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코인-186화 (185/300)

# 186

“주시죠.”

루시는 준비한 것보다 훨씬 거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내기가 상엽의 역전승으로 끝났기 때문이다.

초반에는 하트만이 앞서 나갔지만 변종이 맞서지 않고 숨기 시작하면서 승부가 뒤집혔다.

상엽은 숨은 변종을 쉽게 찾아냈지만 하트만에겐 그런 능력이 없었다.

결국 두 시간 차이로 상엽이 승리했고 루시는 당당히 엘렌에게 조각을 요구했다.

그런데 엘렌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내가 직접 주겠어.”

“코드 원은 이곳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찾아가서 줄게.”

“약속이 다릅니다.”

“너한테 바로 준다는 이야기는 없었어. 그리고 난 너를 못 믿겠어. 내가 직접 전해 주는 게 약속을 더 확실하게 지키는 방법이야.”

그녀의 말대로 여기서 바로 조각을 준다는 말은 한 적이 없었다.

루시가 불쾌한 눈빛을 하자 엘렌은 복수라도 하듯이 거만한 표정을 했다.

“차라리 고백을 하시죠.”

“뭐?”

“코드 원을 다시 만나기 위해 직접 오겠다는 걸 모를 것 같습니까?”

엘렌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남녀 관계가 어설프시군요.”

“그만해. 네가 관여할 일이 아니야.”

“원하신다면 그렇게 하죠.”

루시는 굳이 이 일로 실랑이를 벌이지 않았다. 그렇게 그냥 돌아서려는데 상엽에게서 전화가 왔다.

-루시. 하나 더 처리할 일이 생겼어. 마무리하고 그쪽으로 갈 거야.

“네. 알겠습니다.”

상엽과 통화를 끝낸 루시는 다시 엘렌을 보았다.

“이곳으로 오신다는군요. 직접 전해 주시죠.”

“아냐. 됐어.”

엘렌은 조금 전과 달리 조각을 바로 루시에게 넘겼다.

“치사하다는 말은 듣기 싫으신 모양이죠?”

이미 마음이 상한 루시는 속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여긴 슈렌트 길드 안이야. 조금은 조심하는 게 어때?”

“제 어떤 행동이 조심하지 않은 것입니까?”

엘렌은 화가 나서 대답을 하려다가 주변에 다른 사람이 있는 것을 보고는 그만두기로 했다.

“잠깐 샤워 좀 하고 올게. 응원을 열심히 했더니 땀이 나네.”

랭킹 20위 유저가 그럴 리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누구도 그녀를 말리지 않았다.

‘무슨 옷을 입지?’

엘렌은 심각한 고민을 하며 회의장을 빠져 나갔다.

상엽은 모든 것을 완벽히 하고 싶었다.

20개의 포인트를 처리했지만 그 과정에서 또 하나의 포인트를 발견했다.

그것도 꽤나 강한 녀석이었다.

“은빛 호랑이라니. 난 개인적으로 그 색깔을 참 싫어하거든.”

은빛 독수리와 은빛 여우.

상엽에게 은빛은 그다지 좋은 기억이 아니었다.

“내가 처리하고 갈 거야. 대가를 받았으니 확실히 해야지.”

각각의 포인트를 처리한 상엽은 독일 최남부에서 슈렌트를 만났다.

“이미 충분히 해 준 거 같으니 내가 하지.”

“왜 이래? 별로 친절한 성격은 아닌 거 같은데.”

“두 마리가 함께 있다고 들었는데.”

그들은 은근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다. 그런데 그것이 단순히 신경전뿐만은 아니었다.

‘직접 보고 싶은데.’

서로 칼을 겨누기는 애매하니 간접적으로 확인해 보고 싶은 것이다.

이는 둘 모두 같은 생각이었다.

“좋아. 같이 가지 뭐.”

결국 상엽이 함께 사냥하는 걸 허락했다. 이것은 자신의 실력에 자신이 있기에 가능한 결정이었다.

‘내 실력에는 자신 있으니까.’

약점 노출 정도는 상관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했다.

둘 모두 같은 생각이라 손해 볼 것도 없었다.

그렇게 둘은 마지막 21번째 포인트에 도착했다.

은빛 호랑이는 강력한 변종이었다. 그런데 상대가 지나칠 정도로 강했다.

두 마리의 경쟁자들은 우두머리 싸움을 하기도 전에 괴물 같은 인간 두 명을 만났다.

‘대단해.’

‘엄청나군.’

상엽과 하트만에게 변종은 큰 상관이 없었다. 그들이 주목하는 건 서로의 실력이었다.

전부를 보여 주는 것이 아님에도 서로를 놀라게 하기에는 충분했다.

‘거칠게 싸우네.’

하트만은 양손에 두 개의 긴 봉을 쥐고 싸웠다. 두 개의 봉은 때에 따라 하나가 되기도 했고, 양끝에서 칼날이 튀어나오기도 했다.

‘변화도 심하고.’

봉으로 변종을 잡는 모습은 막싸움을 연상시키면서도 상대가 많아지면 하나의 봉으로 합쳐서 치밀하고 방어적인 싸움을 했다.

완벽한 방어를 하다가 한 번씩 반격을 할 때마다 어김없이 상대의 머리나 목이 터져 나갔다.

그러다 상대가 주춤거리면 칼날이 튀어나온 봉을 양손으로 나누며 야차 같은 표정으로 앞으로 튀어 나갔다. 그 후로는 상대의 핏물을 뒤집어쓰며 악마 같은 전투를 펼쳤다.

단순히 무기만 특별한 것이 아니라 전투 스타일까지 급격히 변하는 특징이 있었다.

‘상대하기 까다롭겠어.’

상엽이 그런 판단을 내릴 때, 하트만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무기고 같군.’

하트만의 눈에 상엽은 끝도 없이 폭발하는 화산처럼 보였다.

‘내가 막을 수 있을까?’

엄청난 기세의 돌진을 본 하트만은 오랜만에 간담이 서늘해지는 경험을 했다.

‘랭킹은 의미가 없다.’

상엽의 랭킹은 30위였다. 그런데 하트만은 자신과 비슷한 실력이라고 판단했다.

이것은 상엽의 특징 때문이라는 사실을 그가 알 리가 없었다.

블랙과 화이트의 시너지는 물론 아오나의 스킬 시너지까지 더해지는 터라 상엽은 소모한 코인에 비해서 훨씬 뛰어난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게다가 홀로 끊임없이 전투를 했고 이런 경험들이 몸에 체득되면서 맹수 같은 움직임이 가능했다.

권력이나 돈을 이용해 코인의 수치만 높인 자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성장이었다.

“시원한 막걸리나 한잔했으면 좋겠네.”

전투를 끝낸 상엽이 내리쬐는 태양을 보며 말했다.

“위스키라면 좋은 게 있지.”

“뭐 아쉬운 대로 그거라도 마실까?”

하트만은 아공간에서 위스키를 꺼내 상엽에게 던졌다. 투박한 디자인이지만 실제로는 한 병에 500만 원을 넘는 고급 위스키였다.

이 사실을 모르는 상엽은 병뚜껑을 거칠게 돌려 따고는 수통을 물듯 입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단숨에 반병을 비워 버렸다. 그게 250만 원 치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역시 유쾌하군.”

하트만도 질세라 같은 병을 꺼내 단숨에 반을 비웠다. 그리고 남은 병을 상엽을 향해 내밀었다.

“건배하지.”

“좋아.”

둘은 서로 다가가지 않은 채로 병을 들어 먼 거리에서 건배를 했고 남은 술을 들이켰다.

남들이 보기에는 두 사내의 우정이 느껴지는 풍경이었다. 그런데 그들 둘이 서 있는 주변은 그렇지 않았다.

주변의 땅은 생명의 흔적이 완전히 사라졌다. 흙마저 검게 그을렸고 작은 풀 한 포기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불과 10분 전만 해도 이곳은 평화로운 초원이었다.

환경 운동가가 본다면 끔찍한 광경 안에서 그들은 술병을 던지며 전투를 마무리했다.

* * *

슈렌트 길드는 화이트 길드였다. 그렇지만 이는 길드의 유지를 위해서지 블랙 유저에 대한 반감은 크지 않았다.

독일을 벗어난 적이 없는 특성 때문이었다.

블랙 유저들이 슈렌트 길드 때문에 독일을 전혀 방문하지 않는 것도 이유가 되겠지만, 실제로 문제가 될 사람이 아니면 조용히 추방하는 것이 그들의 정책이었다.

‘자유로운 분위기야.’

그들은 오랫동안 변종들과 전쟁을 했고 이제 끝이 보이고 있었다.

집중해서 전투를 하고 나면 의뢰를 끝낸 용병들처럼 상하 계급 없이 자유롭게 어울려 술을 마셨다.

상엽이 가지고 있던 독일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이 모든 분위기를 만든 이가 바로 하트만이었다.

“행복해 보이네.”

슈렌트 길드 본부 옥상에서 상엽은 광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100여 명의 길드원들은 1차 토벌을 무사히 끝내고 휴식을 기념하는 술판을 벌였다.

“자네 덕분이지. 매번 전투가 끝나면 저렇게 술을 마시긴 하지만 다음 날을 걱정했지. 지금처럼 편한 웃음은 나도 처음이야.”

“갑자기 웬 감사 인사야?”

“한 번쯤은 사실을 말해야지. 걱정하지 말게. 이번이 마지막이니.”

“그렇게 해. 두 번은 나도 오글거리니까.”

그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레이스가 잔뜩 달린 드레스를 입은 여성이 곁으로 다가왔다.

그 모습에 상엽보다 하트만이 더욱 놀랐다.

“에, 엘렌? 정말 엘렌 맞아?”

평소답지 않게 화장에 목걸이, 귀걸이 같은 액세서리까지 풀세팅을 한 모습에 하트만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길드장님. 안 바쁘세요?”

“나? 안 바쁘…….”

엘렌의 눈에서 분노가 뿜어져 나왔다.

“바빠! 많이 바빠!”

하트만은 결국 상엽에게 인사도 하지 못하고 옥상에서 광장으로 뛰어내렸다.

“예쁘네.”

상엽은 한껏 치장을 한 엘렌을 보며 솔직히 말했다.

“그런데 원래 모습이 더 예뻐. 전 세계에서 딱 너만 가진 매력이었거든.”

“그래?”

엘렌은 당황한 눈치였다.

원래 모습이 예쁘다는 말은 만족스러웠지만 갑자기 자기 모습이 부끄러워진 것이다.

“기다려 줄래? 원래 모습으로 올게.”

“미안. 시간이 없을 거 같아.”

엘렌은 평소답지 않게 얼굴 위로 감정이 적나라하게 나타났다.

“다음 기회가 있을 거야.”

“다음 기회?”

“슈렌트 길드와의 인연이 이걸로 끝날 거 같지는 않아서 말이야.”

상엽은 엘렌을 보며 웃었다. 그 웃음에서 엘렌은 처음으로 친근감을 느꼈다.

“이거 가지고 가.”

그녀는 상엽에게 약속했던 조각들을 건넸다.

시크릿 유산 조각 세 개와 내기에 걸었던 두 개의 조각이었다.

“연애편지를 기대했는데. 그건 아니네.”

“뭐?”

“농담이야. 우리 대화는 조금 부드러워질 필요가 있어.”

“응. 그렇지.”

엘렌은 그렇게 대답하면서 스스로 자신을 욕했다.

‘왜 이렇게 바보같이 행동하고 있어.’

스스로를 질책하는 사이에 그녀에게 주어진 시간이 끝나고 말았다.

상엽의 머리 위로 코드 제로에서 보낸 헬기가 도착한 것이다. 헬기의 열린 문으로 루시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였다.

“하트만에겐 안부 전해 줘. 위스키 잘 마셨다고. 다음에는 내가 준비하겠다고 해 줘.”

“아, 알았어.”

“안녕.”

상엽은 웃으며 손을 흔들고는 힘차게 바닥을 굴렀다. 그러자 그의 몸이 단숨에 하늘에 있던 헬기로 정확히 들어갔다.

“안녕.”

엘렌은 멍하니 멀어지는 헬기를 보며 손을 흔들 뿐이었다.

다음 날 아침.

-주인님. 일어나실 시간입니다.

추종자는 알람을 대신해 상엽을 깨웠다.

“응? 왜 네가 깨워?”

상엽은 분명히 성아에게 모닝콜을 부탁했다.

-수호신이 깨웠지만 실패했습니다.

상엽은 그제야 자신의 품에 안겨 있는 성아를 보았다.

명령대로 상엽을 깨우던 성아를 그가 꼭 끌어안아 버린 것이다.

“어쩐지 좋은 꿈을 꿨어.”

상엽은 품에 안긴 성아를 놓아주며 몸을 일으켰다.

“노트북!”

그가 평소답지 않게 알람까지 부탁하고 잠이 든 것은 갓랭킹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상엽은 업데이트가 된 것을 확인하고 바로 자신의 이름을 찾기 시작했다.

상위권에 이름이 있는 터라 항상 빠르게 찾아낼 수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아니었다.

“어? 정말 사라졌어.”

상엽의 이름이 없었다. 하루 만에 이름이 지워진 것이다.

“좋아. 이제 안심하고 다녀도 되겠어.”

그는 자신의 팔뚝에 새겨진 문신을 보았다. 평소에는 보이지 않다가 그가 원하면 나타나는 문신이었다.

-유산 데아스의 비밀 기록

원하는 이의 정보가 기록된다.

비밀 기록은 책 형태의 유산이었다. 정보를 숨기는 것은 비밀 기록의 부수적인 기능이었다. 진짜 기능은 원하는 이의 정보를 기록하는 것으로 1단계에서는 1명만 가능했다.

단계가 높아질수록 기록된 인원의 숫자가 늘긴 했지만 3명이 최대 수치였다.

대신 기록의 유지 시간이 늘어났다.

1단계-1명의 기록을 24시간 동안 보관한다. 기록 대상의 전투와 죽인 자가 기록된다.

3단계-1명의 기록을 1주일 동안 보관한다.

5단계-2명의 기록을 한 달 동안 보관한다. 기록 대상의 위치가 기록된다.

10단계-3명의 기록을 1년 동안 보관한다. 기록 대상의 서장이 기록된다.

상엽이 예상한 것보다 훨씬 뛰어난 유물이었다. 기록이라는 스킬만으로도 가치는 충분할 정도였다.

“완벽한 훔쳐보기가 되겠어.”

그가 음흉하게 웃자 곁에 있던 성아가 눈살을 찌푸렸다.

“설마 그런 용도로 쓰진 않겠죠?”

“당연히 농담이지. 그럴 리가 없잖아. 내가 그런 쪽으로 확실한 놈이야.”

상엽은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러자 성아는 알겠다는 듯이 몸을 돌리며 말했다.

“거짓이군요.”

진실의 신이라는 사실이 처음으로 귀찮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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