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3
송하, 송윤.
남매의 이름이었다.
“해령 길드장이 아빠를 죽였어요.”
상엽은 남매가 머무는 은신처로 이동하면서 그들의 사연을 들었다.
“우리 아빠는 어부였어요. 한 번도 해남도를 떠나지 않고 살았다고 했어요.”
평범한 어부가 어떻게 해령 길드장에게 죽었을까?
게다가 해령 길드의 길드장은 정치와 도시 관리만 하는 자였다.
실제로 무력을 장악한 자는 길드장이 아니라 부길드장이었다.
“그런데 길드장이라는 사람이 와서 아빠를 갓코인 유저로 만들었어요.”
길드장 정도의 신분이 되면 일반인을 갓코인 유저로 만드는 건 어렵지 않았다.
작은 유물 조각 하나면 충분했다.
“아빠는 어부를 그만두고 변종들을 잡으러 가야 했어요. 그런데 첫 전투에 선발된 인원이 아빠를 포함한 다섯 명이었어요. 전부 겨우 갓코인 유저가 된 초보자였고요.”
소녀는 오랫동안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조사했고 많은 사실을 밝혀냈다.
“미끼였어요. 변종들을 유인하기 위해 미끼로 선발된 거예요.”
인간 미끼.
변종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최고의 미끼는 바로 인간이었다. 몇몇 사냥꾼들은 변종들을 함정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이런 방식을 사용했다.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실종 사건도 이와 무관하지 않았다. 다만 초창기에 벌어진 일이었고, 지금은 유저들의 실력이 올라가면서 굳이 이런 방식을 이용하진 않았다.
남매의 아버지가 죽은 것도 갓코인 초창기인 4년 전이었다.
‘그래서 길드장을 죽이려고 하는 거구나.’
미끼를 선발하는 건 길드장이 직접 했다. 믿음을 주기 위해 상징적인 인물이 나선 것이다.
“좋아. 사연은 이해했어. 그럼 이제 그 유산을 어떻게 훔쳤는지 말해 줄래?”
“금고를 죽였어요. 그걸 팔아서 나머지 조각을 구했고요. 나머지는 해령 길드의 다른 금고에 있어요.”
이야기를 하는 사이에 그들은 은신처에 도착했다.
‘이래서 안 들켰구나.’
남매는 정상적인 주택에 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지하 하수구에 살고 있었다.
“금고는 어떻게 죽인 거야?”
“해령 길드원 중의 한 명이 절 유혹했어요. 동생과 배불리 먹고살 수 있게 해 주겠다며 자기 말만 들으라고.”
그때가 겨우 11살 때였다.
“미친 새끼였네.”
“도망갈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이걸 쓸 수밖에 없었어요.”
소녀는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그건 낡은 권총이었다.
“아빠 유품이에요.”
권총을 유품으로 지니고 있는 소녀를 보자 상엽은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자. 그 이야기는 됐고 다른 금고에 대해서 얼마나 알아?”
“그 전에 내 동생부터 구해 주세요. 그럼 전부 말해 드릴게요.”
“그건 거래 조건이 안 돼. 널 믿을 수가 없거든.”
“금고 중의 한 명은 관광객이에요. 그리고 지갑에 위치 추적 장치가 있어요.”
그들이 소매치기를 하는 이유였다. 왜 그렇게 지갑에 집착했는지도 그제야 이해했다.
“다른 금고는 해안 초소에 근무하는 사람 중의 하나예요.”
“그런 정보를 어떻게 알아낸 거야?”
“동생을 구해 주면 그것까지 다 말해 줄게요.”
“좋아. 충분히 성의는 보여 준 것 같으니 이제 제대로 협상을 하자고.”
“시간이 없어요. 동생부터 구해 주세요.”
“걱정 마. 조건은 간단하니까.”
상엽은 자신이 원하는 바를 말했다.
“난 해령 길드의 금고를 전부 가져야겠어. 그리고 분배 조건은 7 대 3. 물론 내가 7이야.”
“제가 원하는 조각은요?”
“물론 줄 거야. 그리고 우리 협력은 거기까지야. 더 이상 도와주지 않을 거고.”
“알았어요.”
“그럼 전부 털어 보자고.”
협상은 간단히 성립되었다.
“그럼 이제 동생을 구해 주세요.”
“여기서 기다려. 절대 끼어들지 말고. 방해만 될 테니까.”
상엽은 단단히 주의를 주고 송하의 은신처를 나섰다.
송윤은 거친 취조를 받았다.
갓코인 유저라고 해 봐야 겨우 2단계 수준이었고 전투 스킬은 전혀 없었다.
소매치기를 위해 익힌 생활 스킬이 전부라서 저항할 수도 없었다. 그럼에도 어린 소년의 몸에는 이미 많은 상처가 남았다.
“누나가 어디 있는지 말해.”
그들이 원하는 정보는 단 하나였다.
길드 금고를 털어 간 최고 등급 수배범.
지금까지 수도 없이 수색을 했지만 아직까지 찾아내지 못했다.
이는 해령 길드가 수치스럽게 생각하는 일 중의 하나였다.
그러다 소매치기 사건이 자주 발생한다는 보고를 받고 일부러 함정을 팠다.
결국 이를 이용해 송윤을 잡아낸 것이다.
송윤은 어떤 고문과 압박에도 입을 열지 않았다. 결국 해령 길드는 다른 방법을 생각했다.
“처형 날짜를 잡아. 알아서 우리 손으로 들어올 테니까.”
치안대장은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생각했다. 송하가 동생 송윤을 절대 죽게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일이면 지긋지긋한 충치를 뽑을 수 있겠군.”
치안대장은 이를 갈며 내일을 기다렸다.
그날 밤.
송윤은 만신창이가 된 모습으로 본부 지하의 취조실에 쓰러져 있었다.
내일 정오에 처형이 예정되어 있어서 굳이 감옥으로 옮길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취조실 특성상 유리벽을 통해 감시도 편해서 처형까지 취조실에 가둬 두기로 했다.
이것은 구출 작전을 하려는 상엽과 루시에게도 큰 난관이 되었다.
“정체를 들키지 않아야 합니다.”
상엽이 지금까지 정체를 숨기고 작전을 펼친 것은 철저히 신분을 숨기기 위해서였다.
“그냥 부수고 데려오면 편하긴 한데.”
“당장은 편하지만 앞으로는 편하지 않을 것입니다.”
루시의 말대로였다. 전면전이 벌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자.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상엽은 고민에 빠졌다. 루시 역시 이번에는 뚜렷한 방법이 없어 보였다.
“비서진 회의를 소집하겠습니다.”
상엽을 직접 보좌하는 건 루시였지만, 각지에서 많은 권한을 가지고 일을 하는 비서진이 있었다.
루시가 직접 선발하고 육성한 인원이었고 현재는 곤명과 사천 성도에서 상엽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루시가 회의를 위해 방으로 들어가고 상엽은 호텔의 거실에서 생각에 잠겼다.
‘이걸 깔끔하게 해결해야 하는데.’
비서진에게 맡겨 놓지 않고 상엽은 직접 고민을 했다.
“본부 지하라…….”
상엽은 루시가 그려 놓은 해령 길드 본부의 건물 구조를 보았다.
“잠깐만, 이 정도 규모면…….”
본부는 지상 10층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무엇보다 넓이가 엄청났다.
해남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은 아니지만 가장 넓은 건물 중의 하나였다.
“최근 건물이니까…….”
상엽은 철거반으로 있을 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여긴 정화조가 없네요.
10층짜리 건물을 철거할 때의 일이었다.
모든 주택이나 건물은 오물을 담아 놓는 정화조가 있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대형 건물이나 최근에 지어지는 건물은 정화조가 없었다.
그렇다면 오물을 어떻게 처리할까?
바로 하수 처리장으로 직접 보내는 방식을 택했다.
당연히 이를 위한 하수구가 필수였다.
‘건물 외부에서부터 하수구가 연결되어 있다는 뜻이지.’
정화조 자체가 도시 오염의 주범이라는 말이 많아서 선진국에서는 이를 법률로 규정하기도 했다.
“루시.”
루시는 상엽의 부름에 회의를 중단하고 거실로 나왔다.
“회의 중단해. 내가 가서 데려올 테니까.”
“좋은 방법이라도 있으십니까?”
“코만 꽉 막으면 돼. 이게 쉽지 않은 일이긴 하지만.”
상엽은 계획을 말해 주고 호텔을 나섰다.
* * *
“이쯤이야.”
상엽은 유령 추종자를 사용할 수가 없었다. 괜히 결계에 걸리면 침입을 알리는 꼴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직접 계산을 하며 움직였다.
‘유령 걸음.’
상엽은 빠르게 몸을 띄우며 유령 걸음을 사용했다. 그의 몸이 두꺼운 천장을 빠르게 통과하며 위층으로 올라갔다.
‘설비실.’
예상대로 설비실에 도착한 상엽은 몸을 낮추며 굵은 관의 뒤로 숨었다.
‘카메라는 여덟 대.’
빠르게 움직이기만 한다면 카메라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상엽은 일단 비상구를 찾고 빠르게 몸을 움직였다. 문을 유령 걸음으로 통과하자 계단이 나타났고 이를 통해 지하 1층에 닿을 수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제외하면 계단은 2곳. 그중에 취조실에서 가까운 계단은 여기지.’
그는 이를 확인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 않고 무조건 계단으로 움직이는 경우는 하나밖에 없어.’
상대가 반드시 계단으로 움직이게 해야 했다.
‘화재 경보.’
화제 경보 시에는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 않는 것이 상식이었다. 게다가 갓코인 유저들은 굳이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필요도 없었다.
화르르!
상엽의 몸에서 불꽃이 일어 화재경보기를 집어삼켰다. 순간 건물 전체에 사이렌이 울리기 시작했다.
왜애앵!
사이렌과 시끄러운 알림음이 건물 전체를 잠식하자 지하 1층의 문이 일제히 열렸다.
그들은 상엽이 만들어 낸 연기가 복도를 채우기 시작하자 재빨리 대피를 시작했다.
그중의 몇몇은 연기가 시작된 곳이 설비실이라 생각하며 재빨리 계단으로 오기도 했다.
상엽은 천장에 몸을 붙여 그들이 피하길 기다렸다.
그렇게 연기가 지하 1층의 천장까지 차올랐을 때, 한 사내가 어린 소년을 끌고 복도로 나왔다.
‘찾았어.’
상엽은 짐짝처럼 끌려가는 송윤을 확인했다. 그리고 사내와 송윤이 계단에 올라섰을 때, 상엽이 천장에서 떨어져 내렸다.
쿵.
뒷목에 충격을 받은 사내는 그대로 꼬꾸라졌다.
“구해 주는 거야.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그대로 있어.”
상엽은 연기 속에서 송윤을 어깨에 걸쳤다. 그리고 위가 아닌 아래를 향해 뛰었다.
지금 본부 입구에는 꽤 많은 경계 인원이 있었다. 해령 길드에서도 오늘 밤에 무슨 일이 일어날 거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다만 지하로 올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상엽은 재빨리 설비실로 들어가 하수구로 통하는 맨홀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지체 없이 그 안으로 뛰어들었다.
하수구에서 속도를 높이자 누구도 상엽을 따라올 수가 없었다.
“뭐 간단하네.”
그는 무사히 송윤을 탈출시켰다.
상엽은 송윤을 호텔이 아니라 최초로 묵었던 안전 가옥에 루시와 함께 두고 홀로 송하를 찾아갔다.
새벽임에도 초조하게 소식을 기다리던 송하는 상엽이 나타나자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동생은요?”
상엽은 대답 대신 스마트폰으로 영상 통화를 걸었다. 루시가 이를 받았고, 곧 송윤의 모습이 보였다.
“직접 대화해.”
송윤은 상처가 많았지만 이미 치료를 받아 위기를 넘긴 상태였다.
송윤은 상엽이 자신을 구출했고 치료를 받은 것까지 모두 사실대로 말했다.
“자. 이제 동생은 언제든 만날 수 있어.”
“원하는 게 뭐예요?”
“네가 숨긴 비밀들. 그게 너무 궁금하거든.”
송하는 긴장이 풀린 듯이 길게 한숨을 쉬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뭐든 말해 줄게요.”
“좋아. 그럼 금고에 대한 정보를 어떻게 알아냈는지부터 말해 볼까?”
“이거예요.”
소녀는 하수구 안에 있는 작은 천막을 열었다. 그 안에는 라디오 같은 음향 장치가 잔뜩 놓여 있었다.
거기서는 끊임없이 사람들의 말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게 뭐야?”
“화장실 밀대 자루, 경비 아저씨 모자 배지, 본부 사무실 복사기, 재건축했던 창고의 벽돌, 도청 장치만 20개 정도 설치해 놨어요.”
상엽은 그 말을 듣고 웃고 말았다.
스킬이라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장비를 사용한 것이다. 그것도 꽤나 기발한 장소에 숨겨 두었다.
“그걸로 계속 정보를 모았던 거야?”
“그나마 경계가 심하지 않은 사람들은 직접 정찰했어요. 돈을 주고 회유한 사람도 있고, 협박해서 알아낸 것도 있어요.”
다양한 방법으로 아주 작은 정보를 모아 온 것이다. 이것들이 모여 조금씩 비밀이 밝혀졌다.
‘대단한 집착이네.’
의지로만 되는 일은 아니었다.
“또 궁금한 게 있어요?”
“시크릿 유산. 어떤 종류야?”
송하에 대한 정보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하고 갓랭킹을 살폈지만 마찬가지였다.
그녀가 지금까지 잡히지 않은 결정적인 이유이기도 했다.
“이리나의 거울. 상급 시크릿이에요.”
송하는 이것조차 숨기지 않았다.
“아저씨도 시크릿 유물이 필요한 거예요?”
“맞아. 꽤 진지하게 찾는 중이야.”
“해령 길드 유산 중에 있어요. 이리나의 거울보다 더 좋은 유산이에요. 4조각뿐이긴 하지만.”
“그래?”
“부길드장이 완성하려고 안달이 난 유산 중의 하나예요.”
6조각 유산 중에 4조각이 모여 있었다. 갓랭킹의 등장 이후, 시크릿 유산 조각에 대한 가치가 급등하면서 구하기가 쉽지는 않았다.
블랙마켓에서도 최고 등급으로 분류되는 것이 이 같은 유산이었다.
같은 이유로 개인이 시크릿 유산을 보유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모두가 노리는 유산 조각이라 위험했기 때문이다.
“진짜 보물 창고네. 훔칠 가치가 있어.”
상엽은 이번 작전이 더욱 재미있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