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코인-142화 (142/300)

# 142

최상급 블랙 상점.

신의 상점을 앞둔 마지막 단계였다.

일본에 존재하는 최상급 블랙 상점은 단 하나였고 도쿄의 외곽에 위치해 있었다.

허름한 간판이었지만 문이 열린 내부 공간엔 100평이 넘는 넓은 공간이 있었다.

그런데 일을 하는 사람은 단 한 명이었다.

‘목수구나.’

가구를 만드는 목수가 최상급 블랙 상점이었다.

상엽은 날카로운 전기 톱날로 각목을 가져다 대고 있는 50대 후반의 사내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무슨 일로 오셨나?”

보안경을 벗은 사내가 일을 멈추고 상엽을 보았다.

조금은 상기된 피부에 먼지를 잔뜩 뒤집어쓰고, 노동으로 만들어진 잔근육이 온몸을 덮고 있는 사내였다.

상엽은 그 모습을 보자 익숙한 느낌마저 들었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노가다꾼은 똑같네.’

그는 이런 생각을 하며 명함을 내밀었다. 이를 본 목수는 전기 톱날을 멈추며 장갑을 벗었다.

“상점 손님은 오랜만이군. 들어오게.”

그는 작업을 멈추고 상엽을 안으로 이끌었다.

100평의 작업 공간의 뒤로 일본 고전의 운치 있는 집이 자리하고 있었다.

작업실의 투박한 모습과는 달리 작은 정원이지만 잘 손질이 되어 있었고, 중앙의 소박한 정자 곁의 연못에는 잉어들이 한가로이 헤엄을 치고 있었다.

“앉게.”

그는 정자 안으로 상엽을 안내하고 차를 내어 주었다.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네.”

“그런가요?”

“요즘 자네의 이름은 모르는 사람이 없으니. 일본에서도 변종 새에 긴장을 하고 있었다네. 자네가 살린 건 한국뿐만이 아니겠지.”

변종 새는 한국을 떠나서 남쪽으로 내려왔지만 일본을 그냥 지나쳤다.

“전부 직접 만드셨나 봐요.”

정자는 물론 차를 올려놓은 가구까지 어느 하나 평범한 것이 없었다.

“평생을 나무쟁이로 살았지.”

상엽은 그와의 대화가 싫지 않았다. 치열한 싸움 끝에 즐기는 여유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서두르지 않고 20분가량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대부분 갓코인과는 관련이 없는 일상적인 대화였다.

“내가 시간을 너무 많이 뺏었군. 너무 오랜만에 온 손님이라 그러니 이해해 주게.”

목수는 어느 순간 이를 깨닫고 손을 내밀었다. 상엽은 거절하지 않고 그의 손을 잡으며 상점을 열었다.

드디어 최상급 블랙 상점이 열렸다.

무구.

신체 개조.

스킬.

여기까지는 예상대로였다. 그런데 한 가지 목록이 더 있었다.

자격시험.

“자격시험은 뭐죠?”

“신의 상점으로 가는 자격시험이네. 그걸 통과해야 다음 상점으로 갈 수 있어.”

“어떤 시험인데요?”

“간단하네. 일정 수준 이상의 벌레들을 잡는 거지.”

“벌레라면…….”

“화이트 유저. 그런데 자네는 이미 충분할 거 같은데. 확인하고 싶으면 자격시험을 눌러 보게.”

상엽은 목수의 말대로 자격시험 문구를 눌렀다. 그러자 천천히 글자가 변했다.

-통과.

그동안 화이트 유저를 워낙 많이 잡은 터라 상엽은 이미 자격을 달성했다.

“자네는 강화 조건만 만족하면 신의 상점으로 갈 수 있네.”

상엽에겐 별문제가 없어 보였지만 그렇지도 않았다.

‘화이트 상점 자격은 만족시키지 못했을 거야.’

지금까지 그가 처리한 대부분이 화이트 유저였다. 블랙 유저는 손에 꼽을 정도라 만족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컸다.

갓코인의 마지막 경쟁 요소가 이런 식일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던 상엽은 또 다른 경쟁 요소에 생각이 많아졌다.

‘싸우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건가?’

현재 많은 사람들이 랭킹에 있는 블랙과 화이트를 나눠서 세력 평가를 하고 있었다.

현재는 거의 동률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지만 이게 전부는 아니다.

유럽에서는 화이트 길드가 국가 장악 면에서 앞섰고, 한국과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권은 중국을 제외하곤 블랙 유저가 많았다.

중국은 전쟁이 펼쳐진 상황이라 아직 어느 쪽이라 확정할 수 없다.

그 외에도 상위 랭커들의 분포도까지 더해져서 세력 구도는 복잡한 형태가 되었다.

‘강화부터 하자.’

상엽은 상념을 떨치고 해야 할 일을 떠올렸다.

무구는 처음부터 관심이 없었던 상엽은 강화 목록을 선택했다.

‘몇 가지나 될까?’

상급 상점은 5가지였다.

‘역시 6가지네.’

최상급 상점은 예상대로 6가지 목록이 있었다.

근육 개조.

감각 개조.

피부 개조.

정신 개조.

골격 개조.

매력 개조.

좀 더 세분화된 목록이 나타났다.

“신의 상점으로 가려면 이 중의 3가지를 완성해야 하네.”

조건이 또 하나 붙었다.

“신의 상점이 그렇게 대단한가요?”

“진짜 신이 될 수 있는 상점이니까. 지금까지 성장으로 신이 되었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신의 상점으로 가는 두 가지 조건이 밝혀졌다.

-최상급 상점 신체 강화 3가지를 10단계로 강화할 것.

-상대 진영 유저를 일정 이상 처리할 것.

“시작은 10만 코인이네.”

한 가지 목록을 10단계까지 강화하는 데 1억 코인이 넘는다.

신의 상점으로 가려면 최소 3억6백9십만 코인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진짜 끔찍하네요.”

“지금까지 잘해 왔으니 앞으로 잘할 거라 믿네.”

상엽은 화이트 상점까지 계산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상급 상점의 10단계 비용에 더해서 3억 코인이 추가로 필요한 것이다.

‘1급 위험 지역의 변종을 싹 쓸어버리면 가능할까?’

상엽은 이런 생각까지 했다.

‘어쨌든 선택을 해야 돼.’

지금까지 스킬은 충분히 강화했다고 판단한 상엽은 신체 개조로 초점을 맞췄다.

‘미리 3가지 목록을 정해야 된다는 건데. 매력이 제일 당기긴 하는데 일단 패스.’

그는 눈물을 머금고 다른 부분을 선택했다. 이는 그가 전투에서 필요하다고 느낀 부분이었다.

“근육, 감각, 피부. 전부 5단계까지.”

이에 필요한 코인은 930만 코인이다.

상엽은 최상급 블랙 상점의 세 가지 목록을 5단계까지 강화했다.

근육과 피부는 이미 경험한 바가 있어서 그 상승이 익숙했다.

‘감각 개조는 많이 다르네.’

중급 화이트 상점에도 감각 개조가 있었다. 그런데 최상급 블랙 상점의 감각 개조와는 차이가 있다.

최상급 블랙 상점의 감각 개조를 끝내자, 상엽은 그야말로 시야가 밝아지는 것을 느꼈다. 마치 망원경이라도 쓴 듯 멀리 있는 아주 작은 글씨까지 완벽히 보였다.

게다가 벽 뒤에 숨은 작은 벌레의 소리도 듣게 되었고, 집중을 하면 작은 공기의 흐름이 느껴지기도 했다.

‘이건 좀 익숙해져야겠어.’

본능적인 전투를 주로 하는 상엽에게는 나쁘지 않은 능력이었다.

“고마워요.”

“나도 고맙네. 오랜만에 유쾌한 시간이었어.”

상엽은 남은 차를 모두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호주?”

상엽은 켄사로를 만나고 있었다. 대화를 나누는 상대는 데스문 부길드장 요다였다.

“변종 새들은 호주로 이동했습니다.”

요다는 변종 새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상엽에게 말했다.

“호주라…….”

현재 호주는 사람이 살지 않는 땅으로 알려졌다.

1급 위험 지역으로 편의상 분류했지만 정보 수집조차 제대로 되지 않았다.

호주를 정찰하러 간 자들은 모두 소식이 끊겼고, 어떤 변종이 있는지조차 알려지지 않았다.

그나마 위성으로 정찰한 바에 따르면 미국을 넘어서는 변종이 있다는 평가였다.

-버려진 땅.

호주는 그렇게 불렸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뭔데?”

요다는 상엽이 생각지도 못한 말을 했다.

“새들이 변종으로 변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게 이상해?”

“그렇습니다. 예전 일반 동물이 변하던 패턴과 다릅니다. 누구도 자연적으로 변화하는 새를 목격한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렇다는 겁니다. 결론을 내릴 수는 없습니다.”

“누군가 일부러 변종을 만들었을 수도 있다는 거야?”

“모릅니다. 그냥 정보를 공유하기 위해 알려 드렸을 뿐입니다.”

요다의 말이 사실이라면 생각할 문제이기도 했다. 그런데 켄사로는 그렇지 않은 듯했다.

“그나저나 랭킹이 올랐더군. 축하하네.”

“뭐 랭킹이야 그냥 숫자일 뿐이니까.”

“그래도 꽤 정확하더군. 그것 때문에 힘을 내고 있어.”

상엽은 갑자기 켄사로의 랭킹이 궁금해졌다.

“넌 몇 등인데?”

“459등이네.”

송연지보다 높은 랭킹이다. 하지만 송연지는 소모된 코인에 비해 훨씬 많은 것을 할 수 있다.

고급 유산이 많았기 때문이다.

“요다는?”

“시크릿이네.”

“시크릿? 뭔 소리야?”

“저 녀석은 저게 있거든.”

요다는 자신의 손을 들어 보였다. 그러자 손등에 붉은 문신이 나타났다.

“검은 장막이라는 유산입니다. 정보를 숨기는 많은 유산 중의 하나입니다. 5단계까지 강화하니 갓 랭킹 순위에서 사라졌습니다.”

그 말은 랭킹에 보이지 않는 강자가 있을 수도 있다는 의미였다.

‘그러고 보니 이하나도 저런 유산이 있었지.’

상엽은 궁금해서 이하나의 이름을 검색해 보았다.

‘역시 없어.’

이를 확인한 상엽은 요다를 빤히 보았다.

“왜 그런 눈빛이십니까?”

상엽은 자신의 속마음을 솔직히 말했다.

“그거 나 주면 안 돼?”

그 말에 요다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전수 유산이 아닙니다!”

“알았어. 혹시나 하고 물어본 거야.”

상엽은 요다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켄사로에게 말했다.

“요다가 죽으면 나한테 꼭 알려 줘. 저 유산 찾으러 다니게.”

“나랑 경쟁자가 되겠군.”

“봐주지 않을 거야.”

그들의 대화를 들은 요다의 얼굴이 이번에는 붉게 물들었다.

* * *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 상엽은 그레이 상점을 들렀다.

앞으로 블랙 상점을 계속 이용할 텐데 그때마다 매번 비행기를 타긴 너무 귀찮은 일이다.

중급 그레이 상점으로 업그레이드를 한 상엽은 이를 통해 한국으로 돌아왔다.

“형, 부탁해.”

상엽은 1천만 코인에 달하는 유물 조각을 오상식에게 맡겼다.

흡수할까 고민도 했지만 오상식은 자신이 알아보고 싶다고 했다.

어차피 급한 강화도 없었기에 상엽은 그를 믿고 조각을 맡겨 두었다.

-새로운 집을 구해 두었습니다.

한강을 내려다보는 그의 아파트는 새들의 공격을 받아 더 이상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 되었다.

한강 변의 고급 아파트는 자연스레 인구 밀집 지역이 되었고, 이는 변종 새들의 중요한 먹잇감이 되었다.

고급 아파트가 비싼 무덤이 되는 순간이었다.

“역시 상식이 형이야.”

변종 새를 처리한 이후, 국가에서는 상엽을 위해 많은 것을 준비해 주었다.

집은 물론 차량과 기사까지 마련해 주었고, 최고급 바이크를 선물하기도 했다.

-안 받을래요.

상엽은 이를 전부 거절했다.

대통령의 이름으로 내려온 서신과 식사 초대도 거절했다.

‘정득수도 별로야.’

이하나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떠나서라도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인물은 아니었다.

결국 상엽은 오상식이 마련해 준 집으로 이동했다.

“최고네.”

한강 변에 수상 레스토랑으로 운영되던 곳이었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영업을 포기한 곳으로 오상식이 상엽에 맞춰 개조를 진행했다.

총 3층 건물로 1층은 레스토랑 인테리어를 그대로 활용한 응접실이 되었고, 2층은 서재 겸 휴게실, 3층은 침실이었다.

층당 200평에 달하는 큰 건물이라 상엽 혼자 쓰기에는 지나치게 큰 느낌이었다.

“이게 전부 내 거란 말이지?”

상엽은 오히려 이런 부분에서 자신이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분명히 느꼈다.

200평짜리 침실에 2층에는 영화 룸, 게임 룸, 서재가 따로 있었고, 옥상에는 수영장까지 있었다.

넓은 유리창을 통해 밖을 보면 햇살이 부서지는 강물이나 달빛을 머금은 물결을 언제든 볼 수 있었고, 눈을 감으면 그 소리가 들렸다.

“정상엽, 출세했네.”

상엽은 3층 침실의 넓은 침대에 누워 귀를 간질이는 물소리를 들었다.

그렇게 10여 분쯤 지났을 때, 전화벨 소리가 그의 휴식을 방해했다.

“응, 상식이 형. 집은 고마워. 아주 마음에 들어.”

-다행입니다. 다른 불편한 점은 없으십니까?

“완벽해. 형이 여자면 프러포즈 했을 거야.”

상엽의 고백에도 오상식은 반응이 없었다. 오히려 그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을 했다.

-곧 손님이 찾아올 것입니다.

“손님? 누군데?”

-매니지먼트입니다.

“매니지먼트? 연예인 매니지먼트 그런 거?”

-그렇습니다. 제가 하는 일을 기업으로 한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지금까지 많은 스카우트 제의를 받은 만큼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한 가지가 달랐다.

-일반 매니지먼트가 아닙니다. 일단 그들이 오면 한 번 만나 주실 수 있겠습니까?

“형이 보장하는 사람들이지?”

-보장까지는 못 합니다. 하지만 나쁜 의도가 아닌 건 확실합니다.

“알았어.”

통화가 끝나기 무섭게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누군가 누른 것이 아니라 한강 변에서 상엽의 집으로 연결된 다리에 사람이 들어서면 센서가 자동으로 울리는 시스템이었다.

상엽은 곧장 창문으로 가서 다가오는 사람을 보았다.

검은 검장을 입은 20대 후반의 사내였다. 그는 주변을 둘러보는 관광객처럼 밝은 표정으로 상엽의 집 앞에 섰다.

“안녕하십니까? 테리아 그룹의 부회장 레노입니다.”

테리아는 유럽에서 100대 기업에 속하는 유명한 회사였다. 그 회사의 부회장이 홀로 상엽을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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