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코인-183화 (182/300)

# 183

엘렌은 하루에도 몇 번씩 보고를 받았다. 그런데 그 보고를 하는 이는 두 명이었다.

“정상엽이 스무 번째 언덕을 파괴했습니다.”

먼저 보고를 하는 자는 슈렌트 길드원이었다. 항상 냉정한 성격의 40대 초반 사내였지만 상엽에 대한 보고를 올릴 때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의 보고가 끝나면 회의실에 어울리지 않는 또 다른 이가 말을 시작했다.

“코드 원께서는 현재 5번째 포인트를 확인하셨습니다. 그동안 잡은 변종의 숫자는 대략 1만 마리쯤 될 것 같습니다.”

보고를 하는 이는 루시였다.

그녀는 상엽이 합류를 거부하자 바로 엘렌에게 연락을 시도했다.

-제가 직접 보고하고 킹베어 사망이 확인되면 조각을 가져가겠습니다.

코드 제로의 정보 체계는 슈렌트 길드를 훨씬 앞서 있었고, 루시 혼자라면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엘렌은 이를 받아들였다.

그런데 루시는 회의실에서 보고를 할 때마다 거만한 표정으로 숫자를 나열했다.

‘코드 원 실력이 이 정도야.’

이런 말을 하는 것이다.

실제로 슈렌트 길드는 상엽의 성과에 놀라고 있었다.

20개의 언덕을 제거하고 1만 마리의 변종을 처리하는 데 걸린 시간은 겨우 20시간이었다.

슈렌트 길드 전체가 나선 것보다 빠른 수치인 것도 놀랍지만 무엇보다 변종들이 흥분하도록 유도하는 전술이 압도적이었다.

언덕을 무너트리는 건 슈렌트 길드에서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어떤 효과가 있는지는 알지 못했기에 실행하지 않았다.

그런데 상엽은 일부러 언덕을 무너트릴 뿐만 아니라 변종들을 유혹하거나 도발해서 은신처가 없는 유리한 전장으로 끌어 들였다.

-루시.

“네. 코드 원.”

-지금부터 24시간 동안은 영업 비밀이야.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코드 제로의 정보를 엘렌에게 넘겨주지 말라는 뜻이었다.

“앞으로 24시간 동안은 보고하지 않겠습니다. 그럼 이만.”

루시는 그 말을 남기고 숙소로 돌아가 버렸다.

“영업 비밀? 무슨 짓을 하려는 거지?”

그 결과는 정확히 24시간 후에 밝혀졌다.

200개의 언덕이 사라졌다.

20시간에 20개를 처리했던 상엽이 단 하루만에 180개의 언덕을 사라지게 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와 달리 언덕을 완전히 무너트린 것이 아니었다. 변종들을 전부 처리한 산은 표시를 하듯이 불을 질렀다.

이로 인해 구릉지대에는 아직도 꺼지지 않은 불씨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상엽이 워낙 깊숙이 들어간 탓에 슈렌트 길드에서는 정찰을 할 수조차 없었다.

그저 높이 솟아오르는 연기와 루시가 한 시간 전에 제공한 위성사진과 결과만 봤을 뿐이었다.

결국 슈렌트 길드에서는 정찰조를 투입해 사실을 확인했다.

“사실입니다.”

그 한 마디가 엘렌을 혼란에 빠트렸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그녀는 23시간 만에 자신 앞에 나타난 루시를 보며 물었다. 그 질문에 루시는 사실을 말했다.

“사냥을 한 겁니다.”

때로는 사실이 사람을 더 불쾌하게 만들기도 했다.

같은 시간.

상엽은 3시간 정도 수면을 취하고 눈을 떴다.

“이것들이 사람이 애써 잠을 자면 습격을 하는 척이라도 해야지.”

-상황 파악을 한 것 같습니다.

“확실히 똑똑하긴 해.”

상엽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곁에서 배를 땅에 붙이고 있는 늑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상엽이 유산을 통해 길들인 늑대였다.

검은 털의 늑대는 500마리의 수하를 이끄는 우두머리였고 지난 전투에서 큰 활약을 펼쳤다.

투둑.

상엽의 곁으로 또 다른 변종이 튀어나왔다. 이번에는 두더지였다.

늑대와 두더지의 합동 공격은 1급 위험지역에서 수도 없이 경험했다.

늑대와 대치하면 두더지가 바닥에서 튀어 올라 주의를 끄는 것이다.

두더지가 상대의 뒷다리를 물지 못해도 시선이 끌리면 늑대가 목을 물어 버리는 식이었다.

유일한 방법은 그 자리를 빠르게 떠나는 것이지만 이것도 숫자가 많으면 쉽지가 않았다.

상엽은 그때의 경험을 변종들에게 그대로 돌려주었다.

늑대와 두더지가 전술을 이해한 것은 아니지만 상엽이 효과를 낼 수 있도록 명령을 내린 것이다.

2급 위험 지역의 변종들은 킹베어의 절대적인 명령을 받고 있지만 이런 전술까지 익히지는 못했다.

상엽이 기지개를 펴며 멀쩡한 근육을 풀고 있을 때, 발아래로 다시 진동이 느껴졌다.

“드디어 시작됐네.”

숫자는 많지 않지만 울림이 지금까지와는 달랐다.

“변종들의 특징이지. 이제 나설 때가 된 거야. 계속 참으면 대장 자리를 내놔야 하니까.”

인간과 동물이 다른 점이었다.

동물들은 힘으로 서열을 가리고, 그 힘이 유지되지 않으면 신뢰를 잃게 된다.

우두머리는 강한 적이 나타났을 때, 이를 처리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이 싸움을 피하면 우두머리의 자격이 없는 것이다.

상엽이 변종을 처리하는 것뿐만 아니라 환경을 파괴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영역이 침범당한 흔적을 진하게 남기는 것이다. 변종들은 영역의 변화에 가장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직접 찾는 건 어려워.

애초에 상엽은 킹베어를 직접 찾아갈 생각이 없었다.

-오게 하면 돼.

이것이 상엽의 목표였다.

“아직 부족하다 이거지?”

모습을 드러낸 변종들 중에는 곰이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킹베어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맹수들이 대거 포진했다.

“이것만 잡으면 나타나겠네.”

5천 마리에 이르는 변종들이 상엽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선두에 있는 100마리의 곰은 기본 코인이 2만에 이르는 괴물들이었다.

이는 1급 위험지역의 하마와 같은 수준이었다.

“부하들만 보내다니 생각보다 훨씬 치사한 녀석이네.”

상엽은 지옥마에 오르며 유령 군대는 전부 문신으로 되돌렸다.

이런 싸움에서는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히이잉!

지옥마가 많은 변종을 보자 흥분하며 울음을 토해 냈다.

“진정해. 곧 제대로 놀게 될 테니까.”

상엽은 여유롭게 변종들이 다가오길 기다리며 아공간을 열었다.

“난 이게 더 무서워.”

동희가 그에게 준 음료였다.

“아우.”

양이 많지 않음에도 목을 타고 들어가는 느낌에 상엽은 비명을 질렀다.

“동희야. 맛 연구도 좀 하자.”

이젠 맛없는 걸 넘어서 통증까지 있었다. 그렇지만 통증 후의 반응은 상엽의 상상을 넘어섰다.

힘줄이 강철로 변하며 근육을 기계처럼 만드는 느낌이었다. 예전에는 힘이 응축되어 조이는 느낌이었지만 이젠 잘 맞물린 톱니바퀴가 떠올랐다.

“시작하자.”

상엽은 드디어 전투를 시작했다.

기본 코인이 전부 2천이 넘는 강한 변종들이었다. 하지만 상엽에겐 그저 전투가 길어지는 효과뿐이었다.

음료를 이용해 대장격인 곰들을 단숨에 처리한 그는 무리를 지어 있는 변종들을 하나씩 처리했다.

곰을 제외하면 특별한 동물이 있는 게 아니라서 움직임을 모두 예상할 수 있었다.

5분이 지나자 2천 마리의 변종은 500마리로 줄었고 친위대를 소환해 전멸을 시켰다.

“이제 어떻게 할래?”

상처도 없이 전투를 끝낸 상엽은 여유 있게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이미 주인을 잃은 언덕에 불을 지르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날 밤.

상엽은 보란 듯이 들판에서 잠을 청했다. 그렇게 2시간쯤 지나자 드디어 기다리던 소리가 들렸다.

“루시. 시작할 거야. 딴소리 못하게 제대로 기록해.”

-준비 됐습니다.

위성이 상엽의 행동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이 장면은 실시간으로 엘렌이 함께 보고 있었다.

“정말 나타났어…….”

엘렌은 상엽을 향해 달려가는 1천 마리의 곰 중에 가장 후방에 있는 킹베어를 보았다.

1천 마리의 곰은 킹베어를 상징하는 무리였고, 그들에게 죽은 길드원의 숫자만 100명을 넘었다.

한때는 숫자를 200마리까지 줄이기도 했지만 엄청난 번식력으로 다시 1천 마리를 채워 버렸다.

“긴장하셨습니까?”

루시는 놀리듯이 엘렌에게 물었다.

“넌 전혀 긴장하지 않는 거야?”

엘렌은 굳이 자존심을 세우지 않았다.

“변종은 코드 원을 이길 수 없습니다. 물론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루시의 믿음은 확고했다. 그런데 이 말을 한 그녀는 스스로 놀라고 있었다.

‘주관적이었네.’

객관적인 평가가 아니었다. 그저 그녀의 바람을 말한 것뿐이었다. 이것은 그녀의 방식이 아니었다.

‘뭐. 상관없지.’

루시는 엘렌의 눈가에 주름이 잡힌 것에 왠지 모를 통쾌함을 느꼈다.

“시작하는군요.”

드디어 상엽과 킹베어의 무리가 충돌했다.

위성은 전투의 생생함을 직접 전달해 주진 못했다. 게다가 상엽의 속도로 인해 화면에서 사라지는 현상까지 나타났다.

하지만 폭발의 흔적은 선명했다.

스크린은 마치 전쟁의 한 장면을 보는 듯했다. 루시는 예상했던 장면이지만 엘렌은 그렇지 않았다.

그녀는 자연스럽게 길드장인 하트만과 비교를 할 수밖에 없었다.

‘어째서 저렇게 강하지?’

폭발의 범위나 위력을 보면 랭킹 9위인 하트만에 전혀 뒤지지 않았다.

‘그래도 길드장님을 이길 정도는 아니야.’

마치 쇼케이스를 보듯 상엽을 평가하던 엘렌은 어느 순간 자신의 문제점을 떠올렸다.

‘길드장님과 비교를 하다니…….’

랭킹으로 보면 그녀가 20위였다. 상엽보다 훨씬 높았다. 그런데 애초에 그녀는 상엽과 자신을 비교하지 않았다.

‘어떻게 된 거지?’

지금까지 그녀의 경험에서 랭킹은 거의 절대적인 평가의 기준이 되었다.

이를 벗어난 결과가 없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한 가지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너무 변종들만 상대했어.’

그들은 사람끼리의 대결 경험이 많지 않았다. 게다가 변종을 그렇게 오래 상대했음에도 오히려 상엽의 평가에 놀라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싸우는 방식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든 피해를 줄이기 위해 단체로 싸우는 것에 익숙했던 그들은 상엽처럼 위기 속에서 직접 상대하는 방법을 빠르게 습득하지 못했다.

우물 안의 개구리.

딱 그 모습이었다.

엘렌이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화면 속의 곰들은 절반 이상이 사라졌다.

‘정상엽이 이겼어.’

그녀는 킹베어가 상엽을 이길 수 없다는 걸 알았다. 다른 결과를 바라기에는 과정이 너무나 압도적이었다.

화면에서는 계속해서 폭발이 일어났고 곰들은 숫자만 많을 뿐, 제대로 된 공격조차 펼치지 못했다.

결국 승부는 모두의 예상대로 흘렀다.

변종이 100마리까지 줄어들었을 때, 상엽은 부하를 처리하는 척하다가 갑자기 킹베어를 공격했다.

일부러 보여 주지 않은 스킬을 갑자기 퍼부었고 그 한 방으로 킹베어는 큰 부상을 입었다.

그 후로 상엽의 일방적인 공격이 이어졌고 버티지 못한 킹베어가 빛으로 흩어졌다.

‘벌써.’

싸움은 그 후로 1분도 걸리지 않아 끝나 버렸다. 그리고 루시의 전화기가 울렸다.

-조각 받아.

“알겠습니다.”

루시는 빚을 받으러 온 채권자 같은 표정으로 엘렌을 보았다.

엘렌은 약속대로 조각을 루시에게 건네주었다.

“확보했습니다. 어디로 가시겠습니까?”

-본부로 갈 거야.

상엽은 독일에 더 이상 있을 이유가 없었다.

“그럼 이만.”

루시는 작은 목례로 인사를 마치고 회의장을 나섰다. 엘렌은 뭔가 불쾌했지만 그녀를 잡을 명분이 없었다.

* * *

테이블 위에 마지막 조각이 놓여 있었다. 코드 제로에 있는 상엽의 숙소였다.

루시는 상엽이 들어오자 인사를 하더니 자리를 피해 주었다.

“수고했어.”

상엽의 인사에 루시는 웃지도 않고 다시 한번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이깟 조각이 뭐라고.”

상엽은 그동안 조각을 모으기 위해 했던 일들을 떠올렸다.

“악덕 사장 밑에서 일하는 영업사원 같았어.”

이기적인 성아의 요구를 모두 받아들였다. 오직 이 목표를 위해서였다.

상엽은 천천히 보관함에서 다른 조각들을 꺼냈다.

테이블 위에 8개의 조각이 모두 올랐고 이제 하나로 맞추기만 하면 그동안의 결실을 볼 수 있었다.

“진짜 개고생 했네.”

상엽은 더 이상 시간을 끌지 않고 조각들을 하나로 맞췄다.

원형의 석판은 하나로 모이자 활짝 펼친 날개의 모양이 되었다.

우웅.

석판이 진동을 일으켰고 문양에서 일제히 은색 빛이 뿜어졌다.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빛이 절정에 달했을 때, 상엽은 머릿속을 울리는 목소리를 들었다.

-수호자여.

성아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신비하고 신성한 목소리는 경건한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힘이 있었다.

이를 들은 상엽도 평소와 다르게 대답했다.

“수호자는 지랄. 이제 입장이 바뀌었어. 면접 볼 거니까 당장 튀어나와.”

그는 소파에 몸을 묻고 다리를 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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