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코인-143화 (143/300)

# 143

테리아 그룹은 항공 소재를 연구하는 업체로 시작해서 특수 섬유와 금속의 유통까지 진출하며 큰 회사로 성장했다.

최근에는 고급스러운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해서 원자력은 물론이고, 특수 소재에 관해서는 독보적인 신뢰를 받는 기업이 되었다.

최근에는 첨단 군수 사업권까지 따내면서 신무기 개발까지 시작했음에도 일반인들은 모르는 사람이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일반인들이 사용하는 완성품에는 그들의 로고가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있다고 해도 완성품이 아니라 그 안의 부속품 정도였다.

“이게 테리아의 경력과 현재 실무 구조입니다.”

“난 봐도 몰라.”

“그럼 간단히 말씀드리겠습니다.”

레노는 50장짜리 서류를 한마디로 정리했다.

“우리 회사 돈 많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많이 벌 겁니다.”

“간단해서 좋네.”

“그래도 자랑 한마디를 덧붙이자면 우리는 첨단 소재 개발과 노하우를 통해서만 이만큼 벌었습니다. 아주 깨끗하게 성장했다는 뜻입니다.”

“그것도 좋네. 그런데 말이야. 이런 이야기를 왜 하는 거야?”

“아, 지금부터 그걸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테리아 그룹의 부회장이 29살이라는 것도 놀라웠지만, 그의 말투나 태도가 겸손하고 친근한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상엽은 마치 친근한 세일즈맨을 맞이한 느낌이었다.

“테리아 그룹에서 정식으로 제안을 드립니다. 정상엽 씨의 개인 매니지먼트가 되고 싶습니다.”

“개인 매니지먼트?”

이건 상엽도 예상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많은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지만 그들은 한결같이 강한 집단을 만들겠다고 했다.

그런데 테리아는 오직 정상엽만을 원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모든 인력과 기술을 오직 정상엽 씨 한 명에게만 쏟을 것입니다.”

“날 뭘 믿고?”

“50위 안의 랭커 중에 그동안의 행보가 가장 뚜렷한 것이 정상엽 씨입니다. 그리고 국민을 위해 위험을 감수하는 결정도 감동적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상엽의 이미지가 마음에 들었다는 것이다.

“나 그렇게 착한 놈 아니야.”

“착하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건 바라지도 않습니다.”

“뭐 좋아. 그런데 난 그런 곳에 구속되고 싶지 않아. 그래서 다른 제의도 모두 거절했어.”

“저희들은 상엽 씨를 구속할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더욱 자유로워질 수 있게 도와드릴 것입니다.”

“전부 그렇게 말하던데?”

“우리는 말뿐만이 아닙니다.”

레노는 상엽에게 책자 하나를 내밀었다. 모든 것이 컬러로 되어 있는 30페이지짜리 책자였다.

“오직 상엽 씨를 위해서 준비한 것입니다.”

-상엽만을 위해서.

레노는 이를 강조했다.

“오늘은 인사를 드리는 정도로만 하겠습니다. 책자에 기본적인 사항이 있으니 천천히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레노는 서두르지 않았다. 그만큼 자신이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말씀드릴 것은 우리 테리아와 함께하는 것에 대해 상엽 씨는 어떤 것도 포기할 필요가 없습니다.”

“무슨 뜻이야?”

“상엽 씨와 관련된 모든 것을 함께 안고 가겠다는 것입니다. 오상식도 그중의 하나입니다. 그리고 한국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상엽은 그 말에 눈살을 찌푸렸다.

“오해는 하지 마세요. 거절한다고 비열하게 복수를 할 생각은 없으니까요.”

레노는 특유의 눈웃음으로 인사를 한 뒤에 상엽의 집을 나섰다.

‘테리아, 레노.’

상엽은 그 이름을 되뇌었다.

상엽이 테리아 그룹의 이름을 다시 들은 곳은 뜻밖에도 뉴스였다.

-유럽 굴지의 기업 테리아에서 한국 복구 작업에 1조 원의 지원금과 2천 명의 인력을 투입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레노는 자신이 가진 힘을 제대로 보여 주었다.

“샌님처럼 생긴 것 같더니 화끈하네.”

어쨌든 상엽 입장에서는 나쁠 것이 없었다. 아나운서의 마지막 멘트 때문이었다.

-테리아의 지원은 전적으로 정상엽의 이야기에 감동한 회장의 지시로 알려졌습니다.

상엽의 얼굴에 금칠을 해 준 것이다.

국민들이 테리아의 지원에 감사하면서도 상엽에 대해 다시 한번 환호하는 건 당연했다.

단 한 번의 화끈한 지원금으로 인해 상엽은 테리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다.

‘매니지먼트라.’

상엽은 아직까지 읽지 않은 책자를 폈다.

다섯 장까지는 그동안 테리아가 분석한 과거 행적과 현재 실력이었다.

-여자를 밝히고 의리를 중요시 여김.

-구속과 간섭을 싫어하지만 친한 사람에겐 한없이 너그러움.

-파괴력은 최상위권이나 움직임이 단조로움. 이를 임기응변과 도박으로 이겨 나가는 스타일.

-본능적인 전투 능력이 뛰어나지만 생각을 많이 하지 않는 성격으로 위기에 빠질 때가 많음.

그들의 평가를 읽은 상엽의 이마에 핏줄이 섰다.

“이것들이…….”

장점보다 단점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런데 분석 이후에 열 장의 개선 방안이 상엽의 화를 가라앉혔다.

-정상엽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스킬 목록.

-정상엽의 장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 스킬 목록.

-정상엽의 응용을 다양하게 하는 방안.

-종합적인 전투 스타일과 앞으로 성장 방향.

모든 것이 철저하게 분석이 되어 있었다.

스킬 목록은 그레이와 블랙으로 한정되어 있었지만 상엽이 생각하지 못한 다양한 구상이 있었다.

‘대단한데.’

자신을 얼마나 분석하고 준비했는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책자를 읽을수록 상엽은 그 내용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서른 장의 내용을 모두 읽은 상엽은 테리아와 레노에 대한 인상이 완전히 달라졌다.

“훌륭해.”

그의 정확한 평가였다. 그리고 책자에 적혀 있는 팀의 구성 방안을 떠올렸다.

-100명의 분석원과 200명의 외부 요원, 각 100명씩으로 구성된 사업 팀과 사령부가 정상엽의 성장과 활동을 도울 것입니다.

500명에 이르는 사람이 오직 상엽을 위해서만 일을 한다는 뜻이었다.

상엽은 다시 깊은 생각에 빠졌다가 오상식에게 전화를 걸었다.

“형, 만날 수 있어?”

-집으로 가겠습니다.

다행히 오상식은 오래 걸리지 않아 상엽과 마주 앉았다.

“그들이 먼저 접근한 거야?”

“아닙니다. 소식을 듣고 제가 먼저 연락을 했습니다.”

“왜?”

“필요하실 거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테리아의 방식이 상엽 씨와 가장 어울린다고 판단했습니다.”

테리아와 상엽의 만남에는 오상식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하지만 오상식의 능력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상엽 씨를 1년 이상 지켜봤습니다. 미래를 위한 전폭적인 투자를 하기에 적합한 인물인지 계속 주시한 것입니다.”

“그러다 통과가 된 거고?”

“그들은 배신을 하지 않을 자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힘을 가진 뒤에도 아랫사람을 무시하지 않는 사람을 찾고 있었습니다.”

이는 모든 기업이 원하는 방향이다.

하지만 힘을 가지고도 힘없는 사람을 무시하지 않는 사람은 찾기가 어려웠다.

그리고 배신의 여지를 확인하는 것도 중요했다.

모든 것을 다해서 키워 놨다가 다른 마음을 품는 날에는 그들도 무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그런다는 보장은 없는데.”

“그들은 그저 그럴 확률이 높은 사람으로 상엽 씨를 선택한 것입니다. 아마도 이번에 변종 새를 잡은 사건에서 확신을 가진 것 같습니다.”

요즘 굴지의 기업들은 갓코인 유저 확보에 열을 올렸다. 이는 미래를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했다.

한 사람의 힘이 군대를 넘어선 지가 오래였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침략하기 위해서, 대부분은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이런 선택을 했다.

“형, 그들이 날 성장시켜서 얻는 게 뭐야?”

“안전 확보가 첫 번째입니다. 그리고 상엽 씨를 최고로 만들면 그들 역시 지배자가 됩니다.”

“지배자라.”

“결국 누군가는 그 자리에 오를 것입니다.”

단순히 매니지먼트라고 생각할 일이 아니었다. 그 단어로 표현하기에는 너무 많은 것이 걸려 있었다.

“날 위한 기업을 만들겠다는 거지?”

“정확히 말하면, 상엽 씨를 위한 기업이기도 하지만 테리아가 지배자가 되기 위한 결단이기도 합니다.”

서로 거는 것이 많은 일이었다.

“그래서 부회장이 직접 왔구나.”

“실질적인 회장입니다. 현재 회장은 일선에서 물러난 상황입니다.”

전부를 걸었다는 것이 분명했다.

‘서로 그 정도 이득이라면 해 볼 만하지.’

하지만 아직 한 가지 절차가 남았다.

“테리아에 대해서 알려 줘. 나도 그 녀석들을 알아야겠어.”

테리아의 제안은 지금까지 받은 다른 제안과는 차원이 달랐다.

상엽에 대한 분석도 완벽했고 개선 방안도 훌륭했다. 물론 그렇게 할 생각은 없지만, 자신에 대해 확실히 알고 있고 준비한 것은 확실했다.

하지만 한 가지 절차가 남았다.

“나도 그 녀석들이 마음에 들면 받아들일게.”

“잘 생각하셨습니다.”

그 말을 하며 오상식은 상엽의 핸드폰으로 뭔가를 전송했다.

“테리아에 대해 조사한 자료입니다.”

“이것도 예상했던 거야?”

“만약을 위해 준비해 두었을 뿐입니다.”

“내가 테리아를 받아들여도 형은 계속 함께하는 거지?”

“물론입니다.”

오상식이 인사를 하며 떠났고 상엽은 그가 남긴 자료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테리아는 전형적인 연구 기업이었다.

그 연구의 힘과 특허를 바탕으로 기업을 운영했고, 알려진 바와 달리 군사 시설에도 많은 관여를 했다.

“이래서 분석을 잘했구나.”

지금도 그들은 지출의 많은 부분이 연구비로 책정되어 있었다.

“거품도 거의 없고.”

그들이 상대하는 집단 자체가 국가나 군사 기업, 또는 항공 우주 연구 단체들이라서 재무 구조 자체가 깨끗했다.

그리고 어설프게 사업 확장을 해서 손해를 보는 일도 몇 건밖에 없었다.

“내 생활에 비해서 너무 반듯한데.”

상엽이 이렇게 느낄 정도였다. 그렇다고 모든 것이 완벽하진 않았다.

“초창기부터 무기 산업에 관여한 정황이 있지만 철저히 숨겨 왔다?”

돈이 되는 분야는 역시 무기였다. 그런데 테리아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항상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국가에서 문제를 삼아 세무 조사를 한다는 발표에 기업의 본사를 옮기겠다며 나선 적도 있었다.

그 사건은 결국 세무 조사가 이뤄졌지만 무죄로 판명이 났고, 이를 오상식은 뒷거래가 있었던 것으로 판단했다.

“이 정도는 넘어가야 하는 건가?”

그런데 오상식은 오히려 다른 판단을 했다.

-그래서 그들과 함께할 가치가 큽니다.

무기는 결국 힘이었다. 오상식은 그것조차 상엽에게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다.

“이것만 인정하면 고민할 게 없는데?”

상엽은 자료를 꼼꼼히 살폈지만 더 이상 마음에 걸리는 점이 없었다.

“신중하자. 내 인생이 걸린 일이야.”

그 말을 하던 상엽은 갑자기 고개를 저었다.

“아니지. 이게 무슨 노예 계약도 아니고, 들어갔다가도 내가 싫으면 나오면 되잖아.”

그의 말대로 어차피 주도권은 상엽에게 있었다.

“한 번 더 만나 봐야겠어.”

마음이 편해진 상엽은 레노와 연락을 시도했다.

다음 날 오후에 레노는 양손 가득 비닐봉지를 들고 상엽의 집을 다시 방문했다.

“이게 뭐야?”

“한국에 오면 꼭 먹어야 할 음식들 중에 배달 음식들입니다.”

그는 치킨을 비롯해 족발과 순대, 떡볶이, 튀김, 자장면까지 엄청난 양의 음식을 늘어놓았다.

“이걸 다 먹으려고?”

“맛만 봐야죠. 이 정도 사치는 부려도 되지 않겠습니까?”

“너무 사치스럽긴 하지만 외국인이니까 인정할게.”

“감사합니다. 그럼 같이 드시죠. 보시다시피 너무 많아서요.”

그들은 자연스럽게 배달 음식들로 식사를 시작했다.

음식이 많은 만큼 그들은 여유롭게 젓가락과 포크를 움직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초반에는 한국에 대한 이야기였고 자연스레 상엽에 대한 주제로 넘어갔다.

“한 가지 미리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뭔데?”

“저희들은 아직 상엽 씨를 완전히 결정한 것이 아닙니다. 상엽 씨를 위해 많은 투자를 했고, 더 많은 투자를 할 계획을 가지고 있지만 제 개인적인 확신은 없습니다.”

“나도 마찬가지야.”

“그래서 우리가 시간이 필요한 거 아니겠습니까?”

능구렁이 같은 전략이었다.

밀고 당기기가 확실했고 상엽의 마음을 자극하는 면도 있었다. 그러면서도 결코 불쾌한 인상은 남기지 않았다.

“기업의 사활을 나한테 걸어도 되겠어? 알다시피 나는 노가다꾼이야.”

“사활을 거는 것까지는 아닙니다. 상엽 씨가 우리 팀에서 설마 소멸한다고 해도, 우리의 기술력이 어디 가는 건 아니니까요. 피해가 크겠지만 어떻게든 살아남을 것입니다.”

“너무 솔직하네. 인상이 안 좋아지고 있어.”

“하하. 그렇습니까? 전 점점 확신이 드는데 말입니다.”

레노는 상엽과의 대화가 즐거운 듯했다. 뭐든 솔직히 대답했고 숨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모든 식사가 끝나자 레노는 이번에도 미련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음에 뵙겠습니다.”

“그래. 근데 다음에는 여기가 아닐지도 몰라. 휴식 시간이 거의 끝났거든.”

“내일 아침은 어떻습니까?”

“좋아.”

약속 시간을 잡은 레노는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그렇게 상엽과의 만남을 끝낸 레노가 한강 변으로 나서자 세 명의 사내가 따라붙었다.

그의 보디가드였다.

“한스.”

“네.”

덩치 큰 사내 한 명이 레노의 부름에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네가 나한테 속마음과 다르게 말을 하는 게 하루에 두 번쯤 있어.”

“죄송합니다.”

“우린 서로를 아주 신뢰하는데도 속마음을 숨길 때가 있단 말이지.”

그 말을 하며 레노는 한참 멀어진 상엽의 집을 다시 보았다.

“그런데 저 남자는 한 번도 없어. 어떻게 저럴 수 있지?”

갓코인 유저 레노.

그는 상대의 마음을 읽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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