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갓코인-139화 (139/300)

# 139

대한민국 국방부.

국방부는 한국에서 손에 꼽힐 만큼 많은 예산을 사용하고 결정하는 곳이다.

경제와 동떨어져 있는 것 같지만 나라 살림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곳이기도 했고, 변종 출현 이후에는 그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었다.

하지만 변종 새의 출현 이후에는 그저 나약한 인간의 집단으로 전락했다.

새들이 밀집된 지역이라 외부로 나갈 수도 없었고, 그저 독수리들이 건물을 공격하지 않길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드세요.”

국방부에 갇힌 인원은 총 87명이었다.

그들이 지금까지 굶어 죽지 않은 것은 두 명의 여인에 의해서였다.

“다른 사람부터…….”

“아저씨! 그냥 빨리 먹어요!”

김대진이 쏘아붙이는 말에 얼른 손을 내밀자 엄지손가락 크기의 사탕이 잡혔다.

달빛 캔디.

그들이 지금까지 버텨 온 힘이었다.

“연수야, 그러지 말랬잖아.”

“흥! 내가 하는 일이 있는데 이 정도는 해도 되지 않아? 안 그래요? 군인 아저씨?”

“충분하지. 좀 더 심하게 해도 아무도 반박하지 못할 거야.”

김대진은 달빛 캔디를 입에 넣기 전에 두 명의 여인을 다시 보았다.

강차연과 가연수.

그녀들이 외부로 나가서 음식을 구해 오고 부족한 부분은 달빛 캔디로 채워 주고 있었다.

강차연은 원래 국방부에 있었고, 가연수는 변종 새가 출현하자 급히 국방부로 왔다.

강차연이 걱정돼서 국방부로 왔던 가연수는 결국 지금까지 함께하고 있었다.

“이것도 이제 슬슬 한계인데.”

석 달이 넘게 버텨 왔다. 이는 강차연과 가연수에게 어느 정도 코인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둘 모두 코인이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이런 사태를 예상해서 위험을 무릅쓰고 음식까지 구해 오며 버텨 왔지만, 두 명이서 80명을 돌보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기껏해야 이틀.”

강차연의 말을 들은 김대진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최악의 상황이 되기 전에 탈출 작전을 실행하는 것이 어떤가?”

그동안 국방부 내에 있는 인원들은 여러 가지 탈출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완벽한 탈출은 불가능했다.

“군인 아저씨, 생존 가능성이 20프로라면서?”

“그거라도 해야지. 이렇게 갇혀서 죽을 수는 없지 않나?”

“걱정하지 마. 정상엽이 서울에 왔잖아.”

그들에게도 희망은 있었다. 상엽이 나타났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다.

“차라리 정상엽에게 구해 달라고 하는 건 어때? 그럼 바로 달려올 텐데.”

“그럴 수는 없네. 우리가 우선순위가 되어서는 안 돼. 지금 그는 대한민국의 사활을 걸고 싸우는 중이니까.”

“쳇. 꼰대 같으니라고.”

가연수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반박할 수가 없었다.

“언니, 그냥 이 사람들 내버려 두고 우리 둘이 탈출하자니까.”

“안 돼.”

“왜?”

“정상엽이 올 때까지 여기서 버텨. 그게 훨씬 살 확률이 높아.”

“쳇! 언니도 꼰대야!”

가연수는 무작정 기다려야 하는 것이 불쾌했다. 뭐든 주도적으로 하는 그녀의 성격과는 맞지 않는 것이다.

“나 혼자라도 나갈 거야!”

가연수가 갑자기 몸을 돌렸다. 성큼성큼 걸어가 문을 열려던 그녀는 한순간 모든 행동을 멈췄다.

강차연이 그녀를 뒤에서 안은 것이다.

“연수야.”

“어, 언니. 왜 이래?”

“난 네가 필요해.”

그 말을 들은 가연수의 몸이 떨렸다.

“그냥 해 본 말이야. 진짜로 나갈 생각은 없었다고.”

“고마워. 날 구하러 와 줘서.”

강차연도 많이 힘들었다. 겉으로 내색하진 않았지만 속은 까맣게 타들어 가는 느낌이었다.

“혼자서는 버티지 못했을 거야.”

“언니…….”

가연수는 천천히 몸을 돌려 흔들리는 강차연을 보았다.

둘의 눈빛이 그렇게 마주쳤다.

강차연은 슬프게 웃었고, 가연수는 그 웃음에 눈빛이 흔들렸다.

그렇게 잠시 서로의 눈을 주시할 때였다.

“연애 중인데 미안.”

갑자기 그녀들 사이에 희미한 상엽의 얼굴이 떠올랐다.

유령 추종자였다. 그 모습에 흔들리던 가연수의 눈빛이 분노로 물들었다.

“야! 정상엽! 너 진짜 죽여 버린다!”

“왜?”

“1분만 있다 왔어야지! 드디어 우리 사랑이…….”

“연수야, 그만.”

강차연의 눈빛은 어느새 평소의 냉정한 상태로 돌아왔다.

“아우! 아까워! 아우! 내가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는데! 정상엽! 너 진짜 죽여 버릴 거야!”

“날 죽이려면 일단 내가 널 살려 줘야 하니까 지금은 좀 참아.”

상엽은 분통을 터트리는 가연수를 뒤로하고 김대진과 대화를 나눴다.

“군인 아저씨, 사람들 전부 지하로 대피시키세요. 제가 다시 연락하기 전에는 아무도 내보내선 안 돼요.”

“알았네.”

김대진은 상황의 급박함을 알고 시간을 끌지 않았다.

“경찰 누나랑 연수도 피해 있어. 충격이 좀 있을 거야.”

“알았어.”

“그냥 날 죽여! 이 나쁜 새끼야!”

“일단 살려 주고 생각해 볼게.”

유령 추종자가 사라졌고, 잠시 동안 국방부가 분주해졌다.

국방부 주변에는 1만 마리의 하위 개체와 독수리 부대가 진을 치고 있었다.

‘일단 집결지부터 전부 처리해야 돼.’

새들이 상엽을 피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상엽은 둥지를 습격하기로 했다.

수도권 전체에 퍼져 있는 둥지는 다섯 곳.

그중의 하나가 국방부 근처였다.

‘민간인이 많아.’

둥지는 묘한 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리고 특이하게도 건물에 숨어 있는 인간들을 공격하지 않았다.

‘일부러 남겨 둔 건가?’

상엽은 그렇게 판단했다.

이렇게 되면 민간인의 피해를 우려해 대대적인 공격을 할 수가 없었다.

가연수와 강차연은 모르고 있지만, 그녀들이 그나마 식량을 구할 수 있었던 것은 새들이 그녀들을 내버려 두었기에 가능했다.

“철거가 안 되면, 보수 공사로 가야지.”

상엽 역시 가진 힘을 전부 쓸 수가 없었다. 건물을 무너트리면 어김없이 민간인이 죽는 상황이다.

‘그 자식은 보이지도 않고.’

붉은 깃털의 독수리는 첫 만남 이후로 완전히 모습을 감췄다.

‘곧 나서게 만들어 주지.’

그는 서두르지 않고 1만 마리의 새들을 주시했다.

‘시작하자.’

그가 새들의 둥지를 향해 몸을 날렸다.

수백 개의 건물 옥상에는 어김없이 커다란 둥지가 만들어져 있었다.

각종 나뭇가지와 콘크리트, 철근까지 뭉쳐서 만든 독특한 동지들이었다.

그런 둥지의 숫자만 천여 개.

이를 지키는 새의 숫자는 1만 마리였다.

그 지옥 같은 장소를 향해 백 개의 화살이 날아갔다. 그리고 화살은 어김없이 변종 새의 몸을 관통했다.

그리고 하늘에서 화살 비가 쏟아졌다.

새들이 괴성을 지르며 날아올랐고, 화살이 시작된 방향으로 움직였다.

긴 강을 이루며 날아오는 새를 향해 누군가 엄청난 속도로 달려들었다.

쾅!

스트라이크의 폭발이 부채꼴로 퍼져 나가며 수백 마리의 새를 단숨에 처리했다.

“코인들아, 모여라!”

상엽은 첫 스트라이크를 펼친 후에는 전혀 다른 전투 방식을 썼다.

망자의 손길이 평소보다 훨씬 날카롭게 움직이며 새들의 몸을 꿰뚫었다.

수백 개의 가시가 되어 돋아나는가 하면 상엽의 손에서 칼로 변하기도 했다.

건물을 무너트리지 않기 위해서 상엽이 선택한 방법이었다.

해머는 공중을 향해서만 사용했고, 폭발은 최대한 자제했다.

새들을 단숨에 쓰러트릴 수 있는 화염 파도도 잠시 봉인해 두었다.

그는 직접 새들의 둥지를 습격하며 해머의 순수한 물리력과 망자의 손길을 주로 사용했다.

그리고 새들이 충분히 몰려왔을 때, 친위대를 불렀다.

“제대로 놀아 봐.”

친위대는 등장과 동시에 주변을 가득 메운 새들을 향해 괴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쌔액!

“넌 날 봐야지.”

망자의 손길이 20미터까지 늘어나며 다가오는 독수리 하나를 처리했다.

그걸로 변종 새와 유령 군대의 육탄전이 시작되었다.

그사이, 송연지는 구석에 몸을 숨긴 채 계속해서 활시위를 당겼다.

상엽이 충분히 시선을 끌어 준 덕분에 그녀는 자유로운 상태에서 저격을 할 수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그녀는 위협이 되는 새들을 집중적으로 제거했다.

그렇다고 해도 애초에 1만 마리나 있었던 탓에 눈에 보이는 성과는 미미했다.

하지만 3분이 지나자 송연지의 생각이 달라졌다.

‘산적 오빠 맞아?’

전혀 다른 전투 스타일임에도 그 위력은 예전과 다를 바가 없었다.

푸른빛의 칼날이 1초에도 몇 번씩 모습을 바꾸며 주변의 새들을 꿰뚫었고, 가끔씩 공중을 향해 터지는 폭발에는 어김없이 300마리에 달하는 새가 재로 흩어졌다.

날카로움과 묵직한 힘이 자연스레 조화가 되어 있는 전투였다.

‘따라갈 수가 없겠어.’

송연지는 묘한 감정이 들었다.

‘꼭 따라잡아서 지켜 주고 싶었는데.’

그녀가 목숨을 걸고 신전을 공략하는 이유는 상엽만큼 강해지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녀가 최선을 다했음에도 상엽과의 거리는 더 멀어지고 말았다.

“연지야!”

그녀가 잠시 딴생각을 하는 사이, 상엽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그제야 송연지는 자신의 머리 위로 은빛 독수리가 떨어지고 있음을 알았다.

그녀는 지척에 달한 독수리를 보면서도 여유롭게 뒤로 물러났다.

쾅!

은빛 독수리가 콘크리트 바닥을 부수며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산적 오빠만큼은 아니지만 너 정도는 나도 우습거든.”

송연지는 지체 없이 다시 콘크리트를 뚫고 날아오르는 독수리를 향해 뛰었다.

은빛 독수리는 날개를 펼쳐 주변으로 칼날 같은 깃털을 뿌려 댔다.

하지만 송연지의 몸이 공중에서 다시 한번 도약하더니 칼날 무리를 피하고 독수리의 안면에 화살을 쏘았다.

쿵!

결국 은빛 독수리가 머리를 관통당하며 빛으로 흩어졌다.

“산적 오빠는 저 와중에도 나까지 보는 건가?”

독수리를 처리한 송연지는 여전히 육탄전을 벌이고 있는 상엽을 보았다.

“송연지, 정신 차리자. 아직 멀었어.”

그녀는 마음을 다잡고 다시 활시위를 당겼다.

전투는 30분가량 계속되었다.

상엽이 펼친 전투 중에 손에 꼽을 정도로 오래 걸린 것이다.

츠팟!

마지막 독수리 하나가 망자의 손길에 난도질을 당하며 흩어졌다.

“후우.”

상엽은 길게 한숨을 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유령 전사 세 명이 소멸한 것 외에는 큰 피해가 없었다.

“유령아, 남은 놈 있는지 찾아.”

추종자에게 정찰을 보낸 상엽은 곧장 국방부로 들어섰다.

유리문을 막고 있던 집기들은 상엽의 힘 앞에서는 종잇조각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그가 내부로 들어가자 한 사람이 급히 지하실 계단에서 로비로 올라왔다.

“정말 해냈군.”

김대진이었다.

“나이도 있으신데 편한 침대로 모셔다드려야죠.”

“아직 그 정도는 아니네.”

“다행이네요. 사실 지금부터가 진짜거든요.”

상엽은 자신이 들어온 문을 가리켰다.

“이제 저 문을 통해서 나가야 해요. 아무것도 보장해 드릴 수 없어요.”

“여기서 갇혀 있는 것에 비하면 훌륭한 조건이군.”

그 말이 끝났을 때, 국방부 광장으로 누군가 내려섰다.

“오빠, 여기예요.”

송연지는 도롯가에 있는 맨홀 하나를 열었다.

그사이, 지하실에 숨어 있던 국방부 인사들이 전부 로비로 나왔다. 그중에는 강차연과 가연수도 있었다.

“자, 여러분들. 저기까지 무사히 가는 게 첫 번째 미션이에요. 미리 말해 두지만 성공은 장담할 수 없어요.”

상엽은 송연지가 서 있는 맨홀을 가리켰다.

“솔직히 말할게요. 여러분들이 하수구를 통해서 무사히 빠져나가면 시민들도 같은 루트를 이용하게 될 거예요. 한마디로 여러분들의 목숨으로 실험을 하겠다는 거죠.”

그의 거침없는 말에 사람들의 표정이 변했다. 그러자 김대진이 앞으로 나섰다.

“부담 없이 먼저 나갈 수 있겠군.”

김대진은 곧바로 국방부 건물을 빠져나가서 맨홀을 향해 뛰었다.

“저 아저씨는 확실히 세금이 아깝지 않다니까.”

상엽은 김대진이 맨홀 앞에 서는 것을 보고 다른 이들을 보았다.

“뭐해요? 빨리 결정해요.”

결국 모든 이들이 김대진을 따라나섰다. 이곳에 있는 건 죽음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모든 이들이 맨홀에 닿았을 때쯤, 상엽이 지나가는 말투로 말했다.

“아무도 고맙다고 안 하네.”

혼잣말이었지만 힘을 주어 말한 탓에 모든 사람이 들을 수 있었다.

“고맙네! 목숨값은 대한민국에 갚지! 이해해 주게! 공무원이라 어쩔 수 없네!”

“쳇, 능구렁이 아저씨.”

상엽은 더 이상 인사를 강요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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