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코인-150화 (150/300)

# 150

오합지졸이었다. 그것이 많은 이들을 살렸다.

천 명 중에 상엽의 손에 죽은 인원은 절반뿐이었다. 나머지는 상엽이 옥계의 방어벽을 넘는 즉시 싸움을 포기하고 도망갔다.

이미 운남을 버리고 도망갔던 그들에게 두 번은 어렵지 않았다.

500명을 사지로 몰아넣은 방죽장은 좁은 방 안에서 고통을 겪고 있었다.

온몸의 뼈가 모두 부서진 상태에서 1킬로미터가 넘게 끌려오면서 이미 삶의 의지를 잃었다.

그럼에도 오랫동안 고통에 시달렸다.

추종자가 그의 몸으로 들어가서 30분이 넘게 영혼이 찢기는 고통을 받은 후에야 숨을 거뒀다.

상엽은 그의 기억을 통해 현재 하이렌의 배치와 시스템을 완전히 이해했다.

‘실력이 없어서 악마가 됐구나.’

상엽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실력이 떨어졌다. 그리고 체계도 잡혀 있지 않았다.

그들은 그저 북천의 지원만 믿고 이미 힘이 빠진 페이롱을 숫자로 밀어붙인 것이다.

게다가 싸움이 시작되기도 전에 그나마 용기 있게 싸우기를 선택한 길드장 한 명을 죽인 기억까지 있었다.

죽은 길드장은 연합을 주도한 실질적인 리더였다.

치졸한 여섯 명은 그가 하이렌의 리더에 올라서는 것을 두고 보지 않았다.

그 후로 여섯 명의 길드장은 싸움을 시작하기도 전에 운남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를 합의했고, 곤명과 대치 상태에 들어가자 마치 쌍무에 이긴 것처럼 권력을 누렸다.

‘미친 새끼들.’

그렇다고 그것이 이유가 되진 않았다. 그들은 사람들을 관리할 자격이 없는 집단이었다.

‘제대로 된 체계도 없어.’

그들이 협의를 한 것은 운남을 어떻게 나눌지에 관한 것이었다.

운남을 장악하기도 전에 밥그릇 싸움을 먼저 했고, 전투에서도 몸을 사리기 일쑤였다.

‘살아 있을 이유가 없는 놈들이야.’

그들은 갓코인 유저가 된 이후로 수많은 악행을 일삼았다. 집단이 되면 더욱 독해졌고 그때마다 사람이라고 믿을 수 없는 짓을 저질렀다.

이를 확인한 상엽은 코드 제로의 전용 핸드폰을 꺼냈다.

“지금부터 인간 사냥이야. 하이렌이 사라질 때까지 멈추지 않을 거야.”

상엽의 첫 번째 목표가 명확해졌다.

하이렌은 혼란에 빠졌다.

이제까지만 해도 그들의 적은 화이트 유저였다. 그런데 지금은 상엽이 등 뒤에서 하이렌을 유린하고 있었다.

벌써 다섯 개의 도시가 무너졌고 두 개의 길드장이 죽었다.

저항이 의미가 없을 만큼 실력 차이가 명확했다.

게다가 그들은 곤명에서 페이롱과 대치 상태에 있었다. 다른 도시는 도주할 수도 있지만, 곤명은 아니었다.

여기서 물러난다는 것은 운남을 포기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결국 그들은 북천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사천 성도로 네 명의 길드장이 직접 찾아가서 상엽을 막아 달라고 부탁했다.

북천은 긴말도 듣지 않고 약속을 했다.

길드장들은 그 말을 듣자 모든 것이 해결된 것이라 생각했다.

-북천 님이 약속했다.

이는 순식간에 하이렌의 사기를 끌어 올렸다. 덕분에 곤명의 저지선에서 버틸 수 있었고, 대치 상태는 계속되었다.

같은 시간.

코드 제로는 북천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었다. 워낙 실력이 뛰어난 인물이라 직접 감시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사천은 대북천 길드가 완전히 장악한 상태라 모든 행동이 조심스러웠다.

그렇지만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사천 성도는 북천이 자리를 잡은 이후로 모든 시스템이 온전한 도시였다.

CCTV가 살아 있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코드 제로는 이를 해킹해서 대북천 길드의 본부를 살폈다.

그리고 갓코인 유저가 아닌 일반인들이 본부에서 밖으로 나올 수 있는 경로에 머물고 있었다.

-북천이 움직였다.

북천은 약속대로 곤명으로 갈 생각인 듯이 보였다. 대북천 본부의 앞마당에 헬기가 내려앉았고, 북천이 특유의 거만한 팔자걸음으로 본부를 빠져나왔다.

그런데 그가 헬기에 다가갈 때였다.

쾅!

갑자기 헬기가 폭발을 일으키며 화염에 휩싸였다.

북천은 조금 놀라긴 했지만 폭발의 화염 속에서도 상처를 입지는 않았다.

다만 그가 아끼는 옷이 걸레짝으로 변해 버렸고, 여전히 불이 붙어서 타들어 가고 있었다.

대북천의 마크가 새겨진 비단옷을 신경질적으로 벗어 던진 북천은 뒤에 있는 새로운 참모에게 목소리를 높였다.

“어떤 놈이 한 짓이냐!”

불과 일주일 전에 새로 임명된 참모는 고개를 숙이며 본부로 뛰어 들어갔다.

“감히!”

북천은 앞마당에서 불타고 있는 헬기를 분노한 눈으로 노려보다가 주먹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헬기를 향해 주먹을 뻗었다.

콰쾅!

허공에 주먹을 뻗었을 뿐임에도 엄청난 기파가 헬기를 덮쳤다.

불붙은 파편들이 가루가 되어 흩어졌고 주변에 불꽃놀이처럼 화려한 불씨들이 흩날렸다.

잠시 후, 건물로 들어갔던 참모가 다급히 북천에게 달려왔다.

“성도 시청의 관리 두 명이 암살을 당했습니다. 전부 우리 쪽 사람입니다.”

“뭐?”

그 보고가 끝나기 무섭게 본부 안으로 세 명의 사내가 뛰어 들어왔다.

그들은 북천 앞에서 무릎을 꿇더니 다급한 보고를 올렸다.

“남문 경비 팀장이 사라졌습니다.”

“신전 건설 팀장이 사라졌습니다.”

“왕우성 지원 팀장님이 사라졌습니다.”

보고를 받은 북천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사라지다니?”

“암살을 당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모두 같은 보고였다.

갓코인 유저는 시체를 남기지 않기에 갑자기 사라지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럼에도 암살이라고 단정 짓는 이유가 있었다.

“빈 보관함이 남아 있었습니다.”

암살자는 보란 듯이 유물과 유산 보관함을 남겨 두었다. 물론 그 안에 있는 조각은 모두 가져간 뒤였다.

“감히! 어떤 놈이 신의 사제를 건드린단 말이냐!”

스스로를 신이라 여기는 북천은 수하들이 암살을 당했다는 사실에 크게 분노했다.

그때, 또 한 명의 사내가 본부에서 뛰쳐나왔다.

“부길드장님이 사라졌습니다.”

“뭐?”

부길드장은 갓코인 랭킹 900위권의 강자였다. 그리고 또 하나의 특징이 있었다.

“내 동생이 사라졌다고?”

북천의 친동생이 바로 부길드장이었다.

“당장 찾아라!”

북천은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암살자 수색을 지시했다.

사천 성도 방어벽에서 5킬로미터 떨어진 호숫가 근처에서 두 여인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약속했던 보수입니다.”

지폐 한 장을 건네는 이는 상엽의 비서 루시였다.

유로화 중에 가장 단위가 적은 5유로 지폐는 곧 맞은편에 있는 여인의 손으로 넘어갔다.

“꼭 이렇게 만나서 줄 필요는 없었는데.”

돈을 받은 여인은 특유의 관능적인 웃음을 보이며 5유로를 받았다.

붉은 치파오로 몸매를 한껏 뽐낸 여인.

암살자 적설이었다.

“안녕. 다음에 건수가 있으면 또 연락해.”

적설은 볼일이 끝나자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그런데 루시가 그녀의 등에 대고 물었다.

“코드 원에게 특별한 감정이 있습니까?”

적설은 루시의 딱딱한 말투가 거슬렸지만 내색하진 않았다.

“빚이 있어.”

“어떤 빚이 있는 겁니까?”

적설은 대답 대신 루시를 빤히 보았다.

“내가 그 말까지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강요하는 건 아닙니다.”

“뭐, 좋아. 숨길 것도 없지.”

적설은 천천히 루시에게 다가가서 귓속말을 했다.

“같이 자기로 했어.”

그 말에 루시의 표정이 구겨졌다. 적설은 그 표정이 마음에 들었는지 웃으며 그 자리를 떠났다.

홀로 남은 루시는 오랫동안 표정을 구기다 전화기를 들었다.

“적설 접견 완료. 코드 원이 위험할 일은 없을 것으로 판단된다.”

코드 제로의 작전은 북천을 성도에 묶어 두는 것이었다.

-코드 원에게 시간이 필요하다.

코드 제로는 상엽이 조금이라도 더 성장한 후에 북천을 만나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북천이 운남을 지원하지 못하도록 일을 꾸몄다. 그들 나름대로도 많은 작전이 있었지만, 뜻하지 않게 최고의 기회가 찾아왔다.

코드 제로로 적설이 먼저 연락을 한 것이다.

-북천의 친동생을 죽이면 미쳐서 암살자를 찾으려고 할 거야.

이를 위해 적설이 요구한 금액은 겨우 5유로였다.

코드 제로는 적설에게 기회를 주는 한편, 세 가지의 다른 작전을 준비했다.

루시가 직접 덴마크에서 중국으로 온 이유였다.

적설이 떠난 지 5분이 지났을 때, 루시는 시간이 되었음을 인지하고 다시 전화기를 들었다.

“마지막 작전을 실행한다. 준비하라.”

그녀는 전화기를 집어넣고 사진 한 장을 꺼냈다.

2미터에 조금 모자라는 신장에 어리숙하고 축 처진 눈을 가진 털보 사내의 사진이었다.

북천의 동생 북명신.

루시는 적설에게 죽은 북명신의 사진을 한참 동안 주시했다.

“아름답진 않네.”

그 말을 하는 순간 루시의 몸이 하얀빛에 휩싸였다. 빛은 순식간에 그녀의 몸을 분해하는 듯하더니 다시 사람의 형태로 재조립되었다.

그렇게 빛이 사라졌을 때, 루시의 몸은 2미터에 육박했고 매끈하던 얼굴에 수염이 자라 있었다.

유산-도플갱어의 거울

루시는 북명신으로 변신해서 성도의 방어벽으로 다가갔다.

북천은 기다리던 보고를 받았다.

-북명신 부길드장이 서문 방어벽에서 지원 요청을 했습니다. 현재 암살자를 쫓고 있습니다.

북천은 단숨에 서문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좋은 소식보다 더욱 나쁜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부길드장과 함께 나간 자들이 모두 연락이 되지 않습니다!”

“내 동생은?”

“연락이 되지 않…….”

쾅!

북천은 화가 나서 보고를 하던 수하의 머리를 깨트려 버렸다.

“직접 찾으러 가겠다.”

그는 수하의 피가 묻은 주먹을 움켜쥐며 서문 방어벽을 넘었다.

* * *

운남 곤명은 중국 내에서도 손에 꼽힐 만큼 안전한 곳이었다.

페이롱이 전략적으로 경제 성장을 도모했고 자체 식량 생산지까지 마련하면서 3차 방어벽까지 건설했다.

체계적으로 도시의 영역을 확장한 것이다.

그런데 여러 겹의 방어벽은 하이렌에게도 기회가 되었다.

각 방어벽 사이에 안전지대가 형성되어 하이렌이 그곳에 진을 쳤기 때문이다.

남은 것은 마지막 방어벽뿐이었다. 하지만 페이롱도 사활을 걸고 막는 통에 쉽게 뚫리지가 않았다.

오랫동안 고착 상태가 된 곤명의 방어선에 변화가 생긴 것은 이른 새벽이었다.

하이렌이 주둔하는 방어벽 사이에서 의문의 폭발이 일어났다.

새벽을 깨우는 폭발은 한동안 계속되었다.

그 충격이 워낙 커서 3차 방어벽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비명과 욕설, 다급한 명령이 난무했다.

그 장면을 페이롱이 놓칠 리가 없었다.

-하이렌이 공격받고 있습니다. 지금이라면 완전히 그들을 몰아낼 수 있습니다.

페이롱이 원하던 방식은 아니지만 간절히 바라던 기회가 온 것이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습격자는 정상엽입니다.

페이롱의 상징이었던 광성을 죽인 인물이 이제는 희망이 된 것이다.

그들은 고민했다. 이미 정상엽이 하이렌을 처리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함께할 수는 없는 사이였다.

-적이 같으면 친구라고 했습니다. 이번 기회를 잡지 못하면 우리가 정상엽의 공격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하이렌이 아니라 정상엽이 곤명을 공격한다면 페이롱도 버틸 재간이 없었다.

-과거보다 미래를 선택한다.

결국 페이롱은 대대적인 공격에 나섰다.

그들의 목표는 상엽이 아니라 이미 도주를 하고 있는 하이렌이었다.

그렇게 길드장이 직접 이끄는 선발대가 상엽을 향해 달려갔다. 협상을 하기 위해서였다.

쾅!

상엽은 3차 방어벽을 완전히 무너트리며 도주하는 하이렌 길드원들에게 화염 폭풍을 날리고 있었다.

그 모습에 페이롱의 길드원들은 마른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단 한 방에 30명이 잿더미로 변했고, 단단하던 방어벽은 유리 조각이 깨지듯 일제히 무너져 내렸다.

그렇게 폭발의 소음이 사라졌을 때, 선발대의 선두에 있던 자가 앞으로 나섰다.

광성에 이어 몇 번이나 이름이 바뀐 길드장이었다.

그는 막중한 책임감을 안고 천천히 상엽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상엽과 눈이 마주쳤을 때, 정중하게 말을 시작했다.

“전 페이롱의 길드…….”

쾅!

그의 말은 끝까지 이어질 수 없었다. 상엽의 해머가 머리를 터트려 버렸기 때문이다.

머리를 잃은 그의 몸은 통나무처럼 서서히 뒤로 쓰러졌다.

쿵.

그 작은 소음이 끝날 때까지 페이롱의 길드원들은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

“지랄한다.”

그 때, 상엽이 페이롱을 비웃으며 해머를 들어 올렸다.

“하이렌보다 너희들이 먼저야.”

페이롱은 상엽에 대해서 큰 오해를 하고 있었다.

“광성 그 자식이 날 죽이러 왔을 때부터 너희들 운명도 결정된 거야. 너희들이 지금까지 살아 있는 이유는 딱 하나야.”

상엽은 악귀 같은 표정으로 그들을 보며 말했다.

“내가 좀 바빴거든.”

그 말이 끝나는 순간, 주변에서 귀곡성이 울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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