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6
달빛이 비치는 호숫가였다.
찍. 찍.
손가락 크기의 쥐는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호숫가를 산책하듯이 거닐다 평평한 바위 위로 뛰어올랐다.
찍.
쥐는 다시 한번 도약해 누군가의 손바닥 위로 올라갔다.
손바닥 위에서 쥐는 하얀빛으로 부서지더니 나비로 변했다. 나비는 애교를 부리듯 날갯짓을 하더니 호수 위로 날아가 달빛을 닮은 가루를 뿌렸다.
나비의 가루는 호수의 바람에 실려 하늘로 떠올랐다가 눈처럼 내리기 시작했다.
작은 나비가 만들어 낸 기적은 작은 호수를 동화 속의 신비한 장소로 바꿔 버렸다.
하지만 그 신비함을 넘어서는 또 다른 기적은 나비가 시작된 바위 위에 자리했다.
‘사람이 저렇게 예쁠 수가 있어?’
쥐를 쫓아 호숫가로 온 상엽은 그런 생각을 했다.
투명한 느낌의 은빛 머리카락이 길게 허리까지 늘어져 있고, 조각을 한 듯이 뚜렷하고 완벽한 대칭을 이룬 이목구비에 늘씬하고 관능적인 목선과 하늘거리는 푸른 옷에 어울리는 하얀 피부가 보였다.
지금까지 예쁘고 매력적인 여자를 수도 없이 만난 상엽이지만 바위 위의 여인은 압도적이라는 느낌이었다.
‘비교 불가.’
상엽은 그런 느낌을 받았다.
그가 자신도 모르게 여인을 한참 동안 주시했을 때, 호수 위에서 변화가 생겼다.
눈처럼 내리던 빛의 가루가 사라지고 나비는 물고기가 되어 호수 안으로 숨어 버렸다.
그 작은 소음이 상엽의 생각을 깨웠다.
툭.
상엽은 동화 같은 호수의 분위기를 깨고 앞으로 나섰다.
그는 일부러 인기척을 내며 곧장 여인을 향해 다가갔다. 가까이 다가가자 은은한 꽃향기가 상엽을 잡아끌었다. 그런데 오히려 그것이 상엽의 경계심을 불러일으켰다.
‘스킬일 수도 있어.’
그 생각을 하는 순간, 호숫가의 달빛도 운치를 잃었다. 적어도 상엽에겐 그저 평범한 광경이 되었다.
“적인지 아군인지 모르니까 통성명부터 할까?”
상엽의 말에 여인이 고개를 돌렸다.
그렇게 눈빛이 마주쳤을 때, 상엽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깊고 고요한 까만 눈동자에는 범접할 수 없는 위압감이 함께 있었다.
그리고 정면에서 본 여인의 얼굴은 시선을 끌어 잡는 힘이 있었다.
“성아.”
그녀의 작고 붉은 입술이 움직였다. 무표정한 얼굴에서 흘러나온 목소리는 물소리처럼 잔잔한 느낌이었다.
“성아? 이름이야?”
여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상엽은 자신이 통성명을 하자고 한 사실을 깨달았다.
“난 정상엽.”
여인은 다시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이건 적이야? 아군이야?’
상엽은 버릇처럼 헌터 아이를 켰다. 그렇지만 여인의 몸에서는 아무것도 표시가 되지 않았다.
‘일반인은 아닌데.’
정보를 숨기는 유물들이 있으니 헌터 아이만으로는 판단할 수가 없었다.
“아까 그 쥐. 아니 나비. 지금은 물고기가 된 그거. 뭔지 말해 줄 수 있어?”
여인은 그 말을 듣더니 시선을 호수로 돌렸다. 그녀가 여린 느낌의 손바닥을 들어 올리자 호수로 뛰어들었던 물고기가 다시 튀어나왔다.
손바닥 위로 올라간 물고기는 다시 빛으로 부서지더니 이번에는 주먹 크기의 고양이로 변했다.
야옹.
작은 울음소리까지 내며 애교를 떨던 고양이는 여인의 손바닥에 얼굴을 비볐다.
성아는 그 모습에도 표정 변화가 없었다.
상엽은 가만히 그녀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그렇게 1분쯤 지나자 여인이 손바닥을 상엽 쪽으로 돌렸다.
명령을 받았는지 고양이는 바닥에 내려서더니 상엽을 향해 다가왔다.
“그만.”
고양이가 한 발 앞으로 다가왔을 때, 상엽은 해머를 꺼냈다.
“거기까지.”
상엽은 고양이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았다.
-정신 에너지의 결정체입니다.
추종자의 경고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경고가 아니더라도 상엽은 여전히 여인을 경계하고 있었다.
고양이는 그 자리에 멈춰서 상엽을 올려다봤다.
“애교 떨지 말고 주인한테 돌아가. 동물이라면 치가 떨리니까.”
결국 고양이는 흔들리는 눈동자로 아쉬움을 표하더니 여인에게 돌아갔다.
“정체를 밝혀. 네 애완동물들이 내 시민들을 조종하는 거 알고 있어.”
상엽도 확신은 없었다. 하지만 대충 영향이 있을 거라 짐작한 탓에 여인을 떠본 것이다.
그런데 여인은 대답이 없었다. 그저 상엽을 한참 동안 보기만 했다.
“목소리 듣기가 참 비싸네.”
상엽은 경계심을 더욱 끌어 올리며 해머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그런데 상엽을 보던 여인이 웃었다.
행복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미소였다.
화사하게 변한 얼굴은 많은 이들을 행복하게 하는 힘이 있었다.
주변의 분위기조차 바꿔 버릴 정도의 힘이 있었지만 그 미소를 대하는 상대가 나빴다.
“웃지 말고 대답을 하라고.”
상엽은 답답한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예쁘다고 안 봐줘. 내 인생이 좀 험해서 말이야.”
그의 위협에도 여인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상엽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다시 한번 압박을 하려 할 때, 갑자기 하늘에서 꽃잎이 떨어졌다.
‘뭐야?’
꽃잎은 주변을 모두 가릴 정도로 소나기처럼 떨어졌다. 폭포처럼 떨어진 꽃잎을 보며 상엽은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나며 해머를 들어 올렸다.
그렇게 1초간 시야를 완전히 가린 꽃잎이 사라졌을 때, 여인도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츠츳!
여인이 사라진 걸 확인하던 상엽은 한순간, 위협적인 소리에 표정을 구겼다.
떨어진 꽃잎이 가득 쌓였던 바닥이 들썩거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꽃잎 위로 갈라진 혀를 날름거리는 뱀의 머리가 나타났다.
동시에 향기는 사라지고 강한 독향이 주변을 가득 채웠다.
상엽조차도 코가 시큼할 정도의 맹독이었다.
“이상한 여자네.”
상엽은 들어 올렸던 해머로 바닥을 찍었다.
콰쾅!
꽃잎과 수천 마리의 뱀이 동시에 폭발에 휩쓸려 사라졌다.
상엽은 불에 탄 잿더미들이 어지럽게 흩날리는 공간에서 홀로 서 있었다.
“도대체 정체가 뭐야?”
상엽의 인상은 잔뜩 구겨져 있었다.
* * *
인간 변종.
스스로를 신의 사제라 칭했지만 대부분의 이들은 인간 변종이라 불렀다.
하루아침에 엄청난 능력을 가지게 된 그들은 모두 똑같은 패턴을 보였다.
그 도시의 가장 높은 자를 찾아갔고 협상을 요구했다. 상엽은 그들과의 협상을 받아들였지만 대부분은 아니었다.
“총 9곳이라고 했지?”
“그렇습니다.”
상엽은 심각한 표정으로 이에 대한 정보를 모으고 있었다.
“에레나의 생명초. 그 특수 의뢰와 관련이 된 거야.”
상엽은 의뢰를 수행하면서 보았던 신비한 동물을 떠올리며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10조각의 생명초가 전 세계에 특수 의뢰로 시작되었고, 인간 변종이 나타난 것은 9개의 지역이었다.
중국에서만 5곳.
그 외에 인도, 이집트, 사우디아라비아, 이탈리아.
밝혀진 것은 이렇게 총 9곳이었다.
“하나가 더 있을 거야.”
“알아보는 중입니다. 그리고 현재까지 인간 변종이 나타난 나라에는 모두 같은 특징이 있습니다.”
“뭔데?”
이미 코드 제로에서는 이를 분석하고 있었다.
“종교적 저항이 강한 곳입니다.”
중국 정부는 오래전부터 종교에 대한 민감한 반응을 보였고, 다른 나라는 반대로 종교적 색채가 아주 강했다.
“어느 곳이든 신의 사제라고 하면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거지?”
“그렇습니다.”
분란을 일으킬 수 있는 지역에만 나타난 느낌이었다.
상엽은 그들과 협상을 통해 분쟁을 애초에 차단했지만 다른 나라는 아니었다.
“현재 인도에서는 대규모 전투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집트와 이탈리아는 초기에 진압하면서 안정을 찾는 모습이지만 사우디아라비아는 위험한 상황입니다.”
루시는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는 상황을 빠르게 보고했다.
“이걸 보시는 게 빠를 것 같습니다.”
상엽은 인도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투 장면을 보았다.
“이게 뭐야?”
영상은 그들이 왜 인간 변종으로 불리는지 명확히 보여 주었다.
천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처음에는 인간의 모습이다가 전투가 시작되자 갖가지 모습으로 변했다.
맹수로 변하는가 하면 팔이 여섯 개로 늘어나기도 했고, 날개를 펼치며 하늘을 나는 자도 있었다.
말 그대로 괴물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괴물이 된 그들은 눈에 보이는 인간을 모두 죽였고 문제는 그 뒤에 발생했다.
“아직 조건을 밝혀내지 못했으나, 죽은 사람의 일부가 인간 변종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좀비가 되는 거야?”
“그 정도 확률은 아닙니다. 현재로서는 500명 중의 한 명꼴로 변종이 되는 듯합니다. 아직 정확한 확률이나 조건은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어쨌든 그들의 등장은 재앙이었다.
그리고 그 재앙이 가장 크게 번진 곳은 중국이었다.
무려 다섯 곳에 인간 변종이 나타났고, 그중에 세 곳에서 폭동이 시작되었다.
그나마 상엽이 지키는 운남과 내몽고는 그들과의 협상을 받아들였지만 광동성, 호북성, 산동성은 아니었다.
“호북성은 초기 진압이 완료되어 피해가 크지 않았고, 산동성도 진압 막바지에 있지만 피해가 꽤 컸습니다. 문제는 광동성입니다.”
“어느 정도야?”
“광동성 계양에 나타난 그들은 폭동을 일으켰고 현재는 용천을 지나 하원으로 가고 있습니다. 아직 광주에 진을 치고 있는 길드에서 나서지 않는 상황입니다.”
“인간 변종이 점점 늘어나고 있겠네.”
“그렇습니다.”
상엽은 머리가 아팠다. 그는 잠시 눈을 감고 상황을 정리했다.
‘여기도 언제든지 폭동을 일으킬 수 있다는 건데.’
영상으로 본 그들의 실력은 4단계 초반 정도였다.
‘그런 자들이 계속 늘어나면…….’
중국의 인구를 감안하면 그들의 숫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그들이 성장하는지도 확인해.”
“알겠습니다.”
아직은 정보가 너무 부족했다. 그래서 상엽은 생각을 단순화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갓코인 유저로 생각하자.”
당장 그들과 싸울 필요는 없지만 침략을 당하면 참고 있을 이유도 없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가 제일 찝찝해.”
누구나 탐낼 수밖에 없는 유산이 특수 의뢰로 발생했다. 그리고 그 의뢰로 인해 인간 변종이 나타났다.
“처음부터 특수 의뢰는 이 상황을 위해서 만들어진 것 같잖아.”
“계속 조사 중입니다.”
“아냐. 너무 그쪽으로 파고들지 마.”
“네?”
상엽은 코드 제로의 힘을 분산시키고 싶지 않았다.
“현실만 봐. 그리고 그 문제에 집중해. 결론을 알 수 없는 데 인력을 낭비하지 말고.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운남을 지키고, 사천을 점령하는 거야. 인간 변종을 조사하는 이유는 우리에게 위협이 되는지를 판단하는 선에서 끝내.”
아직 코드 제로의 인원이 완벽히 갖춰지지도 않은 상태였다. 게다가 현재 인원도 상엽과 일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자.”
“알겠습니다.”
루시는 상엽의 명령을 바로 받아들였다.
‘현명해.’
그녀는 속마음을 굳이 밖으로 표현하진 않았다.
* * *
유산 거신의 유언이 완성되었다.
북천은 직접 이를 완성하고 10단계까지 강화를 완료했다. 그리고 그 힘을 철저히 숨겼다.
유산의 완성도 극비에 붙였고 훈련도 아무도 없는 곳에서 진행했다.
‘3일이면 된다.’
그는 변화한 힘에 완벽히 적응하고 상엽과 일전을 치를 생각이었다.
‘무조건 이긴다.’
그건 확신이었다. 그리고 정상엽을 잡는다는 것은 또 다른 의미가 있었다.
‘가장 큰 영역을 가지게 된다.’
지금 중국은 영토 전쟁과 다를 바가 없었다.
‘내가 중국의 주인이 되는 거지. 그리고 곧 세계의 주인이 된다.’
3일이라는 시간을 투자하기에 열매는 너무나 달콤했다.
그렇게 2일째 훈련에 집중하고 있을 때였다.
하루에 단 한 번, 참모가 그를 찾아와 간단한 보고를 하는 시간이 되었다.
“인간 변종이 사천으로 들어왔습니다.”
“뭐?”
운남에서 상엽과 협상을 했던 이들은 사천성의 목리라는 도시에 자리를 잡으려 했다.
“거긴 이미 버려진 땅일 텐데.”
“그들이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인간이 변종에게 밀려난 곳.
목리는 그런 도시였다. 스스로를 신의 사제라 칭하는 인간 변종들은 그곳에 자리를 잡았다.
“정찰은 했겠지?”
“네. 현재 50명이며 모두 100만 화이트 코인을 가지고 있습니다.”
“뭐?”
100만 화이트 코인이라는 말에 북천의 눈에 욕심이 떠올랐다.
‘절반만 가져도 2500만 코인.’
블랙 유저인 북천은 욕심을 낼 수밖에 없었다.
‘충분히 처리할 수 있는 수준이다.’
이미 초기의 인간 변종은 갓코인 유저들에게 정리가 된 곳도 있었다.
그리고 50명이라면 아직 숫자가 많지 않은 수준이었다.
“실전 훈련이 필요하던 참에 잘됐군.”
북천은 하루 남은 수련을 목리에서 진행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