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9
운남 역문.
그곳의 시민들은 지옥을 경험하고 있었다.
광성의 페이롱이 점령했을 때에도 높은 세금으로 힘들었지만 밥을 굶을 정도는 아니었다.
비리가 만연했지만 공권력이 유지되었고 최소한의 법률은 통용되었기에 힘들지만 살아갈 수가 있었다.
하지만 광성의 사망 이후, 운남도 갓코인 유저들끼리의 전쟁에 휩싸였고 결국 하이렌이 점령하기에 이르렀다.
공권력이 철수하면서 시민들의 마지막 방패가 사라지자 운남은 무법 지대가 되고 말았다.
하이렌은 악마처럼 주민들을 괴롭혔다.
살인은 일상이었고 여성들은 강간이 두려워 외부로 나갈 수조차 없었다.
그렇다고 집 안이 안전한 것도 아니었다.
-페이롱에 충성한 개들.
하이렌은 노골적으로 주민들을 이렇게 불렀다.
그저 페이롱의 막강한 힘에 대응하지 못한 것이 하이렌에겐 동조한 것으로 보인 것이다.
사실 이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그들은 주민들을 내버려 두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도 역문에는 시민들을 공포로 몰아넣는 처형식이 진행되고 있었다.
역문의 시청 앞 광장에 2미터 높이의 제단이 세워지고 몸이 묶인 20명의 남녀가 무릎을 꿇은 채로 눈이 가려져 있었다.
광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이들 스스로 나온 이들은 없었다.
그저 명령에 따라 원치 않는 잔인한 장면을 보아야 하는 처지였다.
“이들은 우리가 정한 세법을 어긴 자들이다! 거짓으로 우리를 기만했고! 우리가 배려를 해 줬음에도 파렴치하게 재산을 숨겨 왔다! 이에 우리는 다른 시민들의 평등한 권리를 위해 이들을 처형한다!”
말은 그럴싸했다. 하지만 진실은 없었다.
처형을 당하는 누구도 숨길 만큼의 재산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하이렌이 점령한 이후로 그런 일을 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그저 공포 정치를 위해 희생자가 필요했고, 운이 없는 20명이 걸린 것이다.
수천 명이 광장에 있었지만 누구 하나 자신의 의견을 말할 수도 없었다.
“처형식을 거행하라!”
명령이 떨어졌다.
제단 위에서 신처럼 서 있는 자는 하이렌 일탄 길드의 길드장이었다.
그가 이곳 역문에서 무슨 짓을 했는지는 시민들 모두가 알고 있었다.
눈이 마주쳤다는 이유로 그 자리에서 사람을 죽이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 세 명의 여인을 차례로 강간하기도 했다. 강간당한 여자가 울었다는 이유로 머리를 깨트려 죽였으며, 엄마를 잃은 아이의 울음도 칼로 응징했다.
악마.
처형을 당할 이는 20명의 일반인이 아니라 사형을 집행하는 길드장이었다.
두둥!
북소리가 울리고 긴 칼을 든 스무 명의 사내들이 등장했다.
그들은 하나의 조종기로 움직이는 장난감 병정처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똑같은 동작으로 칼을 뽑았다.
많은 사람들이 그 동작에 고개를 돌렸다. 곧 일어날 참상을 차마 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모든 이들이 절망의 증거를 눈앞에 뒀던 시점이었다.
처음에는 바람이 분다고 생각했다.
그 바람은 칼날처럼 사형장을 스치고 지나갔다.
잠시 모든 이들의 사고가 멈췄다. 그렇게 찰나의 시간이 지났을 때, 스무 명의 목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쿵. 쿵.
떨어진 머리가 나무로 된 바닥을 때리며 공허한 울림을 만들었다.
그리고 목을 잃은 몸이 피분수를 쏟아 내며 쓰러졌다.
그제야 사람들은 변화를 알아차렸다.
목이 떨어진 이들은 칼을 들고 있던 하이렌의 사내들이었기 때문이다.
“스, 습격이다!”
그나마 정신을 차린 누군가가 다급히 외쳤다.
하지만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다시 바람이 불었다. 이번에는 몇몇 사람들이 바람의 정체를 보았다.
푸른빛의 창이 가시처럼 돋은 사내.
상엽이었다.
상엽은 사형장을 크게 돌며 길드원들을 단번에 도륙하고 유일하게 살아남은 사내 앞에서 이동을 멈췄다.
“대장 개새끼.”
유일하게 살아남은 이는 일탄 길드의 길드장이었다.
상엽은 그의 목을 잡으며 사형장의 중앙으로 갔다.
“어때? 사람들은 전부 네가 죽길 바라는 거 같은데.”
상엽은 손을 비틀어 그에게 좌중들의 눈을 볼 수 있도록 했다.
좌중들의 눈빛에는 큰 기대감이 있었다.
‘죽어 버려.’
‘지옥에나 떨어져.’
입 밖으로 내지 않을 뿐, 그런 마음들이 가득 담긴 시선이었다.
일탄 길드장은 그 시선에 처음으로 좌중의 공포를 느꼈다.
“넌 사형이야.”
상엽이 해머를 꺼내 들었다.
파이어스의 망치는 본래부터 집행자의 망치였다. 그 망치가 처음으로 본래의 의도대로 쓰였다.
쾅!
일탄 길드장의 머리가 그대로 터져 버렸다.
길드장이 처형당한 이후, 좌중들 사이에 묘한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그것은 또 다른 공포였다.
그들은 힘을 가진 자의 횡포에 익숙했다.
쓰레기를 치운 청소부가 또 다른 쓰레기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 것이다.
상엽은 그들의 시선을 받으며 잠시 시간을 두었다. 그때, 누군가 상엽을 알아보았다.
“정상엽!”
어디든 상엽을 알아보는 사람은 있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그 이름이 가진 이미지는 다른 갓코인 유저와 달랐다.
-시민을 위해 희생하는 상위 랭커.
상엽이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아도 사람들 사이에 희망의 눈빛이 번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전염되듯 사람들의 표정에 기대감이 떠올랐을 때, 상엽이 입을 열었다.
“일단 뭐 좀 드세요.”
상엽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사형장으로 거대 트럭 서른 대가 도착했다.
“일단은 해 드릴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어요. 여러분들이 할 일은 하나예요. 제가 돌아올 때까지 버티세요. 그건 여러분들의 몫이에요.”
트럭의 문이 열렸다. 그러자 엄청난 양의 식량이 쏟아져 내렸다.
모든 식량의 포장지에는 선명하게 ‘코드 제로’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지금은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는 이름이지만 결국 상엽의 행보가 계속되면 그 이름에 가치가 매겨질 것이다.
“제가 돌아오길 기대하세요.”
상엽은 식량이 나눠지는 동안, 30명이 남긴 전리품을 챙기고 그 도시를 떠났다.
-운남 역문에 거점 확보. 아직 안정적인 상태는 아님.
코드 제로는 이렇게 평가했다.
상엽이 전쟁을 선언한 이후, 코드 제로에서는 거점 확보를 최우선으로 삼았다.
-코드 원의 결정이 필요합니다.
코드 제로가 역문에 경제 지원을 하는 것은 미래를 위한 포석이었다.
그런데 상엽의 결정에 따라 경제 지원이 중단될 수도 있었다.
-싸움에만 참여해 코인만 노릴 것인지, 중국을 장악할 것인지 결정해야 합니다.
코드 제로는 선택권을 상엽에게 넘겼다.
-중국 전역을 장악하려면 거점 확보와 확장이 필수입니다.
전쟁 참여의 목적이 뚜렷해야 한다는 것이다.
‘코인은 확실히 많이 버는데.’
30명을 죽이고 습득한 코인의 가치는 200만에 달했다. 유산 조각을 제외한 수치였다.
“중국이라…….”
상엽은 바이크를 타고 다음 지역으로 이동하면서 이 부분에 대해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렇게 생각이 미처 정리되지 않았을 때, 다음 목표에 도착했다.
그곳은 하이렌 일탄 길드의 본부였다. 역문에서 시간을 끌지 않은 것도 그들의 도주를 막기 위해서였다.
그럼에도 소식을 들은 이들 중의 반이나 본부를 떠난 상태였다.
“일단 초인종부터 누르고.”
쾅!
상엽은 스트라이크 한 방으로 3층 건물을 무너트려 버렸다. 그리고 곧장 친위대를 소환했다.
“다섯 놈만 남겨.”
그의 말대로 다섯 명을 제외한 모든 이가 쓰러지는 데에는 채 5분이 걸리지 않았다.
남은 다섯 명은 추종자에 의해 기억을 뽑아냈고, 이를 토대로 다시 추격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도주한 이들이 도착한 곳은 연합의 또 다른 길드가 있는 옥계였다.
“그렇게 모여 주면 고맙지.”
상엽은 이미 하이렌 길드를 적으로 삼았다. 그리고 조금도 용서할 생각이 없었다.
“살생부를 친구한테 넘기다니. 대단한 의리야.”
상엽은 곧장 옥계로 달려가려 했지만 할 일이 있었다.
‘화이트 코인이 생겨 버렸어.’
블랙 유저를 잡으면서 화이트 코인이 생긴 것이다. 그렇다고 당장 강화할 수 있는 수치가 되진 않았다.
‘아깝지만 할 수 없지.’
그는 어쩔 수 없이 레나를 소환해서 소모품을 구입했다.
옥계는 긴장감에 휩싸였다.
천 명의 갓코인 유저가 무기를 들었고, 수백 개의 함정을 팠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방어벽 위에 민간인 천 명을 세워 두었다.
“허튼짓을 하면 천 명을 죽이겠다.”
치졸한 협박이었다. 상엽은 몸이 묶인 천 명이 아슬아슬하게 난간 위에 서 있는 것을 보고 이동을 멈췄다.
“어떻게 저렇게까지 할 수가 있는 거지?”
상엽이 이동을 멈추자 작전 성공을 확신한 라오닝 길드의 길드장이 난간 위에 나타났다.
“저항 없이 투항하면 이들을 살려 주겠다.”
상엽은 대답 없이 가만히 있기만 했다. 그러자 100여 명의 무리들이 방어벽 밖으로 나왔다.
그들은 하나같이 창을 들고 있었다. 그런데 창끝에는 멀리서도 냄새가 느껴질 만큼 강한 맹독이 묻어 있었다.
그런 자들이 50미터 앞으로 접근했다.
그때까지도 상엽은 움직이지 않았다.
“투항하라!”
창 부대의 선두에 있던 사내가 외쳤다.
“무기를 버리고 무릎을 꿇어라!”
상엽은 난간 위에 있는 사람들을 주시할 뿐, 그의 말에 따르지 않았다.
그때, 난간 위에 있던 50명의 일반인이 힘에 떠밀려 떨어졌다.
쿵. 쿵. 쿵.
그들이 일으킨 진동은 크지 않았다. 작은 먼지가 피어오를 뿐이었다. 그럼에도 일반인의 사망은 확실했다.
그걸로 상엽에게 압박을 주는 것이다.
“투항하라!”
사내가 다시 외쳤다. 그러자 상엽이 처음으로 그를 보았다.
“미친 새끼들.”
푹!
상엽의 몸에서 뻗어 나온 망자의 손길이 그의 목을 관통했다.
한 사내를 처리한 상엽이 높이 뛰어올랐다. 그리고 몸을 뒤집어 바닥을 향해 해머를 휘둘렀다.
화르르!
불꽃이 응축된 해머가 임의로 만든 고스트 실드를 때리며 지상을 향해 부채꼴 모양의 화염 충격파를 만들었다.
처음부터 정예가 출동한 것이 아닌 탓에 충격파는 단숨에 모두를 휩쓸어 버렸다.
단 한 방으로 창 부대는 전멸했고 상엽은 검게 물든 바닥으로 내려섰다.
그러자 난간 위에 있던 사람들이 추가로 바닥으로 떨어졌다.
상엽은 천천히 방어벽으로 걸어갈 뿐, 그들을 살리려 노력하지 않았다.
그러다 한 여인이 눈에 띄었다.
아이를 안고 있는 임산부였다. 상엽은 이를 보고 걸음을 멈췄다.
“한 발만 더 다가오면 전부 죽이겠다!”
라오닝 길드의 길드장 방죽장은 핏대를 세우며 소리쳤다.
툭.
그런데 상엽이 한 발을 움직였다.
화가 난 방죽장은 임산부를 직접 바닥으로 던져 버렸다.
힘없는 여인은 안고 있는 아이와 함께 그 자리에서 숨을 거뒀다.
상엽은 이를 보고도 다시 걸었다. 결국 천 명의 죄 없는 사람들이 그렇게 죽었다.
“너로 인해서 이들이 모두 죽은 것이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이 죽는다!”
방죽장의 손짓에 난간 위에 다시 천 명이 올려졌다.
한 번으로 끝나지 않은 것이다.
이에 상엽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누가 누굴 죽였다는 거야? 난 아무 짓도 안 했는데.”
“이놈! 네놈이 살릴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방죽장이 외치자 상엽의 입에 비웃음이 떠올랐다.
“지랄한다. 살리는 건 나보다 네가 더 쉬웠잖아.”
상엽은 방죽장의 비논리를 단박에 무시했다.
“협박을 하려면 똑똑하게 했어야지. 지금 난간 위에 있는 사람은 내 사람이 아니라 널 존경하고 따랐어야 하는 사람이야.”
상엽은 해머를 움켜쥐었다.
“지금부터 확실히 교육해 줄게.”
그의 몸이 단숨에 방어벽 위로 튀어 올랐다.
옥계에 지옥도가 펼쳐졌다.
상관없다는 식으로 말했지만 상엽은 분명히 분노했다. 그의 화는 상대에게 감당할 수 없는 재앙이었다.
멀쩡한 시체가 단 하나도 없었다. 파괴된 시체는 빛으로 흩어져 흔적이 사라졌지만 그 잔재는 분명히 남았다.
피가 바닥을 적셨고 부서지고 파괴된 흔적은 전쟁을 방불케 했다.
민간인으로 협박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그들은 맞서 싸우거나 도주할 수밖에 없었다.
“마, 막아라!”
방죽장은 단 한 번도 상엽을 향해 손을 쓰지 않았다. 그는 등을 돌리며 달아나면서도 수하들을 독촉했다.
하지만 상엽은 집요하게 그를 쫓았다. 그래도 길드장이라고 길드원들이 상엽의 앞을 막았다.
쾅!
벽이 무너지듯이 수하들이 모두 핏물로 흩어졌다. 그리고 방죽장의 앞에 엄청난 크기의 돌벽이 솟아올랐다.
워낙 두꺼운 벽이라 방죽장은 온 힘을 다했지만 완전히 무너트릴 수가 없었다.
그렇게 이동이 멈췄을 때, 누군가 그의 뒷덜미를 잡았다.
“내가 고민이 참 많아. 너 같은 개새끼에겐 어떤 죽음이 어울릴까?”
사신의 속삭임을 들은 방죽장은 공포에 몸을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