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3
장수한.
지금까지 그를 찾은 이는 이미 사망한 광성이 유일했다.
그런데 두 번째 인물이 나타났다.
“당신이 어떻게…….”
“고객의 정보는 절대 비밀인 거 알지?”
“무, 물론입니다.”
상엽은 예정대로 6가지 항목을 전부 5단계로 강화했다.
‘확실히 시너지가 있어.’
6가지 항목이 5단계 상승효과를 전부 받았고, 블랙 상점과 어우러지자 몸의 변화가 분명히 느껴졌다.
“어떻게 된 겁니까?”
“뭐가?”
“당신은 블랙 유저일 텐데…….”
“지금 화이트 상점을 이용했는데 블랙 유저라니?”
“그럼 전부를 속였단 말입니까?”
상엽은 능청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전부 블랙 유저로 알더라고. 내가 먼저 나서서 아니라고 할 필요는 없잖아.”
화이트 상점을 이용했다는 것은 너무나 명확한 증거였다. 이에 장수한은 더 이상 의심할 수가 없었다.
“앞으로 자주 봐. 대신 내 비밀은 꼭 지켜 줘야 돼. 무슨 말인지 알지?”
“알겠습니다.”
상엽은 어차피 거짓말이 들켜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굳이 그가 밝힐 이유도 없었고, 상점은 자신의 정보를 누구에게도 말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해도 굳이 먼저 비밀을 밝힐 이유도 없었기에 이 정도로 끝냈다.
무사히 강화를 끝낸 상엽은 일본의 등록 지점을 통해 블랙 상점까지 들렀다.
개조를 하지 않았던 세 가지 목록도 5단계까지 올린 그는 만족스러운 상태로 곤명에 돌아왔다.
‘이것도 병이야.’
강화를 하고 나면 그 차이를 직접 확인하고 싶은 게 인간의 본능이다.
‘생각한 바가 있지.’
상엽은 늦은 밤에 홀로 곤명을 떠났다.
“영인으로 산책 좀 다녀올게.”
“따로 지시하실 사항은 없으십니까?”
영인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루시는 상엽의 의도를 파악했다.
운남과 사천의 경계선.
그곳이 바로 영인이었다.
현재는 대북천이 자리를 잡았고, 상엽이 운남을 장악한 이후에 주둔 인원이 늘고 있었다.
‘가만히 있을 분이 아니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운남이 안정될 때까지 상엽이 먼저 공격하진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 이유는 명확했다.
-북천의 순위가 훨씬 높다.
이것이 근거였다. 하지만 상엽은 랭킹을 믿지 않았다. 그리고 안주하는 건 그의 방식이 아니었다.
“입고 가시죠.”
루시는 오히려 상엽에게 옷 한 벌을 내밀었다.
“운동복입니다. 산책하기에 좋습니다.”
그녀가 내민 옷은 검은색으로 빛을 반사하지 않는 특별 소재였다.
게다가 상엽에겐 큰 의미가 없지만 일반 소재에 비해 훨씬 가볍고 땀 흡수도 뛰어났다.
“고마워.”
상엽은 루시의 배려를 마다하지 않았다. 최근 들어서 루시는 세세한 부분까지 상엽을 보좌하기 시작했다.
암습에 어울리는 검은 옷으로 갈아입은 상엽은 홀로 곤명을 떠났다.
자정이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두두두.
고요한 하늘에 헬기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누군가 헬기에서 떨어진 직후, 영인의 대북천 지부는 사라졌다.
단 한 방이었다.
그 한 방의 중심은 운석이 떨어진 것처럼 커다란 크레이터가 생겼다.
움푹 파인 크레이터에는 상엽이 서 있었고 그는 폐허로 변한 주변을 살폈다.
지름만 2킬로미터에 달하는 엄청난 크레이터였다. 그 충격파는 더욱 멀리 뻗어 나갔다.
바닥에는 폭풍이 쓸어 간 것처럼 매끈한 모래만 남았고, 지상에 발을 딛고 서 있는 것은 상엽 혼자였다
“조금 강했나?”
충격파의 파편이 주변의 아파트와 건물까지 집어삼켰다. 다행히 건물이 무너지진 않았지만 사이렌이 울리기 시작했다.
누구도 이것이 사람의 힘이라고 믿지는 않을 것이다. 예전부터 지진에 민감한 지역이라 주민들은 자연재해가 일어난 것이라 생각하고 바쁘게 움직였다.
새벽은 그렇게 깨어났지만 상엽의 암습은 멈추지 않았다.
“랭킹 800위짜리가 지부장이라고 했는데.”
상엽은 이미 추종자를 통해 주변을 정찰하고 있었다.
‘이 정도 노크를 했으면 얼굴이라도 보일 거야.’
예상대로 추종자는 얼마 되지 않아 기다리던 보고를 했다.
-찾았습니다.
상엽은 위치를 파악하고 곧장 추종자가 있는 방향으로 뛰었다.
꽤 멀리서 상황을 살피던 상대는 상엽이 갑자기 뛰어오자 급히 몸을 돌렸다.
하지만 그는 도주하는 데 특화된 인물이 아니었다. 오히려 정면 돌파에 특화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둘의 거리는 순식간에 좁혀졌고 결국 상엽이 그의 앞을 막았다.
‘빠르다.’
사내는 자신이 예상한 것보다 훨씬 빨리 따라잡히는 바람에 변수를 만들 틈도 없었다.
최상급 상점 두 가지를 모두 5단계까지 강화한 상엽은 속도와 감각, 정신력, 그가 뒤로 미루던 매력까지 크게 상승한 상태였다.
기존의 데이터는 의미가 없는 것이 현재의 상엽이었다.
“무기 뽑아.”
상엽은 여유 있게 그의 앞에 섰다.
‘랭킹 1000등 안이면 최소 4단계 후반.’
성장에 따라 다양한 변수가 있지만 보통 2000등까지 4단계 유저로 평가했고, 300등부터는 5단계 유저였다.
그리고 100등 안은 단계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상엽은 여유를 부리면서도 방심하는 마음은 없었다. 곤충의 더듬이처럼 민감해진 감각은 그의 작은 숨소리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
“갑자기 왜 습격을 한 겁니까?”
30대 후반에 단단한 체구를 가진 땅딸보는 무기를 꺼내면서 억울하다는 표정이었다.
“죽을 놈들은 어떻게 하나같이 똑같냐? 지금 내가 이유 없이 너희들을 습격하는 거 같아?”
“그럼 이유가 뭡니까?”
“너희들 대장이 날 죽이라고 사주했어. 사주만 한 게 아니라 실제로 날 죽이려고 함정을 팠지.”
“전 그 일과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는 여전히 억울하다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상엽의 의지는 확고했다.
“상관있어. 너도 대북천이잖아.”
“하지만 같은 블랙 유저끼리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그러게 말이야. 좀 야속하지?”
상엽은 그에게 다가가서 이를 갈듯이 위협적으로 말했다.
“그런데 넌 왜 그랬냐? 같은 인간끼리 그럴 필요는 없었잖아.”
사내는 할 말이 없었다. 권력을 이용해 일반인들을 유린하고 욕심을 채운 기억들이 부지기수였다.
“할 말 없으면 이제 시작하자.”
쾅!
상엽은 더 이상 기다리지 않고 해머를 휘둘렀다.
‘역시 실력은 있네.’
스트라이크를 사용하지 않은 탓인지 한 방으로 끝나지 않았다. 사내는 양손을 교차해 해머의 공격을 버텨 냈다. 그러면서 묵직한 반격을 시도했다.
사슬이 보이지 않는 철퇴였다.
손잡이와 일정 간격에 떠오른 철퇴는 사내의 의지에 따라 그 간격이 달라졌다.
바람을 가르며 다가오는 철퇴는 상엽도 몸으로 견디기는 힘든 위력이었다.
이에 상엽은 전략을 바꿨다.
츠팟!
그의 몸이 팔각 대시로 어지럽게 흔들리며 사내의 옆으로 통과했다.
“큭!”
옆구리에서 통증을 느낀 사내가 신음 소리를 내며 급히 몸을 돌렸다.
그의 옆구리에는 꽤 깊은 상처가 남아 있었다.
상엽은 한 번으로 그치지 않고 계속해서 그의 주변을 빠르게 맴돌았다.
이미 한 번 상처를 입은 사내는 상엽의 움직임을 좇느라 제대로 된 반격조차 하지 못했다.
그때, 주변을 도는 상엽의 몸에서 불길이 치솟더니 사내를 향해 뻗어 오기 시작했다.
화염은 순식간에 사내의 시야를 가렸고, 이글거리는 불길에 바람이 불었다.
콰쾅!
지금까지와 다른 충격파가 사내를 덮쳤다. 하지만 사내는 위기를 느끼는 순간, 상엽이 있던 방향으로 몸을 날렸다.
‘훌륭해.’
위기에서 반격을 택한 것이다.
사내는 지금까지 이 순간을 노리고 있었다. 어차피 정상적인 싸움에서 승산이 없다고 생각한 그는 상엽이 공격하는 타이밍을 기다렸다.
완벽한 타이밍으로 들어간 반격은 정확히 상엽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쾅!
파편이 흩날렸다.
철퇴가 때린 것은 상엽이 아니라 솟아오르는 돌기둥이었다.
상엽이 몸을 숙이며 돌기둥을 소환해 철퇴를 막은 것이다. 그리고 그 반격이 실패하는 순간, 사내의 운명도 결정되었다.
푹! 푹! 푹!
망자의 손길이 세 자루의 날카로운 창으로 뻗어 사내의 몸을 관통했다.
사내는 그 자리에서 모든 움직임이 멈췄고 눈빛에서 생기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유령아, 처리해.”
사내의 몸으로 추종자가 들어가면서 전투는 상엽의 승리로 끝났다.
상엽은 사내의 기억을 통해 대북천의 대략적인 정보를 알아냈다.
그런데 원하던 정보를 모두 얻어 낸 상엽은 특별한 기억 하나를 읽었다.
워낙 간절히 남아 있는 기억이라 자연스레 보게 된 것이다.
-지옥마의 조각.
특별한 유산에 대한 기억이었다. 그리고 조각 하나가 사내의 유산 보관함에 있었다.
‘7조각 유산인데 북천이 5개를 가지고 있다는 거지? 이 녀석 위험한 생각을 하고 있었네.’
그는 북천의 지시로 찾아낸 하나의 조각을 빼돌리고 있었다. 기회를 봐서 자신이 완성하고자 한 것이다.
‘하긴 800위쯤 되면 욕심이 나겠지.’
랭킹 1000등 안이면 언제든 최상위권으로 도약할 수 있는 능력이 됐다.
이는 상엽이 잡은 사내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유저가 꿈꾸는 방향이었다.
“지옥마가 그렇게 좋은 유산인가?”
상엽은 사내의 기억에서 몇 가지 정보를 얻었다.
-가장 어두운 신의 애마로 뜨거운 불길을 몸에 두르고 물 위와 불 속을 달릴 수 있는 말.
“뭐야? 말이야?”
유령 추종자처럼 소환할 수 있는 대상이었다.
-주인과 함께 소멸하며 영혼으로 연결된다.
“유령아, 지옥마에 대해서 알아?”
-들어 본 적은 있습니다. 예전에 지옥마를 얻기 위해 신들의 분쟁이 생겼을 정도라고 했습니다.
“음, 확실히 가치는 있단 말이지?”
상엽은 일단 전리품을 챙기는 수준에서 마무리했다.
“산책 나온 김에 한 군데 더 들렀다 가자.”
그는 사내의 기억에 따라 가까운 곳에 있는 또 다른 목표를 잡았다.
그곳은 대북천 소유의 식량 창고였다. 주민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곧 사천 성도로 옮겨질 식량을 모아 둔 곳이었다.
상엽은 출발하기 전에 핸드폰을 꺼냈다.
“식량을 좀 찾았어. 위치 알려 줄 테니까 차 좀 보내. 최대한 많이.”
그는 지나가다 돈을 주운 것처럼 말했다.
“북쪽.”
방향을 잡고 뛰기 직전, 상엽은 괜히 조금 전에 보았던 단어가 떠올랐다.
“지옥마는 나보다 빠르겠지?”
꽤나 편한 이동 수단 정도로 이해하며 상엽은 대북천의 식량 창고로 뛰었다.
50대의 대형 트럭으로 창고의 식량이 모두 옮겨졌다.
“자자. 조심해서 이동해.”
상엽은 직접 차량을 통제하며 식량이 모두 옮겨지는 과정을 확인했다.
이곳을 지키는 자들을 처리하는 건 어렵지 않았고, 당장 지원군이 온다고 해도 상엽을 막을 능력이 되지 못했다.
“이제 출발!”
트럭들이 열을 맞춰 운남으로 돌아갔다.
“코드 원. 상대를 너무 자극하는 것 같습니다.”
“일부러 그러는 거야.”
“의도를 알고 싶습니다.”
“사천 성도는 위험하니까 그 녀석을 불러내려고.”
“당장 싸우실 생각이신 겁니까?”
“왜? 내가 질 것 같아?”
“아닙니다. 다만 걱정이 될 뿐입니다.”
상엽은 루시의 말이 불쾌하지 않았다.
“걱정 마. 내가 사고는 많이 치지만 항상 내가 직접 수습했어. 이번에도 그럴 거야.”
루시는 더 이상 질문을 하지 않았다. 이에 상엽은 여전히 여유로운 표정으로 명령을 내렸다.
“분명히 이번 일에 대한 반격이 있을 거야. 직접 대응하지 말고 나한테 알려.”
“알겠습니다.”
“그리고 내가 곤명에서 시민들에게 어떻게 해 주고 있는지는 최대한 숨겨. 내가 곤명에 애정이 있다는 걸 알게 되면 대대적인 공격을 할 테니까.”
루시는 상엽의 말을 이해했다.
“언제든 시민을 버릴 수 있다는 정보를 흘리겠습니다.”
상엽이 유일하게 걱정하는 것은 대북천이 운남을 대대적으로 습격하는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상엽이 언제든지 시민을 버릴 수 있다는 인상을 심어 주는 것이다.
지킬 것이 없는 상엽은 자유로이 움직일 테고 오히려 대북천의 본진을 습격할 수도 있다. 그리고 이미 몇 번이나 그런 작전을 쓴 터라 이 기록을 북천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자, 내가 사천에 들어왔는데 넌 어떻게 할래?”
상엽은 사천 성도가 있는 북쪽 하늘을 보며 물었다. 당연히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사흘 후.
운남 대리로 10명의 정예 유저가 습격을 시도했다.
암습에 강한 자들로, 운남을 지키는 한국 군대와 시스템을 무너트리고 새로 창설된 군부대를 무너트리는 것이 목표였다.
그들은 어둠에 몸을 숨기고 숨소리를 감추며 방어벽을 뛰어넘었다.
그리고 방어벽에 일정 간격으로 있는 망루로 기어 올라갔다. 그곳에 있는 기관총과 군인을 먼저 제거하기 위해서였다.
10명이 일제히 다른 망루로 올랐고 동시에 숨통을 끊을 생각이었다.
그렇게 암살자들을 지휘하던 리더가 먼저 망루로 뛰어올랐다.
‘무슨!’
망루에 닿은 순간, 대북천의 정예 멤버는 뭔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흐으.”
그를 기다리는 건 사람이 아니었다.
유령 전사.
이는 다른 망루도 마찬가지였다.
“모를 줄 알았냐? 저기서 다 지켜보고 있거든.”
누군가 등 뒤에 나타나서 하늘을 가리켰다.
“저기 보이는 하늘 말고 더 높은 하늘. 위성이라고 하는데 들어는 봤지?”
자랑하듯 시스템을 떠들어 대는 이는 상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