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4
다섯 번의 습격을 막아 냈다.
그때마다 상엽은 상대의 기억을 읽어서 대북천의 전력을 파악했고, 이제 꽤 자세한 윤곽이 나왔다.
현재 상엽의 랭킹은 37위로 한 단계가 올랐고 북천의 랭킹은 24위로 한 단계가 떨어졌다.
‘300위 유저가 두 명이나 있어.’
312위 유저와 356위 유저는 현재 사천 성도의 책임자로 있었다.
‘1000위권 안에만 7명이라…….’
그나마 상엽이 한 명을 처리해서 7명이 된 것이다.
“역시 성도로 들어가는 건 무리겠어.”
그 외에 2000위권 안에만 50명이나 있을 만큼 대북천의 전력은 탄탄했다.
상엽은 그들의 전력을 정리해서 루시에게 말했다. 루시는 이를 데이터화해서 코드 제로에 보냈고 특별 감시 인물을 선정해 조사에 들어갔다.
“코드 원. 아무래도 북천은 코드 원을 성도로 끌어들이려는 것 같습니다.”
“그렇겠지. 개인적으로 싸울 거면 벌써 내 앞에 나타났을 테니까. 생각보다 겁쟁이야.”
“덕분에 운남을 정비할 시간은 벌었습니다만 언제든지 습격을 당할 수 있어서 불안한 상태입니다.”
상엽 혼자서 모든 습격을 막을 수는 없었다. 코드 제로의 정보력으로 지금까지는 피해가 없었지만, 동시다발적인 습격이 시작되면 방법이 없는 것이다.
“결국 내가 먼저 움직여야 돼. 겁쟁이지만 멍청하진 않아.”
세력이 있다는 건 분명히 유리했다. 북천은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습격하는 놈들은 전부 코인이 없이 오고 있어.”
개인 유물 보관함까지 본부에 놓고 오는 것이다. 이는 갓코인 유저들이 가장 싫어하는 제약이지만, 북천의 장악력은 이를 넘어섰다.
상엽 입장에서는 처리를 해 봐야 이득이 없는 것이다.
“죽은 녀석들의 전리품은 북천이 가지겠지?”
아직 랭킹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분명히 한순간 성장을 할 것이다.
“좋아. 인정하자고. 이번 작전은 북천이 성공했어.”
상엽은 불리한 상황에서 굳이 버틸 생각은 하지 않았다.
“코드 원. 그보다 우리도 세력을 흡수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합니다.”
모든 문제의 핵심이었다.
루시의 말대로 공격이 아니라 방어를 위해서도 세력은 필수였다.
상엽도 절실히 느끼고 있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흑점은 한국을 지키느라 여념이 없었고, 데스문은 여전히 일본에서 영역을 확장해 나가는 중이었다.
“새로운 세력을 만드는 것이 어떻습니까?”
“글쎄. 이제 출발해서는 답이 없을 텐데.”
이것이 상엽의 판단이었다. 오히려 좋은 먹잇감이 될 뿐이었다.
“나한테 생각이 있어.”
“알겠습니다.”
루시는 흡수 리스트를 준비했지만 상엽에게 보여 줄 기회가 없었다.
“나갔다 올게.”
“어딜 가시는지 알려 주시겠습니까?”
“시카고.”
상엽은 곧장 시청을 나섰다.
* * *
“형!”
로키는 상엽을 보자 양팔을 벌리며 뛰어왔다.
“어이쿠.”
로키의 돌진에 상엽은 일부러 휘청거리는 시늉을 했다.
“저도 갓코인 유저 됐어요!”
“벌써?”
“헤헤.”
시카고는 어렸을 때부터 갓코인 유저를 양성하기로 했다. 물론 원하는 아이에게만 주어지는 기회였다.
그래 봤자 겨우 1단계 상점에서 강화를 한 번 진행한 것이 전부였지만 이를 위해서 혹독한 훈련을 받았다.
“이번에는 오래 있다 갈 거예요?”
“아니.”
상엽의 대답에 로키는 진심으로 아쉬운 표정을 했다. 이에 상엽이 로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오래는 못 있어도 같이 갈 수는 있을지도 몰라.”
“네?”
“일단 기다려. 어른들의 이야기가 있으니까.”
상엽은 로키를 뒤로하고 시카고의 치안대를 찾아갔다.
시카고 치안대장 데이비스.
그는 상엽의 제안으로 20명의 치안대를 회의실에 소집했다. 그리고 모든 이가 듣는 앞에서 상엽은 자신이 찾아온 목적을 말했다.
“운남으로 와. 안전한 땅을 제공해 줄 테니까.”
그 말에 누구도 동의하지 않았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소속될 생각이 없습니다.”
데이비스의 거절이 모든 치안대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자신의 안위를 생각했다면 이미 시카고를 떠났을 것이다.
하지만 이 대답은 상엽도 예상했던 바였다.
“소속될 필요 없어. 너희들은 독립된 국가를 운영하게 될 테니까.”
그 말이 치안대의 불쾌한 표정을 의문으로 바꾸었다.
“솔직히 말할게. 난 너희들이 운남에 자리를 잡아서 한 도시를 지켜 주었으면 좋겠어. 경제는 물론 치안까지 너희들이 독립적으로 운영해. 당연히 나에게 세금을 내거나 상납할 필요도 없어.”
이는 생각하지도 못한 제안이었다.
“한 가지만 지키면 돼. 너희들이 관리하는 도시가 행복하길 바라지 않아. 다만 시민들이 억울하지 않게만 해.”
“그러니까 도시 하나를 주겠다는 말입니까?”
“맞아.”
상엽은 반신반의하는 그들의 표정을 보며 조건을 더했다.
“우리는 동맹국 형태가 되겠지만 난 지원 요청을 하지 않을 거야. 공격은 나 혼자 할 테니까 너희들은 방어만 해.”
너무나 좋은 조건이었다. 그래서 데이비스는 믿을 수가 없었다.
“왜 그런 제안을 하는 것입니까?”
“간단해.”
상엽은 모두가 들을 수 있게 천천히 대답했다.
“나 혼자서 지킬 수가 없거든. 내 능력 부족으로 시민들이 죽어 나가는 걸 두고 볼 수는 없잖아.”
목숨이 먼저다. 그다음이 배고픔이고 다른 문제는 이 두 가지가 해결된 다음에 생각할 문제였다.
상엽은 더 이상 길게 말을 하지 않았다.
“이거 놓고 갈게. 자세한 이야기는 이걸 통해서 하면 될 거야.”
그는 테이블 위에 태블릿 PC를 놓아두었다.
“이 안에 있는 여자가 그렇게 친절하진 않아. 그래도 똑똑하고 현명하니까 잘 이야기해 봐.”
그들과 상세한 조율을 하는 것은 루시가 할 일이었다.
“잘 생각해 봐. 여기 사람들에게도 큰 기회가 될 테니까.”
상엽은 제안을 마치고 마지막으로 데이비스에게 물었다.
“시카고처럼 척박한 환경에서 버티고 있는 집단이 꽤 될 거야. 난 그들에게 전부 같은 조건을 제시할 거야. 그래서 말인데 그 네트워크 좀 소개해 줄래?”
“흠.”
데이비스는 쉽게 결정을 하지 못했다. 실제로 미국 내에 있는 집단들은 서로 교류가 있었다. 국내선 공항이 존재하는 이유가 이 때문이었다.
‘믿어도 될까?’
상엽의 말에 함정이 없다면 그들에겐 두 번 다시 없을 기회였다.
-국가를 안전한 곳에서 유지할 수 있다.
그들은 작은 집단이지만 국가라고 믿고 있었다. 그런데 이것이 좀 더 좋은 환경으로 바뀔 수 있었다.
풍부한 노동력과 땅이 있고, 변종의 위협은 적었다.
“일단 생각을 좀 해 보겠습니다.”
“알았어. 그럼 나머지는 루시랑 대화해.”
상엽은 더 이상 압박하지 않고 시카고를 떠났다.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소수 정예의 전사들.
그들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상엽이 제일 잘 알고 있었다.
실제로 그들은 갓코인 랭킹에서도 대부분이 1000위권 안이었고, 이에 드러나지 않는 힘도 있었다.
바로 경험과 협동이었다.
1급 위험 지역에서 살아남을 만큼의 경험은 랭킹에는 결코 드러나지 않는 힘이었다.
상엽은 이들을 장악하기보다 좋은 기회를 제공해서 자연스럽게 운남이 안전해지는 방법을 택했다.
“중국 정부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 중국 정부는 중앙에 힘을 집결하고 있지만 국가의 영역을 포기한 건 아니었다.
다만 피해를 최소하면서 상황을 지켜보는 중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새로운 국가를 선언하면 중국 정부도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처음에는 유령 길드로 운영하지 뭐.”
상엽은 대의나 명분에 집착하지 않았다. 지금도 자신이 왕으로 군림하기보다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영역을 나눠 주는 선택을 했다.
“은밀하게 진행해.”
“알겠습니다.”
루시는 인사를 하며 자신의 집무실로 돌아갔다. 그녀의 집무실은 곤명 시청의 1층으로, 코드 제로에서 파견된 인재들과 같은 사무실에 있었다.
“후우.”
그녀는 평소답지 않게 의자에 앉으며 긴 한숨을 쉬었다.
“왜 그러십니까?”
이를 본 20대 후반 대원 한 명이 그녀에게 다가오며 물었다.
“코드 원 말이야.”
“네? 코드 원이 또 사고라도 친 겁니까?”
20대 대원의 표정은 야근이 확정된 직장인 같았다. 그 표정에 루시가 눈살을 찌푸렸다.
“사고가 아니라 능력을 보여 줬어.”
“아. 그렇군요. 하긴 코드 원이 능력이 많죠.”
“평소에도 그렇게 생각했어?”
“그럼요. 다들 그렇게 생각할걸요?”
사내와 루시의 말은 다른 대원들도 듣고 있었다. 루시는 대원들이 여러 방식으로 긍정을 표시하는 장면을 보았다.
고개를 끄덕이는 자도 있었고 엄지를 치켜세우는 사람도 있었다.
“나만 저평가를 하고 있었네.”
“네?”
“반성하는 중이야. 그런데 너희들도 조금 평가를 바꿔야 할 거야.”
루시는 자신의 결론을 말했다.
“우리가 생각한 거보다 훨씬 더 대단해. 여러 가지 방면으로. 놀라운 능력도 있고.”
“놀라운 능력이라면…….”
“자연스러운 카리스마. 많은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를 따르고 있어. 모두를 친구처럼 대하지만 결국에는 코드 원의 말을 듣게 되지. 마치 골목대장처럼 말이야.”
골목대장이라는 말에 대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그들 중에 상엽과 대화를 하지 않은 이는 없었다. 상엽이 먼저 다가와 말을 걸었고 농담을 즐겼기 때문이다.
-맛있는 거 있더라. 먹으러 가자.
그런 작은 말들과 행동이 대원들에겐 믿음으로 굳어지고 있는 것이다.
“자. 그럼 우리도 능력을 보여 줘야지.”
루시는 표정을 바꾸며 업무를 시작했다.
* * *
운남 중전.
이곳은 특이한 도시였다.
해발 3200미터의 고지대에 있는 도시로 장족의 자치구였다. 그 외에도 소수 민족들이 연합을 이루고 있는 곳이라 독특한 문화로 살아가고 있었다.
운남의 서북쪽에 있어서 위치적으로도 동떨어진 지역이었지만 오히려 사천과는 멀지 않은 거리였다.
그들은 고지대의 특성상 갓코인 초반부터 많은 변종들의 위협을 받았다.
때문에 도시 자체는 절반이 넘게 무너졌지만 생존자들은 나름대로 자체적인 방어 수단을 갖추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소수 민족끼리 뭉쳐서 잘 유지가 되던 중전이 지금은 위기에 빠졌다.
북천에서 파견된 30명의 침략자가 갑자기 나타난 것이다.
그들의 자체 방어막이 발동했지만 변종에 맞춰져 있는 시스템은 큰 효과가 없었다.
30명의 침략자는 방어벽을 넘자마자 학살을 시작했고, 도시에 화염이 치솟기 시작했다.
그들의 목적은 중전을 파괴하는 것이었고 이에 따라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무너트리며 전진했다.
그렇게 서른 명은 거칠 것이 없이 살인과 방화를 저지르며 중전의 중앙으로 이동했다.
* * *
‘망할. 늦었어.’
헬기 안에서 상엽은 최악의 상황을 떠올리고 있었다.
소식을 듣긴 했지만 반응이 너무 늦었고, 상대가 위성의 감시를 알아차리고 일반인으로 위장해서 이동했기에 대처가 되지 않았다.
“곧 도착합니다.”
조종사의 말에 상엽은 헬기 문을 열고 뛰어내릴 준비를 했다.
‘조금만 버텨라.’
그렇게 생각을 하면서도 상엽은 알고 있었다.
북천에서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상대를 보냈을 것이다.
“도착했습니다.”
상엽은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헬기에서 뛰어내렸다.
‘어?’
이상했다.
그는 도시 전체가 무너져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시청이 있는 중앙을 제일 먼저 살폈다. 그런데 시청은 멀쩡했고 전투의 흔적조차 없었다.
‘유령아. 확인해.’
낙하하는 상엽보다 먼저 유령이 도시로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상엽이 바닥에 도착했을 때쯤, 의미 있는 정보를 보내왔다.
-싸움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상엽은 곧장 전투 장소로 이동했다.
최고 속도로 달리기 시작하자 채 1분도 걸리지 않았지만 그 시간이 상엽에겐 길게만 느껴졌다.
그렇게 지루한 1분의 이동을 끝낸 그는 예상치 못한 장면을 보았다.
15명의 침략자가 한 사내를 에워싸고 있었다.
중전의 자체 치안대가 모두 소멸하고 단 한 명만이 살아남은 것이다.
그런데 단 한 명의 생존자는 만신창이가 되어서도 버티고 있었다.
악마처럼 피 묻은 이빨을 드러내며 숨을 몰아쉬는 그의 모습에 상엽은 맹수의 투지를 보았다.
190센티미터의 큰 키에 우락부락한 근육을 가진 사내였다.
피로 범벅이 된 그의 얼굴에 하얀 눈동자가 번득이더니 접근하는 침략자 한 명을 끌어안고는 목을 물어뜯었다. 하지만 그의 배에도 칼이 파고들고 말았다.
그 상처는 치명적이었다.
침략자들은 기회를 잡고 사내를 향해 달려들었다. 사내는 치명적인 상처에도 두 발로 버티며 단 한 명을 노렸다.
지금까지 싸움에 나서지 않았던 침략자들의 리더였다.
그는 저승길에 함께 갈 파트너를 고르고 다가오는 침략자들을 향해 뛰었다.
그때, 전장에 바람이 불었다.
침략자들의 등 뒤에서 몰아친 바람은 곧바로 피분수를 일으켰고 멀쩡하던 몸을 두 개로 잘라 버렸다.
그리고 사내 앞에 멈춰 선 바람이 생존한 침략자들 앞에 거대한 돌기둥을 세웠다.
“고생했어.”
상엽은 처음 보는 사내의 투지를 칭찬하며 정령의 정수를 던졌다.
“치료부터 해. 숨은 붙어 있어야 치료가 될 테니까.”
사내는 상엽을 알아보았다. 현재 운남에서 상엽을 모르는 자는 없었다.
실제로 이곳 중전에도 테리아의 보급품이 지원되고 있었다.
그들은 정책에 따라 은근히 상엽에 대한 정보를 흘리고 있었다.
사내는 말없이 상엽의 제안에 따라 뒤로 물러났다.
“뭐해? 너희들은 다시 싸워야지.”
상엽은 거침없이 침략자들을 향해 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