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5
유럽 덴마크 코펜하겐.
북유럽의 아름다운 국가 덴마크의 수도인 코펜하겐은 서울과 닮은 듯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복잡한 도로와 높이 솟은 빌딩은 서울과 다를 바가 없지만 유럽 특유의 건축 양식이 그대로 남아 있어서 특유의 풍경을 가지고 있었다.
덴마크의 국토는 한국에 비해 조금 작았고 소득 역시 마찬가지였다. 예전에는 고도의 복지 국가로 명성이 높았지만 변종 출현 이후에는 복지 예산을 줄이고 국방 예산이 높아진 상태였다.
이는 대부분의 복지 국가가 겪은 변화이기도 했다.
어쨌든 덴마크는 지리적 이점과 유럽 특성상 주변 국가와의 협력이 원활히 되면서 위기를 극복했고, 지금은 훌륭한 경제 안정을 이루어 냈다.
특히 본래부터 농업과 수산업이 발달한 덕분에 식량이 풍부했고 이는 엄청난 국가 경쟁력이 되었다.
“예쁘네.”
코펜하겐에 도착한 상엽이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처음 뱉은 말이었다.
상엽이 타고 있는 차는 최고급 리무진이었다.
차량 내부에 냉장고와 와인이 준비되어 있었고, 외부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차량의 흔들림도 거의 없어서 창밖을 보지 않으면 움직인다는 사실을 잊을 정도였다.
‘이래서 비싼 차를 타는구나.’
상엽이 한창 코펜하겐의 도시 풍경을 보고 있을 때, 맞은편에 앉은 사내가 말을 건넸다.
“선물입니다.”
함께 있는 이는 레노였다.
그는 작은 상자 하나를 상엽에게 내밀었다. 무심코 상자를 받은 상엽의 눈에 의외라는 감정이 떠올랐다.
“장난감이잖아.”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조립식 장난감이었다.
최근에는 그 이름을 붙인 놀이동산까지 건설했고, 다양한 상품으로 파생되고 있었다.
“덴마크의 자랑입니다.”
덴마크가 고향인 레노는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이게 덴마크 거였구나.”
상엽은 거부하지 않고 선물을 받았다.
“곧 도착합니다.”
그들의 차는 도시 중앙으로 가지 않고 외곽으로 이동했다.
덴마크 코펜하겐의 방어벽은 원형이 아니라 바다를 끼고 양쪽을 막아 놓은 형태였다.
때문에 방어벽은 긴 직선으로 뻗어 있었다. 그리고 방어벽의 근처는 특수 지역으로 설정해 일반인이 접근할 수 없도록 했다.
특수 지역의 절반은 군대가 주둔 중이었고, 나머지 절반은 후원을 하는 기업이 사용했다.
이는 유지비를 충당하기 위한 전략이라 누구도 이를 비난하지는 않았다.
그런 기업들 중에서도 테리아 그룹은 코펜하겐 특수 지역의 가장 많은 부지를 이용하고 있었다.
“여기입니다.”
리무진은 왕관을 단순화시킨 테리아 그룹의 마크가 크게 걸려 있는 철책 앞에 섰다.
리무진을 알아본 경비가 철책을 열었고 그들은 드디어 특수 지역으로 들어섰다.
“여기가 코드 제로의 사령부입니다. 인원 선발이 진행 중이며, 현재 50퍼센트가량이 근무를 시작했습니다.”
코드 제로.
이는 상엽을 위해 구성한 팀의 이름이었다.
철책을 지나자 높게 자란 나무들이 아름다운 정원을 이루고 있었다.
사령부는 공원 같은 풍경의 정중앙에 있었고 나무의 높이를 넘지 않는 1층 건물로 되어 있었다.
“지하 2층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지상 1층은 그냥 로비일 뿐입니다.”
드디어 차가 멈춰 섰고 상엽은 의외로 아담한 로비로 들어섰다.
안내원 한 명이 허리까지 오는 단상 뒤에서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어서 오십시오.”
20대 중반 여성은 과하지 않게 애교 있는 목소리로 상엽을 맞이했다.
단상의 양쪽으로 두 개의 복도가 있었고 지하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하지만 복도로 들어서기 위해서는 신분증명이 필수였다.
“상엽 씨는 이미 등록이 되어 있습니다.”
상엽이 다가가자 별다른 절차 없이 유리문이 열렸다.
복도의 엘리베이터를 탄 그들은 지하 2층으로 내려갔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고 짧은 복도를 지나자 갑자기 시야가 밝아지며 넓은 공간이 나타났다.
“우와…….”
상엽은 감탄을 참을 수가 없었다.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은 영화관에서나 볼 법한 거대한 스크린이었다.
그리고 스크린 앞으로 100개의 책상이 반원형으로 펼쳐져 있었고, 이미 일을 시작한 이들이 각자의 책상 앞에서 상엽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모니터만 500개는 넘겠는데.’
대형 스크린을 빼고서라도 각 벽면에 정리가 된 자료들이 올라오는 모니터가 있었다.
한 명도 빠짐없이 헤드폰을 착용하고 있는 직원들은 모두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라 불리는 자들이었고, 이에 어울리는 최고급 장비를 지급받은 상태였다.
그들의 표정에 나타난 자신감만 봐도 실력을 어느 정도는 가늠할 수 있었다.
“이 사람들이 전부 날 위해서 일한다고?”
“그렇습니다.”
상엽은 왠지 든든한 마음이 들었다.
“환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는 인사를 하는 직원들에게 다가가서 개개인과 모두 인사를 나눴다.
상엽은 그들의 친절함과 당당함이 마음에 들었다. 그들 중에는 꽤 친근하게 접근해서 얼른 사진을 찍는 사람도 있었다.
상엽은 그들의 요구를 모두 받아 주며 긴 인사를 마쳤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들을 향해 말했다.
“잘 부탁드립니다. 여러분만 믿고 사고 많이 칠게요.”
그의 짧은 인사가 마음에 들었는지 코드 제로의 직원들은 박수를 쳤다.
“1층은 직원들 숙소와 휴게실입니다.”
상엽은 1층을 간단히 둘러보는 걸로 공식 일정을 끝냈다.
“상엽 씨의 개인 공간은 외부에 있습니다.”
사령부에도 상엽의 집이 마련되어 있었다.
사령부를 정면으로 볼 수 있는 작은 유럽풍 주택이었다.
상엽이 쉴 수 있는 모든 것이 구비되어 있었고, 특별한 사람도 기다리고 있었다.
“상식이 형.”
“먼 길 오느라 고생하셨습니다.”
“형도 여기서 근무하는 거야?”
“전 상엽 씨의 지원 팀입니다. 오늘은 인사를 하러 왔습니다.”
오상식이 근무하는 곳은 사령부가 아니었다. 다만 레노의 배려로 잠시 시간을 낼 수 있었다.
그리고 오상식 옆에 또 한 명의 인물이 있었다.
“루시. 한국 이름은 강예은. 상엽 씨의 비서입니다.”
루시는 반듯한 느낌의 검은 정장을 입고 있었다. 갸름한 얼굴에 안경을 쓴 그녀는 지적이고 도도한 이미지였다.
이로 인해 실제 나이는 26살이지만 20대 후반으로 보이기도 했다.
“코드 원을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말투는 딱딱했다.
“코드 원?”
“앞으로 모든 이가 상엽 씨를 그렇게 부를 것입니다.”
“알았어.”
“전 이제 남은 일을 하러 가겠습니다. 필요한 건 루시가 모두 알려 드릴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결정은 코드 원이 직접 하게 됩니다. 전 회사의 이익이나 위기에 영향이 없다면 관여하지 않을 것입니다.”
상엽은 떠나려는 레노를 향해 진심을 담아 인사를 건넸다.
“고마워.”
“좋은 인연이 되리라 확신합니다.”
“날 믿어. 그렇게 될 거야. 날 도와주는 사람을 실망시킨 적이 없거든.”
레노는 그 말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웃으며 떠날 수 있었다.
“저도 가 보겠습니다.”
오상식도 떠나고 상엽의 집에는 루시만 남았다.
“코드 원께서 보셔야 할 자료입니다.”
루시는 둘만 남자 상엽에게 다가오며 태블릿 PC를 내밀었다.
“이 안에 우리 팀의 모든 인사 기록과 기밀이 있습니다. 코드 원과 저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루시에게는 많은 권한이 있었다. 상엽은 이 부분을 문제 삼지 않았다.
“내가 봐야 할 자료가 그거야?”
“아닙니다.”
루시는 상엽을 소파로 안내했다. 그리고 그 곁에 앉아 태블릿 PC를 직접 조작해 주었다.
“코드 원이 결정할 수 있는 성장 방안입니다.”
두 가지 선택지가 있으며 그에 대한 분석 자료였다.
화면이 커지며 깔끔하게 정리된 자료가 나타났다.
“역시 사냥이 먼저네.”
상엽이 지금까지 성장해 온 기본이었다. 이를 분석한 코드 제로는 현존하는 대부분의 사냥터 정보를 모아서 가장 효율이 좋은 지역을 세 가지로 압축했다.
1순위-중국 서쪽 히말라야 지역
2순위-나이지리아 남부 사막 지역
3순위-러시아 북부 설원 지역
“전부 2급 위험 지역이네.”
“가장 효율이 좋다고 판단되는 곳입니다. 정면 공격을 선호하는 변종들이 많고 은신할 곳이 적습니다.”
상엽의 전투 패턴까지 고려해 가장 빨리 코인을 모을 수 있는 지역이었다.
“결정을 하시면 필요한 물품들을 바로 준비할 것입니다.”
자료에는 각 사냥터의 확인된 정보들이 기록되어 있었다. 변종 하나하나의 영상은 물론 위험성과 코인의 수치도 알 수 있었다.
이것만 하더라도 상엽에겐 엄청난 정보였다.
“다른 선택지도 있습니다만 추천하지는 않습니다.”
두 가지 선택지 중의 하나는 사냥이었고 다른 하나가 남았다.
“중국 전쟁 참여?”
“현재 중국에서 벌어진 전쟁으로 인해 코인의 이동이 활발해지고 있습니다. 아직은 큰 충돌이 없지만 서로 세력을 충분히 갖춘 상태라 싸움을 피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긴 놈이 다 가져간다?”
“이긴 쪽은 엄청난 성장을 할 것입니다.”
이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중국 전쟁이 언젠가는 끝날 테고, 마지막에 살아남은 자는 최고가 될 것이다.
“그런데 왜 추천하지 않는다는 거야?”
“위험성이 너무 큽니다. 그리고 성공할 확률이 많지 않습니다.”
루시는 부정적인 말을 했지만 자료에는 상엽이 선택했을 경우, 어떤 방법이 있는지까지 기록되어 있었다.
아직 어느 세력에도 속하지 않은 길드 중에 꽤 실력 있는 집단의 목록이 있었고, 접촉 가능성에 대해서도 평가를 해 놓았다.
이런 식으로 작은 집단으로 시작해 큰 싸움에 끼어들지 않고 세력을 모아서 성장해 가는 방식이었다.
“이건 내 스타일이 아니야.”
집단을 운영하는 것에 대해서 상엽은 관심이 없었다.
코드 제로를 허락한 것도 여러 집단이 아니라 혼자서 움직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냥터는 생각을 좀 해 볼게.”
상엽은 그 정도로 결론을 내리고 다음 자료를 보았다.
“현재 상위 랭커들의 자료입니다.”
경쟁자들의 신상이었다.
“시크릿 유물에 대해서도 알아?”
정보를 숨겨 주는 모든 유산들을 통틀어서 일컫는 말이었다.
“알고 있습니다. 다만 상위 랭커 이상의 실력자 중에 그런 자가 있는지는 파악되지 않았습니다.”
상엽은 고개를 끄덕이며 경쟁자들의 정보를 보았다.
50위권 안에 블랙 유저가 23명, 화이트 유저가 27명이었다.
상엽은 일단 그들의 정보를 한 번 읽어 두는 것으로 정보 확인을 마무리했다.
라이벌들에 대한 반응이 너무 시큰둥했는지 루시가 상엽에게 물었다.
“정보가 마음에 안 드십니까?”
“아니. 몰랐던 부분이 많아서 좋아. 그런데 상대에 대한 정보는 적당히 보는 게 좋아.”
“무슨 뜻인지…….”
“유저에 대한 정보는 언제나 틀리게 마련이거든.”
갓코인 유저는 끊임없이 성장한다. 정보 수집이 이를 따라갈 수는 없었다.
정보만 믿다가 상엽에게 당한 자들이 부지기수였다. 그래서 상엽은 전체적인 틀만 외워 두는 것으로 끝냈다.
“차라리 직접 부딪쳐 보고 바로 판단하는 게 좋아.”
“하지만 안전을 위해서라도…….”
정보란 사람에게 안정감을 준다. 이것이 때로는 자신감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상엽은 그런 부분에 관심이 없었다.
“안전하려면 이 짓은 그만둬야지.”
상엽은 태블릿 PC를 내려 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추천 사냥터 세 곳 중에 제일 가까운 곳이 어디야?”
“러시아입니다.”
“준비해 줄래?”
“그냥 가까워서 가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왜? 문제 있어?”
“아닙니다.”
루시는 인사를 하고 상엽의 방을 떠났다.
홀로 남은 상엽은 테이블 위에 있는 태블릿 PC를 주시했다.
“500명이라.”
그들이 상엽을 위해 준비한 것들이다.
“기분이 묘하네.”
약간의 부담감과 든든한 마음이 동시에 생겼다. 그런데 그가 감상에 젖을 틈도 없이 방을 나섰던 루시가 다급히 다시 들어왔다.
“무슨 일이야?”
루시의 표정은 변화가 없었지만 말투와 행동에서 급한 보고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최상급 그레이 상점에 특수 의뢰가 떴습니다.”
“특수 의뢰?”
의뢰는 상엽과 거리가 멀었다.
여전히 많은 유저들이 의뢰를 주요 성장 방식으로 택했지만 상엽은 관심이 없었다.
“무슨 의뢰가 떴는데?”
“에레나의 생명초를 찾으라는 의뢰입니다.”
상엽의 동공이 번개를 맞은 것처럼 커졌다.
에레나의 생명초.
죽은 사람을 부활시킬 수 있는 유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