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코인-158화 (158/300)

# 158

“이건 진짜 개새끼네.”

갓코인 유저들은 모두 떠났다. 남아 있는 이들은 힘이 없는 일반인들이었다.

상엽은 그들을 통해 그동안 북천이 무슨 짓을 하고 살았는지 들을 수 있었다.

매 끼니마다 진수성찬은 기본이었고,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항상 수발을 드는 여자 신도가 따라붙었다.

말이 신도였고 실제로는 노예나 다름이 없었다. 사천 각지에서 잡아 온 여자 신도만 무려 5백 명에 달했다.

이들은 언제든 북천의 요구에 응해야 했고, 갖가지 이유로 죽은 여자만 천 명이 넘었다.

“이건 폭군이 아니라 그냥 미친놈이네.”

자신 외에는 누구도 인간처럼 대하지 않았고, 그가 죽인 참모만 10명이 넘었다.

“흠.”

상엽은 넓은 마당에 도열해 있는 2천 명을 보았다. 이들은 모두 북천성이라 불리는 대북천의 본부에서 일하는 일반인들이었다.

워낙 규모가 커서 이 정도의 인원이 필요했다.

“그냥 버리고 도망갔다는 거네.”

상엽은 두려운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는 2천 명을 보았다.

“자. 이제 다들 자유예요. 가고 싶은 곳으로 가세요.”

상엽의 말에 몇몇이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눈이 마주치자 다시 고개를 숙였다.

“뭐해요? 집에 가도 된다니까요. 혹시 계속 여기서 일하고 싶은 사람은 내일 오후에 다시 오세요. 우선적으로 뽑아 드릴 테니까.”

본부가 운영되려면 사람이 필요했다. 상엽은 이들에게 우선권을 주려고 했다.

“저, 정말 가도 됩니까?”

“가세요. 안 말리니까.”

한 중년이 눈치를 보더니 슬금슬금 뒤로 물러났다. 그러더니 점차 상엽에게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상엽은 떠나는 이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 뒤로 많은 사람들이 몸을 돌려 떠났다.

그때, 상엽이 모두가 들을 수 있게 목소리를 높였다.

“잠깐. 거기 여자분들은 좀 남아요.”

그 말에 500명의 여자들이 울 것 같은 표정으로 걸음을 멈췄다.

그녀들의 표정에는 어느 정도 예상했다는 감정이 떠올랐다.

상엽은 그녀들을 향해 다가갔다.

“여러분들께는 잠시 물어볼 게 있어요. 그러니까 안에 들어가서 기다리세요.”

상엽은 북천이 거주하던 중앙 전각을 가리켰다. 500명은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걸음을 옮겼다.

이미 명령에 순응하는 훈련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녀들은 목숨을 지키기 위해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어디서나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은 있기 마련이었다.

차례대로 안으로 들어가던 여자 중의 한 명이 일부러 상엽을 보며 눈인사를 했다. 그리고 자신 있는 부위인 듯 긴 치마 사이로 드러난 다리를 은근히 도드라지게 했다.

그 후로 몇 명이 더 경쟁하듯 상엽에게 추파를 던졌지만 결국 뒷사람에 밀려 안으로 들어갔다.

‘확실히 예쁘네.’

사천 각지에서 미인으로 소문이 난 여자들이었다. 상엽은 그녀들의 추파에도 흔들리지 않고 자리를 지켰다.

잠시 후.

하늘에 헬기가 떴다.

코드 제로의 대원들이 도착한 것이다.

제일 먼저 바닥으로 뛰어내린 이는 루시였다.

정장을 입고 추락하듯 떨어지던 그녀는 바닥에 닿기 직전 몸이 잠시 떠오르더니 사뿐히 내려섰다. 그러고는 하이힐의 구두 소리가 선명히 나도록 도도하게 걸으며 상엽 앞에 섰다.

“조사 시작하겠습니다.”

“여기는 알아서 처리해. 난 잔당들 좀 잡으러 가야겠어. 아직 위협이 될 놈들이 몇 남았어.”

“알겠습니다.”

여자들에게 남으라고 했던 이유는 하나였다.

‘북천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봤던 자들이야. 분명히 고급 정보들이 있을 거야.’

상엽은 진짜 원하는 정보가 있었다.

‘지옥마에 대해서도 알 수도 있어.’

루시도 이를 알기에 철저히 조사를 할 것이다.

“수고해.”

상엽은 그 말을 남기고 북천성을 나섰다.

* * *

“유령아. 아직도 아프냐?”

-괘, 괘찮, 습, 니다.

더듬더듬 추종자의 말이 들렸다.

북천과의 싸움에서 큰 충격을 받은 추종자는 아직 회복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

“이 둘을 찾아야 하는데.”

성을 나선 상엽은 두 명을 목표로 잡았다.

랭킹 300위권에 해당하는 두 명이었다. 상엽은 그들의 생존을 확인하기 위해 갓랭킹을 확인했다.

매일 한 번 업데이트라서 아직까지 북천이 24위에 자리를 하고 있었다.

‘내일이면 사라지겠지.’

상엽은 북천의 이름을 뒤로하고 300위권을 살폈다.

순위 변동으로 인해 한 명은 드디어 200위권에 진입했다.

298위 소명, 309위 진선유.

남겨 두기 찝찝한 실력자들이었다.

‘당장 추격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데.’

상엽은 일단 성도를 둘러보기로 했다. 성도 내에 남아 있는 자들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진짜 미친놈이네.”

성도 안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것은 대북천의 마크와 북천의 초상화였다.

마치 황제의 사진을 걸어 놓은 듯이 고급 호텔에는 어김없이 북천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자기만을 위한 도시를 만들어 놨네.”

북천의 얼굴이 그려진 수십 가지 상품이 있었고, 곳곳에 대형 광고판까지 있었다.

“이런 곳이라면 쉽게 버릴 수는 없겠는데.”

대북천은 사천에서 그만큼 영향력이 컸다. 반면 빈부 격차는 끔찍할 정도였다.

선택을 받은 자들은 엄청난 부를 누리며 일반 시민을 노예처럼 부렸고, 이들의 억울함을 풀어 줄 수 있는 장치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성도를 벗어날 수 없는 건, 그나마 다른 곳보다는 먹고사는 걱정이 없어서였다.

-존엄성을 버리면 배부르게 먹을 수 있다.

인간에겐 너무나 가혹한 선택지였다.

“이건 뭐야?”

시민들의 모습을 보며 길을 걷던 상엽은 건물이 사라지고 복잡한 도로 중앙에 우뚝 서 있는 광장에서 걸음을 멈췄다.

그런데 기존 시청 광장에 거대한 석상이 세워지고 있었다. 금칠을 한 석상은 북천의 모습이었고, 수백 명이 모여들어 막바지 공사를 진행 중이었다.

이제 석상을 세우기만 하면 끝나는 것이다.

“잘 만들었네.”

상엽은 아직은 눕혀져 있는 석상 앞에 섰다.

“누, 누구요?”

성도는 아직도 북천이 죽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길드원들만 급히 빠져나간 것으로 보였다.

망치를 든 늙은 노인이 석상에 다가오는 낯선 자를 경계했다.

“이제 이건 필요 없어요.”

“그게 무슨 소리요?”

상엽은 대답 대신 석상의 머리로 움직였다. 그리고 해머를 꺼내 그대로 내려찍었다.

쾅!

석상의 머리가 박살 나는 순간, 그곳은 정적에 휩싸였다. 그러다 인부들이 괴성을 지르며 달려왔다.

“미친 새끼야!”

“무슨 짓이야!”

“너 때문에 우리까지 다 죽게 생겼어!”

그들의 표정은 절박했다. 이성을 잃은 탓인지 해머를 보고도 상엽을 알아보지 못했다.

“이게 무슨 짓이냐!”

한발 늦게 현장으로 달려온 자가 당장 상엽을 죽일 것처럼 대뜸 채찍을 휘둘렀다.

상엽은 굳이 채찍을 피하지 않았다.

츠팟!

다가오던 채찍은 푸른 칼날에 의해 잘렸고 사내는 뭔가 잘못되었음을 알아차렸다.

상엽은 그를 내버려 두고 절망에 빠진 인부들을 향해 말했다.

“북천은 죽었어요.”

상엽의 말에 주변 사람들의 표정이 멍해졌다. 그리고 드디어 상엽을 알아보는 자가 나타났다.

“저, 정상엽!”

북천과 정상엽의 싸움을 모르는 자는 없었다. 대북천에서 노골적으로 운남을 점령할 거라 공표했고 상엽을 이단자라 불렀기 때문이다.

“여러분들이 더 이상 이런 일을 할 필요도 없다는 거죠.”

그 말을 하며 상엽은 손을 뻗었다. 고스트 체인이 채찍을 든 사내를 끌어당겼다.

“전 아저씨를 원망하지 않아요. 조금 편하게 먹고살기 위해 선택한 자리잖아요.”

“그,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기회를 줄게요.”

상엽은 머리가 부서진 석상을 가리켰다.

“저기 겁먹은 아저씨들이랑 이거 다 치우세요. 이분들은 안 도와줄 거니까.”

멀리서 다가오지 못하는 이들은 관리자들이었다.

일반인 관리자는 대북천이라는 권력을 등에 업고 인부들이 죽을 때까지 일을 시켰다.

“저, 정말 북천이 죽었습니까?”

처음 상엽에게 말을 건넸던 노인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네. 죽었어요.”

상엽은 눈물을 글썽이는 인부들을 보며 말을 이었다.

“세상이 바뀔 거라는 뜻이죠.”

그는 웃었고 인부들은 울었다. 반면 관리자들은 공포에 떨었다.

이미 운남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는 그들도 소문으로 들어서 알고 있었다.

“너무 희망만 가지진 마세요. 노력하지 않는 사람에게 막 퍼 주는 스타일은 아니니까요.”

상엽은 그 말을 남기고 시청 광장을 떠났다.

* * *

상엽은 지루했다.

성도에 위험 요소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돌아왔을 때, 북천성에는 루시가 잡아 온 50명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누구야?”

“성도의 유지들입니다. 대북천과 깊게 결탁한 자들만 잡아 왔습니다.”

루시는 도주 우려가 있는 자들을 빠르게 잡아들여서 상엽 앞에 세워 놓았다.

“할 말 있으면 해 봐.”

상엽은 그 말을 곧 후회했다.

“저희들은 시키는 일만 한 것뿐입니다.”

“대북천으로 인해서 우리들도 계속 피해를 봤습니다.”

“억울합니다.”

“서민들을 위해 많은 것들을 했습니다.”

그들은 하나같이 자신이 얼마나 억울하고 좋은 사람인지를 설명했다.

상엽은 그들의 말을 가만히 듣다가 짜증이 솟구쳤다.

“대북천과 결탁했다고 너희들을 죽인다고 한 적 없는데.”

그 말에 50명은 입을 다물었다.

“앞으로 어떻게 할지를 말해. 그래야 살려 둘지를 결정하지.”

상엽은 북천이 애용하던 거대한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경고하듯이 말했다.

“내 시간은 너희들 시간보다 훨씬 소중해. 이미 뺏긴 시간만으로도 너희들을 죽이고 남아.”

50명의 사내들은 그제야 자신들이 어떤 입장인지를 이해했다. 이에 눈치 빠른 50대 중반이 앞으로 나섰다.

“재산의 절반을 내놓겠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적극 협조하겠습니다.”

“절반?”

상엽은 그 말을 듣고 결정을 내렸다.

“루시. 저 녀석 반만 살려서 돌려보내. 목숨이 반만 아까운 거 같으니까.”

“아, 아닙니다! 전부 내놓겠습니다!”

사내가 말을 바꿨지만 상엽은 이조차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루시. 이거 내가 계속 들어야 돼?”

“제가 처리해도 되겠습니까?”

“그렇게 해. 이 부분에 대한 모든 권한을 줄 테니까.”

상엽은 지루하다는 듯이 일어서며 루시만 들릴 수 있게 물었다.

“죽여도 될 만큼 나쁜 놈만 잡아 온 거 맞지?”

“선별 중입니다.”

루시도 그럴 정도의 시간은 되지 않았다. 상엽은 그녀에게 모든 것을 맡겨 놓고 도열해 있는 사내들의 사이로 걸어갔다.

그때, 처음 재산을 내놓겠다고 한 사내가 상엽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그 모습을 본 상엽이 물었다.

“너 무릎 안 꿇어 봤지?”

“네?”

“그렇게 발등을 세우고 무릎을 꿇는 건 아직 자존심이 남았다는 거야.”

상엽은 사내를 내려다보며 비웃음을 흘렸다.

“운 좋은 줄 알아. 난 공정한 놈이 아닌데, 루시는 꽤 공정한 사람이니까. 너희들이 참 지루한 놈이라는 걸 감사하게 생각해.”

그는 인사를 하는 루시를 뒤로하고 중앙 전각을 나섰다.

전각을 한참 벗어난 곳에는 북천만 이용하던 인공 호수가 있었다.

꽃으로 만들어진 울타리로 돌로 된 길이 나 있고, 호수 중앙으로 연결된 나무다리 끝에 정자가 자리했다.

꽤나 운치 있는 모습이지만 한 가지 특징이 있었다.

“뭐가 이렇게 커?”

북천에 관련된 모든 것들은 비정상적으로 컸다. 상엽은 이에 이질감을 느꼈다.

그럼에도 그는 물소리를 들을 수 있는 호수 중앙의 정자로 갔다.

“그만 나와.”

상엽의 말에 갑자기 누군가 정자로 이어진 다리에 나타났다.

“사천 먹은 거 축하해.”

특유의 걸음으로 몸매를 뽐내며 걸어오는 이는 적설이었다.

붉은색 실크에 꽃이 수놓아진 치파오를 입은 그녀는 관능적인 웃음을 지으며 곁으로 다가왔다.

“중국에서 두 지역을 먹은 건 네가 처음이야.”

“이제 시작이야.”

“야망을 가진 남자가 돼 버렸네. 더 매력적이야.”

“그래서 약속을 지킬 시간이 된 건가?”

“준비는 됐어? 목숨을 걸어야 할 텐데.”

적설은 숨소리가 들릴 정도의 거리로 다가왔다.

“도와줬다는 이야기는 들었어.”

“괜한 짓을 한 건 아니지?”

“너 때문에 사천을 먹는 게 늦어졌어.”

“미안해서 어쩌지?”

“사과는 행동으로 해야지. 말로 넘어갈 일은 아니잖아.”

“걱정 마. 그러려고 온 거니까.”

적설의 웃음이 더욱 진해졌다. 그리고 상엽을 유혹하듯 속삭였다.

“지옥마의 마지막 조각. 이것도 있어.”

“역시 매력적이야. 거부할 수가 없어.”

“나? 아님 지옥마?”

이번에는 상엽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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