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8
아랍권 중에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영토의 국가.
아라비아반도 대부분을 차지하고 서남아시아에서는 가장 큰 나라가 사우디아라비아였다.
이처럼 거대한 도시가 인간 변종에게 완전히 점령을 당했다는 것은 전 세계적인 충격이기도 했다.
알려진 9번의 인간 변종 습격 중에서 유일하게 소탕이 되지 않았고, 결국에는 국가가 사라지는 사태가 발생했다.
현재 사우디아라비아의 인간 변종은 전 세계적인 위협이 되었고, UN에서는 연합군을 구성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였다.
하지만 누구도 이 작전에 쉽게 나서려고 하지 않았다.
미국에서 벌어진 핵미사일 사건 이후로 대대적인 폭격은 시도할 수도 없었고, 상대가 동물이 아닌 인간인 만큼 보복도 무시할 수 없었다.
가장 큰 이유는 누가 나서든 큰 피해를 감안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여전히 눈치만 보고 있었다.
제거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지만 다른 이가 해 주길 바라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내가 왔지. 원래 노가다가 남들은 하기 싫어하는 거니까.”
상엽은 아랍 에미리트와 사우디아라비아의 국경 지대에 서있었다.
바다를 통해 아랍 에미리트로 들어온 그는 국경으로 이동하며 여러 장면을 보았다.
그곳은 그야말로 비상사태였다.
사우디가 완전히 점령을 당했고, 국경 지대의 도시들도 그 재앙을 피하지 못했다.
본래 아랍 에미리트는 변종 출현이 많지 않고 지하자원이 풍부해서 안정적인 발전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동물 변종보다 더욱 위험한 인간 변종이 코앞까지 들이닥친 상황이라 그야말로 패닉 상태에 빠져 있었다.
모든 군사력을 동원해 국경에 방어선을 구축했지만 이것으로 막을 수 없음을 모든 국민이 알고 있었다.
군대로 해결할 수 있었다면 사우디아라비아도 무너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로 인해 아랍 에미리트의 국민들은 국경에서 멀어지기 위해 동쪽 해안으로 대거 피신을 한 상태였다.
때문에 상엽이 처음 들어온 해안은 많은 사람들로 인해 도시 경제가 마비된 상태였고 곳곳에서 시위와 폭동이 일어났다.
이런 해안 도시를 지나면 거짓말처럼 유령 도시들이 이어졌다.
변종들의 습격이 없었음에도 스스로 도시를 버리고 떠난 것이다.
누구도 이를 욕할 수 없었다.
“살기 위해서는 뭐든 해야 하는 거야.”
상엽은 을씨년스러운 도시들을 지나며 국경까지 왔다.
새롭게 형성된 국경은, 본래 지상 무역의 메카였던 국경 도시들이 경계선이 되었다.
당연히 국경 도시들은 인간 변종이 점령한 상태였다.
상엽은 일부러 아랍 에미리트의 군대를 피해서 국경 도시로 들어갔다.
국경 도시의 외곽으로 들어선 상엽은 인간 변종이 멀리서 다가오는 것을 보며 추종자를 불렀다.
“유령아. 신입 상태 좀 보자.”
-네. 주인님.
유령 추종자는 상엽의 뒤에서 나타나는 성아를 향해 거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신입. 나가서 싸워.
“무슨 뜻이지?”
-신입. 너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 주인님께서 무슨 의도로 말씀하신지 몰라? 수호신이라면서 기본적인 의도조차 파악을 못 하냐고.
“그게…….”
성아는 할 말이 없었다.
-답답하군! 신입! 당장 나가서 전투 능력이 얼마나 있는지 증명하라고!
“알았어.”
-빨리 움직여! 주인님이 너 때문에 얼마나 더 기다려야겠어? 정신 차려!
성아는 결국 쫓기듯 정면에서 다가오는 변종들을 향했다.
“유령아. 너 꽤 하는데?”
-주인님 덕분입니다.
“난 그런 거 가르친 적 없는데.”
-죄송합니다.
“잘하고 있어. 우리 신입이 아직 어리버리하잖아.”
-확실히 교육시키겠습니다.
상엽과 추종자가 서로를 보며 믿음의 눈빛을 교환할 때, 드디어 성아는 전투를 시작했다.
-제가 가진 힘을 전부 발휘하려면 수호자의 몸을 빌려야 해요.
예전에 사공강이 그랬듯이 성아도 상엽의 몸을 조종해야 모든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감안하고 볼게.”
상엽은 이를 알면서도 성아에게 몸을 내주지 않았다.
“어차피 이렇게 싸우는 상황이 더 많을 거야.”
성아가 유령 군대로서 어느 정도의 가치를 지닌지 알아야 했다.
독일에서는 일부러 그녀를 보여 주지 않았고, 지금처럼 홀로 있는 순간을 기다린 것이다.
10명의 인간 변종은 성아를 보자 곧바로 괴물 형태로 변신했다.
신의 힘을 느꼈고 곧 심판이 시작될 거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미 이교도가 된 그들은 광분하며 성아를 향해 이빨을 드러냈다.
성아는 지상에서 1미터 정도 떠오른 자리에서 여유롭게 변종들의 공격을 기다렸다.
그러다 변종들이 10미터까지 접근했을 때, 그녀의 푸른 옷이 태풍처럼 강렬한 바람에 흩날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동공이 푸른빛으로 물들자 주변으로 신성한 기운이 폭사되었다.
땅이 들썩거리며 신의 분노를 표출했고 순간적으로 주변의 공기가 미친 듯이 날뛰며 칼날 같은 마찰음을 쏟아 냈다.
채챙!
뒤틀린 공기는 변종들의 공격을 막아 낸 뒤, 강렬한 바람을 일으키며 뒤로 물러나게 했다.
다시 그들의 간격이 벌어졌을 때, 성아는 오른팔을 하늘로 들어 올렸다.
그러자 번개처럼 빛이 떨어지며 그녀의 오른손에 푸른 광택을 머금은 지팡이를 남겼다.
그녀는 들어 올린 지팡이를 서서히 내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변종들 주변을 감싼 공기가 급격히 무거워졌다.
“끄윽!”
성아가 조종하는 공기는 두꺼운 철판처럼 변종들의 몸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날아오르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했고 변종들은 어떻게든 힘으로 버티려 했다.
하지만 공기는 걷잡을 수 없이 무거워졌고 엄청난 중력을 받는 것처럼 땅을 향해 압축되기 시작했다.
쿵. 쿵.
지팡이의 움직임에 따라 인간 변종들은 점차 무릎을 꿇기 시작했고 신체가 약한 변종은 이미 몸이 뒤틀리고 있었다.
“됐어. 거기까지.”
상엽은 변종들이 제거되기 직전에 명령을 내렸다.
“할 수 있어요.”
“오디션은 끝났어. 들어가. 네 가치는 충분히 증명했어.”
그제야 성아는 지팡이를 사라지게 하며 몸을 돌렸다. 그런데 압도적인 힘을 보이던 그녀의 얼굴은 땀으로 가득했다. 그뿐만 아니라 팔과 다리의 근육이 떨리고 있었다.
무리를 한 것이다.
“몇 퍼센트나 회복한 거야?”
“5퍼센트.”
“여기서 20배는 강해진다는 거네? 좋아.”
“당신의 몸을 이용할 수 있다면 100배는 강해져요.”
“이해했어. 이제 쉬어.”
상엽은 사실 성아의 힘에 놀라고 있었다. 당장의 힘이 아니라 앞으로의 성장에 대해서였다.
‘여기서 100배가 강해지면…….’
신이라는 이름이 결코 아깝지 않은 힘이었다.
‘사공강 그녀석의 신도 아직 완벽히 회복하지 못했구나.’
어쨌든 상엽의 입장에서는 성아의 힘이 만족스러웠다.
“유령아.”
-네. 주인님.
“너 쫄았냐?”
웬일로 추종자는 성아가 상엽의 몸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어떤 구박도 하지 않았다.
-저도 저 정도는 할 수 있습니다!
“알아. 내가 누굴 제일 믿는지 알지?”
-반드시 그 믿음에 보답하겠습니다.
“지금도 잘하고 있어. 그럼 본격적으로 놀아 볼까?”
전투를 인지한 다른 변종들이 상엽을 향해 몰려오고 있었다.
“자, 일할 시간이야.”
상엽의 주변으로 추종자와 함께 32명의 전사들이 소환되었다.
“시작해.”
그리고 곧바로 전투가 펼쳐졌다.
상엽은 아랍 에미리트와 사우디아라비아의 국경 도시 네 개를 단숨에 점령했다.
그리고 마지막 다섯 번째 국경 도시를 점령하기 위해 이동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국경 도시의 5킬로미터 앞에서 일련의 무리들이 상엽을 기다리고 있었다.
20명의 사내들로 구성된 그들은 상엽을 보자 곧바로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저희들은 알라신의 전사들로 구원자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구원자라니?”
“우리 알라신의 영토를 되찾아 주시는 전사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상엽에게 어떤 적개심도 없었다. 오히려 상엽의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않을 만큼 경외심을 보였다.
당연히 상엽에겐 이런 장면이 낯설었다.
“알기 쉽게 설명해. 난 종교에 대해서 잘 몰라.”
상엽은 솔직하게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저희들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실 친위대입니다. 블랙과 화이트가 섞여 있지만 알라신의 이름 아래 당신과 함께 싸우기를 바랍니다.”
그들은 인간 변종에 밀려난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실 친위대였다.
변종들이 습격했을 당시, 100명으로 구성되었던 왕실 친위대는 끝까지 항전하며 왕을 아랍 에미리트로 피신시키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갓코인 유저가 아니었던 왕은 긴 피난행에서 부상을 입어 사망하고 말았고, 왕실 친위대는 아랍 에미리트의 스카우트 제안을 거절하며 반격을 준비했다.
하지만 수많은 도전 끝에 그들은 좌절을 겪었고 지금까지 기회를 노렸다.
이제 살아남은 인원은 겨우 20명으로 그들은 적극적으로 전투에 임하는 집단을 기다려 왔다.
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를 복구하려는 집단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고 오랜 기다림 끝에 상엽이 등장했다.
집단이 아니라 개인이지만 빠르게 국경 도시를 점령하는 걸 확인한 그들은 더 이상 미루지 않고 상엽 앞에 나타난 것이다.
“그동안 전투를 위해 목숨을 걸고 성장해 왔습니다. 이제 알라신의 이름 아래 죽음을 불사하고 싸우려 합니다.”
“됐어. 혼자가 편해.”
상엽은 그들의 굳은 의지를 단숨에 거절했다.
“어차피 나는 너희들이 원하는 만큼 싸우지 않을 거야. 내가 원하는 건 변종들의 코인이지 사우디아라비아의 회복이 아니야.”
그는 거짓말로 그들을 현혹하지 않았다.
“당신이 원하는 곳까지만 가시면 됩니다. 저희들은 그곳에서 다시 시작할 것입니다. 흩어진 전사들이 다시 모일 것이고, 죽음 앞에서도 당당히 저항할 것입니다.”
상엽은 그들의 의지를 분명히 느꼈다. 과격하긴 하지만 적어도 배신할 것으로 보이진 않았다.
‘성아. 그들의 말에 거짓이 있어?’
-없어요. 신성한 의지가 느껴져요.
성아가 그 사실을 확인해 주었다.
“좋아. 그런데 내가 너희들을 도와주면 난 뭘 얻을 수 있지?”
“저희들의 목숨과 남은 인생을 드리겠습니다.”
“그걸 뭐 이렇게 쉽게 걸어?”
“그것이 저희들의 뜻입니다.”
그만큼 간절하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상엽은 그들의 인생까지 받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좋아. 내가 어떤 명령을 하든지 받아들이겠다면 생각해 볼게.”
“어떤 명령이든 따르겠습니다.”
“내가 죽을 수밖에 없는 곳에 가라고 한다면?”
“죽겠습니다.”
그들의 대답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큰 도움이 되겠어.’
다만 그러기 위해서는 한 가지 사실을 확인해야 했다.
“너희들의 능력을 먼저 봐야겠어. 충분하다고 생각하면 같은 팀이 될 거야.”
상엽의 제안에 그들은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한 뒤에 무기를 꺼냈다. 그리고 곧장 국경 도시를 향해 뛰었다.
20명의 전사들은 거침없이 전투에 임했다.
화이트 10명, 블랙 10명으로 구성되었지만 그들은 진형을 갖춘 상태에서 공격과 방어를 적절히 활용했다.
‘훈련이 잘됐어.’
인간 변종 100명을 맞아 초반에는 팽팽한 싸움을 펼치던 그들은 조금씩 물러나며 상대의 숫자를 줄인 이후에는 흩어져서 개인 전투를 펼쳤다.
‘잘하는데.’
개개인의 실력도 상엽의 예상을 훨씬 웃돌았다.
‘저 정도면 5단계는 진입했겠는데.’
실제로 그들은 모두 1000위권 안의 유저였다. 다만 왕실 친위대로서 개인의 이름이 알려지지 않아 유명해지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인간 변종이 점령한 도시를 되찾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좋아. 큰 도움이 되겠어.”
상엽은 더 이상 지켜보지 않고 전투에 합류했다.
“전부 물러서!”
그의 한마디에 전사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후방으로 몸을 날렸다.
그 순간, 상엽은 공중에서 변종들을 향해 일격을 날렸다.
부채꼴의 강렬한 화염이 남은 40명의 변종들을 단숨에 집어삼켰다.
살아남은 인간 변종은 겨우 10명이었고 이들 역시 망자의 손길에 몸이 꿰뚫리며 사라졌다.
20명의 전사들은 상엽의 힘을 직접 눈으로 보자 그 위력에 잠시 멍한 눈이 되었다.
“이제 너희들 목숨은 당분간 내 거야. 불만 없지?”
“목숨을 바치겠습니다.”
처음 말을 걸었던 사내가 상엽 앞에서 허리를 숙이는 것도 보자라 무릎을 꿇으며 절을 했다.
이에 따라 다른 전사들도 모두 존경을 표하며 몸을 숙였다.
잃어버린 땅을 되찾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린 20명의 전사들.
상엽의 군대에 처음으로 정상적인 사람이 합류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