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코인-144화 (144/300)

# 144

상엽의 앞에는 계약서가 놓여 있었다.

갓코인 유저인 상엽에게 계약서는 그렇게 큰 의미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뭔가 약속을 했다는 증거물로 계약서는 중요한 절차였다.

이른 아침.

약속대로 상엽을 찾아온 레노는 계약서를 내밀었다. 그리고 앞으로 상엽을 어떻게 대우할 건지를 상세히 말했다.

레노는 한 시간에 걸쳐서 브리핑을 하듯이 세부 계획을 말했지만 상엽은 단 한 마디로 이해했다.

-난 코인만 모으면 돼.

시시콜콜한 부분까지 팀에서 케어해 주는 방식이었다.

집 청소와 식사, 옷 구입과 코디네이터 같은 일상적인 부분으로 시작해서, 위성 정보, 위험 지역, 물자 지원까지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었다.

전용기는 당연했고 전 세계에 상엽을 위한 200채의 주택이 제공되었다.

“집이 200개나 있을 필요가 있을까?”

“안전 가옥이라 생각하시면 됩니다. 미리 말씀해 주시면 비서와 기사까지 파견해 놓을 것입니다.”

“내 인생이 너무 확 달라지는 거 같은데.”

“더 많이 달라지셔야 합니다. 상엽 씨와 우리 테리아 그룹 전체를 위해서 말입니다.”

계약을 하면서 레노가 상엽에게 요구하는 건 단 하나였다.

“절대로 팀을 버리지 말아 주십시오. 최고가 된 후에도 그들의 노력을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건 내가 잘해. 내 사람은 절대 안 버려.”

레노는 그 말에 만족했다. 그가 본 상엽의 속마음과 일치했기 때문이다.

‘사람은 언제나 변할 수 있지. 그래도 정상엽이라면 믿을 수 있다.’

테리아 그룹은 1등이 될 수 있는 갓코인 유저 중에 배신하지 않을 자를 최고의 가치로 뽑았다.

상엽은 거기에 더해서 자신의 사람을 가족처럼 아끼는 행보를 보였다.

그것이 테리아가 30위권 유저인 상엽을 투자 대상으로 결정한 이유였다.

‘상위 유저도 이길 수 있는 힘이 있다.’

당연히 상엽의 뛰어난 능력은 기본이었다.

-50위 내의 유저는 누구든 최고로 만들 수 있다.

테리아가 가진 자신감도 결코 상엽에 뒤지지 않았다.

이런저런 이유로 상엽은 테리아가 원하는 최고의 인재였다. 그럼에도 마지막 절차가 필요했다.

바로 레노가 직접 만나는 것이었다.

그는 마음을 읽는 눈으로 상엽을 직접 판단했고 가능성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마지막으로 상엽 씨 의견에 따라 조율할 부분이 있습니다.”

“뭔데?”

“오상식의 팀 합류와 대한민국에 대한 경제 지원은 기본적으로 하겠습니다. 그 외에 팀에 합류시키거나 지원이 필요한 곳이 있습니까?”

상엽은 이미 생각한 부분이 있었다.

“그건 차후에 결정해도 될까?”

“준비가 필요한 부분입니다. 늦게 말씀을 하시면 그만큼 진행은 늦어집니다.”

“오래 걸리지 않을 거야.”

계약에 대한 이야기가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남은 것은 사인을 하는 것뿐이었다.

레노는 상엽의 앞으로 테리아의 마크가 선명히 새겨진 계약서를 내밀었다.

“계약을 하시면 우리는 상엽 씨의 합류를 공식 발표할 것입니다. 그리고 상엽 씨의 이미지를 기업의 홍보에 쓸 수도 있으며, 이를 기반으로 한 파생 상품을 제작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그런 사업에 관해서는 사전 협의를 할 것이고, 수익 배분도 투명하게 진행하겠습니다.”

“그런 건 마음대로 해. 내 팀을 운영하는 운영비도 만만치 않을 거 같으니까.”

“말이 통하니 편하군요.”

“그냥 궁금해서 묻는 건데, 나한테 투자되는 비용이 얼마나 되는 거야?”

“한국 돈으로 1년에 3조 원 이상입니다.”

어마어마한 금액이 나왔다.

단순히 인력뿐만 아니라 첨단 기기와 위성까지 동원되니 당연한 결과였다.

“내가 많이 비싸졌네. 일당 5만 원부터 시작했는데.”

그가 노가다판에서 처음 받은 일당은 5만 원이었다. 그나마 소장을 잘 만나서 소개비를 떼지 않았고, 미성년자임에도 기본을 지켜 주었기에 그렇게 받을 수 있었다.

그 후로는 일당이 꽤 올라갔지만 그때의 5만 원을 상엽은 지금도 잊지 못했다.

“5만 원으로도 참 많은 걸 할 수 있었는데.”

1만2천 원짜리 작업복을 사고 돈가스에 콜라를 사 먹었다. 그렇게 남은 3만 원은 저축까지 했다.

“자수성가를 축하드립니다.”

레노는 상엽의 인생을 인정한다는 듯이 정중하게 말했다. 그 표정이 상엽을 움직였다.

상엽은 계약서 옆에 놓인 볼펜을 쥐었다. 그렇게 사인을 하기 위에 종이 위에 점을 찍었다.

“미리 말해 둘 게 있어.”

상엽은 사인을 하기 전에 레노를 보며 말했다.

“나한테 한 가지 비밀이 있어. 물론 그 비밀이 팀에게 해가 되거나 기업 이미지를 망치진 않을 거야.”

“어떤 비밀인지 궁금하군요.”

“언젠가는 말할 거야. 하지만 지금 당장은 안 돼. 내가 팀을 완전히 믿게 되면 말해 줄게. 괜찮겠어?”

블랙과 화이트를 모두 사용하는 비밀을 아직까지는 숨기기로 했다.

팀에 사실을 알리면 더욱 많은 분석과 성장 방안이 나오겠지만 아직은 완벽히 믿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비밀이라…….”

레노는 그렇게 말하며 상엽을 주시했다. 상엽의 마음을 읽기 위해서였다.

그때, 갑자기 상엽의 모습에 뭔가가 겹쳐서 보이기 시작했다.

끄아아!

귀곡성이 울려 퍼졌다. 추종자가 상엽을 보호하며 비명을 지른 것이다.

레노는 기괴한 모습에 당황했지만 이내 평정심을 찾았다. 이미 추종자의 존재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령아, 왜 그래?”

-저자가 주인님의 생각을 읽으려고 했습니다.

추종자는 비명을 멈추고 상엽에게 사실을 알렸다.

“갓코인 유저였어?”

“그렇습니다. 제 비밀은 들켜 버렸군요. 추종자가 저런 능력까지 있는지는 몰랐습니다. 상엽 씨에 대한 정보를 더 추가해야겠군요.”

레노는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숙였다.

“무례를 범해서 죄송합니다.”

“됐어. 너도 숨기려고 했으니까 계속 숨겨. 나도 비밀이 있으니까 서로 비긴 거네.”

상엽은 그 부분을 더 이상 문제 삼지 않았다. 자신을 위협한 것도 아니고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제 비밀은 이미 들켰습니다만…….”

“난 아직 안 들켰어. 그냥 그런 거야. 서로 비밀이 있었지만 넌 들켰고, 난 아직 안 들킨 거지. 나도 의도치 않게 들키면 너보다 더 정중하게 사과할게.”

레노는 처음으로 상엽이 만만치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자, 어떻게 할 거야? 사인할까?”

“물론입니다.”

상엽의 질문에도 레노는 흔들리지 않았다.

“좋아.”

결국 상엽은 계약서에 자신의 이름을 남겼다.

“함께하게 되어 영광입니다.”

레노는 계약서를 확인하자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내밀었다. 정식으로 악수를 청하는 것이다.

“잘 부탁해.”

“일주일 후에 본부로 초청하겠습니다. 공식 발표도 그때 이뤄질 것입니다.”

레노는 준비할 것이 많다며 상엽의 집을 떠났다.

“인상이 참 좋아.”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난 뒤에 레노의 웃음은 더욱 진해졌다.

사업가 특유의 만들어진 웃음이 아니라 마음에 드는 친구를 만났을 때의 느낌이었다.

레노는 스킬을 통해 이를 파악하지만, 상엽은 느낌으로 이를 알아차렸다.

“내 인생이 또 달라지겠네.”

상엽은 지난날을 생각하며 잠시 흐르는 강물을 주시했다.

* * *

“축하해.”

박광신은 그렇게 말했다.

“흑점은 그냥 동생과 지금의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 솔직히 말하면 동생이 앞으로 겪게 될 많은 일들에서 우리는 짐이 될 뿐이니까.”

상엽은 박광신에게 흑점의 팀 합류를 논의했다. 하지만 박광신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우리도 언젠가는 높은 물에서 놀게 될 거야. 하지만 아직은 아니야.”

상엽은 더 이상 그를 설득할 수 없었다.

결국 상엽은 팀 합류에 더 이상은 원하지 않기로 했다.

오상식만 그의 팀에 따라오는 것이다.

‘나한테 집중하자.’

상엽은 더 이상 오지랖을 부리지 않기로 했다.

‘결국 내가 무너지면 끝이야.’

원하든 원치 않든, 한국의 운명이 그의 존재 여부에 달려 있었다.

상엽이 무너지면 수많은 집단들이 한국을 노릴 것이 분명했다.

최근 많은 타격을 입었지만 한국은 여전히 매력적인 땅이었다.

상엽은 잠시 복구 중인 서울을 둘러봤다.

중심부터 시작된 복구 작업은 이제 겨우 시작이었다. 그런데 부의 상징인 강남에서는 묘한 풍경이 펼쳐졌다.

강남은 인구가 밀집된 탓에 아파트를 중심으로 많은 피해를 입었다.

이를 빌미로 가장 먼저 복구 작업이 시작되었는데 그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그리고 피해가 상대적으로 적은 점포들은 이미 영업을 시작했다.

이로 인해 강남의 도로는 공사 차량과 고급 승용차가 동시에 보였다.

특히 오늘부터 정상 영업을 시작하는 백화점은 주차장이 가득 차서 도로까지 불법 주차가 이어졌다.

위기를 겨우 벗어난 시점이지만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은 벌써 일상으로 복귀한 것이다.

그리고 그 숫자가 꽤 많았다.

상엽은 선글라스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잠시 시민들 사이로 들어갔다.

그가 도착한 곳은 화려한 백화점이 아니라 한창 철거 작업이 진행 중인 공사장이었다.

한때는 그에게 일상이기도 했다.

‘소장님이 이런 공사 따내려고 무지 노력했는데.’

상엽은 잠시 추억에 젖었다.

“비키세요!”

누군가 공사장 입구의 상엽을 향해 외쳤다. 그가 추억에 젖은 사이에 공사 차량이 들어올 자리를 막고 있었던 것이다.

“죄송합니다!”

그는 머리까지 숙이며 자리를 지켜 주었다.

‘여기도 희망은 있어.’

상엽은 더 이상 노동을 할 필요가 없었다. 여기 있는 누군가도 미래에는 그런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는 더 이상 공사를 방해하지 않고 돌아섰다.

그렇게 잠시 시민들 틈에 섞여 거리를 걷고 커피를 마시기도 했다.

평범한 일상은 상엽에게 꽤 달콤한 휴식이었다. 그렇게 오랜만의 평범함을 즐기던 그는 익숙한 간판을 보았다.

“여긴 멀쩡하네.”

루나 엔터테인먼트.

그나마 건물이 무사해서 이미 정상적인 운영을 시작했다.

“다행이야.”

상엽은 그렇게 생각하며 돌아서려 했다. 그런데 갑자기 귀를 자극하는 경적음이 들렸다.

빵! 빵!

하얀색의 고급 스포츠카가 그의 뒤에 있었다. 간판을 보느라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막고 있었던 것이다.

“야! 비켜!”

상엽이 비켜 주려는 찰나, 그 짧은 시간을 참지 못한 운전자가 고개를 내밀고 거칠게 외쳤다.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사내는 짜증이 가득 담긴 표정으로 상엽을 향해 욕설을 쏟아 냈다.

“비키라고!”

상엽은 그의 말을 듣고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이 새끼가!”

결국 운전자가 차에서 내리더니 상엽에게 다가왔다. 그러고는 대뜸 상엽의 뺨을 노리고 손을 휘둘렀다.

툭.

그 손이 상엽에게 닿을 리가 없었다.

“뭐야? 이 쓰레기는.”

상엽은 사내의 손에서 꽤 강한 힘을 느꼈다. 갓코인 유저인 것이다.

‘일반인이었으면 턱이 날아갔겠는데.’

그 판단을 할 때, 사내는 상엽의 가랑이 사이로 발을 치켜 올렸다.

급소를 노린 것이다.

상엽은 몸을 비켜서는 것으로 이를 피했다. 그의 발이 허공을 가르며 시원한 바람 소리를 냈다.

역시 꽤나 힘이 들어간 발 차기였다.

‘일반인이었으면…….’

상엽은 분노했다.

“미친 새끼가 아무리 쓰레기라도 이건 아니지.”

상엽은 결국 사내의 멱살을 잡고 외제 차로 집어 던졌다.

쾅!

지방의 아파트값에 달하는 외제 차의 강판이 종이처럼 구겨지며 사내가 신음을 흘렸다. 하지만 이내 분노한 표정으로 상엽을 향해 외쳤다.

“이 개새끼가 내가 누군 줄 알고!”

“네가 누구든 남자의 상징을 깨트릴 자격은 없어.”

쾅!

상엽은 일어선 그를 들어서 다시 외제 차로 박아 버렸다.

쾅! 쾅! 쾅!

갓코인 유저인 덕분에 사내는 죽지 않고 상처만 입은 채로 그 고통을 견뎌야 했다.

쾅! 쾅!

바퀴가 터지고 천장이 내려앉은 외제 차가 고철로 변할 때까지 상엽의 응징은 계속되었다.

“거기가 깨지는 고통만큼은 아닐 거야.”

상엽은 멈추지 않았다. 외제 차가 바닥에 납작해질 때까지 계속해서 사내를 도구를 썼다.

그의 행동은 당연히 많은 이의 시선을 끌었고, 많은 사람이 몰려들었다.

그러다 한 여인이 상엽을 향해 외쳤다.

“소장님!”

익숙한 목소리에 상엽이 행동을 멈췄다.

마루나였다.

“소장님, 진정하세요.”

그녀는 상엽에게 먼저 인사를 한 후에 만신창이가 되어 쓰러져 있는 사내를 보았다.

“아는 놈이야?”

“네. 우리 회사 이사의 아들이에요.”

“이사도 아니고. 이사 아들?”

“네. 오늘 광고 건으로 만나기로 했어요.”

마루나는 곤란한 표정으로 상엽을 보았다.

“왜?”

“회사 운영은 해야 하잖아요.”

“그래서?”

“아니에요. 소장님이 원하는 대로 하세요.”

마루나는 결국 한 발 뒤로 물러섰다.

상엽은 그녀의 등장으로 인해 화가 많이 가라앉았다.

“알았어. 살려 줄게.”

마루나의 표정이 한결 편해졌다. 하지만 상엽의 행동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받은 건 돌려줘야지.”

상엽은 부서진 외제 차 부품 중에 작은 나사 하나를 들었다.

그리고 이를 손가락에 걸어 튕겨 냈다.

퍽!

둔탁한 소리가 나는 순간, 주변이 고요해졌다.

“어떻게…….”

“아우.”

많은 이들의 탄성이 들렸다.

“죽이진 않았어.”

“으악!”

비명을 지르는 사내의 가랑이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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