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9
사공강은 한참 후에야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사람이기도 하고, 신이기도 하다는 거지?”
그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야겠는데.”
“제가 모든 것을 말하면 무엇을 보장해 주시겠습니까?”
“내 친구들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다면 널 건드리지 않을 거야.”
상엽도 솔직하게 대답했다.
“좋습니다. 전부 말하겠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에겐 비밀로 했으면 합니다.”
“좋아.”
상엽은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러자 사공강은 오랜 친구에게 비밀을 털어놓는, 조금은 힘이 빠진 목소리로 말을 시작했다.
“전 한 번 죽었습니다.”
사공강의 사연은 특별했다.
“카르텔은 원치 않는 일을 강요했습니다. 결국 참지 못하고 가족들과 탈출을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무모한 시도였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가족들까지 모두 죽었습니다.”
멕시코의 많은 도시들은 카르텔이 지배를 하고 있었다. 그들의 관계는 끈끈했고, 정상적인 국가 운영보다는 공포 정치를 일삼았다.
민간인은 그들에게 그저 노동력일 뿐이었다.
그러던 중에 식량 창고에서 불이 나면서 식량 보급에 차질이 생겼고 이는 시민들의 불만으로 이어졌다.
이를 잠재우기 위해 책임자들을 공개 처형하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그런데 그 책임자라는 사람이 민간인이었다. 실제로 책임이 있는 카르텔 조직원은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다.
20명을 죽이는 역할을 사공강에게 시켰고 이것이 싫었던 그는 탈출을 감행했다.
하지만 이미 의심을 받는 상황에서 갓코인 유저가 아닌 가족까지 데리고 탈출하는 것은 무리였다.
결국 그는 추격을 허용했고 온몸이 찢기는 잔인한 죽음을 맞이했다.
“그런데 다시 눈을 떴습니다. 멀쩡한 몸으로 말입니다.”
“어떻게 된 거야?”
“신이 제 몸에 들어왔습니다. 그는 현재 저와 함께 있습니다.”
상엽은 무당 같다는 생각을 했지만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어떤 신이야?”
“아직 모릅니다. 제 몸에 들어온 것은 확실하나 아직까지 어떤 대화도 나누지 못했습니다. 뭔가를 지시하거나 알려 주지도 않았습니다.”
상엽은 그의 대답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의 표정에 공포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무서워?”
“사실 그렇습니다. 제 목숨은 이미 끝났고, 신의 목숨으로 살아가는 셈이니까요. 제가 원치 않는 상황이 되었을 때, 저항할 자신이 없습니다.”
“그런 상황이 되면 어떻게 할 건데?”
“솔직히 다시 죽고 싶진 않습니다. 죽음은 끔찍한 경험이니까요.”
상엽은 그의 생각에 동의했다. 그도 간접적으로나마 많은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회생으로 되살아날 수 있었다.
“그래도 준비는 해 두었습니다.”
“준비라니?”
“자폭 스킬을 익혔습니다.”
모두들 거들떠보지도 않는 스킬이었다. 자신이 반드시 죽는 스킬이었기 때문이다.
“뭐 그 정도면 됐어. 그럼 다른 이야기를 해 볼까?”
상엽은 그의 심성을 더 이상 의심하지 않았다.
“성아의 조각은 어떻게 얻게 된 거야?”
“그냥 제 보관함에 있었습니다. 제가 특별히 노력한 것은 없습니다.”
“신이 가지고 왔다는 거지?”
“그렇습니다.”
“그런데 나한테 그냥 주겠다는 거야?”
“말씀드렸다시피 싸우고 싶지도 않고, 이길 자신도 없습니다. 신이 거부했다면 다른 지시를 내렸을 것입니다.”
그는 판결을 앞둔 죄수 같은 느낌이었다. 상엽은 자신이 그를 괴롭힌다는 느낌마저 받았다.
“알았어. 이번 일에 대해서는 정식으로 사과할게. 미안해.”
상엽은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에 사공강은 웃으며 같이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욕해도 되는 입장이야. 이해할 테니까 욕해. 나만 욕하는 거면 얼마든지 받아 줄 테니까 화가 풀릴 때까지 해.”
“아닙니다. 제가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라서 감사합니다. 진심입니다.”
“너도 내 팬이야?”
“신이 절 살려 준 이후에 제겐 선택권이 있었습니다. 제가 한국을 선택한 건 정상엽 씨 때문입니다.”
“내가 왜?”
“정상엽 씨가 시카고에서 활약한 건 멕시코 카르텔도 알고 있습니다. 그 후에 정상엽 씨의 정보를 개인적으로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옳은 명분을 위해 힘을 쓰는 모습이 감동적이었습니다. 그럴 수 있다는 것이 부럽기도 했습니다.”
사공강에게 상엽은 꿈과 같은 존재였다.
“나 그렇게 착한 놈 아니야. 카르텔보다 더 잔인하고 나쁜 짓도 많이 했어.”
“상관없습니다. 그것이 당연한 시대니까요. 단 한 번도 약한 사람을 위해 싸우지 않는 사람에 비해 정상엽 씨는 이미 여러 번 보여 주셨습니다. 그걸로 충분합니다.”
이야기를 진행할수록 오히려 상엽이 위로를 받았다.
“너 좋은 놈이었구나!”
상엽은 좋은 물건을 발견한 골동품 상인처럼 말했다.
“감사합니다.”
“그럼 한 가지 약속할게.”
상엽은 자신이 받은 위로에 대한 보답을 언급했다.
“네 안에 있는 신이 위험하다고 느끼면 나한테 연락해. 어떤 식으로든 최선을 다해서 노력해 줄 테니까.”
사공강에게도 그 약속은 꽤 위로가 되었다.
“좋아. 이것도 인연인데 사우나나 갈까?”
“찜질방이라면 아는 곳이 있습니다.”
거절할 거라 예상했던 사공강은 바로 허락했다. 이런 쪽으로는 꽤 털털한 것으로 보였다.
“가자.”
그들은 함께 집무실을 나섰다.
다음 날 아침.
인터넷은 상엽과 사공강이 함께 찍은 사진으로 난리가 났다.
그들은 함께 찜질방을 이용했고 이용객들과 스스럼없이 사진도 찍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두 남자가 함께 찜질방까지 다닌다는 사실은 많은 이들에게 화제가 되었다.
상엽은 화제가 되는 뉴스와 전혀 상관없는 장소에 도착했다. 이곳은 TV조차 없는 곳이었다.
“상엽아!”
동희의 연구소였다.
다시 설악산으로 돌아간 동희는 예전에 비해 다섯 배는 됨직한 연구실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흑점 길드에서 지어 준 건물로 아무런 조건 없이 감사 인사로 해 준 것이다.
동희가 그동안 많은 음료를 공급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금 한국의 갓코인 특수 치안대는 긴급한 상황에 쓰는 약물로 동희의 음료를 지급받았다.
수량이 충분하지는 않아 아껴야 하지만 그로 인해 위기를 넘긴 경험이 쌓이면서 동희는 자연스레 국가 차원에서 보호를 받는 이가 되었다.
“뭐가 이렇게 거창해졌어?”
“헤헤. 연구하기가 편해졌거든. 정부랑 흑점 길드에서 많이 도와주고 있어.”
특히 박광신은 동희가 원하는 많은 재료를 공급해 주었다. 그 보상으로 계약하진 않았지만 음료를 받을 수 있었다.
“담비들은 어때?”
“직접 볼래?”
“아니. 뭐 그럴 필요까지는…….”
“아니야. 담비들도 너 보고 싶어 할 거야.”
상엽은 결국 연구실 밖으로 나갔다.
“얘들아!”
동희가 힘껏 소리치자 멀쩡하던 바닥이 일제히 뒤집어지기 시작했다.
상엽은 그 모습을 보고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뭐가 이렇게 많아?”
“애들이 위협이 없으니까 번식을 많이 했어. 헤헤.”
상엽의 앞에 나타난 똑같은 모습의 담비만 5천 마리가 넘었다.
“이게 다는 아니겠지?”
“응. 반도 안 돼.”
1만 마리가 넘게 있다는 뜻이었다.
‘하긴 변종이니까.’
변종의 번식력은 이미 많이 경험한 터라 이상할 것도 없었다.
“연지 소식은 있어?”
“뭔가를 찾아다닌다고 했어. 꽤 시간이 걸린다고 했던 거 같은데?”
송연지는 여전히 트레저 헌터로 활동하고 있었다. 상엽이 바빠서 직접 연락을 하진 못했지만 메신저를 통해 소식은 남기고 있었다.
그녀는 현재 인도네시아에서 유물을 찾는 중이었다.
“언제 다시 한번 뭉쳐야 하는데.”
동희는 이 부분을 아쉬워했다. 상엽도 같은 마음이었다.
“하루만 놀다 가.”
“내가 여기 있으면 위험해.”
“난 괜찮아.”
“많이 위험해. 그래서 안 돼.”
이제 상엽이 획득한 조각은 5개였다. 아직 3개가 남은 것이다. 이를 가진 이들은 언제든 상엽을 추격할 수 있었다.
“알았어. 잠깐만 기다려.”
동희는 예전처럼 상엽에게 음료를 챙겨 주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모양이 많이 달랐다.
손가락 하나의 크기는 같았지만 색깔이 보라색이었다. 게다가 음료 안에는 선명히 보이는 가루가 흩어져 있었다.
“너한테만 주는 거야. 몸에 많이 좋아.”
맛은 어떠냐고 묻고 싶었지만 상엽은 그만뒀다.
“해독제는 많이 남았어.”
그렇지 않아도 강화 음료가 바닥났던 상엽은 동희의 선물을 거절하지 않았다.
대신 동희에게 한 가지 약속을 했다.
“유산 조각 중에 너한테 필요한 것들을 보낼 거야. 내가 직접 오진 못할 테니까 미리 연락할게.”
“헤헤. 고마워.”
동희 역시 상엽의 선물을 마다하지 않았다.
상엽은 이미 이곳에 오기 전에 코드 제로에 연락해서 이 부분을 말해 놓았다.
현재도 유산 조각이 엄청나게 많은 상태라 인기가 없는 유산 정도는 얼마든지 맞출 수 있었다.
상엽은 이 중의 하나라도 완성을 해서 동희에게 주라고 지시를 한 상태였다.
‘그 가치는 충분히 하고도 남아.’
5분간 유지되는 50병의 음료였다. 성능이 더욱 강화가 되어서 이제는 상승 폭이 얼마나 될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게다가 이 음료는 오직 상엽과 송연지만 지급받고 있었다.
‘먹어 보고 싶네.’
하지만 아껴야 한다는 걸 알기 때문에 실험을 하진 않았다.
“고마워. 이제 갈게.”
“응. 조심해서 가.”
그들은 평범한 친구처럼 인사를 하며 헤어졌다.
상엽은 최대한 빨리 한국을 떠나려 했다. 여전히 위험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이쪽으로 오고 있어요.”
다음 목표를 묻는 질문에 성아는 이렇게 대답했다.
“한국으로 불렀던 말이야?”
상엽은 그 부분이 불쾌했다. 하지만 성아는 상엽의 생각을 읽을 수 없었기에 그의 불쾌함을 이해하지 못했다.
“뭐가 이렇게 급해?”
상엽도 괜한 감정싸움보다 당장 눈앞에 닥친 전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대화를 멈췄다.
“이름이 뭐야?”
“베레스트.”
“지금 어디 있는데?”
“한국.”
상엽은 그 말을 듣고 서울로 가려던 생각을 멈췄다.
“여기 있으면 오겠지.”
서울보다는 변종 출현 지역에서 싸우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상엽은 한 시간을 기다렸다.
결국 상엽은 성아를 다시 불렀다. 하지만 성아는 응답이 없었다.
몇 번 그런 적이 있었던 터라 상엽은 더 이상 시도하지 않았다.
그때, 성아가 아니라 뜻밖의 인물이 연락을 해 왔다.
-소장님.
마루나였다.
“지금 좀 바빠.”
-아. 죄송해요. 사공강이 갑자기 사라져서.
전화를 끊으려던 상엽은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자세히 말해 봐.”
-라디오 스케줄을 펑크 냈어요. 대전에서 영화 촬영을 하고 있었는데 거기선 이미 출발했다고 해요. 지금 연락도 안 되는 상태예요. 혹시 소장님이랑 같이 있나 해서 연락해 본 거예요.
상엽은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성아의 조각을 가진 다른 녀석이 한국에 있어.’
여섯 번째 조각을 모으기 위한 싸움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 한 가지 간과한 사실이 있었다.
‘내가 아닐 수도 있어.’
어제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성아의 조각을 가진 이는 상엽이 아니라 사공강이었다.
“망할!”
성아는 정확한 위치를 말하지 않았다. 이는 상엽에게 배당된 싸움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지금까지는 상대를 만날 때까지 위치를 확실히 알려 주었다.
“사공강이 이동하는 경로 전송해.”
상엽은 지옥마를 소환하며 다급히 그 자리를 떠났다.
모든 수단이 동원되었다.
단순히 사공강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한국이 위험해.’
상엽과 싸울 만큼 강한 자가 한국으로 들어왔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유가 있었다.
‘내 싸움이야.’
성아의 조각은 상엽이 모아야 했다. 사공강은 이미 이 싸움에서 빠진 상태였다.
하지만 상대가 이를 믿어 줄 리가 없었다.
‘그 녀석은 절대 말하지 않을 거야.’
그냥 상엽의 이름을 대면 간단한 일이었다. 하지만 상엽은 사공강이 그러지 않을 것이라 판단했다.
“이래서 모범생들은 피곤해.”
다행히 흑점에서 모든 시스템을 가동하자 사공강의 위치는 물론, 전투가 벌어지는 지점까지 파악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상엽이 그 지점에 도착했을 때에도 다행히 전투는 계속되고 있었다.
고속 도로 인근이었다.
“감사합니다!”
상엽은 박광신이 제공한 헬기에서 뛰어내렸다.
해머를 꺼내며 전투에 뛰어들기 위해 상엽은 힘을 끌어 올렸다.
‘어?’
그런데 뭔가가 이상했다. 그가 예상한 장면이 아니었던 것이다.
전투 장소는 이미 폐허가 되어 있었고 계속해서 폭음이 터져 나왔다.
그런데 그 중심은 침입자가 아니었다.
상엽은 이를 발견하고 전투 장소가 아닌 폐허의 가장자리로 떨어졌다.
‘저건 뭐야?’
수염이 가득한 유럽인이 만신창이가 된 모습으로 사공강을 노려보고 있었다.
반면, 사공강은 예상과 달리 당당히 서서 그를 압박했다.
그런데 사공강의 모습이 변해 있었다.
등에서는 은빛 날개가 솟아 있었고 찢어진 상체의 피부에는 화려한 문신이 심장 박동처럼 나타났다 사라지길 반복했다.
상엽은 이를 보며 한 가지 단어를 떠올렸다.
“신?”
사공강은 인간이 아닌 신의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