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코인-180화 (179/300)

# 180

사공강은 압도적이었다.

상대도 랭킹 33위의 강자였지만 그저 버티는 것이 전부였다.

그것도 이젠 한계에 달했고 사공강은 은빛 검을 들어 상대의 목을 그어 버렸다.

빛으로 흩어진 습격자가 사공강의 몸으로 흡수된 뒤, 상엽은 조심스럽게 상황을 살폈다.

‘사공강이 아니야.’

그 생각을 할 때, 사공강이 상엽을 보았다.

그 눈빛에는 상대를 제압하는 압도적인 기백이 있었다. 그리고 신의 거만함이 진하게 묻어났다.

상엽은 당당하게 서서 사공강의 눈빛을 받아 냈다.

“확실하게 해. 싸울 거면 바로 시작하고. 아니면 이제 넌 빠져.”

신의 현신은 잠시 상엽을 보더니 비웃음을 지었다. 그러더니 이내 몸을 돌렸다.

순간, 사공강의 몸이 크게 비틀거리더니 쓰러지기 시작했다.

상엽은 재빨리 달려가서 그를 부축했고 바로 상태를 확인했다.

‘기절했어.’

그는 사공강을 바닥에 눕히고 정령의 정수를 뿌려 주었다.

10분 후.

사공강은 눈을 떴다.

그의 눈에 제일 먼저 보인 것은 상엽이었다. 이를 보자 그는 왠지 안심이 되었다.

“먹어.”

상엽은 사공강에게 그레이 상점에서 파는 달빛 비스킷을 주었다.

동희가 만든 음료만큼은 아니지만 피로 회복에는 탁월한 효과가 있었다.

물론 맛이 최악이라 상엽도 웬만하면 복용하지 않았다.

상엽이 건넨 물과 비스킷을 먹은 사공강은 눈에 띄게 상태가 나아졌다.

어차피 기절한 것 외에는 큰 상처가 없었고, 작은 상처는 상엽이 이미 치료를 한 터라 필요한 건 시간뿐이었다.

“감사합니다.”

“정신 차렸으면 지금 누군지부터 말해. 사공강이야? 신이야?”

“사공강입니다.”

확답을 들은 상엽은 그의 앞에 유물 보관함을 내려놓았다.

“기억은 하는 거야?”

“네. 전부 기억합니다. 그리고 이건…….”

“네가 잡은 거야. 난 아무것도 안 했어.”

상위 랭커를 잡은 보상은 어마어마했다. 하지만 상엽은 이를 빼앗을 생각이 없었다.

“그럼 이 조각은 드리겠습니다.”

사공강은 상엽이 원하는 조각을 내밀었다. 성아의 조각이었다.

“이건 고맙게 받을게.”

상엽은 성아의 조각을 챙긴 뒤에 사공강을 일으켜 주었다.

“어떻게 된 건지 말해 줄 수 있어?”

“습격을 받았습니다. 그 후로 정신없이 전투를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 신이 제 몸을 지배했습니다.”

“어떤 느낌이야?”

사공강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쉽게 표현할 수 없는 느낌인 듯했다. 그러다 적절한 단어를 떠올렸다.

“수호신.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상엽은 그 말을 듣고 사공강의 상태를 이해했다.

“지금 이 조각. 이것도 수호신을 얻기 위해서 모으는 거야. 알지?”

“전 몰랐습니다.”

“그래?”

사공강은 성아를 만난 적은 있지만 대화를 한 적은 없다고 했다.

“얻는 과정이 달라서 수호 방식도 확신할 수는 없겠어. 그러니까 정신 똑바로 차려. 이상한 소리 하면 바로 나한테 연락하고.”

“알겠습니다.”

사공강은 신이 선택해서 수호신이 되었다. 반면 성아는 상엽이 목숨을 건 전투를 계속하는 입장이었다.

“어쨌든 굉장한 힘이었어. 내가 싸웠어도 이길 확률은 높지 않았을 거야.”

“저도 느꼈습니다.”

“그러니까 둘 다 정신 차리자고.”

그는 상엽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에 상엽이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신한테 지배당하지 말자고. 만약에 수호신이 날 노예로 생각하고 명령하면, 난 가차 없이 수호신을 제거해 버릴 거야.”

사공강은 그 말이 왠지 통쾌했다. 자신의 두려움을 긁어내는 것 같았다.

“저도 목숨 걸고 강해지겠습니다. 정상엽 씨처럼 당당할 수 있을 때까지요.”

상엽은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자, 이제 2개 남았나?’

수호신에 관한 상엽의 생각은 사공강을 본 후로 많이 달라졌다.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해.’

신의 힘이 얼마나 발현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상위 랭커가 압도적으로 패배할 정도였다.

물론 상엽은 무조건 진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여러 수호신이 나타나는 상황도 이상하고.’

그가 무엇보다 신경이 쓰이는 것은 이런 일이 일어나는 이유였다.

‘갓코인을 벗어난 신의 등장이라.’

게다가 그들은 여러 방식으로 인간의 삶에 끼어들고 있었다.

‘빨리 확보해야 돼.’

상엽은 이 현상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서는 먼저 신을 가져야 한다고 판단했다.

“광신이 형한테 지금까지 얻은 정보는 말해야겠어. 넌 어떻게 생각해?”

상엽의 질문에 사공강은 하늘에서 날고 있는 헬기를 보았다.

“어차피 다 들켜 버린 것 같군요.”

그의 전투 모습은 이미 흑점의 손에 들어갔다. 이를 위한 변명이 없다면 사실을 말하는 게 옳았다.

“제가 직접 말하겠습니다.”

“나한테 들은 것도 전부 말해. 괜찮으니까.”

“알겠습니다.”

상엽은 사공강이 떠나는 것을 확인하고 성아를 불렀다.

이번에는 그녀가 상엽의 부름에 응답했다.

“물어볼 게 있는데.”

상엽은 무표정으로 서 있는 성아에게 물었다.

“내가 널 가지게 되면, 너희들이 나타난 이유를 말해 줄 수 있어?”

성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널 가져야 될 이유가 점점 더 늘어나네.”

상엽은 대답에 만족하며 다음 목표를 물었다.

“다음 목표는 어디야?”

“독일.”

2급 위험 지역 독일.

그만큼 강한 유저들이 많은 지역이었다.

독일은 유럽 내에서 변종에게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지역이었다.

그리고 다른 나라들이 방어에 성공하자 남은 변종들마저 독일로 이동하는 불상사가 생겼다.

덕분에 80%의 영토를 잃었다가 최근에는 40%까지 복구를 한 상황이었다.

유럽의 주변국들이 도와줬기에 가능한 일이지만, 기본적으로 독일 유저들의 힘이 컸다.

-위험한 지역의 생존자가 강하다.

이는 여전히 통용되는 법칙이었다. 이미 유럽에서 가장 강한 유저들이라고 평가를 받음에도 그들은 변종들을 정리하느라 외부로 나오지 않고 있었다.

-가족의 복수와 국가의 복원이 먼저다.

독일 갓코인 유저들은 초창기부터 이런 목표로 뭉친 덕분에 여전히 응집력이 강했다.

유럽 최고의 화이트 길드 슈렌트.

그들이 바로 독일 유저들의 집단이었다.

* * *

상엽은 독일의 영역으로 들어섰다.

예전에 아레나 길드와의 싸움을 위해 벨기에에 위치 등록을 한 덕분에 이동 거리는 길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아레나 길드가 1등을 다투던 길드가 슈렌트였지.’

아레나 길드는 유럽 화이트 길드 중에 2위로 평가를 받았다. 시간이 많이 흐르긴 했지만 그 당시에도 유럽 최고 화이트 길드는 슈렌트였다.

게다가 슈렌트에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두 명의 유저가 있었다.

랭킹 9위이자 길드장인 하트만.

랭킹 20위 여성 유저 엘렌.

특히 엘렌은 아름다운 외모로도 유명해서 전 세계적인 팬을 보유하고 있었다.

독일의 서쪽으로 진입한 상엽은 그들의 이름을 의식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골치 아프네.”

조각을 가진 이는 다름 아닌 엘렌이었다.

랭킹 20위이자 슈렌트의 부길드장인 그녀와 전투를 벌이는 것은 자칫 많은 것을 잃을 수도 있는 위험이 있었다.

“근데 여긴 변종이 왜 이렇게 많아?”

벨기에와 독일의 국경 지역부터 엄청난 숫자의 변종이 나타났다. 게다가 하나하나가 강력한 녀석들이라 상엽이라고 해도 안심하고 다닐 수가 없었다.

“이래서 독일 길드가 밖으로 못 나오는구나.”

그들은 여전히 변종 소탕을 길드의 최우선 목표로 삼았다. 그나마 최근에는 유저들의 능력이 올라가면서 그 속도에 가속이 붙는 상황이었다.

-코드 원. 상대가 협상에 응했습니다.

“뭐?”

변종을 처리하고 길을 걷던 상엽은 뜻밖의 소식을 들었다.

성아의 조각과 관련해 엘렌에게 먼저 협상을 시도했다. 이는 상엽이 찾아간다는 것을 알려 주기 위해서였다.

그냥 습격을 하기에는 서로 리스크가 너무 컸기에 예고를 하는 식으로 떠본 것이다.

이는 루시의 계획이었는데 뜻밖에도 엘렌이 받아들였다.

“어떻게 된 거야?”

-저도 의외였습니다. 하지만 원하는 유산 조각을 준다면 가능하다고 답변이 왔습니다.

“음.”

상대가 원하는 유산 조각을 주는 것은 완성으로 이어질 수도 있어서 조심스러운 방법이었다.

하지만 상엽 입장에서는 나쁠 것이 없었다.

-일단 진행해 보겠습니다.

“알았어.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우면 관둬.”

상엽은 주의를 주고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결과는 세 시간 후에 나왔다.

-유산 조각 5개와 교환하기로 했습니다.

루시가 주기로 한 조각들은 꽤나 인기 있는 품목이었지만 상엽에게 필요한 종류는 아니었다.

“진행해.”

상엽은 어렵지 않게 협상을 결정했다. 그러면서도 혹시 있을지 모르는 변수 때문에 안심할 수는 없었다.

다음 날 아침.

-교환 완료했습니다.

루시가 직접 협상 자리에 갔고 무사히 조각을 넘겨받았다.

‘의외로 쉽네.’

상엽은 오랜만에 덴마크의 코드 제로 본부로 가서 조각을 넘겨받았다.

“진짜네.”

“모든 것이 약속대로 진행되었습니다.”

7개의 조각이 모였다.

이제 남은 것은 하나였다.

상엽은 루시에게 자리를 피하게 하고 성아를 불렀다.

“자. 이제 하나 남았어.”

개인 저택의 소파에 앉은 상엽이 여유 있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런데 성아의 대답을 듣고 눈살을 찌푸렸다.

“독일.”

상엽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누가 가지고 있는데?”

“엘렌.”

쾅!

상엽이 평소답지 않게 힘을 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로 인해 앉아 있던 소파가 박살이 나며 무너졌다.

그 소리에 루시가 재빨리 뛰어왔다.

“무슨 일이십니까?”

그녀는 성아를 처음으로 보았다. 성아는 루시가 있음에도 모습을 숨기지 않았다.

“마지막 조각이 엘렌에게 있단 말이지?”

성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를 본 상엽은 짜증이 솟구쳤다.

“두 개를 가지고 있는데 하나만 가지고 협상을 했다?”

엘렌은 두 개의 조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 사실을 숨기고 하나뿐인 것처럼 협상에 임해서 원하는 걸 가져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조각은 여전히 그녀가 가지고 있었다.

완성하려면 당연히 전부가 필요하니 그녀 입장에서는 손해 볼 것이 없었다.

그녀는 직접 조각을 모으기보다 상대가 찾아오길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죄송합니다.”

루시가 화가 난 상엽에게 고개를 숙였다.

“네 잘못이 아니야. 아무도 몰랐잖아.”

“코드 원의 잘못도 아닙니다.”

“알아. 그냥 한 방 먹은 게 열받아서 그래.”

다행히 상엽은 루시와의 대화로 화를 가라앉힐 수 있었다.

“엘렌. 그 여자 얼굴이 궁금하네.”

“쉽게 결정하실 일이 아닙니다.”

“걱정 마. 열받는다고 무작정 들어가는 놈은 아니니까.”

상엽은 그렇게 말하며 생각에 잠겼다. 그런데 루시의 눈빛이 이상했다.

“뭐야? 내가 그런 놈이라는 거야?”

“몇 번 그런 적이 있으십니다.”

루시는 불행한 사태를 막기 위해 솔직히 대답했다.

상엽은 그제야 자신의 기억 속의 화가 나서 싸움을 벌였던 몇 가지 상황을 떠올렸다.

“이번에는 안 그럴 거야. 약속해.”

“믿습니다.”

그녀는 상엽의 감정을 훌륭히 조절했다. 덕분에 상엽도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있었다.

“좀 놀려 주는 건 괜찮겠지?”

루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를 본 상엽이 실망했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나 믿는다며?”

“믿습니다.”

“그럼 두고 봐. 내가 치사해지면 어디까지 가는지 보여 줄 테니까.”

상엽은 악동 같은 표정으로 작전을 준비했다.

코드 제로가 자리한 덴마크 역시 독일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었다. 하지만 다른 국경과 달리 북쪽 국경은 평화로운 무역 도시가 형성되어 있었다.

독일은 북부 브레멘을 중심으로 변종을 처리했고, 최근에서야 베를린을 복구했다.

때문에 바다를 낀 북부는 완벽히 복구가 된 상황이었다.

상엽은 일부러 모두가 볼 수 있도록 국경 도시를 넘었다. 정상적인 절차를 통해서 독일로 들어갔고, 필요한 검문과 검색도 모두 받았다.

그 사실을 슈렌트 길드에서 모를 리가 없었다.

상위 유저의 사망과 강화를 통해 랭킹 30위가 된 블랙 유저가 화이트 길드의 영역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당연히 그의 움직임에 정찰이 따라붙었고 가능한 모든 감시 체계가 가동됐다.

여차하면 그를 죽이기 위해서 총공격을 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적어도 길드장이 직접 나서서 제거할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상엽은 여유롭게 슈렌트 길드 본부가 있는 브레멘으로 다가갔다.

누가 봐도 무모한 행보였다. 하지만 슈렌트 길드도 상엽의 신분이 있어서 쉽게 건드리지는 않았다.

그러다 브레멘이 얼마 남지 않은 지점에서 결국 누군가 앞을 막았다.

“더 이상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꽤나 강직한 느낌의 40대 후반 사내였다.

“저희들의 배려는 여기까지입니다.”

상엽의 신분이 어떻든 브레멘 안으로 들어가려고 한다면 슈렌트 길드도 참지 않기로 결정을 내린 상황이었다.

그런데 상엽은 자신의 위기를 모르는지 당당하게 말했다.

“앨렌을 만나야 돼.”

“무슨 일로 부길드장님을 만나시려는 겁니까?”

상엽은 사내에게 뭔가를 내밀었다.

다이아몬드 반지가 담겨 있는 상자였다.

“프러포즈할 거야.”

상엽의 말에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 같던 사내의 표정이 변했다.

“설마 프러포즈하러 온 남자를 잔인하게 죽일 건 아니지? 지금쯤 여기저기 기사도 났을 텐데.”

햇빛을 받은 다이아몬드가 아름다운 빛을 뿌리는 오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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