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8
그들은 정상엽을 죽여야 한다고 판단했다.
-정상엽이 오기 전에 조각을 회수하라.
이런 명령을 받았기 때문이다.
북천은 정상엽을 공개했고, 결국 그들은 정상엽이 오기 전에 일을 마무리하지 못했다.
‘어차피 죽는다.’
그들은 알고 있었다. 상엽이 나타난 이상, 조각은 자신들의 것이 아니었다.
이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그래서 상엽의 손에 살아났음에도 기습을 택했다.
쾅! 쾅!
하지만 상대가 되지 않았다. 세 명이 상엽의 해머에 머리가 터져 버렸다.
남은 인원은 겨우 두 명.
그런데 상엽을 쫓아온 외부 감시자에 이어 각 층에서 대기 중이던 인원이 소란을 인지하고 4층으로 내려왔다.
희생자만 늘 뿐이었다.
결국 상엽의 해머 앞에서 외부 감시자와 전투에서 살아남은 한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처리가 되었다.
“어이, 꼬마.”
외부 감시자는 10대 후반으로 보이는 소년이었다. 쌍오와 비슷한 나이로 보였다.
“북천이라는 새끼한테 가서 오늘 있었던 일을 그대로 말해.”
외부 감시자는 상엽을 곧바로 따라온 터라 모든 일을 지켜보았다.
“북천 그 새끼한테 부하들이 얼마나 개새끼인지 분명히 전하라고. 알아들었어?”
상엽은 화가 난 상태였다. 그 모습에 겁을 먹은 소년은 살 수 있다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소년이 지옥 같은 4층을 빠져나갔다.
이제 남은 인원은 한 명이었다.
“사, 살려 주세요.”
홀로 남은 이는 여인이었다. 그녀는 곧바로 무릎을 꿇고 양손을 모았다.
“시키는 건 뭐든지 할게요. 목숨만 살려 주세요.”
여인은 생명을 구걸했다.
생명이란 그만큼의 가치가 있었다.
“뭐든지?”
“네! 뭐든지 할게요! 살려만 주세요!”
상엽은 그녀의 부탁에 웃으며 반문했다.
“너 같으면 살려 주겠어?”
“네? 자, 잘못했어요. 정말 잘못했어요!”
“잘못한 거 알면 억울하지는 않겠네. 유령아, 처리해.”
빠각!
상엽은 그녀의 머리를 발로 후려 찼다. 여인이 정신을 잃었고 그 틈에 추종자가 여인의 기억을 흡수했다.
“꽤 좋은 정보가 있는데?”
여인의 기억에는 북천과의 잠자리가 있었다.
북천이 자신의 수하를 건드린 것이다. 그런데 잠자리를 했음에도 그녀에게 주어진 혜택은 없었다.
북천에게 수하들은 그런 존재였다.
-신을 모시는 순간을 영광으로 기억해라.
“미친 새끼였네.”
상엽은 여인의 기억에 있는 북천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주인님, 아래층에 조각이 있습니다.
“알았어.”
상엽은 모든 이를 처리하고 홀로 5층으로 내려갔다.
5층은 다른 층과 달리 좁은 공간의 중앙에 대리석 관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관의 복잡한 무늬 중의 하나가 밝게 빛을 뿌렸다.
‘에레나의 생명초 조각.’
상엽은 이를 바로 알아보고 무늬로 손을 뻗었다.
그릉!
조각이 손에 닿는 순간, 갑자기 멀쩡하던 관의 뚜껑이 옆으로 밀렸다.
그러더니 그 안에 있던 시체가 벌떡 일어나서 상엽을 향해 손을 뻗었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지만 상엽은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다시 튀어 나가며 일어선 시체의 머리에 해머를 꽂았다.
쾅!
‘뭐야?’
느낌이 이상했다.
마치 잘 만들어진 조립식 장난감을 때린 기분이었다.
해머가 닿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시체의 몸이 수천 개의 조각으로 흩어졌다.
그리고 이 조각은 쥐를 닮은 손가락 크기의 벌레로 변하더니 대리석의 균열 속으로 신속히 사라졌다.
“뭐지?”
상엽은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더 이상의 위험이 없는 것을 보고는 조각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그렇게 상엽이 떠난 자리.
찍. 찍.
대리석 균열에서 작은 쥐가 빠져나와 상엽이 떠난 자리를 보았다.
“코드 원!”
상엽이 왕릉을 빠져나오자 제일 먼저 쌍오가 달려왔다.
“조각은요?”
“획득했어.”
상엽은 자신의 손바닥을 보여 주었다. 화살표가 사라진 손바닥에는 유물 조각이 올려져 있었다.
의뢰 완료 보상이 자동으로 주어진 것이다.
이것으로 생명초 조각과 에레나의 신전 조각을 동시에 획득하게 되었다.
“자, 이제 돌아가자.”
상엽은 쌍오와 함께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들이 대리를 떠나 곤명 남쪽에 있는 위시를 지날 때였다.
도시 내부가 아니라 아직 영업을 하는 휴게소가 있어서 편하게 기름을 채울 수가 있었다.
주변에 다른 상점은 없는 터라 마음 편히 음료를 마시며 기름이 채워지길 기다리고 있었다.
-주인님, 누군가 접근하고 있습니다.
추종자의 레이더에 200명에 이르는 갓코인 유저가 잡혔다.
‘이제 움직인 건가?’
북천이 어떤 선택을 할지 기다리고 있었다.
“역시 개새끼였네. 아우. 내가 쓰레기들 때문에 욕이 늘어.”
“코드 원. 무슨 말이에요?”
“쌍오…….”
설명을 하려던 상엽은 기름을 넣는 주유구에서 작은 불꽃이 발생하는 것을 보았다.
“움직이지 마.”
상엽은 급히 쌍오를 끌어안고 주변으로 실드와 불꽃을 동시에 만들었다.
콰콰쾅!
주유소가 폭발했다.
엄청난 화염이 주변을 집어삼켰고 땅 위에 존재하던 모든 것이 파편이 되어 사방으로 터져 나갔다.
상엽은 그 폭발의 중간에서 쌍오를 안고 있었다. 고스트 실드는 깨졌지만 파편을 상엽이 막아 주고 샐러맨더의 신전에 다녀온 덕분에 화염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상엽은 빠르게 화염 밖으로 빠져나오며 쌍오의 상태를 살폈다.
“후아.”
다행히 쌍오는 놀란 표정이었지만 숨을 크게 내쉬며 살아 있음을 알렸다.
“최대한 멀리 떨어져.”
“네!”
크게 놀란 상태지만 쌍오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알고 있었다.
‘방해하면 안 돼!’
이를 위해 쌍오는 상엽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최선을 다해 뛰었다.
그 순간, 쌍오와 상엽을 향해 수십 개의 스킬들이 날아왔다.
다행히 쌍오는 자신의 말대로 도주에는 탁월한 능력이 있었고, 상엽은 대시를 통해 이를 피해 냈다.
“하이렌.”
상엽은 습격자들의 옷에 있는 마크를 알아봤다.
“미친 새끼들.”
주유소에는 십여 명의 민간인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에게 민간인의 생사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다행히 쌍오는 살았지만 민간인들은 영문도 모른 채 죽고 말았다.
“살 가치가 없는 놈들이야.”
그동안 참아 왔던 분노가 폭발했다.
상엽은 곧장 친위대를 소환하며 200명의 습격자를 향해 달려갔다.
“마, 막아라!”
선두에 있던 대장은 상엽도 익히 알고 있는 인물이었다.
반유기.
상엽에게 돌아가라며 경고를 했던 녀석이었다.
-정상엽을 처리하라.
북천의 명령이었다.
-정상엽을 잡는 자에게 운남의 지배권을 주겠다.
보상도 달콤했다.
-정상엽을 보고도 싸우지 않는 자는 내 손으로 직접 처벌하겠다.
보상만큼 처벌도 무거웠다.
결국 반유기는 도박을 하기로 했다.
그는 주유소가 폭발하면 상엽이 분명히 피해를 입을 것이고, 적어도 쌍오는 잡을 수 있다고 믿었다.
상엽이 주유소 폭발로 죽진 않겠지만 그동안의 행적으로 봤을 때, 쌍오만 잡으면 가능성이 있었다.
그렇다면 랭킹 38위를 죽일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길드의 정예 전투 요원을 모두 투입시켰다.
그리고 상엽을 죽일 특별한 맹독도 준비했다. 화살 한 방이면 생물도 마비시킬 수 있는 극독이었다.
하지만 상엽은 멀쩡했고, 쌍오는 이미 보이지도 않았다.
그 실수를 깨달았을 때, 그의 얼굴 앞에는 해머가 다가와 있었다.
쾅!
그의 머리가 핏물로 흩어졌다.
그게 시작이었다.
‘광기.’
늑대 인간으로 변한 상엽의 주변으로 푸른빛이 날카롭게 뻗으면서 상대를 유린하기 시작했다.
늑대 인간의 손톱이 인간의 몸을 세 조각으로 갈아 버렸고, 이를 피하면 망자의 손길이 집요하게 쫓아와 목을 꿰뚫었다.
상처를 입은 자들은 뒤로 물러날 틈도 없이 피를 갈망하는 늑대 인간의 먹이가 되고 말았다.
“제, 제발…….”
빌어도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그들을 더욱 절망에 빠트리는 소리가 들렸다.
“친위대.”
다시 인간으로 돌아온 상엽이 친위대를 소환해서 그들을 유린하기 시작했다.
“하, 항복하겠습니다.”
쾅!
상엽은 대답조차 해 주지 않았다.
그렇게 200명이 100명이 되자 등을 돌리는 자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도망가려는 것이다.
그러자 주변에서 귀곡성이 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도주하던 자들 앞에 유령들의 벽이 생겼다.
“아무도 못 나가.”
그 말은 100명을 향한 사형 선고였다.
그 때, 상엽을 향해 다섯 발의 화살이 날아들었다.
-주인님!
“알아.”
화르르!
상엽은 다가오는 화살을 공중에서 그대로 불태워 버렸다.
반유기가 준비했던 맹독이었다.
그 맹독이 통한다는 보장도 없지만, 실제로 상엽의 피부를 뚫을 힘도 없었다.
“진짜 강한 상대는 만나 보지도 못한 것들이.”
상엽은 싸우면서 이를 분명히 느꼈다.
그들은 광성을 피해 터전을 버렸던 이들이었다. 그리고 꼭꼭 숨어 있다가 광성이 사라진 후에야 밖으로 나왔다.
상엽 정도 되는 사람을 본 것은 북천이 전부였고, 그래서 그의 명령이 절대적이었다.
결국 그들은 상엽의 공격에 제대로 된 반응도 해 보지 못하고 허무하게 쓰러졌다.
100명이 50명이 되고, 20명이 남을 때까지 상엽의 몸에는 작은 상처 하나 없었다.
너무나 극명한 차이에 남은 20명은 무기를 버리고 무릎을 꿇었다.
싸워도 소용이 없는 상황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이었다.
희박하지만 상엽의 자비를 바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상엽은 휘두르던 해머를 멈추고 통곡의 벽 앞에서 무릎을 꿇은 20명 앞으로 다가갔다.
“살고 싶어?”
“살려 주십시오!”
“제발 부탁드립니다! 집에 한 살 된 아들이 있습니다!”
살기 위해 소리치는 이들을 상엽은 감정 없는 눈으로 내려다봤다.
그러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기 주유소에 있던 사람들 말이야. 몇 명은 불에 타서 죽었어. 그리고 쌍오도 그렇게 될 뻔했지.”
상엽의 몸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너희들도 그렇게 죽어야 공평하지.”
화르르!
상엽의 불꽃이 20명을 덮쳤다.
통곡의 벽 안에 인간의 비명이 난무했다. 상엽은 무심한 눈으로 이를 지켜보기만 했다.
그렇게 더 이상 살아남은 자가 없을 때, 통곡의 벽도 사라졌다.
“코드 원!”
상엽이 불쾌한 마음에 아직도 불타고 있는 주유소를 보고 있을 때, 멀리 달아났던 쌍오가 돌아왔다.
“괜찮아요?”
“네가 잘 도망간 덕분이지.”
“와. 다행이다.”
쌍오는 잃어버린 친구를 찾아낸 것처럼 길게 한숨을 쉬었다. 그 모습에 상엽은 불쾌한 기분을 조금은 벗어날 수 있었다.
“그 녀석들이 왜 이런 거예요? 북천이 시킨 건가?”
“아마도.”
“그럼 빨리 여길 벗어나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건 내 방식이 아니야.”
“그럼 어떻게 할 건데요?”
상엽은 대답 대신 아공간에 보관해 놓은 전화기를 꺼냈다.
코드 제로에서 받은 전화기였다.
그가 전화를 걸자 얼마 되지 않아 비서 루시의 목소리가 들렸다.
인사도 생략한 상엽은 루시에게 짧은 통보를 보냈다.
“중국 전쟁에 참여할 거야. 준비해.”
그 말을 들은 루시는 말이 없었고, 쌍오의 동공은 터질 듯이 커졌다.
코드 제로는 난리가 났다.
첫 번째 임무에서 상엽이 폭탄선언을 해 버린 것이다.
지금까지 사냥터에서의 지원을 준비하던 그들은 폭격을 앞둔 군부대처럼 비상사태에 들어갔다.
그리고 상엽의 비서 루시는 곧바로 레노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직접 집무실을 찾아간 루시는 상엽이 중국에서 벌인 일과 전쟁 참여 소식을 빠르게 전달했다.
마지막에 전쟁 참여 선언을 들은 레노는 놀라서 한동안 말이 없었다.
“정말 그렇게 말했어요?”
“네. 부회장님.”
그런데 레노의 얼굴에는 점차 웃음이 떠올렸다.
“역시 매력적인 남자예요. 그렇죠?”
“너무 제멋대로라 걱정이 됩니다. 아직 우리는 준비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요?”
“그를 말려야 합니다. 그 일을 할 수 있는 분은 부회장님뿐입니다.”
레노는 의자에 몸을 묻으며 루시를 주시했다.
“루시. 제가 왜 그 일을 할 수 있다고 믿나요?”
“그건…….”
“전 그의 모든 결정을 존중한다고 약속했어요.”
루시는 할 말이 없었다. 이에 레노는 다시 몸을 세우며 조금 전과 달리 힘이 들어간 목소리로 말했다.
“루시, 잊지 말아요. 당신은 제 비서가 아니라 코드 원의 비서예요.”
루시는 묵묵히 듣기만 했다.
“코드 원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일을 그만둬도 좋아요. 하지만 이런 식으로 그를 비난하진 마세요. 무슨 일이 있다고 저한테 달려오지도 마시고요.”
“죄송합니다.”
“코드 원의 결정을 비난해도 좋아요. 그가 하려는 일을 막아도 좋아요. 하지만 그 이유는 분명히 코드 원을 위해서라야 합니다. 우리가 준비가 될 됐으니 기다리라는 건 코드 원을 위해서가 아니라 루시 당신의 자존심을 위해서니까요.”
말이 계속될수록 그녀의 얼굴이 붉게 상기되었다. 상엽 앞에서는 절대 보이지 않던 표정이었다.
“전 제 눈을 믿어요. 그는 신이 될 남자입니다. 루시가 제 역할을 못해 준다면 전 코드 원을 위해서 루시를 버리겠어요.”
레노의 말투는 부드러웠지만 그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