍼붓고 있는 것이다.
‘뛰어오르면 끝장나겠는데.’
게다가 그들은 인간 변종들을 넓게 흐트러트리기 시작했다. 아군과 겹치는 상황을 막으려는 것이다.
“그래 봤자 변종이지.”
상엽은 완전히 진형을 갖추기 전에 지휘관들의 숫자를 줄이기로 했다.
“옥아.”
히이잉!
이름에 거친 반응을 보인 지옥마가 상엽의 옆을 스쳤다. 상엽은 지옥마의 등에 올랐고 둘은 하나가 되어 공중으로 튀어 올랐다.
그들이 떠오르자 강렬한 스킬들이 상엽을 덮쳤다. 그렇게 스킬이 몸에 닿기 직전, 상엽은 지옥마의 등을 밟으며 다시 한번 도약했다.
그리고 지옥마는 문신으로 되돌렸다.
스킬이 빗나가자 상엽은 고스트 실드를 밟고 가장 가까이 있는 지휘관을 향해 뛰었다.
스트라이크.
높이 솟구치던 지휘관을 스트라이크로 따라갔고 결국 또 한 명이 사라졌다.
상엽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팔각 대시로 방향을 바꿔 세 명이 뭉쳐 있는 곳으로 갔다.
하지만 거리가 부족했다. 다시 스트라이크를 쓰기에도 애매한 상황에서 그는 다른 선택을 했다.
“통곡.”
통곡의 벽이 상엽과 세 명의 지휘관을 가두었다.
상엽은 통곡의 벽을 밟으며 갇혀 있는 지휘관들을 사냥했고 결국 세 명이 견디지 못하고 쓰러졌다.
“유령아. 일할 시간이야.”
통곡의 벽이 사라지기 직전, 지금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추종자가 지휘관 한 명의 등을 노렸지만 지휘관이 재빨리 몸을 돌리며 이를 피했다.
하지만 상엽에게 등을 보이고 말았다.
스트라이크로 또 하나의 지휘관을 처리하려 할 때, 상엽을 향해 다른 지휘관들의 스킬이 날아왔다.
“쳇.”
상엽은 고스트 실드를 최고 수준으로 올리며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콰쾅!
하나의 지휘관을 처리했지만 상엽도 스킬로 인해 충격을 받고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견딜 만해.’
피부가 찢어지며 피가 튀었지만 큰 부상은 아니었다. 피부 강화가 최고 단계였기에 견딜 수 있었던 것이다.
상엽은 오히려 이를 기회로 삼았다.
‘뭐해? 빨리 달려들어야지.’
그는 일부러 균형을 잃은 상태로 떨어져 내렸다. 중심을 잡을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이를 기회로 여긴 지휘관들이 빠르게 다가서며 연속해서 스킬을 날리려 했다.
‘거산.’
상엽은 그들이 스킬을 펼치기 직전, 발아래로 거산을 소환했다.
팟!
상엽은 한순간 몸을 뒤집으며 튀어 오르는 거산을 밟고 다시 솟구쳤다.
하지만 직접 닿기에는 거리가 있었다. 지휘관들의 스킬이 훨씬 빨리 시전되는 상황이었다.
이에 상엽은 직접 타격 대신 화염의 기운을 끌어내 공중에서 고스트 실드를 때렸다.
부채꼴로 퍼져 나간 화염이 지휘관들을 덮쳤고, 상엽은 스트라이크로 한 템포 늦게 그들에게 다가갔다.
쾅! 쾅! 쾅!
세 명의 지휘관이 화염에 이어진 타격을 견디지 못했다.
‘세 명 남았어.’
총 13명의 지휘관 중에 10명이 사라진 상황이었다. 그러자 남은 지휘관들은 후퇴를 선택했다.
“그냥은 못 보내지.”
다시 지상에 내려선 상엽은 아공간에서 동희가 준 음료를 꺼냈다.
신체 능력이 급격히 상승하는 것을 느꼈지만 상엽은 이를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오히려 지옥마에 의존하며 기존과 다를 바가 없는 움직임을 보였다.
그러다 거리가 좁혀지고 그들이 도주를 확신하는 순간, 다시 한번 뛰어올랐다.
완전히 달라진 속도와 위력에 지휘관들은 당황하고 말았다.
생사를 건 전투에서 이처럼 힘을 숨기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한 것이다.
그 한 번의 당황이 세 명의 지휘관을 지옥으로 떨어트렸다.
속도전을 펼친 상엽은 망자의 손길로 두 명을 도륙하고 남은 한 명의 날개를 완전히 찢어 버렸다.
바닥으로 추락한 지휘관은 입가로 피를 쏟아 내며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상엽을 보고 있었다.
“유령아. 다시 시도해 봐.”
예전에 기억을 읽으려다 실패한 경험이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상엽은 다시 한번 시도를 했다.
-죄송합니다.
이번 역시 실패였다. 인간 변종은 기억을 읽을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었다.
그런데 추종자 대신 뜻밖의 인물이 나섰다.
“제게 맡겨 주세요.”
성아였다.
“진실을 알아내고 싶어요.”
“마음대로 해.”
우득!
상엽은 지휘관의 팔과 다리를 부숴 버리고 아직 남은 지상군을 향해 달려갔다.
지휘관이 모두 처리되고 상엽까지 합류하자 500명의 인간 변종들은 본능에만 충실한 좀비처럼 되어 버렸다.
그런데 이런 변화가 사하르 전사들에겐 익숙하지 않았다.
광기를 드러낸 그들의 거친 공격에 사하르 전사 하나가 위기에 빠졌다.
쾅!
인간 변종의 무기가 사하르 전사의 심장을 꿰뚫기 직전에 상엽이 나타났다.
“넌 근신이야. 뒤로 빠져 있어.”
위기는 한 명으로 끝나지 않았다.
“너도 근신.”
“근신.”
“뒤로 빠져.”
성장했다고는 하지만 방어를 포기하고 공격만 하는 400명의 인간 변종은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함께 죽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상대만큼 무서운 적은 없는 법이다.
결국 10명의 전사들이 상엽에 의해 전장에서 이탈했다. 모두 그에게 목숨을 구원받은 이들이었다.
상엽은 단 한 명의 사상자도 내지 않고 전투를 이끌었다.
“사하르! 정신 차려!”
아직 전장에 남은 이들은 상엽의 지휘 아래 육탄전을 벌였다.
상엽은 일부러 그들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지원군 역할을 맡았다.
때문에 전투는 꽤 오래 지속되었지만 결과는 정해진 수순대로 흘렀다.
상엽에게 지적을 받지 않고 끝까지 전장에 남은 전사는 단 6명뿐이었다.
전투가 끝난 뒤, 몇 안 되는 전리품을 챙긴 상엽은 이를 루시에게 넘기고 전사들을 모았다.
“내가 뒤로 빠지라고 한 사람들은 잘 들어.”
상엽은 평소와 달리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너희들은 죽었어. 6명을 제외하고 전부 죽었다고. 다음 전투에서는 이번에 살아남은 6명도 죽을 거야. 그만큼 전력이 약해졌으니까 당연한 결과겠지.”
상엽은 자신이 그들을 구해 줬다는 사실을 조금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혼자 죽는 게 아니야. 죽으면 동료들의 위험도 커진다는 걸 명심해.”
그는 마지막으로 그들에게 분명한 경고를 했다.
“다음에도 살려 줄 거라고 착각하지 마.”
상엽은 더 이상 그들을 질책하지 않았다.
‘몸으로 느꼈을 거야.’
확실히 전장에서 쫓겨난 전사들은 치욕에 몸을 떨고 있었다. 더불어 자신의 능력에 분개하기도 했다.
“이번에는 도시 점령이야. 정신 차리고 따라와.”
상엽은 멈추지 않고 다음 목적지로 이동했다.
소규모 도시 점령이 시작되었다.
지원군이 습격당했다는 것은 전해졌지만 그들에게 후퇴할 시간은 없었다.
상엽이 먼저 도시를 덮쳤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들은 상엽을 제거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결국 도시에서 승부를 봐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훌륭해.’
루시는 전투에 합류하지 않고 유령 군대와 사하르 전사들을 지켜봤다.
‘코드 원에 대한 충성심이 생기기 시작했어.’
지난 전투에서 상엽은 단 한 명도 놓치지 않고 모두 살려 냈다.
처음에는 치욕과 분노를 느끼던 그들에게 루시는 진실을 말해 주었다.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데 감사하세요. 코드 원이 아니었으면 그 감정도 느끼지 못했을 테니까.
상엽이 살려 주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고 이는 전사들의 머리가 아니라 마음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런 변화를 가장 먼저 느낀 것은 루시였다.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전사들이 먼저 루시를 찾아와 변화에 대해 상의하기 시작한 것이다.
“강해지고 싶습니다.”
의무가 아니라 스스로의 욕심을 드러냈다. 이것은 성장의 기본이었다.
그들은 루시가 원하는 것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변화를 받아들였고 이것은 성장으로 이어졌다.
소규모 도시 점령은 그런 효과가 그대로 나타났다.
동귀어진을 불사하던 전사들이 효율적인 전투를 하기 시작했고, 전략에 따라 물러서는 걸 서슴지 않았다.
탄력 있는 운영이 되기 시작하자 유령 군대와 함께하는 시너지는 배가 되었다.
그사이, 상엽은 도시 중심에서 지휘관을 처리했고 잔당들은 실전이지만 훈련처럼 여러 가지 실험을 하며 마무리할 수 있었다.
“획득한 코인은 전부 소모해. 조금이라도 더 강해져.”
상엽이 코인 공장이라 부를 만큼 많은 코인이 전사들에게도 자연스럽게 나눠지고 있었다.
“지원군들이 다시 움직일 거야. 다음에는 쉽게 처리하지 못할 테니까 그 전에 최대한 많이 처리해야 돼.”
지금까지 많은 길드들을 좌절시킨 힘이 아직까지 드러나지 않고 있었다.
루시가 가장 신경을 쓰는 것도 이 부분이었다.
“아직 그 자리에 있습니다.”
“황금박쥐 같은 놈이 곧 움직일 텐데.”
금색 날개를 가진 인간 변종.
사우디가 완전히 점령을 당한 뒤에 은빛 날개를 가진 인물 중의 하나가 진화를 하듯 모습을 바꿨다.
그것이 현재 사우디 전체를 점령하고 있는 금빛 날개 변종이었다.
모든 길드들이 금빛 날개가 나타난 그 전투를 버티지 못했고 지금까지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땅이 되었다.
‘이제 얼마 안 남았어.’
상엽은 자신의 코인을 확인했다.
‘9천만 코인.’
이제 다음 도시만 점령하면 목표로 했던 신의 상점에 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서둘러.”
상엽은 전사들과 함께 다음 도시를 향해 이동했다.
* * *
뜻밖의 변수가 상엽의 이동을 멈췄다.
변종도 막지 못한 상엽을 멈춘 것은 5명의 사내들이었다.
“흩어져 있던 다른 전사들입니다.”
친위대 소속은 아니지만 국가의 치안을 담당하던 전투 요원들이었다.
지금까지 따로 항전을 하던 그들이 상엽과 친위대의 소식을 듣고 찾아온 것이다.
“합류하고 싶다고?”
다섯 명의 전사들은 친위대와 달리 크고 작은 흉터들이 가득했다.
그만큼 치열하게 싸워 온 것이다.
“사하르.”
“네.”
“네가 보증할 수 있는 사람들만 받는다. 이해했어?”
“그들은 믿을 수 있습니다.”
“그 말에 대한 책임이 결코 가볍지는 않을 거야.”
사하르는 눈을 감고 5초쯤 생각을 하더니 확신을 가지고 대답했다.
“그들은 위대한 전사들입니다. 모든 책임은 제가 지겠습니다.”
“좋아. 합류해. 대신 따로 챙겨 주지는 못해. 사하르 네가 알아서 가르치고, 조금이라도 문제가 되면 내 손으로 쫓아낼 거야. 동의해?”
사하르뿐만 아니라 새롭게 나타난 다섯 명도 동의했다.
“식구가 늘었으니 돈도 더 많이 벌어야지. 모두 준비됐지?”
고오오오!
유령 전사들이 귀곡성을 토해 냈다.
“너희들은 돈 벌기 싫어?”
상엽의 질문에 사하르의 전사들도 투지를 담은 함성을 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