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0
송연지, 강차연, 가연수는 하수구를 통한 일반인들의 구출 작전에 나섰다.
서울을 벗어난 루트의 하수구를 찾아내고 그곳에서 사람들을 수송하는 것이다.
갓코인 치안대와 군대가 이에 적극적으로 나섰지만, 이를 위해서는 한 가지 조건이 있었다.
우선 시민들이 집 밖으로 나올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굶어 죽는 사람이 속출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상엽이 주변을 정리하는 것을 기다렸다가 구출을 하려면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렇다고 무작정 움직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일단 사람들의 체력이 너무 떨어졌다. 최소한의 동선으로 움직이고 있었지만, 하수구를 통해 이동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변종 쥐조차 현 상황에선 까다로운 상대며, 무엇보다 이동 거리 자체가 너무 길었다. 그렇다고 멈출 수도 없지만 이대로는 몇 달이 걸릴지도 모른다.
“오빠, 어떻게 하는 게 좋겠어요?”
송연지도 어느새 지쳐 가고 있었다.
“걱정 마. 곧 치킨 구이 해 줄게. 빨간 놈으로.”
상엽은 붉은 깃털의 독수리를 집요하게 찾아다녔다.
-몇 달만 지나면 한국은 빈민국으로 전락할 거야.
그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도와 달라고 외치던 사람들의 얼굴을 외면할 수가 없었다.
“빨리 찾자.”
그 방법밖에 없었다.
“그 자식만 교화하면 끝나.”
이것이 상엽의 계획이었다. 그렇게 되면 새들을 전부 처리할 수 있다.
이를 위해 박광신도 전폭적으로 상엽을 돕고 있었다.
가동할 수 있는 모든 위성을 통해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다.
그렇게 노을이 지는 저녁 무렵이 되었을 때, 드디어 상엽이 기다리던 결과가 나왔다.
-남산 타워야.
남산 타워 아래, 작은 분지로 붉은색의 둥지가 발견됐다.
상엽은 지체 없이 남산으로 달려갔다. 그가 빠르게 목표 지점으로 이동할 때,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졌다.
붉은 노을을 모두 가릴 정도의 엄청난 숫자의 새들이 나타난 것이다.
-주인님, 위험합니다.
추종자가 멈춰야 한다고 말했다.
상엽이 이미 반쯤 무너진 신라 호텔에서 남산을 올려다봤다.
서울 사방에서 새들이 남산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어림잡아 그 숫자가 족히 5만은 되어 보였다.
대장을 노리는 걸 아는 걸까?
“어차피 전부 잡을 거야.”
상엽은 멈추지 않고 정상을 향했다.
* * *
5만 마리의 새.
은빛 독수리 12마리에 독수리는 240마리였다. 그 외의 새들은 남산 전체를 빼곡하게 덮고 있었다.
본래 사람들이 오갔을 등산로를 따라 엄청나게 많은 새들이 모여 소음을 만들고 있었다.
찢어지는 비명 같은 소리는 평온한 마음을 뒤흔드는 효과가 있었다.
상엽은 천천히 잘 정비된 아스팔트를 통해 남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새소리는 감옥처럼 그를 감쌌지만 규칙적인 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숨을 죽이고 규칙적으로 걸음을 옮기자 어느새 그는 남산의 중턱에 닿았다.
끼아!
은빛 독수리들이 날개를 펼치며 상엽을 감시하기 시작했다.
-처리하고 가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추종자는 주변의 상황을 상엽에게 상세히 보고했다.
나무를 빼곡하게 채우고 있는 새들은, 상엽이 마음만 먹으면 대량으로 처리할 수 있는 상대다.
‘아직 아니야. 대장부터 끌어들여야 돼.’
상엽이 생각했던 것보다 상황이 심각했다.
새들은 철저히 통제되고 있었고, 단 한 마리도 섣불리 움직이지 않았다.
‘변화가 필요해.’
이를 알면서도 대장을 잡기 위해서 위험을 감수했다.
그렇게 상엽이 계속 이동하자 후방의 새들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상엽의 등 뒤에 떠오른 새들만 1만 마리에 달했다.
뒤통수가 따끔해졌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결국 상엽은 등 뒤의 새가 2만 마리에 달했을 때쯤 남산의 정상에 닿았다.
높이 솟은 타워가 보이는 광장이었다.
“무슨 콘서트라도 열려?”
광장의 외곽에 새들이 마치 상엽을 구경하러 온 것처럼 빼곡히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리고 타워의 가장 높은 곳에 붉은 독수리가 앉아 있었다.
붉은 독수리는 상엽이 이동을 멈추자 눈빛을 빛내며 날개를 펼쳤다.
이를 본 상엽은 새를 보며 주먹을 펼쳤다. 그리고 힘차게 가운뎃손가락을 폈다.
하지만 새는 반응이 없었다.
“아, 너한테는 안 통하는구나.”
인간의 욕을 붉은 독수리는 알지 못했다.
무안해진 상엽은 괜히 어깨를 돌리며 목소리를 높였다.
“자, 원하는 대로 왔잖아. 이제 어쩔 거야?”
붉은 독수리가 원하던 전장이 형성되었다. 상엽은 이를 알면서도 그 중심에 섰다.
끼아아!
붉은 독수리는 상엽의 말에 반응하듯 고개를 치켜들며 긴 울음소리를 냈다.
그러자 은빛 독수리들이 일제히 그 소리에 반응하며 울음을 토해 냈다.
그다음은 일반 독수리였고 하위 개체까지 이에 합세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하위 개체 100마리가 저공비행을 하며 상엽을 향해 다가갔다.
상엽은 그들이 접근하길 기다렸다가 해머로 바닥을 내리찍었다.
쿵!
화염 파도가 사방으로 뿜어지며 다가오던 새들을 집어삼켰다.
-끼에엑!
“겨우 이거 보여 주려는 거 아니지?”
100마리가 재로 흩어지자, 또다시 100마리가 상엽을 향해 날아갔다.
그런데 이번에는 상엽의 정수리로 독수리 한 마리가 떨어져 내렸다.
상엽은 독수리를 향해 뛰어올라 해머로 쳐 내고, 바닥의 발뒤꿈치로 돌멩이를 날렸다. 100마리 중 살아 돌아간 건 손에 꼽을 정도였다.
“뭐하자는 거야?”
크게 위협적인 상황이 아니었다. 그런데 붉은 독수리의 이해할 수 없는 공격은 계속되었다.
그렇게 하위 개체 5천 마리가 사라졌다.
50번의 전투가 있었던 것이다. 그제야 상엽은 붉은 독수리의 의도를 깨달았다.
‘전부 처리하려면 500번을 이런 식으로 싸워야 하는구나.’
100마리라는 숫자는 그만큼 애매했다.
해머라는 무기가 처음으로 부담이 되는 순간이었다.
스킬도 하나하나가 큰 대미지와 범위를 가지지만, 그만큼 자신에게 무리를 주는 것 역시 사실이다.
그저 움직임으로 해결하기엔 체력과 시간도 문제고, 다른 상위 개체가 끼어들 때면 수세에 몰리기 일쑤였으며, 근근이 과도하게 스킬을 남발하게 되었다.
이런 식으로는 자신이 먼저 쓰러질 수밖에 없다.
‘저 자식이.’
가장 큰 문제는 붉은 독수리의 반응이었다.
붉은 독수리는 상엽의 의도와 달리 타워 끝에서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지금은 거리가 너무 멀어서 상엽이 달려들 수도 없었다.
‘거리를 좁혀야 돼.’
상엽은 현재 상황을 정확히 파악했다.
‘더 늦으면 반격의 기회도 없어.’
처음부터 불리한 싸움이었고 모든 게 상대의 의도대로 되고 있었다.
뭔가를 하려면 아직 멀쩡한 지금이 기회였다.
그는 결국 이 상황에 변화를 주기로 했다.
‘유령아, 나 죽으면 자유롭게 살아.’
-주인님!
‘싫으면, 정신 똑바로 차려서 날 살리라고!’
100마리의 새가 다시 달려드는 순간, 상엽은 처음으로 공중이 아닌 정면으로 달려 나갔다.
그리고 저공비행 하는 새들을 단숨에 뛰어넘어 타워를 향해 스트라이크를 펼쳤다.
그러자 붉은 독수리는 하늘로 날아올랐다.
이미 이를 예상했던 상엽은, 붉은 독수리의 반응과 상관없이 타워 건물 내부로 들어갔다.
새들은 건물을 둘러싸는 진형을 갖췄지만 접근하지는 않았다.
쾅! 쾅! 쾅!
타워 안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잠시 후, 벽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콰쾅!
강렬한 폭발을 마지막으로 타워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독수리들은 먼지가 피어오르는 잔해 속에서 상엽을 찾으려 애썼다.
하지만 타워의 붕괴는 구름 같은 먼지를 만들어 내부에 있는 모든 것을 숨겨 버렸다.
그리고 하늘 높이 솟은 먼지에서 상엽이 튀어나왔다.
‘고스트 실드.’
그는 고스트 실드를 밟으며 다시 한 차례를 뛰어올랐지만 붉은 독수리에게 닿을 거리는 아니었다.
그 상태에서 상엽은 스트라이크를 펼쳤고, 팔각 대시를 통해 더욱 거리를 좁혔다.
붉은 독수리는 그의 접근을 보고 아무렇지도 않게 더욱 높이 날아올랐다.
여전히 그들 사이에는 꽤 거리가 있었다.
그때였다.
탄력을 잃은 상엽이 다시 바닥으로 떨어지려 할 때, 그는 몸을 뒤집어 하늘을 보고 누운 모습을 했다.
그리고 모든 힘을 다해 해머를 휘둘렀다.
콰쾅!
스스로 만든 고스트 실드를 때린 해머에서 부채꼴 모양으로 엄청난 화염이 분사되었다.
화염은 순식간에 붉은 독수리 주변을 집어삼켰다.
츠팟!
화염에서 붉은 선 하나가 튀어나왔다.
상엽이 날린 회심의 일격은 성공했지만 독수리는 빠른 속도로 빠져나온 것이다.
하지만 깃털 일부분이 불에 그슬린 수준이었다.
‘열받으면 덤벼.’
상엽이 노린 것은 지금의 일격이 아니었다.
그는 공중에 터트린 일격으로 인해 중심을 잃고 바닥으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붉은 독수리에겐 절호의 기회다.
자신은 지금 몸조차 제대로 가눌 수 없는 절체절명의 위기고, 이 위기를 저 똑똑한 독수리가 그냥 넘어갈 리가 없다.
불꽃을 피한 독수리는 상엽을 향해 붉은빛을 뿜으며 날아들었다.
‘좋아!’
상엽은 이를 악물며 몸을 비틀었다.
하지만 그의 손은 독수리를 잡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츠팟!
붉은 선이 상엽의 배를 완전히 관통했다.
피부가 찢기고 끊어진 내장의 액체가 관통된 배 밖으로 튀어나왔다.
붉은빛으로 부서졌던 독수리는 바닥에 닿기 전에 방향을 선회하며 상엽의 상태를 확인했다.
그리고 독수리의 눈빛이 처음으로 흔들렸다.
분명히 몸을 관통당한 상엽이 멀쩡한 모습으로 독수리를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특수 스킬 회생 덕분이었다.
독수리는 다급히 다시 날아오르려 했다. 그런데 뭔가가 독수리의 날개를 잡았다.
유령 추종자였다.
그 순간의 방해가 상엽이 노리던 것이었다.
타워를 무너트릴 때부터 상엽은 회생을 사용할 계획이었다.
‘저 녀석을 잡으려면 내가 죽는 수밖에 없어.’
그렇게 판단한 것이다. 그리고 그 계획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잘 가.”
쾅!
상엽의 해머가 독수리의 머리에 꽂혔다.
콰쾅!
독수리의 몸은 그 한 방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교화는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모든 것이 그의 뜻대로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하는 것이 최선이라 판단했다.
끼아아!
대장이 사라지자 새들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정신적 지주가 사라진 새들은 별로 위험할 것이 없는 존재이긴 하지만, 성가신 것도 사실이긴 하다.
상엽은 새들이 멀리 날아가지 않도록 목표물을 정해 주었다.
“자, 새대가리들아 여기 봐라!”
친위대가 광장 중앙에 소환되었다.
그러자 4만 마리가 넘는 새들이 일제히 친위대를 향했다.
‘공간 만들어.’
상엽은 친위대가 만든 원의 중심으로 떨어졌다.
친위대가 폭주하는 새들을 상대로 무서운 싸움을 시작했다. 상엽은 잠시 몸을 추스르며 회복하다가 존재감이 있는 놈들만을 하나씩 사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친위대가 지쳐 갈 즈음, 한꺼번에 회수하며 두 가지 스킬을 동시에 펼쳤다.
스트라이크와 화염 파도였다.
폭발과 함께 화염이 주변을 모두 집어삼켰다. 그 한 방으로 멍청하게 모여들었던 새들이 재로 흩어졌다.
“이제부터 진짜야.”
상엽은 폭발이 끝나기 무섭게 다시 친위대를 소환하고 본격적인 각개 전투에 들어갔다.
“후우. 후우.”
계속된 스킬 사용은 상엽을 지치게 했다. 전투로 인해 이처럼 지치는 것은 처음이었다.
근육이 아파 오기 시작했고 행동이 느려졌다. 그럼에도 상엽은 멈출 수가 없었다.
‘다 왔어.’
콰쾅!
오른손의 근육이 끊어질 듯 아팠다. 왼쪽 다리는 이미 감각도 느껴지지 않았다. 언제부턴가 왼손은 아무 통증이 없어서 쳐다봤더니 아예 움직이지도 않았다.
“이거, 나중에 고쳐지겠지?”
그는 이를 악물며 다시 스킬을 펼쳤다.
어느새 주변을 위협하는 새의 숫자가 훨씬 줄어 있었다.
폭주한 새들의 대부분은 상엽을 노리다 잿더미로 변했지만 일부는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멀리 달아났다.
상엽도 이를 뒤쫓을 방법은 없었다.
그저 하염없이 서 있다가, 마지막 한 마리를 잿더미로 만든 뒤, 상엽은 그 자리에 그대로 널브러졌다.
어느새 친위대도 사라졌고, 추종자까지도 소멸된 뒤였다.
“하아. 하아.”
지친 상엽이 주변을 둘러보다 숨을 몰아쉬며 전화기를 꺼냈다. 그리고 박광신에게 전화를 걸었다.
“서울 복구했어.”
그 짧은 한마디가 대한민국의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