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코인-155화 (155/300)

# 155

말을 하지 못하는 사내였다.

바닥에 쓴 글씨를 통해 상엽은 그의 이름을 알았다.

아소.

벙어리 사내는 말을 못하는 대신 상엽에게 몇 번이나 고개를 숙였다.

그는 수화를 하는 사람을 불러 자신의 속마음을 말했다.

“가족들을 지켜 주어 고맙다고 합니다.”

꽤 투박한 심성을 가진 사내였다. 상엽은 아소라는 이름의 사내가 마음에 들었다.

전투를 할 때와는 달리 투박한 인상에 솔직한 행동이 조금은 어리숙한 느낌도 있었다.

‘여긴 아소한테 맡겨도 되겠어.’

상엽 입장에서는 든든한 지원군을 얻은 기분이었다.

“곧 보수 공사가 시작될 거야. 그리고 군대 배치에 관해서도 심각하게 고민해 봐.”

아소는 말을 하지 못하지만 알아듣기는 했다. 그래서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여길 꼭 지켜. 내가 도와줄 테니까.”

아소는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의지를 표했다.

상엽은 그 정도로 사건을 마무리하고 곤명으로 복귀하기 위해 사람이 없는 곳에서 레나를 불렀다.

이미 곤명의 그레이 상점을 업그레이드한 터라 언제든 복귀할 수 있었다.

‘등록 지점 제한이 곧 끝나네.’

지금까지 그가 등록한 지점은 한국의 레나, 일본, 벨기에, 덴마크, 시카고, 곤명. 이렇게 여섯 곳이었다.

중급 상점에서는 5개, 업그레이드를 할수록 하나씩이 증가되어 그는 7개까지 등록이 가능했다.

이제 여유가 1곳밖에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꼭 필요한 곳들이라 어쩔 수가 없었다.

-취소는 안 돼.

이것이 레나의 설명이었다.

곤명으로 돌아온 상엽은 아소의 투박한 얼굴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특별 관리를 좀 해 줘야겠어. 꽤 믿을 수 있는 사람이야.”

“알겠습니다.”

새로운 명령을 받아들인 루시는 상엽이 중전에 다녀오는 동안, 자신이 해낸 일을 보고했다.

“시카고에서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래?”

상엽이 기다리던 결과였다.

“대리를 그들에게 맡길까 합니다. 어떻습니까?”

“그렇게 해.”

운남 대리는 곤명과 함께 가장 유지가 잘되고 있는 도시 중의 하나였다.

“대리를 넘겨준다는 것은 코드 원 입장에서는 아주 큰 이득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절대 아니야.”

“그렇게 말씀하시는 근거가 있으십니까?”

루시는 상엽의 지시에 따라 대리를 넘겨주기로 결정했지만 아까운 마음이 사라지지 않았다.

어차피 테리아 그룹에서 지원을 하면서 사업적인 이득은 취하겠지만 상엽이 주인으로 있는 것과는 의미적으로 큰 차이가 있었다.

“내가 한 말 잊었어?”

상엽은 자신의 생각을 분명히 말했다.

“중국을 먹을 거야. 그중에 대리가 어느 정도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

“아…….”

루시는 자신이 얼마나 이번 전쟁을 좁게 보고 있는지를 깨달았다.

“내가 시민들을 위해서 어디까지 포기하는지 분명히 보여 주도록 해. 결국에는 내가 포기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얻게 될 테니까.”

상엽은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루시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할 거 없어.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지적해. 내가 지적 능력에 편차가 좀 있어. 어떨 때는 똑똑한데, 그렇지 않을 때는 바보 같기도 하거든.”

상엽은 루시를 비난하지 않았다.

“시카고 외에 다른 마을은 연락 없어?”

“덴버 쪽은 긍정적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멕시코는 포기하는 게 좋을 듯합니다. 강압적으로 운영이 되던 곳이라 믿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해. 그 외의 다른 곳은?”

“여섯 곳을 접촉 중이며 아직 본격적인 협상에는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시카고가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으면 이를 근거로 설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무엇이든 처음이 중요했다. 다른 이들의 지표가 되기 때문이다.

“좋아. 그럼 이제 슬슬 움직일 때가 된 거 같은데.”

“계획을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그대로 돌려줘야지. 누가 먼저 집에서 튀어나오는지 보자고.”

“준비하겠습니다.”

루시는 상엽이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분명히 알고 있었다.

* * *

북천은 분노했다.

운남에 보낸 수하들은 번번이 실패를 했고, 이제는 사천에서 상엽이 날뛰기 시작했다.

어젯밤에 사천 서창에 나타난 상엽은 지부를 무너트리고 유유히 사라졌다.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

그에 대해 내부에서도 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싸움을 피하고 있다.’

랭킹을 절대적으로 믿는 자들은 북천이 상엽을 처리하면 간단하게 끝날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작 랭커인 북천의 생각은 달랐다.

‘확률은 반반.’

이는 상엽에 대한 정보를 모으면서 그가 내린 판단이었다.

처음에는 그도 당장 가서 상엽을 처리하려 했다. 하이렌의 길드장들이 왔을 때만 해도 흔들림이 없었다.

그런데 암살 사건에서 생각이 바뀌었다.

뒤늦게라도 곤명에 가려고 했던 그는 이미 전투가 완전히 끝났다는 보고를 받고 성도로 돌아왔다.

그는 상엽이 남긴 곤명의 흔적을 알아보고 크게 경악했다. 사천으로 도주한 하이렌의 잔당들의 보고는 더욱 기가 막혔다.

그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자신이 이긴다는 보장이 없다고 판단을 내린 것이다.

‘이기는 싸움을 한다.’

이미 가진 것이 많아진 북천은 반반의 확률에 목숨을 걸지 않았다.

‘한 발만 앞서면 된다.’

이를 위한 준비가 진행되고 있었다.

‘이것만 완성되면 정상엽 따위는…….’

그는 아무도 없는 침실에서 유산 조각을 꺼냈다.

6조각 유물에서 그가 가진 건 5조각이었다.

-거신의 유언.

순간적으로 거인이 되고 그만큼의 신체 능력이 상승하는 유산이었다.

이미 한 번 완성된 적이 있는 유산이었고 그를 죽이기 위해 엄청난 희생이 있었다.

효과가 확실하다는 검증이 된 만큼 북천은 이를 오랫동안 모아 왔다.

그리고 드디어 마지막 조각의 위치를 확인했다. 상대의 요구가 워낙 커서 협상이 필요했지만 이젠 북천의 생각이 바뀌었다.

“그 녀석을 잡으면 손해 따위는 복구되겠지.”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도 당장 눈앞의 손해를 생각하자 그의 분노가 더욱 커졌다.

“지금까지 잘도 까불었다.”

북천은 드디어 결정을 내렸다.

* * *

상엽은 사천의 미고를 습격하고 있었다.

‘뭔가 이상한데.’

그가 습격한 지부에는 단 세 명만이 공포에 떨고 있었다. 갓코인 유저이긴 하지만 전투 능력이 없는 데다 다른 능력도 최하급 수준이었다.

상엽은 그들을 내버려 두고 돌아섰다.

“이제 뭔가 결심을 한 모양이네.”

변화가 있다고 해 봐야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하나였다.

“대장전을 해야지.”

상엽은 이를 예상하고 미고를 떠났다. 그리고 코드 제로의 정보에 집중했다.

그러다 10분쯤 지났을 때, 다급한 보고가 왔다.

‘시작인가?’

상엽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보고 내용은 전혀 달랐다.

-코드 원. 급히 대리로 가셔야 할 것 같습니다.

“대리? 무슨 일인데?”

대리에는 지금 시카고의 인물들이 도착해서 그들만의 계획을 세우는 중이었다.

대리의 많은 인구들을 어떻게 이끌어 가고, 민심의 반항이 없게 최대한 자연스럽게 섞이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었다.

이는 코드 제로와 함께 진행하는 프로젝트였다.

-새로운 변종이 나타났습니다.

“뭐?”

-아직 정보를 모으는 중이라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상엽은 루시의 이어지는 말을 기다렸다. 그리고 루시는 절대 잊지 못할 단어를 말했다.

-인간 변종이 나타났습니다.

상엽은 자신이 뭔가 잘못 듣지 않았나 의심을 했다. 하지만 루시는 같은 말을 반복했다.

“바로 갈게.”

인간 변종.

상엽은 북천을 까맣게 잊고 대리로 달려갔다.

대리에 도착했을 때, 상엽은 이상한 장면을 보았다.

인간 변종이라고 해서 그는 도시가 파괴되거나 난리가 났을 거라 예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대리의 시청 앞에 시카고의 전사들이 늘어서 있고, 그 앞에 다섯 명의 인간들과 대화를 하고 있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100명의 인간과 그들이 한 달간 먹을 식량입니다.”

정확히 그들은 협상을 하고 있었다. 상엽은 곧장 시카고의 치안대장 데이비스 옆에 내려섰다.

그는 이제 대리의 시장으로 선임이 된 상태였다.

“어떻게 된 거야?”

데이비스는 대답에 앞서 시청의 광장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지름 5미터의 구덩이가 만들어져 있었다.

그런데 구덩이를 직접 본 상엽은 인상을 구겼다. 그리고 구덩이를 향해 작은 화염을 만들어 떨어트렸다.

화염은 끝도 없이 떨어지다가 자연히 소멸해 버렸다.

끝이 보이지 않는 구덩이였다.

“이걸 저자들이 한 거야?”

데이비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상엽은 그제야 협상을 요구하는 다섯 명의 인간을 보았다.

모두 평범한 외모였다. 그런데 단 한 가지, 동공이 하얗게 물들어 있어서 섬뜩한 느낌이 났다.

그리고 느껴지는 기운도 인간과는 달랐다.

“너희들은 뭐야?”

“우리는 신의 사자입니다.”

“신의 사자면 예배나 드릴 것이지 무슨 협상이야?”

“우리는 이들과 공존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육체를 지켜 준 보답으로 폭력은 사용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조용히 마을을 떠날 테니 원하는 조건만 들어주시면 됩니다.”

선두에서 말을 하는 자는 40대 후반에 인상이 좋아 보이는 중년이었다.

“어제까지 시장에서 과일을 팔던 자입니다.”

코드 제로의 대원 한 명이 상엽에게 다가와 다섯 명의 신상을 말했다.

그들은 어제까지만 해도 평범한 사람이었다.

40대 후반의 과일 장수, 30대 중반의 공장 노동자와 식량 단지 생산자, 2명의 여자는 음식점 점원이었다.

그런 사람들이 갑자기 자신의 힘을 명확히 느낄 수 있는 흔적을 남기고 협상을 시작한 것이다.

그들은 상엽을 보고도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협상이란 말이야. 서로 주고받는 게 있어야지. 일방적인 요구는 깡패들이나 하는 거야.”

“물론입니다. 우리의 조건을 들어준다면 이 도시에 큰 행운이 있을 것입니다.”

“행운으로는 안 돼. 명확히 말을 해야지.”

과일 장수는 상엽의 요구에 자신이 파 놓은 구덩이를 가리켰다.

그러자 얼마 되지 않아 구덩이 주변 땅이 젖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특유의 냄새가 퍼져 나왔다.

“석유?”

“이 정도면 되겠습니까?”

상엽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그런데 유령 추종자의 말에 정신을 차렸다.

-주인님. 이들이 코인을 가지고 있습니다.

상엽은 오랜만에 헌터 아이를 발동했다.

‘뭐야?’

상엽은 자신의 눈을 의심하며 다시 그들을 보았다.

‘100만 화이트 코인.’

다섯 명은 모두 동일하게 100만 화이트 코인을 지니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들을 갓코인 유저로 단정하기는 어려웠다.

‘뭔가 있다.’

그 생각을 하며 상엽은 데이비스에게 다가갔다.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상엽은 자신이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 이미 모든 권한을 데이비스에게 넘겨주었기 때문이다.

“섣불리 움직일 상황은 아닌 것 같습니다.”

상엽도 같은 생각이었다.

‘인간 변종이라 보기에는 뭔가 이상한 점이 있어.’

결정을 내린 상엽은 다시 과일 장수 앞에 섰다.

“좋아. 식량은 지원해 줄게. 대신 사람은 안 돼. 사람은 협상 조건이 될 수가 없거든.”

“거절하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맞아. 열받으면 다른 협상 방법도 있어.”

상엽은 보란 듯이 파이어스의 망치를 꺼냈다.

“우리 시민 중에 한 명이라도 없어지면 너희들은 내 손에 죽어.”

강력한 의지에 과일 장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조건을 바꾸지요. 강제성이 없이 스스로 우리를 찾아오는 자들은 내버려 두는 걸로. 어떻습니까?”

“그것까지 막진 않아. 하지만 명심해. 강제성뿐만 아니라 유혹도 없어야 돼.”

“물론입니다.”

과일 장수는 자신이 있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럼 내일 아침까지 준비해 주시겠습니까?”

“아니. 너희들이 말한 협상 조건이 진짜인지 확인하는 게 먼저야.”

“알겠습니다.”

의외로 그들은 상엽의 말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실제로 협상을 하고 싶을 뿐, 싸움을 원하지는 않는 듯했다.

‘분위기가 묘한데.’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상황이라 상엽도 조심스러웠다.

그들은 상엽의 마음과 상관없이 인사를 하더니 시청을 떠났다.

멀어지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상엽은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겼다.

‘유령아. 따라가 봐.’

상엽은 의심을 거두지 않고 유령에게 추격을 지시했다. 그런데 유령은 얼마 되지 않아 상엽의 곁으로 되돌아왔다.

-접근할 수가 없습니다. 강력한 의지의 결계가 있습니다.

추종자가 접근할 수 없을 정도의 힘을 가진 자들이었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였다.

“내가 하면 돼.”

상엽은 포기하지 않고 그들과 거리를 두며 정찰에 나섰다.

그렇게 다섯 명이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는 골목이 나타났고 상엽은 과일 장수를 따라갔다.

‘응?’

과일 장수가 아무도 없는 골목을 걸을 때, 그의 뒤로 뭔가가 따라붙었다.

워낙 작아서 처음에는 곤충으로 보였지만 실제로는 동물이었다.

상엽은 눈에 힘을 주며 그 동물을 확인했다.

‘저건…….’

찍. 찍.

특이한 눈을 가진 손가락 크기의 쥐가 과일 장수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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