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7
갑자기 시작된 재앙이었다.
처음에는 이상 기후로 인한 철새들의 이동으로 파악됐다. 그런데 서울 시내를 지나는 수만 마리의 철새는 분명히 평범한 현상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철새들이 구름처럼 뭉쳐 24시간을 머물자 뭔가 잘못되었음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불안한 마음이 커지던 아침 8시.
출근 전쟁을 치르는 서울로 구름이 떨어졌다.
정확히는 새들이 군대처럼 일제히 하강하기 시작한 것이다.
새들은 지상에서 움직이는 모든 것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때는 그래도 피해가 많지 않았다.
미친 것처럼 날뛰었지만 신체 능력은 평범한 새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2시간이 지나자 특수 치안대가 문제를 발견했다.
-새들에게서 그레이 코인이 보인다.
변종이 되고 있다는 뜻이었다. 이 보고 하나로 대통령은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하지만 최선을 다했음에도 이미 늦은 후였다.
덩치 큰 까마귀의 발톱은 자동차의 지붕을 뜯어냈고 까치의 부리는 강화 유리를 산산조각 냈다.
새들이 변종으로 변하는 순간, 5만 명이라는 엄청난 사상자가 발생했고, 곧바로 국가 비상사태가 선포되었다.
하지만 수도권 전체로 흩어져서 날뛰는 새를 막는 건 불가능했다.
지상의 변종과 달리 하늘에서 떨어지는 변종은 어설픈 갓코인 유저가 상대할 수준이 아니었다.
군부대는 시민들이 집 안에 갇혀 있는 탓에 대형 화기 한 번 제대로 쏘지 못했고, 높이 날아오르는 새를 향해 발포를 해 봐도 명중률이 형편없었다.
결국 군부대는 사람들이 스스로 시작한 피난 행렬을 보호하는 데 주력했다.
그렇게 사흘이 흘렀을 때, 변종 새는 더욱 성장해서 최하 500코인이라는 무시무시한 괴물이 되었다.
1천 코인이 넘는 새도 흔히 볼 수 있는 수준이었고 3만이 넘는 우두머리급이 발견되기도 했다.
그때부터는 군부대도 철수를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세 번의 피난 계획이 전멸로 끝났고 군부대가 습격당하는 사건까지 일어났다.
결국 정부는 대구와 전주 방어선을 구축하는 데 힘썼다.
그때부터 서울 시민들은 스스로 생존하는 방법 외에 도움을 요청할 수가 없었다.
이는 새롭게 합류한 독수리에 의해서였다.
본래 장갑차를 비롯한 특수 차량으로 주요 인물들 수송에 나섰던 정부였지만 그 작전이 채 끝나기도 전에 독수리들이 등장했다.
그리고 독수리들은 보란 듯이 장갑차와 탱크의 철판까지 찢어 버렸다.
상황이 극한으로 몰리자 군대에서는 결국 서울의 하늘에 미사일을 쏘아 올렸다.
그런데 이는 예전 미국과 같은 상황이 되고 말았다.
예전 미국이 핵무기를 사용해서 변종들을 자극하는 바람에 모든 도시가 파괴되었듯이 변종들이 미쳐서 날뛰자 더 많은 피해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3천 마리의 새를 잡는 대가로 시민 50만 명이 죽는 참사가 벌어지고 말았다.
그때부터는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 * *
대구와 전주 방어선에는 대공포가 집중적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이대로는 한국이 사라져.”
이미 받은 타격이 너무 컸다. 박광신은 상엽이 예상한 것보다 훨씬 절망적인 예상을 했다.
“한국은 서울을 제외하고는 생각할 수 없으니까.”
비정상적인 경제 성장이 만들어 낸 결과였다.
모든 이야기를 듣고 난 상엽의 결론은 명확했다.
“갓코인 유저가 처리하는 수밖에 없겠네.”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 된다면 그렇지.”
할 수 있다면 이미 흑점이 했을 것이다. 그들이 나서지 못했다는 건 가능성이 제로였기 때문이다.
“서울을 되찾지 못하면 어떻게 돼?”
“몇 달만 지나면 한국은 빈민국으로 전락할 거야. 강원도의 식량 단지가 파괴됐고, 수도권의 경제가 무너졌어. 한국은 전부를 잃은 거야.”
그 말을 하는 박광신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 심각했다.
“걱정 마. 한국에 변종 전문가가 있으니까.”
“변종 전문가?”
상엽은 웃으며 자신을 가리켰다.
“내가 괜히 원시인으로 살아온 게 아니야.”
심각한 상황에서도 박광신은 상엽을 보며 웃을 수 있었다. 하지만 분명히 해야 할 말이 있었다.
“쉽지 않을 거야.”
처음으로 등장한 변종이었다. 이에 대한 대비책이 아직까지도 없었다.
“일단 서울에 대한 정보부터 준비해 줄래? 난 갈 데가 있어서.”
“알았어. 최대한 준비할게.”
상엽은 심각한 표정의 박광신에게 다시 한번 웃어 주고 몸을 돌렸다. 그런데 박광신은 아직 할 말이 남았다.
“동생, 이거 가지고 가.”
사령부를 나서려는 상엽에게 박광신이 스무 개의 유물 조각을 내밀었다.
“이게 뭐야?”
“길드 차원에서 보관하던 유물들이야. 부족하지만 이렇게라도 돕고 싶어서.”
“아저씨 형을 주는 게 나을 텐데.”
“길드장 결정이야. 이미 필요한 만큼은 나눠 줬고 이건 동생 몫으로 남겨 둔 거야.”
상엽은 고민하지 않고 유물을 받아들였다. 코인으로 환산하면 700만에 달하는 가치였다.
“선금 받았으니 공사는 제대로 할게.”
상엽은 곧장 사령부를 나섰다. 오상식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유령 잔상 10단계.
무려 3840만을 소모한 상엽은 친위대를 제외한 모든 아오나의 스킬을 완성했다.
이로써 그가 신전에서 보았던 아오나의 모든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됐다.
강화는 이걸로 끝나지 않았다.
불의 정수 10단계.
화염 정령의 불꽃 5단계.
결국 상엽은 4천 4백만이 넘는 코인을 모두 소모했다.
“특수 스킬이 있었네.”
불의 정수는 강화 전만 해도 특수 스킬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 10단계가 되자 특수 스킬이 나타났다.
불의 정수 10단계 특수 스킬-화염 파도
화염의 파도를 소환한다.
불의 정수에 어울리는 스킬이었다.
모든 준비를 끝낸 상엽은 마지막으로 막 대구에 도착한 동희를 만났다.
송연지는 작전으로 인해 올 수 없다고 했다.
“넌 괜찮아?”
“응. 미리 연락받고 담비들이랑 피신했어.”
설악산의 담비들은 모두 태백산으로 이동한 상태였다.
“이거 받아.”
동희는 상엽과 인사를 끝내자 바로 유리병 다섯 개를 건넸다.
“희귀 재료로 만든 거라서 이것밖에 없어. 효과는 확실할 거야.”
상엽이 구한 1급 위험 지역의 재료로 완성한 음료였다.
총 일곱 병을 만들었지만 탈출할 때 두 병을 사용하고 다섯 병이 남은 것이다.
“고마워.”
“서울로 갈 거야?”
“그래야지.”
상엽이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하자 동희는 대단하다는 듯이 말했다.
“정말 독립투사가 돼 버렸네.”
“이 나라에 애정은 없지만, 사라지게 둘 수는 없잖아.”
“사실 나도 그래.”
“넌 어쩌려고?”
“네가 서울로 들어가면 난 강원도로 들어갈 거야. 담비들이랑 같이. 태백산도 좋긴 한데. 역시 설악산이 최고야.”
동희도 직접 전투에 나설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차라리 흑점이랑 같이 움직여.”
“아니야. 담비들로 충분할 거야.”
동희는 그렇게 말을 하면서 주머니에 있는 작은 환약 하나를 보여 주었다.
“그게 뭔데?”
“동물 밥.”
“사료?”
“아니야. 사료가 아니라 담비들 밥이야.”
“설마 그것도 능력을 올려 주는 거야?”
“응. 이번에 성공했어.”
상엽은 동희의 능력에 놀라서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진짜 괴물은 동희라니까.’
그의 가능성은 상엽이 예측한 수준을 벗어나고 있었다.
“동희야.”
“응?”
상엽은 머릿속에 떠오른 상상을 숨기지 않고 말했다.
“새로운 동물 친구 만들어 줄까?”
동희는 상엽의 질문에 아이처럼 순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응. 좋아. 헤헤.”
“알았어. 하루만 기다려.”
상엽은 남은 시간 동안 해야 할 일을 생각해 냈다.
* * *
바람이 잔잔한 저녁이었다.
송연지는 무너진 건물의 잔해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그녀의 시선에 사람의 시체를 뜯고 있는 열 마리의 까치가 보였다.
송연지는 숨을 멈추고 주먹을 쥐었다. 그러자 녹색 활이 나타나 그녀의 손에 잡혔다.
우웅.
그녀가 활시위를 당기자 다섯 개의 빛이 생성되었다. 화살 모양으로 바뀐 빛은 송연지가 활시위를 놓자 바람처럼 새를 향해 날아갔다.
화살은 목표 지점에 닿기 직전, 산탄총처럼 수십 개의 조각으로 흩어졌고 그대로 새들을 덮쳤다.
저항하지 못하고 빛으로 흩어진 새들은 곧 송연지의 몸으로 흡수되었다. 하지만 그 빛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하늘이 소란스러워졌다.
“쳇.”
송연지는 수백 마리의 새들이 다가오는 것을 보며 급히 자리를 떠났다.
그녀가 모습을 드러내자 사방에서 까치와 까마귀들이 날아들었다.
순식간에 500마리의 추격을 받게 된 송연지는 바닥을 기듯이 뛰며 미리 열어 둔 맨홀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급히 위를 막았다.
“누가 이기는지 끝까지 해보자.”
지금까지 그녀의 손에 죽은 새만 천 마리가 넘었다. 하지만 줄어들었다는 느낌이 전혀 없었다.
오히려 더욱 늘어난 느낌이었다.
“시간이 없어.”
이제는 익숙해진 하수구에서 뛰며 그녀는 조심스럽게 다른 맨홀을 통해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급히 주변을 살폈다.
“찾았다.”
그녀의 눈에 은빛 깃털을 가진 독수리가 보였다. 다른 독수리를 조종하는 특수 개체였다.
슈슉!
곧장 활시위를 당기려는 순간, 독수리는 마치 알고 있다는 듯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동시에 바닥을 타며 저공비행을 하는 독수리 다섯 마리가 그녀에게 접근했다.
‘쳇.’
결국 그녀는 다음 기회를 노려야 했고, 그 분노를 다가오는 독수리들에게 풀었다.
촤랏!
그녀가 단검을 빼 들고 빠르게 휘두르자 주변으로 수백 개의 칼날이 생성되어 몸을 감쌌고 다가오던 독수리들이 수십 조각으로 흩어졌다.
독수리를 처리한 그녀는 여전히 화가 난 표정이었지만 더 많은 새가 몰려오기 전에 맨홀로 들어갔다.
1시간 후.
송연지는 아공간에서 통조림과 빵을 꺼내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레이 상점을 통해 다른 나라에서 가지고 온 음식이었다.
그녀의 행동이 끝나자 곧 한 명의 사내가 다가와서 인사를 했다.
“매번 감사합니다.”
“아픈 사람은 없죠?”
“아직은 괜찮습니다.”
그녀가 있는 곳은 지하 주차장이었다. 무너진 아파트에서 생존한 주민들이 임시로 머무는 장소이기도 했다.
“전 그럼 가 볼게요. 절대 밖으로 나가지 마세요.”
송연지는 가야 할 곳이 많았다. 이렇게 그녀가 돌보는 피난 지역만 열 곳이 넘었다.
기껏해야 약품과 음식을 가져다주는 것이지만 그들에겐 생명 줄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이대로는 안 돼.’
최선을 다했지만 상황이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피난민들의 돌발 행동으로 은신처가 전멸하는 일까지 있었다.
그리고 그녀 자신도 크고 작은 상처들이 남았다.
그때, 그녀의 펜던트가 빛을 뿌렸다. 그녀가 펜던트를 잡자 거울을 통해 영상 통화처럼 보낸 기억이 도착했다.
-오빠가 간다.
짧은 한마디였다.
‘빨리 와요.’
그 한마디가 지쳐 가던 그녀에게 힘을 주었다.
* * *
아직 해가 떠오르지 않은 밤이었다.
상엽은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의 한강 공원으로 올라섰다.
바다가 아니라 강을 통해 서울로 들어온 상엽은 추종자를 통해 주변 정찰을 마친 상태였다.
-주인님.
추종자가 누군가 접근하고 있음을 알렸다.
상엽은 접근하는 사람의 얼굴을 확인하고 긴장을 풀었다.
“여기야.”
그가 먼저 위치를 알리자 접근하던 자가 다급히 다가왔다.
“산적 오빠.”
그들은 이미 약속을 정하고 이곳에서 만나기로 했다.
“일단 안전한 곳으로 가요.”
인사를 나눌 겨를도 없이 그들은 장소를 옮겨야 했다.
도착한 곳은 송연지가 주로 이용하는 하수구였다.
“별로 대접할 건 없어요.”
상엽은 송연지가 건넨 생수를 받으며 주변을 보았다.
“너랑 어울리는 곳은 아니네.”
“전 어디가 어울리는데요?”
“꽃밭.”
“꽃이 예뻐서요? 아님 제가 예뻐서요?”
“꽃향기가 너한테 어울려서.”
송연지는 농담인 걸 알면서도 심장이 두근거렸다.
“많이 늘었네요.”
“연습의 결과지.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서 틈틈이 연습하거든.”
“칫. 그래도 오빠 만나니까 긴장이 좀 풀리네요.”
“겨우 변종 따위에게 긴장한 거야?”
“겨우 변종 따위에게 백만 명이 넘게 죽었어요.”
그 말에 상엽은 더 이상 농담을 할 수가 없었다.
“영웅은 내가 아니라 연지가 됐어야 하는데.”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하지만 오빠만큼의 능력은 없으니까요.”
“네가 나 같은 능력이 있으면 어떻게 할 건데?”
“저 빌어먹을 조류들을 전멸시켰겠죠.”
상엽은 그 말에 자신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웃겨요?”
“아니. 나랑 생각이 같아서 웃은 거뿐이야.”
그 말에 송연지의 표정이 더욱 심각해졌다.
“설마 무작정 달려갈 건 아니죠?”
그녀는 불안했다. 상엽이라면 그러고도 남을 사람이라 판단했다.
“나 바보 아니야.”
“다행이네요. 좀 똑똑해지기도 해서.”
“두고 보면 조금이 아니라 엄청 똑똑해졌다는 걸 알게 될 거야. 내일부터 재미있는 일이 벌어질 거거든.”
상엽은 송연지의 불안을 무시하며 여유로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내가 1급 위험 지역의 변종 조련사야.”
상엽은 웃었지만 송연지의 표정에는 의문만 가득히 남았다.