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9
“사하르입니다.”
20명의 왕실 친위대를 이끄는 리더는 사하르라는 30대 후반의 사내였다.
170센티미터가 조금 넘는 신장에 떡 벌어진 어깨와 강렬한 눈빛으로 인해 작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깊고 강렬한 눈은 변종 앞에서 사신처럼 분노에 물들다가도 상엽을 보면 바닥을 향하며 한없이 부드러워졌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이에요.
진실의 신 성아조차도 이렇게 판단할 정도였다. 그런데 모든 것이 완벽하지는 않았다.
‘답답하네.’
처음 그들의 능력을 보았을 때 신체 능력과 스킬을 확인했다.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지만 본격적인 전투에 들어가자 엄청난 착각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경험이 형편없어. 보호 스킬도 너무 많고.’
그들은 친위대였다.
그들의 첫 번째 목적은 왕을 지키는 것이었고 그러다 보니 두 가지 문제점이 생겼다.
하나는 전투 경험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변종을 사냥하고 왕에게 유물 조각을 하사받아 성장은 꾸준히 해 왔지만 실전 경험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안전한 곳에만 있는 왕을 지키고 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그리고 두 번째는 스킬의 구성이었다.
왕을 지키는 스킬을 20명 전부가 가지고 있었고, 무려 다섯 가지 보호 스킬을 가진 자도 있었다.
당연히 공격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고 공격 루트의 다양성도 부족했다.
“물러서!”
결국 상엽은 마지막 국경 도시를 점령하고 그들을 불렀다.
“자, 지금부터 너희들이랑 유령 군대랑 전투를 시작할 거야. 유령 군대를 전부 소멸시키는 것이 너희들 목표야.”
이해할 수 없는 명령에 그들의 눈동자가 빠르게 움직였다. 하지만 그것은 잠시였다.
이미 약속을 한 그들은 의도를 파악하지 못했음에도 명령을 받아들였다.
“야. 이해를 못 했으면 왜 그러는지 물어봐야지.”
상엽은 당연히 이유를 물을 줄 알았다. 그런데 사하르는 전혀 다른 대답을 했다.
“명령을 따르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우리는 목숨을 걸고 맹세했기에 무조건 따르겠습니다.”
“아우. 답답이들아. 뭐 좋아. 일단 몸으로 느껴야 할 테니까.”
상엽은 계획대로 유령 군대를 소환했다.
“잘 들어. 이건 훈련이 아니라 실전이야. 유령 군대는 너희들을 죽일 거야. 그러니까 이 악물고 싸워.”
20명의 전사들은 바로 전투를 준비했다.
“시작해.”
추종자를 제외한 32명의 유령 군대는 명령이 떨어지자 곧바로 공격에 나섰다.
20명의 전사들도 자신이 있었기에 물러서지 않았다.
처음에는 팽팽한 싸움이 되었다. 20명이 갖춘 진형이 워낙 탄탄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불과 5분도 되지 않아 문제가 발생했다.
유령 군대는 정면이 뚫리지 않자 곧바로 공격 루트를 바꿔서 그들을 흔들기 시작했다.
공중으로 날아오르는 자도 있었고 전사들의 바닥을 폭격하기도 했다.
원거리에는 끝도 없이 창이 날아와 대처를 방해했고, 조금이라도 흐트러지면 정면 공격이 다시 시작됐다.
1분 안에도 전술이 수십 번 바뀌었고, 결국 불과 10분 만에 그들의 진형은 완전히 흐트러졌다.
“그만!”
상엽은 유령 군대가 방어막을 부수는 순간, 전투를 중지시켰다.
전사들은 패배의 치욕으로 인해 얼굴이 붉게 물들었지만 불만을 터트리진 않았다.
“아직 안 끝났어. 이젠 개인 전투야.”
상엽은 20명의 유령 전사를 선발해 개인 전투를 지시했다.
이 싸움의 승패는 더욱 극명하게 엇갈렸다.
1승 19패.
사하르만 유령 전사를 이겼을 뿐, 다른 싸움은 압도적인 패배를 하고 말았다.
전사들의 자존심이 유리처럼 깨졌고 이를 악문 입술에서 피가 흐르는 자도 있었다.
“잘 들어. 이게 너희들의 현실이야. 신체 능력만 뛰어나다고 전투에서 이길 수 있는 건 아니거든. 실제로 너희들이 싸워 봐서 알겠지만 유령 전사들이 너희들보다 신체 능력이 뛰어나진 않아.”
힘과 속도만 따진다면 전사들과 유령 군대는 비슷한 수준이었다.
“너희들은 이제 상대를 죽여야 돼. 누군가를 지키는 건 의미가 없어. 개인 전투에 능해야 더 많은 상대를 죽일 수 있어. 그래야 더 많이 성장할 수 있고.”
상엽은 고개를 숙이고 있는 그들을 향해 마지막 말을 했다.
“너희들은 나에게 아무런 도움이 안 돼. 오히려 신경이 쓰여서 방해만 되는 수준이야.”
이것이 상엽의 결론이었다.
“난 베이비시터가 아니거든. 아기들 돌보고 있을 시간 따위 없어.”
누구도 이 말에 반박을 하지 못했다. 애초에 반박을 해야 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사하르. 할 말 있어?”
결국 상엽이 먼저 기회를 주었다.
“죄송합니다.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시기 바랍니다.”
“너희들이 그럴 가치가 있을까?”
“증명해 보이겠습니다.”
“좋아. 그럼 너희들은 앞으로 유령 군대와 함께 싸울 거야. 그 과정에서 두 가지를 해야 돼.”
상엽이 현실을 직시하도록 한 것은 이 기회를 위해서였다.
‘알아서 좀 기회를 달라고 하면 되지. 이 답답이들.’
과정이 좀 달라지긴 했지만 어쨌든 목적지까지는 도달했다.
“첫 번째로 자신의 성향과 전투 스타일을 파악하고, 거기에 맞는 스킬을 습득해. 팀플레이가 아니라 개인 전투 위주로. 두 번째는 상대의 약점과 패턴을 파악하고 선제공격을 하는 거야.”
상엽은 많은 문제 중에서 두 가지를 먼저 언급했다.
‘이걸 못하면 진짜 끝이야.’
그들에게 주는 마지막 기회였다.
“명심하겠습니다.”
사하르가 고개를 깊게 숙이자 다른 전사들도 일제히 허리를 굽혔다.
“두 번 기회는 없어. 확실히 잡아.”
상엽은 그 말을 하며 다음 목표로 움직였다.
인간 변종이 점령한 나라를 공략하던 상엽은 이런 생각을 했다.
“완전 코인 공장이네.”
획득하는 수치가 어마어마했다.
7개 도시를 제거한 상엽은 이미 3천만 코인을 획득한 상태였다.
절반밖에 흡수를 못하니 실제로는 6천만 코인을 제거한 셈이었다.
‘1억 코인은 문제가 안 되겠어.’
겨우 국경 도시를 제거했을 뿐이었다. 이들 도시는 모두 가장 작은 규모의 도시였다.
그런데도 3천만 블랙 코인이 모인 것이다.
‘그레이 코인이면 화이트 상점 강화까지 끝내 버리는 건데 아쉽네. 그래도 많이 모아서 나쁠 거 없지.’
코인만 있다면 할 수 있는 일은 얼마든지 있었다.
상엽이 그렇게 앞으로의 계획을 고민할 때, 하늘에서 헬기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누군가 그의 곁으로 뛰어내렸다.
“어서 와.”
도착한 이는 루시였다.
그녀는 상엽의 요청으로 이번 전투에 합류했다. 하지만 진짜 싸움에 참여시킬 생각은 없었다.
“정말 그들을 성장시킬 생각이십니까?”
“응. 루시가 직접 보고 나한테 해 준 것처럼 성장 방향을 분석해. 아마 골치가 좀 아플 거야.”
상엽이 루시를 위험한 곳까지 부른 이유였다.
“그들을 팀에 합류시키겠다는 것으로 이해해도 되겠습니까?”
처음으로 집단을 흡수하는 것이다. 루시는 이것이 나쁘지 않다고 판단했다. 그런데 상엽의 대답은 예상외였다.
“아니. 지금으로서는 내가 거부할 가능성이 커.”
“그런데 왜 분석을…….
상엽은 당연하다는 듯이 이유를 말했다.
“내가 최선을 다해야지 그들을 거절할 자격이 되잖아.”
루시는 반박할 수가 없었다.
“이미 약속한 게 있어. 내가 원하는 곳까지는 함께하겠다고. 그때까지만 최선을 다해. 그 후의 일은 뒤에 생각하고.”
“알겠습니다.”
루시는 상엽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고 코드 제로의 분석 시스템을 가동하기 시작했다.
첫 도시는 일부러 소규모 목표를 잡았다.
은밀히 이동을 해서 습격을 했고, 상엽이 먼저 공격을 시작했다.
-내가 싸움을 시작하고 인간 변종들이 움직이면 후방을 쳐.
상엽은 개인 전투를 하고, 유령 군대와 인간 전사들에게 최대한 유리한 환경을 만들어 주기 위한 작전이었다.
두 가지 목표를 모두 달성할 수 있는 방향이라 앞으로 이런 식으로 움직일 생각이었다.
인간 변종 200명에 100만 코인을 가진 지휘관급은 1명이 있었다.
은밀히 움직인 덕분에 지원군은 없었고 전투는 상엽의 예상대로 흘러갔다.
그렇게 숨어 있는 인간 변종까지 처리하는 데 두 시간 정도가 걸렸다.
“어떻게 살아 있는 인간이 한 명도 없냐?”
생존자가 없었다. 아무리 외곽에 작은 도시라지만 상엽은 허탈한 심정이었다.
꼭 생존자를 구출하러 온 것은 아니지만 씁쓸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작은 도시들은 지휘관만 보내서 전염시킨 것 같아요.”
“그런 거 같네.”
그래도 획득한 코인이 적지 않아서 최초의 목표는 달성한 셈이었다.
“자, 계속 가자.”
상엽은 같은 방식으로 작은 도시들을 공략했다. 마을 수준밖에 되지 않는 곳은 유령 군대와 전사들에게만 맡겼고, 상엽이 직접 전투를 지켜보기도 했다.
그렇게 다섯 번째의 소규모 마을 전투를 지켜보며 상엽은 루시와 대화를 나눴다.
“어떻게 생각해?”
“성장 가능성이 큽니다. 무엇보다 두려움이 없습니다. 이것이 빠른 성장의 원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공포가 없다는 건 실행이 자유롭다는 뜻이다. 상엽의 명령대로 그들은 더 이상 진형을 갖추지 않고 개인 전투를 벌였다.
그리고 유령 전사들의 전투 방식에서 필요한 것들을 배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자유에 당황하는 모습이 있었으나 이제는 능동적이 되고 있습니다.”
“성장시킬 가치가 있다는 거지?”
“현재 상황으로 보면 부족한 점이 많지만, 성장 가능성을 본다면 매우 훌륭합니다.”
“루시가 누군가를 칭찬할 때도 있네?”
“정확히 평가할 뿐입니다.”
사실 상엽도 루시와 같은 생각이었다.
“아직 멀었어.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이 정도로는 안 돼.”
“어느 정도를 바라시는 겁니까?”
“20명이 뭉치면 나 정도는 이겨야지.”
“그건 쉽지 않은 일입니다.”
“지금은 일부러 제한하고 있지만 합격술이 꽤나 대단해. 아마 개인 전투력이 올라가면 불가능하지도 않을 거야.”
“그렇게 생각한 많은 이들이 코드 원에게 죽었습니다.”
“그런가?”
상엽은 더 이상 이 부분을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더 많이 성장해야 한다는 점은 확실했다.
“오늘부터 습득한 코인을 스킬로 전환하도록 하겠습니다.”
“분석이 끝났어?”
“완벽히 끝나진 않았습니다만 확실히 도움이 될 만한 스킬 목록은 완성했습니다. 이걸 토대로 다시 분석하면 더 확실한 결과가 나올 것입니다.”
코드 제로의 시스템에 대해서 상엽은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좋아. 아직까진 전부 훌륭해.”
상엽의 평가에 루시도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녀의 평가 기준에는 말하지 않은 것이 있었다.
‘아직은 약속에 의해 움직이지만 그들이 진심으로 코드 원에게 충성하게 되면 최고의 집단이 될 거야.’
그녀가 가장 먼저 평가한 항목은 전투 능력이 아니라 그들의 인성이었다.
절대 배신하지 않고 상엽을 위해서 무엇이든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녀의 첫 번째 기준이었다.
‘조금씩 코드 원을 믿고 있어. 완전히 믿게 되면 내가 나서서라도 코드 제로로 끌어들여야겠어.’
루시는 속으로 많은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도시 점령은 순탄하게 이루어졌다.
국경 도시에 이어 소규모 마을 3곳과 변종 300명에 지휘관 3명이 존재하는 작은 도시까지 무난히 처리했다.
20명의 전사들이 습득하는 코인이 빠르게 늘어나기 시작했고, 이것은 전투 스킬이나 강화에 투자되었다.
-주인님. 변종들이 대규모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그동안은 암습이 통했지만 상대도 인간의 지능을 가진 만큼 대처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까지는 큰 위협을 느끼지 못했지만 계속해서 아군이 피해를 입자 공식적으로 척살 명령이 내려졌다.
“이제 좀 할 만해지겠는데.”
상엽은 그들을 피할 생각이 없었다. 어차피 지금까지는 모든 힘을 발휘할 만큼 큰 전투가 없었다.
“이 싸움이 지금부터 치열해질 거야.”
상엽은 위성을 통해 그들의 대규모 지원군을 발견했다.
“천 명 규모입니다. 지휘관은 10명 이상입니다.”
“적당하네. 습격하자.”
상엽은 도시로 이동하는 지원 부대를 목표로 잡았다.
넓은 초원이라 서로 숨을 곳이 없었고, 한쪽이 전멸할 때까지 펼쳐지는 전투를 예상했다.
“좀 놀라게 해 줄까?”
상엽은 목표를 정한 다음 망설이지 않고 지옥마의 등에 올랐다.
천 명의 변종들은 사람의 모습을 하고 평화롭게 초원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겉으로는 여유로운 걸음이지만 그들의 속도는 일반인의 달리기보다 몇 배는 빨랐다.
하늘에는 날개를 펼친 인간이 유유히 기류를 타며 움직였고 초원 특유의 상큼한 향기가 바람을 타며 인간들의 얼굴을 스쳤다.
평온하고 운치 있는 환경에 인간 변종들은 산책을 하듯 이동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평화가 불쾌한 이는 존재하기 마련이었다.
두두두!
검은 말 한 마리가 엄청난 속도로 그들을 향해 돌진했다. 순간적으로 선두에 있던 인간들이 괴물의 모습으로 변하며 기괴한 소리를 질렀다.
그런데 그 모습에 놀랐는지 검은 말은 이동을 멈추고 긴 울음을 토해 냈다.
그때, 하늘에서 검은 점이 나타났다. 그리고 점은 빠르게 커졌고 결국에는 사람의 형체가 되었다.
그렇게 하늘에서 떨어진 사람이 바닥에 닿았다. 영원히 계속될 것 같던 평화가 산산조각 나는 순간이었다.
콰쾅!
싱그러운 초원에 지옥도가 펼쳐졌다. 너무나 극적인 반전을 만든 원인은 단 한 명이었다.
“서프라이즈 선물인데 어때? 좀 놀랐어?”
상엽은 여전히 멍한 표정으로 생존한 변종들을 보며 말했다.
같은 시간.
인간 변종보다 더욱 놀란 이들이 있었다.
“저렇게까지…….
사하르였다. 그들이 상엽의 진짜 힘을 보는 건 지금이 처음이었다.
다른 전사들도 평소의 평온함을 잃고 마른침을 삼키며 멍하니 상엽이 만든 지옥도를 감상했다.
“앞으로 자주 보게 될 광경입니다.”
루시는 얼이 빠진 전사들의 정신을 다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