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6
8개의 조각 중에 상엽은 2개를 가지고 있었다.
“요것 봐라.”
상엽은 신이 참 치사하다고 생각했다.
“이게 네 방식이면 따라 줘야지. 내 걸로 만들고 나서 두고 보자고.”
상엽이 동굴을 나섰을 때, 성아는 간단히 한 마디를 했다.
“조심해.”
그 한 마디가 끝이었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추종자가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적입니다.
이미 다른 이에게 상엽의 위치를 알려 준 것이다.
‘가장 가까이 있는 놈이겠지.’
조각을 가졌다는 것은 이런 의미였다. 언제든 성아가 상엽의 위치를 알려 줄 수 있었다.
“상관없지. 같은 조건이니까.”
반대로 상엽도 다른 이의 위치를 알 수 있었다. 물론 성아가 선택적으로 알려 주겠지만 무작정 찾는 것보다는 나았다.
“몇 명이야?”
-30명 정도입니다.
상엽은 추종자를 통해 산을 올라오는 30명의 전사를 보았다. 선두에는 날카로운 인상을 가진 20대 후반의 사내가 있었다.
-바야르. 갓랭킹 26위.
꽤나 상위권 유저였다. 산동성을 지배하는 길드장으로 20대 유저로 상엽과 비교를 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본래는 중국인이 아닌 몽골의 노동자로 산동성에 들어왔다가 차별을 이겨 내고 지금 자리에 오른 드라마틱한 사연도 있어서 전 세계적으로도 많은 인기가 있었다.
중국에서는 그를 취재한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지기도 했고, 전쟁이 벌어지기 전에는 광고 출연까지 했다.
“인기 스타께서 오셨네.”
상대가 어떠하든 싸움이 벌어지면 둘 중의 한 명은 제거된다.
이것이 갓코인 유저 싸움의 법칙이었다.
“수하들까지 데리고 온 거 보면 겁이 많은 놈인가 봐.”
상엽은 바야르보다 수하들의 움직임을 먼저 살폈다. 단순히 정찰이나 포위망을 위해서 접근하는 것이 아니었다.
모두들 무기를 꺼내고 바야르와 멀지 않은 곳에서 진형을 갖추고 있었다.
함께 싸우겠다는 뜻이다.
“대장을 잘못 만났네.”
상엽은 승리를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했다.
“똑같이 돌려주자.”
상엽은 직접 움직이기 시작했다.
랭킹 26위 바야르.
랭킹 35위 정상엽.
그들의 격돌은 계곡에서 시작되었다.
계곡을 오르던 길드원 하나가 고스트 체인에 몸이 꿰뚫렸고 곧바로 이어지는 스트라이크에 한 명이 다시 빛으로 흩어졌다.
첫 기습 이후에 바로 진형을 갖췄지만 상엽은 인기척도 없이 사라졌다.
하지만 그들에겐 스카우트가 남아 있었고 상엽의 정확한 위치를 잡아냈다.
쾅!
그게 실수였다.
상엽은 몸을 숨긴 것이 아니라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파편을 날리기 좋은 위치를 잡고 있는데 상대가 의도대로 달려와 주었고 그 한 방으로 세 명을 제거했다.
그리고 팔각 대시에 이은 화염파도로 다섯 명이 사라졌고, 망자의 손길이 더 많은 사상자를 만들었다.
바야르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상엽을 잡으려 했다. 하지만 상엽은 그의 승부를 받아 주지 않았다.
집요하게 정면충돌을 피한 상엽은 끝내 모든 수하들을 정리해 버렸다.
“으아!”
바야르는 수하들이 모두 제거되자 괴성을 질렀다.
그 괴성에 숲이 폭발하듯 터져 나가며 땅을 뒤집어 놓았다.
“그러게 혼자 왔어야지.”
숲 안에 생긴 거대한 폐허로 내려서며 상엽이 바야르의 신경을 건드렸다.
그는 상처 입은 늑대와 같은 표정이었다.
양손에 짧은 도끼를 든 그는 상엽이 내려서자 당장이라도 달려들 것 같은 기세였다.
‘거친 녀석이네.’
상엽은 날카로운 기파로 숲에 구멍을 내 버린 그의 힘을 다시금 떠올렸다.
결코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죽인다!”
상엽보다 더욱 본능에 의존하고 거친 공격을 선호하는 유저였다.
그가 땅을 박차고 직선으로 달려들었을 때, 상엽은 크게 놀라며 5미터 옆으로 물러섰다.
‘이건 뭐야?’
마치 초보 시절에 멧돼지를 만난 기분이었다. 감히 정면에서 맞설 수 있는 기세가 아니었다. 게다가 워낙 빨라 해머를 휘두를 틈도 없었다.
‘랭킹이 그냥 만들어진 건 아닐 테니까.’
상엽은 자신이 있던 자리를 완전히 뒤집어 놓고 지나간 바야르를 다시 보았다.
그런데 고개를 돌리는 순간, 선명한 늑대 문양이 상엽의 얼굴 앞에 떠올랐다.
‘뭐야?’
늑대 문양은 살아 있는 것처럼 입을 벌리고 상엽의 몸을 집어삼키려 했다.
상엽은 위협을 느끼고 급히 뒤로 물러났다. 그런데 환영이라 생각했던 늑대 문양이 입을 다물자 공기가 터져 나가며 주변으로 날카로운 기파가 퍼졌다.
환영이 아닌 실체였던 것이다.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뒤로 물러난 상엽의 발아래에서 늑대의 발톱 같은 가시가 솟아올랐다.
그리고 바야르는 다시 정면에서 상엽을 향해 돌진했다.
상엽은 더 이상 물러나는 걸 택하지 않았다.
그는 가시를 피해 뒤가 아닌 정면으로 튀어 나갔다.
서로를 향해 달려들자 그들은 찰나의 순간에 마주 보는 거리까지 가까워졌다.
‘유령 걸음.’
해머와 짧은 도끼.
무기의 차이를 감안한 상엽은 정면충돌을 피했다. 상대가 해머를 피할 거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바야르는 땅을 쓸어 내듯 몸을 굽히며 상엽의 하체를 찍으려 했다.
하지만 이미 대비를 했던 상엽이 유령 걸음으로 이를 흘리고 땅을 박차며 곧바로 바야르의 등을 향해 스트라이크를 시도했다.
바야르는 상엽이 다가오자 갑자기 하늘로 치솟았다. 스프링처럼 튀어 오르며 상엽을 피한 그는 공중에서 슬라이딩을 하듯이 사선으로 상엽을 덮쳤다.
오히려 등을 내주게 된 상엽은 피하지 않고 오른발을 묻듯이 땅을 밟고 몸을 회전시켰다.
그리고 다가오는 바야르를 향해 해머를 휘둘렀다.
츳!
기대했던 타격음은 들리지 않았다.
바야르는 떨어지는 와중에도 다시 한번 방향을 바꿔 해머를 피하고 상엽의 옆구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는 공격에 성공하자 바로 몸을 돌리며 다시 도끼를 휘두르려 했다.
하지만 그가 내려선 자리에 거대한 돌기둥이 치솟으며 중심이 무너졌다.
결국 그들은 다시 거리를 벌리고 서로를 보았다.
“쳇.”
상엽의 옆구리에서는 꽤 많은 피가 새어 나왔다. 강화 수준이 높아서 결국은 치료가 되겠지만 조금만 깊었어도 목숨을 잃을 만큼 날카로운 공격이었다.
“부하들은 안 데리고 와도 되는 실력이었네.”
“닥쳐라!”
“그래도 돌려줄게. 그런데 내 부하들은 네 부하들처럼 쉽지 않을 거야.”
상엽의 주변으로 빛기둥이 솟아올랐다.
32명의 유령 전사와 하늘로 솟아오른 추종자가 바야르를 보며 괴성을 질렀다.
히이잉!
그리고 상엽의 곁에는 지옥마가 나타났다.
상엽이 자랑하는 유령 군대였다.
특히 강화를 하면서 새롭게 합류한 두 명의 전사는 전략적으로 활용 가치가 높았다.
말의 하체에 근육질 남성의 상체를 가진 그들은 창을 던지는 원거리 공격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동력이 워낙 빨라서 먼저 목표가 되더라도 훌륭히 피해 냈다.
하지만 문제는 있었다.
“만만치 않은 놈이야. 섣불리 덤비지 마.”
상엽이 원하는 것은 유령 군대를 이용해 바야르를 직접 타격하는 것이 아니었다.
“멀리 물러나서 기습만 해.”
그가 원하는 것은 단 하나였다.
‘거슬리게만 하면 돼.’
상엽이 수하를 먼저 처리한 이유였다.
명령에 따라 유령 군대는 폐허 지역 밖으로 빠져나가며 몸을 숨겼다.
바야르는 그 움직임을 보고도 쉽게 수하들을 쫓아가지 못했다. 상엽이 바야르와 지척에 있었기 때문이다.
괜히 수하를 쫓다가 등을 내줄 수도 있기에 바야르는 상엽을 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상엽은 수하들의 등장으로 옆구리의 출혈이 멈추는 시간을 벌었다.
“자. 다시 시작해야지.”
상대가 강한 것을 확인했음에도 상엽은 조금의 두려움도 없었다.
화르르!
강렬한 불꽃이 상엽의 몸을 감쌌다. 이를 본 바야르의 도끼에는 서늘한 느낌의 푸른빛이 감돌았다.
그들은 마치 맹수와 같은 눈빛으로 서로를 보았다.
서로의 눈을 보는 순간, 그들은 다른 생각이 자연스레 지워졌다.
-한 명은 무조건 죽는다.
둘 모두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기 싸움부터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들은 서로를 노려보다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앞으로 튀어 나갔다.
상엽은 다시 한번 충돌이 일어나려는 순간, 갑자기 해머를 집어넣었다.
그리고 유령 걸음으로 서로의 몸이 지나갔다. 여기까지는 처음과 같았다.
하지만 바야르는 이미 이득을 본 상황임에도 패턴을 바꿨다.
늑대 환영이 다시 나타나며 상엽의 머리를 집어삼키려 했다.
그 순간, 상엽의 몸에서 작은 폭발이 일어났다. 그리고 폭발이 끝나기도 전에 환영을 뚫고 바야르를 향해 튀어 나갔다.
“큭!”
바야르는 예상치 못한 공격에 급히 앞을 막았다. 그리고 교차한 도끼에 긴 늑대의 발톱이 걸렸다.
“크흐.”
늑대인간 상엽이 붉게 물든 눈으로 바야르를 노려봤다.
그때부터 싸움은 초근접전으로 펼쳐졌다. 잠시 당황했지만 바야르도 근접전에서는 자신이 있었기에 물러서지 않았다.
수십 개의 도끼 환영이 늑대인간을 덮치면 푸른빛이 튀어나와 이를 막고 반격을 시도했다.
그사이 늑대인간과 전사는 수십 번이나 공방을 교환했다.
서로 작은 상처는 감안하고 상대의 숨통을 끊으려 했다. 이런 상처는 처음에는 무시할 수준이지만 시간이 지나자 통증을 일으켰다.
통증은 그들의 전투를 방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것이 쌓이기 시작하자 무시할 수 없는 수준으로 발전했다.
“하아!”
“크흐!”
둘은 기합까지 넣으며 근접전에서 물러서지 않았다.
스킬과 전투력, 투지와 의지. 모든 것이 박빙이었다. 때문에 서로 물러설 수가 없었다.
-밀리면 죽는다.
그들은 단 한 순간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렇게 서로의 몸이 피로 물들어 멀쩡한 곳을 찾아볼 수 없을 때였다.
휘익!
공기를 가르는 소음 하나가 그들의 전장에 끼어들었다.
유령 전사가 창을 던진 것이다. 이는 팽팽한 전장에 끼어든 작은 변수였다.
하지만 이것이 균형을 깨트렸다.
히잉!
지금까지 참고 있던 지옥마가 바야르를 향해 돌진을 시작했다.
그리고 유령 전사들이 귀곡성 같은 함성을 질렀다.
챙!
바야르는 어쩔 수 없이 몸을 회전하며 다가오는 창을 날려 버렸다. 하지만 그 짧은 틈에 늑대인간의 손톱이 그의 허벅지를 길게 베어 냈다.
깊은 상처는 전장의 상황을 순식간에 변화시켰다.
히잉!
지옥마가 바야르를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가는 순간, 묵직한 한 방이 날아갔다.
쾅!
해머였다.
상엽이 다시 인간으로 돌아와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공격을 펼친 것이다.
늑대인간의 빠른 공격을 예상했던 바야르는 그 한 방에 중심이 완전히 무너졌다.
‘화염파도.’
상엽의 몸을 감쌌던 불꽃이 드디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그리고 불꽃에 몸을 숨긴 상엽이 스트라이크를 날렸다.
바야르는 본능적으로 몸을 띄워서 이를 피하려 했다. 하지만 그는 커다란 그늘이 진 땅을 뒤늦게 발견했다.
거대한 해머가 그의 머리 위로 떨어지고 있었다. 바야르는 급히 사선으로 떨어지며 해머를 피해 냈다.
하지만 당장의 위험을 피하는 것밖에 되지 않았다.
그가 내려서는 자리에선 이미 상엽이 해머를 휘두르고 있었다.
‘당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바야르는 모든 힘을 끌어올리며 정면을 막았다.
콰쾅!
해머가 교차한 도끼를 때렸다. 그 순간 주변을 집어삼키는 폭발과 함께 바야르의 양손도 사라져 버렸다.
양팔을 잃은 바야르는 멍하니 상엽을 보았다. 그러다 힘이 빠진 채로 무릎을 꿇었다.
상엽은 그를 보며 어떤 조롱이나 비난도 하지 않았다. 그러고 싶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죽이고 싶지 않아. 그럴 수 없는 게 안타까워.”
이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전투에서 상엽은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하지만 어설픈 동정이 결국에는 위협이 될 것을 알기에 끝을 내야 했다.
푹.
망자의 손길이 바야르의 목을 꿰뚫었다. 전투는 그것으로 끝난 듯했다.
‘뭐야?’
바야르의 목에 망자의 손길이 관통하는 그때였다.
갑자기 바야르의 몸이 빛으로 흩어지더니 망자의 손길을 피하고 늑대의 모습으로 변해 버렸다.
그리고 방심한 상엽을 향해 이빨을 드러내며 뛰어올랐다. 상엽은 급한 마음에 손을 들어 앞을 막았다.
아슬아슬한 순간이었다.
상엽의 눈에 늑대의 날카로운 송곳니가 보였다.
콰직!
늑대의 이빨이 얼굴에 닿기 직전, 상엽의 오른손이 늑대의 벌어진 입 사이로 들어갔다.
강력한 턱에 걸린 그의 오른손은 단숨에 으스러졌고 엄청난 고통을 유발했다.
푹!
망자의 손길이 창으로 변해 뛰어오른 늑대의 배에 수십 개의 구멍을 냈다.
그제야 늑대의 행동이 멈췄다. 그리고 바닥에 떨어지며 서서히 빛으로 흩어졌다.
늑대가 사라지고 만들어 낸 빛이 몸에 흡수되는 순간까지 상엽은 찌푸린 인상을 펴지 못했다.
“아직 멀었어.”
독한 마음을 먹었지만 충분하지 못했다. 반면 상대는 죽음 앞에서도 마지막 반격을 노렸다.
그로 인한 방심에 목숨을 잃을 뻔했다. 늑대에게 머리가 물렸다면 회생을 쓸 기회도 없이 즉사했을 것이다.
“정신 차리자.”
상엽은 자신을 질책하며 전투를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