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코인-178화 (177/300)

# 178

“음.”

상엽은 옥상으로 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사공강의 사진을 보았다.

“동생. 왜 그래?”

상엽을 위해 헬기를 빌려주고 배웅을 하던 박광신이 물었다.

“형. 내가 이 녀석한테 다 이길 수 있는데 하나를 못 이기겠어.”

“그게 뭔데?”

“내가 이 녀석보다 힘도 세고, 아마 돈도 많을 거야. 인기투표도 내가 이겼고.”

상엽은 불쾌하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근데 외모는 못 이기겠는데?”

“잘생겨서 기분 나쁘단 말이지?”

“너무 직설적으로 말하니까 내가 쪼잔해 보이잖아.”

“잘생기긴 했지. 직접 만나니까 놀라울 정도던데. 처음으로 남자 외모 때문에 작아지는 느낌을 받았으니까.”

“이 녀석 인간 맞아?”

사진 속의 사공강은 말도 안 되는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잘생긴 남자는 연예인 중에서도 얼마든지 있기 마련이고 결국 개성과 분위기로 평가가 갈렸다.

그런데 사공강은 티끌 하나 없는 하얀 피부에 조각 같은 외모였다.

목소리는 낮고 굵직했으며 온몸이 보기 좋은 근육질이라 뭐 하나 흠잡을 곳이 없었다.

출연 작품에 따라 터프가이와 로맨티스트를 모두 완벽하게 소화했고, 사생활도 거짓말처럼 깨끗했다.

“사람 맞아. 조사해 봤으니까. 어릴 때 사진부터 친구까지 조작된 게 하나도 없어.”

“갓코인은 언제부터 알게 된 거야?”

“초창기 유저야. 그런데 한국에서 살지 않아서 몰랐던 거야.”

“어디 출신인데?”

“멕시코. 고등학교 때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갔다가 변종 습격 때, 탈출하지 못하고 오랫동안 잡혀 있었나 봐.”

멕시코라는 말에 상엽은 눈살을 찌푸렸다.

멕시코는 1급 위험 지역 곳곳에 촌락 같은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다.

적지 않은 수의 사람들이 버려진 도시나 요새 같은 지형에 방어벽을 세우고 살아가는 것이다.

시카고를 비롯해 많은 소수 부락이 운남으로 자리를 옮겼지만 멕시코는 애초에 후보가 되지 않았다.

-거친 자들이라 질서를 지키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루시는 멕시코 부락을 이렇게 판단했다.

“멕시코 시절에 대해서 조사해 봤어?”

“거긴 조사가 안 되잖아. 믿는 수밖에. 일단 인터뷰상으로는 꽤 정직했어.”

이런 분야에서는 박광신도 철저한 인물이라 상엽도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직접 알아봐야지.’

1급 위험 지역에 형성된 집단은 직접 가 보지 않고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전혀 다른 생태계로 살아가는 터라 박광신에게 의심을 심어 주기보다 직접 알아보기로 했다.

“스케줄은 안 잡아 줘도 되겠어?”

“루나 엔터테인먼트 소속이라며? 내가 알아서 할게.”

“그래. 마루나한테도 안부 전해 주고.”

상엽이 없는 사이에 흑점의 사업 파트너로 루나 엔터테인먼트도 합류했다.

이는 박광신의 선택으로 이왕 선정할 것이라면 믿을 수 있는 파트너를 고른 것이다.

“다녀올게.”

상엽은 옥상에 도착해서 헬기를 탔다.

서울 강남에 헬기가 떴다. 헬기는 가장 높은 빌딩 중의 하나로 내려섰고, 그곳에는 이미 연락을 받은 마루나가 서 있었다.

“소장님!”

오랜만에 듣는 호칭이 헬기의 소음 속에서도 선명히 들렸다. 그리고 상엽을 향해 다이빙을 하듯이 마루나가 날아와서 안겼다.

“너무 격한 인사 아니야?”

“제가 참은 거에 비하면 많이 자제한 거예요.”

마루나는 상엽을 꼭 끌어안은 채로 대답했다.

“이제 충분한 거 같은데.”

“죄송해요.”

“할 거 다 하고 죄송하다니. 그러면 내가 나쁜 놈 같잖아.”

“다 하다니요? 마음대로 했다면 지금 소장님이 그렇게 말할 틈도 없을 텐데요.”

“뭘 하려고 했는데?”

“확인하세요. 시간은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마루나는 특유의 모델 같은 몸매가 드러나도록 몸을 살짝 틀며 상엽을 유혹했다.

“안내부터 해. 새로운 사무실인 거 같은데.”

“따라오세요.”

그녀는 일부러 다른 사람을 부르지 않고 혼자 마중을 나와 있었다. 상엽의 성격을 알기에 쓸데없는 인사를 생략하는 것이다.

“이거 제 빌딩이에요.”

35층의 강남 빌딩은 마루나의 소유였다.

“뭐 아버지의 도움을 많이 받긴 했지만, 그건 갚지 않아도 되는 빚이니까 그냥 제 거죠.”

“잘했어.”

“감사합니다. 소장님.”

마루나는 짧은 칭찬에도 아이처럼 좋아했다.

“그래도 절 먼저 찾아와 주셔서 감사해요.”

“미안하지만 일이 있어서 온 거야.”

“알아요. 그래도 전 기뻐요.”

대화를 하는 사이에 그들은 마루나의 사무실에 도착했다. 상엽이 다른 곳은 관심이 없다고 말했기에 안내할 이유가 없었다.

대표 이사 사무실 앞에는 세 명의 비서진이 있었고 이들은 마루나와 상엽을 보자 자리에서 일어나 깍듯하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상엽도 웃으며 그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런데 이를 예상하지 못했는지 여자 비서 두 명의 볼이 붉게 달아올랐다.

상엽에겐 익숙한 풍경이 아니라 고개를 숙이며 마루나의 집무실로 들어갔다.

“소장님, 부탁 하나만 드려도 될까요?”

집무실로 들어서자 마루나가 상엽 앞에 직접 차를 내놓으며 말했다.

“소장님이랑 사진 하나만 찍어도 될까요? 물론 공개용으로요.”

“공개용?”

“회사 차원에서요. 소장님하고 친하다는 걸 보여 주면 사업에 많은 도움이 되거든요.”

마루나는 상환 날짜를 미뤄 달라고 부탁하는 채무자 같은 표정이었다.

그만큼 조심스러운 것이다.

“그런 것도 도움이 돼?”

“네. 정말 많이 돼요. 소장님이니까요.”

상엽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대한민국에서 훨씬 중요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마음대로 해.”

“감사합니다!”

마루나는 허리를 깊게 접으며 몇 번이나 인사를 했다.

“그렇게까지 하지 마. 불편하니까.”

“죄송해요.”

“평소대로 해.”

“전 평소에도 이렇긴 했는데요.”

“아. 그랬나?”

상엽과 마루나의 관계는 조금 특별했다. 이는 그들의 과거 때문이었다.

언뜻 친해 보이지만 상하 관계가 가장 확실한 사이였다.

“저기 소장님…….”

“왜? 또 부탁할 거 있어?”

“네.”

그런데 이번에는 조금 전과 표정이 달랐다. 그녀는 상엽과 눈을 마주치더니 야릇한 웃음을 보이며 물었다.

“덥지 않으세요? 전 좀 더운데.”

상엽이 그 의미를 모를 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확인시켜 주려는 듯이 마루나는 재킷을 벗었다.

하얀 블라우스 안으로 아슬아슬하게 속옷 색깔이 보였다.

“너 안 보는 사이에 무서워졌네.”

“공포 영화 싫어하세요? 제가 최근에 공포 영화를 못 봐서 소리를 질러 볼 기회가 없었거든요.”

“공포 영화 좋지.”

“비명 지르고 싶어요.”

노골적인 요청에 상엽은 대답 대신 소파에서 일어났다.

한 시간 후.

열기가 가득한 사무실 소파에서 그들은 다시 대화를 시작했다.

“후우.”

“좀 더 쉬어도 돼.”

지친 표정의 마루나는 정신을 차리려는 듯이 한숨을 쉬더니 상엽 앞에서 전화기를 들었다.

“스케줄 취소하고 바로 들어오라고 해.”

그녀의 말을 듣던 상엽이 급히 대화에 끼어들었다.

“스케줄 하고 와도 돼. 아직 그렇게까지 할 사이는 아니니까.”

“하지만…….”

“난 괜찮아. 넌 좀 힘들 수도 있겠지만.”

상엽의 말에 마루나는 급히 말을 바꿨다.

“스케줄 끝나는 대로 사무실로 와.”

전화를 끊자 상엽은 그녀를 안아 들었다.

“이번에는 액션 영화로 어때? 좀 거칠 거야.”

“제가 좋아하는 장르예요.”

“다행이네.”

“이왕이면 액션 스릴러로 해 주세요.”

“위험한 거 좋아하나 봐.”

“소장님한테 배운 거예요.”

사무실은 다시 한번 달아올랐다.

밤 9시.

누군가 마루나 집무실을 노크했다.

“들어와.”

허락이 떨어지자 문이 열리면서 185센티미터의 건장한 사내가 들어섰다.

그 순간, 상엽은 시야가 밝아지는 느낌을 받았다.

사내의 얼굴은 현실성이 없을 만큼 완벽했고, 몸에서 느껴지는 기운도 범상치 않았다.

‘진짜네.’

지금까지 만난 어떤 연예인도 이런 느낌을 주진 못했다.

사공강을 직접 만난 상엽은 지금의 인기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아! 안녕하세요! 정상엽 씨!”

그는 신비한 분위기에 최고의 스타임에도 상엽을 보자 동공이 커지며 얼른 달려와서 허리를 숙였다.

“어? 어.”

상엽도 그의 인사에 어색하게 화답하며 소파에서 일어나 허리를 숙였다.

“정말 뵙고 싶었습니다!”

그는 아이처럼 목소리를 높이며 상엽의 손을 덥석 잡았다.

“그, 그래. 일단 앉아.”

“아? 네!”

마치 갓 데뷔한 신인처럼 사공강은 예의 바른 모습으로 상엽과 마주 앉았다.

“잠시 시간 줄래?”

상엽은 사공강이 아닌 마루나를 보며 말했다.

“네. 소장님.”

자리를 비켜 달라는 의미를 알아차린 마루나는 인사를 하고 집무실을 나섰다.

그녀가 떠나고 두 사내는 테이블을 사이에 둔 채로 마주 앉아 약속이나 한 듯이 서로를 보며 웃었다.

침묵의 시간이 시작되기 직전, 상엽은 웃고 있는 사공강을 향해 입을 열었다.

“너 사람 아니지?”

갑작스러운 질문에 사공강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보였다.

“선수끼리 뻥카는 집어치우지.”

상엽은 그의 표정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블랙 상점 최종 강화 중에 감각이라는 항목이 있어. 이걸 진행하면 사람을 만나서 느끼는 분위기도 훨씬 선명해지거든.”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널 처음 봤을 때 내가 느낀 감각이 예전에도 한 번 있었거든.”

상엽은 얇게 웃음을 그린 입술로 말을 계속했다.

“성아. 그 여자 알지?”

상엽의 질문에 사공강의 웃음이 사라졌다. 상엽이 이처럼 솔직하게 물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

“성아 때문에 찾아오신 겁니까?”

“내 질문에 대답부터 해. 나한테는 성아보다 내 친구들이 더 중요하거든.”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네가 신이든 사람이든 상관없어. 다만 내 친구들을 속여서 위험이 된다면, 이 자리에서 죽여 버릴 거야.”

사공강이 바로 대답을 하지 못하자 상엽은 유물 보관함에서 성아의 조각을 꺼내 테이블에 올렸다.

“이딴 거보다 내 친구가 더 소중하다고. 이해했어?”

사공강은 어설픈 변명으로 넘어갈 수 없음을 인지했다.

“두 가지 모두 대화로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그래? 그럼 시작해 봐.”

상엽은 유물 조각을 그대로 놔둔 채 소파에 몸을 기댔다. 그러자 사공강이 먼저 행동을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유물 보관함을 꺼내더니 조각 하나를 테이블 위에 올렸다.

성아의 조각이었다.

“일단 이건 가져가시죠.”

“그냥 주겠다는 거야?”

“싸워서 이길 자신이 없습니다. 싸우고 싶지도 않고요. 그럼 두 가지 중의 한 가지는 해결된 겁니까?”

“두 번째 문제가 해결되면 전부 해결된 걸로 하지.”

상엽은 그에 대한 의심을 지우지 않았다.

“무엇이 궁금하십니까?”

“사람이야? 그것부터 대답해.”

“네. 저는 분명히 사람입니다.”

“사람이 그런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고?”

“그 질문에는 제가 대답할 수 없습니다만 분명히 저는 사람입니다.”

그는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대답했다.

상엽은 믿을 수가 없어서 사공강을 다시 살폈다. 그런데 이번에는 사공강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일반 사람과 분위기가 다른 건 정상엽 씨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갓코인 유저가 아니었다면 아마 이렇게 앉아 있지도 못할 것입니다.”

이 말은 사실이었다. 의심을 하는 상엽의 분위기는 상대의 호흡을 막을 정도로 압박감이 있었다.

“특별한 스킬을 익힌 거야?”

“연예계 생활에 도움이 되는 많은 스킬을 배웠습니다.”

“전투 능력은?”

“꼭 대답해야 하는 것입니까?”

사공강이 경계를 하며 반문했다.

“미안. 실수했어.”

상엽도 이 부분은 인정했다. 그러자 사공강은 다행이라는 표정이었다.

“전 정상엽 씨를 좋아합니다. 제가 한국에 온 이유이기도 합니다.”

“멕시코 출신이라고 했지?”

“그렇습니다. 오랫동안 카르텔의 일을 도우다가 겨우 탈출했습니다.”

그는 어두운 과거조차 숨기지 않았다. 카르텔 소속으로 마약과 관련된 일뿐만 아니라 살인에도 죄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지금은 후회하며 살고 있습니다.”

“뭐 네 과거를 심판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 난 네가 사람인지 아직도 의심스럽거든.”

“전 분명히 사람입니다.”

상엽은 그가 솔직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부분을 더 이상 따지지 않으려 했다.

그런데 뭔가 찜찜함이 남았다.

‘잠깐.’

상엽은 그의 대답이 조금 이상하다고 느끼고 다시 물었다.

“넌 사람이야?”

“그렇습니다. 전 분명히 사람입니다.”

“분명히 사람이다?”

꼭 따라붙는 수식어가 이상했던 것이다.

‘보통은 당연히 사람이라고 하지 않나?’

상엽은 이를 의심하며 질문을 바꿨다.

그는 시간을 들여 사공강과 눈을 맞춘 뒤에 천천히 힘을 주어 물었다.

“너 신이지?”

사공강은 입술을 떨며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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