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코인-151화 (151/300)

# 151

페이롱과 하이렌.

둘 모두에게 상엽의 존재는 재앙이었다.

2천 명의 하이렌 길드원 중에 살아서 도망간 이는 겨우 절반이었다.

애초에 상엽에 대응할 생각이 없었던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피해였다.

“이런 것들이 대장이라고.”

쾅!

상엽은 길드장 한 명의 머리를 날려 버렸다. 길드장이 위기에 빠졌음에도 길드원들은 누구도 돌아보지 않았다.

그나마 지금 상엽에게 죽은 길드장은 길드원들의 도주를 직접 지휘했다.

그런데 나머지 두 명은 보이지도 않았다.

첫 습격 때 한 명을 처리했고, 지금 추격을 통해 한 명을 잡았지만 나머지 두 명은 상엽이 나타나는 순간에 이미 길드원들을 버리고 달아났다.

상엽은 충분하다고 생각할 때까지 하이렌을 추격하고서야 방향을 돌렸다.

그가 향한 곳은 곤명시였다.

곤명 내부에는 아직 페이롱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들은 상엽과 협상의 여지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 마지막 결단을 내렸다.

의외로 그들은 마지막까지 저항하는 것을 선택했다.

무모한 결정이지만 곤명은 그들에게 이만큼의 의미가 있었다.

오랫동안 페이롱의 심장부 역할을 했고, 광성이 있을 때만 해도 많은 존경을 받았다.

그들은 곤명을 끝내 버리지 못했다.

이길 수 없음을 알면서도 그들은 1차 방어벽 밖에서 진을 치고 상엽을 기다렸다.

곤명이 다치기를 원하지 않았기에 밖으로 나온 것이다.

단단한 의지로 달아오른 그들의 진영으로 상엽이 다가갔다.

‘오백 명.’

2천 명을 오백 명으로 막아 내고 있었다는 것은 그만큼의 실력이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지금은 목숨을 건 투지가 분명히 느껴졌다.

상엽은 이를 경계하며 천천히 그들의 정면에 섰다.

‘광성의 수하답네.’

오로지 실력을 믿고 저돌적으로 달려들던 광성의 모습이 떠올랐다.

“광성을 죽이고 바로 왔으면 내가 위험했겠어.”

상엽은 그들의 투지를 인정했다. 실력을 극한으로 끌어내는 것이 투지였다.

변종을 상대하면서 수도 없이 겪었던 일이다.

‘목숨을 갈아서 만든 칼날만큼 무서운 게 없지.’

그렇지만 상엽은 조금도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운이 나빴어. 예전의 나라면 너희들에게도 기회가 있었을 텐데.”

상엽이 어떤 말을 해도 그들은 대답이 없었다.

“시작하자.”

그는 친위대를 소환했고 망자의 손길이 최대의 길이로 늘어나서 날카로운 창을 만들었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한 곳에 모인 양손에는 해머가 들려 있었다.

‘최선을 다한다.’

상엽은 그들의 투지에 최고의 힘으로 보답했다. 이에 목숨을 건 500명의 전사들이 죽음을 각오하고 맞섰다.

서로 최고의 힘을 발휘했다. 하지만 힘의 차이는 명확했다.

상엽에게 작은 상처가 생기긴 했지만 그뿐이었다.

이미 뛰어난 전사들을 많이 잃은 페이롱은 친위대조차도 부담스러웠다.

목숨을 건 투지는 능력을 한계까지 끌어 올렸지만, 그 한계로도 상엽에겐 닿을 수 없었다.

쾅! 쾅!

두 번의 강렬한 폭발이 그들의 중앙에 떨어지면서 전투는 끝을 향하기 시작했다.

귀곡성이 울리고 화염 파도가 몰아쳤다.

다시 이어지는 폭발에 살점이 튀고 무너진 시체는 금세 빛으로 변해 상엽에게 빨려 들어갔다.

지상에 전리품이 흩어졌지만 누구 하나 이를 주울 틈이 없었다.

전투가 막바지에 달했을 때, 전장의 중앙에 거대한 돌기둥이 치솟았다.

지름만 50미터에 높이는 500미터에 달하는 돌기둥은 곧 화염에 휩싸였다.

그리고 상엽은 높이 뛰어올라 돌기둥의 중앙을 때렸다.

화염을 머금은 돌기둥이 산산이 부서지며 엄청난 폭발로 이어졌다.

순식간에 화염 폭풍이 몰아치며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을 태워 버렸다.

그 화염 폭풍 안에서 자유로이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상엽이 유일했다.

그걸로 전투는 끝이었다.

꺼지지 않은 화염 안에서 상엽은 사신이 되어 마지막 한 명까지 철저히 마무리했다.

“후우.”

전투를 끝낸 상엽이 긴 한숨을 쉬는 순간, 페이롱은 역사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운남의 심장인 곤명의 주인도 사라졌다.

상엽은 곤명시를 걸었다.

그가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잘 갖춰진 도시였다.

페이롱이 곤명에 모든 경제력을 집중한 만큼 꽤나 발전한 형태로 보존이 된 것이다.

처음에는 누구의 시선도 느껴지지 않았다. 싸움에 휘말릴 것을 두려워해서 집 안이나 대피소에 숨은 것이다. 그런데 이는 방어벽 근처라는 특성 때문이었다.

얼마 되지 않아 상엽은 식량 단지로 보이는 큰 농업 단지로 들어섰다.

그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평소처럼 일을 하고 있었다.

운남의 특성상 햇빛이 강해서 오후에는 일을 하기 어렵지만 2천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농사를 짓고 있었다.

그러다 상엽이 나타날 때쯤 뭔가 연락을 받은 관리자가 다급히 중앙에 있는 식량 단지의 본부로 뛰어갔다.

잠시 후, 본부 앞에 세워져 있던 차들이 다급히 단지를 떠나기 시작했다.

인부들은 그대로 남겨진 채였다.

‘치사한 새끼들.’

페이롱이 무너졌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다. 그래서 위기를 느낀 관리인들은 모두 떠났다.

“저런!”

본부를 떠나던 차 한 대가 바구니에 과일을 담아 오던 소녀를 향해 돌진했다.

워낙 다급해서인지, 본래부터 소녀의 생존에는 관심이 없는 건지, 차는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상엽은 본능적으로 땅을 박차고 소녀를 안아 안전한 곳에 내려섰다.

예상대로 속도를 줄이지 않은 차를 향해 응징을 하려던 상엽은 소녀의 떨림에 손을 멈췄다.

“괜찮아?”

“네? 네…….”

“조심해.”

상엽은 응징 대신 소녀를 안심시키고 웃음을 지었다.

“이, 이거 먹을래요?”

소녀가 내려설 때 충격으로 바닥을 구르는 과일 하나를 집어서 소매로 닦았다.

“너 먹어.”

상엽은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시선을 돌렸다.

그의 눈에 여전히 일을 하고 있는 많은 노동자들이 보였다.

상엽의 존재 자체가 곤명에는 큰 위기였지만 노동자들에겐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관리자가 없음에도 인부들은 묵묵히 일을 했다. 피부가 붉게 달아오르고 땀으로 범벅이 되었음에도 일을 멈추지 않았다.

상엽은 그 장면을 애써 외면하며 곤명의 중앙으로 향해 걸어갔다.

내부로 들어갈수록 눈에 보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런데 대부분이 노동자였고 관리인은 없었다.

“무슨 일이 있나 봐.”

“관리자들이 전부 도망가고 있어.”

“무슨 일이지?”

상엽은 그 대화에서 하나의 사실을 깨달았다.

‘정보가 통제됐어.’

중국은 예전부터 정보 통제가 많았다. 그런데 코앞에서 벌어지는 싸움까지 숨긴 것이다.

“싸움이 벌어진 것 같더니 혹시 페이롱이 진 거 아닐까?”

“하이렌은 주민들을 막 죽인다고 하던데.”

“그놈들이 이기면 안 될 텐데.”

시민들이 아는 건 이 정도였다.

“우리도 도망가야 하는 거 아니야?”

“갈 데가 있긴 해?”

그들은 피할 곳이 없었다. 누가 관리자가 되든 그냥 받아들여야 하는 운명이었다.

곤명은 알려진 바로는 인구 6백만 명의 도시였다. 하지만 최근에 곤명으로 들어온 등록되지 않은 인구까지 합치면 7백만 명이 넘었다.

그들 중에 전투가 시작되고 곤명을 떠난 이는 겨우 2천 명 정도였다.

2천 명은 그동안 페이롱과 관련이 있는 인물이었고, 정부 관계자도 있었다.

그나마 남아 있던 곤명의 공권력도 상엽이 페이롱을 무너트리는 순간 떠나고 말았다.

‘버려진 거야.’

7백만 명이 버려졌다.

‘누군가 또 주인이 되려고 오겠지.’

무주공산의 곤명을 그냥 내버려 둘 리가 없었다. 다만 누가 와도 7백만 명의 고통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도주한 하이렌이 다시 올 수도 있고, 더 큰 길드가 운남을 지배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누가 오든 결과는 같았다.

‘더 힘들어지겠지.’

불을 보듯 뻔한 결과였다.

“후우.”

상엽은 답답한 심정을 한숨으로 대신하며 길을 걸었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고급 주택 단지로 들어섰다.

중앙 시청에서 얼마 되지 않는 요지에 마련된 주택 단지였다.

현재 정세에 어울리지 않는 저택들이 깨끗하게 뻗은 넓은 소방 도로 주변으로 늘어서 있었다.

200평이 넘는 정원은 기본이었고 열 사람이 동시에 들어갈 법한 대문이 웅장하게 세워져 있었다.

100여 채의 고급 주택 단지에는 최고급 외제 차가 늘어서 있었고, 정돈된 가로수와 넓은 공원까지 있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상엽은 처음으로 사람을 보았다.

청소를 하는 노인이었다. 낡은 작업복에 청소 도구가 담긴 수레를 밀던 그는 상엽을 보더니 얼른 시선을 돌렸다.

그는 상엽을 모르는 듯했다. 다만 이곳에서 일을 하면서 버릇이 된 듯 시선을 피하고 청소에 열중했다.

“흠.”

중국의 빈부 격차는 한국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예전부터 중국은 가진 자와 그렇지 않은 자의 차이가 극명했고, 이를 당연히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지금도 노인은 곤명에 위기가 닥친 것도 모른 채, 생계유지를 위해 일을 해야 했고, 고급 주택가의 외제 차는 흠집 하나 없이 깨끗했다.

반면 고급 주택 단지에는 인기척이 전혀 없었다. 이미 곤명에서 떠난 것이다.

그럼에도 인부들이 깨끗이 관리를 하고 있었다.

상엽은 그 장면을 보자 마음이 답답해졌다.

세상은 언제나 가진 자와 가지고 싶은 자로 나뉜다. 어렸을 때부터 상엽은 이를 절실히 느꼈다.

가진 게 많다고 무조건 나쁘지는 않았다. 오히려 매너만 지켜도 좋은 평가를 받았고, 실제로 베풀 줄 아는 사람도 많았다.

“이건 불합리해.”

지금 상엽의 가슴을 짓누르는 건 가장 기본적인 인권이었다.

위험이 닥친 도시를 탈출할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어야 했다.

그 이전에 이 도시가 위험하다는 걸 알 권리도 누구에게나 있어야 했다.

그 기본적인 정보조차 가진 것에 따라 차별되는 장면이 답답했던 것이다.

상엽이 갓코인 유저가 되기 전에는 지금 청소부와 다를 것이 없는 입장이었다.

누나 사건으로 힘들었고, 억울했으며 그럼에도 호소할 곳조차 없었다.

“아저씨. 도와드릴까요?”

“아, 아닙니다.”

청소부는 놀라서 손을 저었다. 그는 상엽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다.

“저도 일자리 구하러 왔어요. 어디 가서 알아보면 되나요?”

상엽의 옷은 전투로 인해 곳곳이 찢어져 있었다. 청소부는 이를 보더니 점차 의심을 거뒀다.

무엇보다 상엽의 웃음은 지금까지 그가 겪었던 가진 자들의 표정이 아니었다.

“관두고 다른 도시로 가. 노동으로는 먹고살기도 힘드니까.”

“여기 갓코인 유저 길드도 있다던데. 제가 갓코인은 없지만 힘은 꽤나 쓰거든요.”

그 말을 하는 순간, 노인이 인상을 구겼다.

“왜 그러세요?”

“곧 자네가 길드 마크가 달린 옷을 입고 와서 날 괴롭히겠구먼.”

“네?”

노인은 자신의 어깨에 있는 상처를 보여 주었다.

“담배꽁초 하나를 줍지 않았다고 몽둥이를 휘둘렀지. 풀 사이에 숨어 있어서 못 봤을 뿐인데 말이야.”

“전 그러지 않을 거예요.”

“다들 처음에는 그래. 한 달만 지나면 달라지지.”

겉으로는 잘 유지가 되는 곤명이지만 가진 것이 없는 자의 삶은 노예나 다를 바가 없었다.

길드 소속이 되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고 최하급 잡부조차도 누구에게나 몽둥이를 휘두를 수 있었다.

하이렌처럼 직접 나서서 악마가 되지 않을 뿐, 페이롱도 돈 없는 사람들의 인권에는 관심이 없었다.

“아저씨. 어떤 세상에서 살고 싶으세요?”

“어떤 세상?”

노인은 헛웃음을 흘리더니 하늘을 보았다. 그의 이마에 잡힌 주름이 상엽의 눈에는 아프게만 보였다.

“예전 같은 세상은 바라지도 않아. 다시는 그때로 돌아갈 수 없을 테니까.”

빈부 격차가 심하고 노동자들은 신분 상승이 불가능한 사회였음에도 노인은 그때를 꿈이라 생각했다.

“지금은 그저 두 가지만 바라지.”

상엽은 노인의 말을 기다렸다.

“때리지 않고, 빼앗지 않았으면 좋겠어.”

때리지 않고, 빼앗지 않는 것.

그 말을 들은 상엽은 머리가 멍해졌다.

* * *

시청에는 아무도 없었다.

급하게 떠난 흔적이 가득한 시청에는 여러 서류들이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었다.

상엽은 시청의 로비를 지나 옥상으로 올라갔다.

그곳에는 여전히 중국과 페이롱의 깃발이 꽂혀 있었다.

상엽은 잠시 두 깃발을 보았다.

쾅!

깃발은 상엽이 휘두른 해머의 충격파로 인해 걸레처럼 찢어졌고 화염에 휩싸여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상엽은 사라진 깃발이 있던 자리로 가서 핸드폰을 꺼냈다.

“거점 확보 준비해. 중국을 내가 가져야겠어.”

길었던 고민이 드디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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